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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9/19 03:11:48
Name 눈시BB
Subject [일반]  그 때 그 날 - 과거 (2) 대리청정, 비극의 시작

+) 고고학 수업 시간에 형질인류학(뭔지 묻지 마세요 -_-a) 교수님이 특별 강연하셨었습니다. 인류의 기원 얘기를 하면서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뭘까"라는 질문이 나왔는데, 답이 참 재밌더군요. 그 분이 말씀하신 것은 "수명"이었습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 네안데르탈인은 도태됐고 크로마뇽인은 현생 인류가 되었죠.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일단 무시하고, 유럽에서 발견되는 이 둘의 화석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크로마뇽인 쪽에서 노인 화석의 비율이 몇 배로 높았다는 거죠. 여기서 문제가 갈립니다.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은 중기 구석기였고 크로마뇽인은 후기 구석기였죠. 그렇다면 수명이 크로마뇽인이 높았다는 것은 양 쪽이 아예 생물학적으로 갈린 것일까요? 아니면 문화의 차이일까요? 여기서 비교 대상으로 삼은 것이 서아시아의 화석이었습니다. 여기도 양 쪽의 화석과 유물이 발견되는데 유럽과는 다르게 둘 다 중기 구석기였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수명이 그렇게 차이가 난다면 생물학적인 차이로 네안데르탈인이 몰락한 거겠죠.
하지만 여기서는 수명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본격적으로 문명(-_-)의 길로 들어선 것은 이런 문화적인 차이가 아닐까... 이런 거였죠. 정말 상상도 못 한 결론이었습니다. 인간이 본격적으로 문명화된 증거가 수명이라... 뭐 아직은 가설 단계라고 합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차이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전 세계에서 극히 드물어서 아직 보편화시킬 정도는 아닌 모양이예요. 그래도 참 신기했습니다.

+) cpu가 맛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문명할 만한 cpu 얼마나 할까요?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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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신 말씀 정말 좋은데요. 전하께서는 조용히 이르셨어야지 그렇게 지나치게 말 하면 세자 저하 체면이 뭐가 되겠습니까? 이제 일 다 끝났으니 잊어 버리세요."
"그래, 니 말이 맞다. 근데 대신들이 세자 안 좋아하고 무식하다 그러니까 나도 그랬지."
"유교는 원래 왕 까야 충신 되는 거고요 -_-(원문에는 이런 말 없음) 전하 말씀 이해 안 가는 건 아닌데 세자 저하 기 살려 줘야지 그러면 되겠슴까?"
"아 그래 니들 말 맞대도. 나도 생각이 있어서 한 거라고. 아니 아빠가 아들한테 이런 말도 못 하냐?"

-_-a 흐음... 제대로 바꾼 건지 모르겠네요.

숙종 때 영조의 형 경종은 대리 청정을 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종은 "알았다" "안 된다" "유의하겠다" 이 세 마디만 했다고 하죠. 그랬던 경종이 한 번 빡쳐서 승지 등을 내쫓은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야 화가 풀려서 자기가 한 걸 취소했지만 다들 놀랐었죠. 병 걸려서 골골거리던 숙종도 그거 듣고 한 마디 했는데, 신하들에게 저렇게 쿠사리 먹습니다.

대리 청정. 특히 세자가 대신 하는 것은 왕이 늙었을 때 정치 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죠. 태종은 대리 청정 같은 거 넘기고 자기가 상왕으로 올랐습니다. 덕분에 세종대왕은 4년 동안 정치 수업을 할 수 있었죠. 태종이 더 오래 살았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그는 깔끔하게 -_-; 4년 후에 죽었습니다. 세종대왕은 문종에게 대리 청정을 시키면서 정치 수업을 완벽하게 시켰습니다만 도로아미타불... 세조는 예종에게 대리 청정을 시키는데 얼마 안 가 죽었죠. 그 이후가 바로 숙종, 숙종이 오래 산 덕에 경종도 제법 오래 했습니다. 정작 왕으로 있던 시간은 짧았지만요.

이 때까지의 대리 청정은 왕이 확실히 늙어서 한 거였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왕이 이제 권력을 아들에게 넘겨주려 했다는 거죠. 나라의 주인이 둘일 수는 없는 법, 때문에 저렇게 왕(그것도 숙종)한테도 "대놓고 세자 욕하지 말라능"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거기다 경종은 소론이 미는 왕이라서 노론이 견제를 넘어 세자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한 상황이었는데도 말이죠.

그렇다면, 영조는 어땠을까요?

1. 제왕 교육
영조 25년 1월 27일, 세자의 대리 청정이 시작됩니다. 그 때 영조 나이 57세. 늙었다 하면 충분히 늙었다고 볼 수 있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조는 우리가 알다시피 그러고도 삼십년은 더 살죠.

영조 : 네가 사서를 살펴보건대 한·당·송 세 왕조 가운데 어느 나라가 가장 나은가?
세자 : 한나라가 제일 위이고 송나라가 그 다음이며 당나라가 가장 하위입니다.
영조 : 당나라가 무엇 때문에 가장 하위인가?
세자 : 제가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양귀비 때문인가 -_-a)
하자, 임금이 좋다고 칭찬하고 매우 기뻐하였다. (24년 10월 23일)

영조의 결정은 급히 내려진 결정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 해부터 세자를 불러서 뭘 물어보고 뭘 더 해라고 하고 칭찬하고 꾸중하는 게 집중적으로 나타나죠. 공부가 부족하다 하면 추방관(스승?)들을 추고하기도 하고, "내가 얘네들 욕 하는 거 보기 싫으면 공부해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영조도 나름 급해지긴 했을 겁니다. 얼마나 더 살지 몰라도 자기가 나이가 있었으니까요. 대리 청정 결정 역시 자기는 나이가 있는데 세자는 공부가 부족해서 실전이라도 경험하게 하려고 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떨리는 첫 발걸음. 세자는 나름 정치를 시작하면서 이런 저런 말을 듣고 명령을 내립니다. 이 때 사관은 그의 모습을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이날 여러 신하들은 모두 움추리고 엎드려 머리를 들지 못하여 대조에 입시할 때에 비해 더욱 엄숙하고 공손하였으니 대개 동궁이 과묵하고 위엄이 있어 얼굴빛과 말솜씨로써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은 때문이었다" (1월 28일)

이 과정에서 세자가 공공연히 소론을 편 듬으로써 노론이 경계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세자를 참소하게 되면서 비극이 시작되었다는 게 통설입니다. 흠... 그럼 이 때의 모습을 좀 살펴 보죠. 세자가 처음 정사를 보는 날이었습니다. 안건은 함경도의 방어진에 대한 문제였죠.


등 뒤가 얼마나 가려웠을지...

영조 :오늘은 우리 애가 처음 정사 보는 날이다. 모두 세자에게 말 해라. [나는 앉아서 지켜보겠다] 세자 너는 신하들 말에 그냥 알았다 하지 마라. 그건 미봉책이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으면 다시 물어보고 의견을 참작한 다음 결정해라.
김재로(영의정) : 성진에 있는 방어 기지(방영)은 도로 길주에 보내야 됩니다.
조현명(좌의정) : 육진으로 통하는 길이 아홉 개 있는데 길주는 요충지지만 성진은 딱 세 개만 막을 수 있죠.
세자 : (아우 떨려 ㅠㅠ) 방영을 길주에 보낸다 치면 성진에도 남길 병력이 있을까?
김재로 : 넴.
세자 : 그럼 옮기는 게 맞겠네.

이 때 영조가 끼어듭니다. 가만히 지켜볼 거라면서요 ㅡㅡ
영조 : 니 말이 맞긴 한데 애초에 그거 내가 한 건데 그냥 옮기라 하면 경솔하잖아. 당연히 여러 신하들에게 더 물어보고 [나에게도 물어봐야] 될 거 아니냐.
세자의 첫 결정은 이렇게 막히죠. 세자는 여러 신하들에게 다시 물어본 후 대조(영조)에게 묻습니다. 이 때부터 대조(큰 조정)는 영조를, 소조(작은 조정)는 세자를 뜻 하게 됩니다.
영조 : 길주와 성진의 상황은 비국(비변사)에서 누구 보내서 알아보는 게 나을 것 같다. 누가 좋겠는가? (이걸로 세자는 구경)
조현명 : 제가 가죠 뭐
영조 : 넌 정승이잖아 임마
조현명 : 옛날부터 대신이 변방 가는 건 일상이었죠. 다를 게 뭐 있어요.
이 때 병조판서 김상로가 가겠다고 해서 허락합니다. 세자는요? -_-;
이어서 암행 어사, 아니 호조 판서 박문수가 안건을 내죠.
박문수 : 칙사가 왔을 때 호조에서 수어청에 돈 빌렸었는데 아직 못 돌려줬네요. 근데 이번에는 쌀도 빌려야 쓰겄는디 괜찮을까요?
조관빈(수어사) : 호조가 썼던 게 중요하긴 한데 빌려놓고 안 갚고 또 쌀 빌려달라 하니 기분 안 좋죠 ㅡㅡ
영조 : (약간 설명해 주고) 세자야 니가 결정해라.
세자 : (아나 어쩌지... 음...) 쌀은 필요하니까 호조로 보내고, 돈 빌린 건 호조가 갚는 게 맞겠죠.
영조 : (웃으면서) 이응이응. 잘 했음.
조관빈 : 길거리에 글베이(거지 ^_^)들이 많은데 경조에서 조사해서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됩니다.
세자 : (음... 에라 모르겠다) 자기 뜻에 맡겨라.

여기서 딴지를 건 건지 총평인지 모르겠는데 여기서 영조는 길게 충고합니다. 보니까 오늘 결정에 대한 총평인 것 같네요.
"너는 궁 안에서 편히 살아서 임금질 하기 어려운 줄 알기나 하겠냐? 길주 일 보니까 너무 쉽게 처리한다. 나는 명령 하나도 깊게 생각해서 결정해서 머리와 수염이 빠지... 지는 않았고 하얘졌다. (이런 저런 예를 들면서 당파 싸움 만들지 마라 어쩌고저쩌고) 니가 오늘처럼 신하들 말 쉽게 믿으면 종묘 사직과 백성, 신하들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거 나중에 가면 또 지들끼리 죽이게 만드는 거다. 니가 이 말 똑똑히 안 들으면 나중에 후회한다. 4백년의 기업과 억만 백성이 니 손에 달려있으니 부디 내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이런 긴 말. 영조가 세자에게 기대하는 게 무엇인지 간단히 알 수 있다 하겠습니다. 좋게 볼 수도 있고 나쁘게 볼 수도 있겠죠. 그의 기대는 옳았고, 그가 한 충고 역시 반드시 필요한 거였습니다. 하지만 방식은 문제였죠. 또한 저 말이 좋게 좋게 있지만, 정말 저렇게 좋게 말했을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임금이 하는 말은 한국어지만 적는 건 한자죠. 숙종부터 경종, 영조, 정조까지도 "차마 들을 수 없는 말", "차마 적을 수 없는 말"을 했다고 많이 적혀 있습니다. 이들의 성깔은 참 독했고, 흔히 말하는 아가리 파이터였죠. -_-; 저 날은 세자가 정사를 보는 첫 날이었습니다. 분명 필요한 충고였겠습니다만, 시작부터 저렇게 기를 죽여놓을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 후의 상황도 저것과 그리 다르게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자의 대답은 거의 똑같았습니다. 자기에 대한 충고나 간단한 사실이야 "알았다" "아뢴 대로 해라"고 했찌만 조금이라도 중요한 사안은 이랬죠.

"마땅히 대조께 품한 뒤에 모두 시행하겠다"

  영조의 충고도 곳곳에 보입니다. 사치하지 마라, 신하들 함부로 죽이지 마라, 당쟁을 막아라 이런 식으로요. 신하들에게도 "세자가 이런 걸 지키지 않으면 무조건 말 해서 고치게 하라"고 여러 차례 말 하죠. 영조의 탕평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노론은 소론을 죽이려 했고, 소론은 영조를 인정하지 않았죠. 영조 전반기 내내 소론과 남인에 의한 역모가 일어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악착같이 탕평을 지킨 영조는 대단하다 할 만 하죠. 그리고 그것 또한 세자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낳았을 것입니다. 자기만큼 하라는 거죠.

7월에는 영조와 보는 가운데서 차대(신하들을 만나는 거)하는 시좌차대를 폐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런 점만 보면 자기의 권한을 줄이면서 세자의 권위를 올려주려는 생각이 없진 않았나 봅니다. 이후에는 세자가 결정하는 게 계속 나오죠. 하지만 여기서도 말이 참 짧았습니다. 영조에게 아뢴 후 결정하겠다, 그렇게 하라, 알았다 이 정도였죠. 이런 것 때문에 실록에는 "과묵했다"고 나오는 것일 겁니다. 영조도 이걸 지적하기는 합니다.

"너한테 대리하라 한 건 니 높이려는 게 아니라 내 고생을 나누려는 건데 왜 매사를 나한테 보고하냐? 좌상이 다 나한테 보고하라고 했다면서? 이건 잘못된 거야. 거기다 그놈은 너한테는 나한테 보고하라고 하면서 나한테는 너 너무 구속하려 한다고 하니 이럼 어쩔까? 내가 니 구속하는 게 아니라 대신이 너 구속하는 거야." (5월 23일)

하지만 좀 살펴보면 그냥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라는 걸 알 수 있죠. 대신들 역시 알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조가 너무 세자에게 참견하고 세자는 영조에게 무조건 물어본다는 걸요. 때문에 양 쪽에 다 충고한 건데 영조는 이것 때문에 저런 말을 한 것입니다. 거기다 영조는 자기가 결정한 걸을 바꾸려고 할 때 크게 노했습니다. 중요한 건 내가 결정한다고 했는데 왜 이러냐는 거죠. 이중권력의 폐해고, 태종이 상왕으로 있을 때도 문제가 됐던 부분이었습니다. 이 때 태종은 몇 년 안 가서 죽었습니다만... 영조는 아니었죠.

잠시 한중록을 보겠습니다.

2.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한중록에서는 세자의 병과 함께 영조의 편집증적인 면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죽을 死, 돌아갈 歸 같은 자는 꺼리고 쓰지 않았고, 나갈 때 입는 옷과 안에서 일할 때 입는 옷이 달랐으며, 불길한 말을 들으면 양치질하고 귀를 씻고 [사람을 불러서 말이라도 한 마디 하고] 들어갔다고 하고 있죠. 이 때 [말 한 마디 한] 사람이 세자였고, 그 말 듣고 귀를 씻어서 물을 버리는 쪽이 화협옹주였습니다. 그래서 둘은 서로 "우리는 귀 씻을 준비물이다"고 자조했다는군요. 억지가 좀 보이긴 하지만 일단 넘어가죠.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당했을 때 출입하는 문도 달랐고,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한 대접도 달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뒷다마를 신나게 한 혜경궁은 다음 에피소드를 적습니다.

+) 이 때 대리 청정 전에도 불길한 일에 있을 때에도 세자를 불렀다고 하는데 그 일은 죄인을 심문하는 일이었습니다. 일찍 대리 청정까지 시킨 걸 보면 이건 당연한 거죠. 이런 것까지 끼워 넣은 걸 보면 안 좋은 쪽으로 최대한 끼워맞추려 한 게 보입니다.

그녀는 대리 청정의 이유도 "화평옹주가 죽은 후 슬퍼서 귀찮은 건 세자에게 맡기려고 한 거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조의 너무나도 성실한 모습을 보면 그렇지 않죠. 실록에 나타나는 모습에 대해서 한중록은 참간단히 정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결정하지 못 하는 일을 영조께 아뢰면 [그만한 일도 혼자 못 하냐? 대리시킨 보람이 없다]고 했고,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그런 일을 어찌 내게 말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냐!]고 꾸중하시니, 이리한 일은 저리 아니하였다 꾸중하시어, 이 일에도 격노하시고, 저 일에도 뜻 같지 않다 하시니라."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 하고 있죠.
"심지어 백성들이 얼어 죽거나 주려 죽거나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 있으면 [소조에게 덕이 없어 이러하다] 꾸중하시니라."

실록에 나타나 있는 모습과 이 때의 모습을 좀 종합해 보죠. 혜경궁이 직접 정사를 본 적은 없을테니 보통 세자한테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영조의 꾸중이라고 나타난 것은 일부러 안 좋게 적은 것 + 세자가 안 좋게 받아들인 것이 포함돼 있다고 봐야 될 것입니다. 이 때의 꾸중의 이유를 "미워서"가 아니라 "과한 기대 때문"이라고 본다면 둘은 맞아 떨어지죠. 반면 한중록의 모습을 보면 영조 역시 말이 좋진 않았던 것으로 봐야겠죠. 그리고 영조 자신이 세자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은 것 역시 참고해야 될 겁니다. 싫은 자식인데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자식. 뭐 결국 뜻은 괜찮은데 방식이 안 좋았던 겁니다.

바로 위에 든 예도 그렇습니다. 기형 동물이 생겼다든가 수컷이 갑자기 암컷이 됐다든가 하는 이변이 생기면 그 역시 곧바로 임금의 잘못으로 여겨졌습니다. (성종 때 보면 대간이 "이거 다 임금 잘못이니까 고치세요."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성종이 어이 없어서 반문하자 "아니 임금은 자기 잘못 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시면 성군 못 됩니다"라고 하죠. -_-;;; 불쌍해요) 세자에게 한 말 역시 이것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 방식과 세자가 받아들이는 건 다를 수밖에 없죠.

혜경궁은 이 때 세자가 병의 조짐을 보였다고 합니다. 천재지변마다 자기 탓이라 하니까 천둥과 번개에 겁을 먹었다고 하죠. 그러면서 영조가 좋은 자리 (문과 시험, 무예 관람)에는 데리고 가지 않고 사형수를 심문할 때나 데리고 다녔다고 하면서 영조를 까고 있습니다. 이 때 아들이 태어났는데 화평옹주의 환생이라느니 하면서 (배에 똑같은 점이 있었다네요) 기뻐했다느니 하는 모습도 있죠. 이 아이는 얼마 안 가 죽었고, 정조가 태어난 것도 이 때쯤입니다.

실록에서도 이에 대한 반응이 보입니다. 영의정 김재로의 상소입니다.

"동궁 저하께서 어린 나이에 대리하여 수응이 다 합당하고 정령의 사이에 또한 일찍이 성상의 뜻을 우러러 몸받지 않음이 없으니 신은 일찍이 찬탄하였는데, 전하께서는 매양 지나치게 책망을 하십니다" (27년 6월 12일)

세자가 크게 잘못하는 게 없는데 책망이 지나치다는 거죠. 이에 대한 영조의 대답입니다.
"니는 내가 진짜 믿고 의지하는데 이런 시기에 나를 곤란하게 하는 거냐? 애석하다."

영조도 이 때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탕평, 자기 자신에 대한 신원이었죠.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영조, 천한 무수리의 아들 영조에게는 언제 누가 자기 목숨을 노릴 지 모르는 비상시국이었습니다. 그 기간은 그 자신의 재위 기간만큼이었죠. 그런 압박감은 세자에게 그대로 전해졌을 겁니다.

영조 28년 12월 8일, 영조는 또 다시 선위하겠다고 했습니다.


대체 영조 안에는 너구리가 몇 마리나 들어가 있던 걸까요.

3. 눈보라 아래서
"이 문에 앉은 이유는, 희정당은 정사당이므로 왕세자에게 대리 청정케 한 뒤로는 다시는 앉고 싶지 않아서이다. 송현궁에 거둥한 것은 나의 큰 뜻이었는데, 자전의 분부로 인하여 이루지 못하였다"
"이 옷을 벗은 뒤라야만 이 마음이 드러날 것이다. 태조와 세종대왕께서도 이미 행하셨다"
"이 어제는 내가 연잉군으로 있을 때에 (경종이) 주신 것이다. 내가 그냥 연잉군으로 있었다면 어찌 이런 아픔이 있겠는가? 이 옷을 벗지 않는다면 무슨 얼굴로 지하에 돌아가 형님을 뵐 수 있겠는가?"

"대리 청정하는 것이 하나의 기휘(욕 먹을) 거리가 되었다. 노론은 일찍이 이 때문에 화를 받았기 때문에 겁을 먹어 뜻을 받들지 않고 있으며, 소론은 일찍이 대리 청정하는 것을 죄로 삼았기 때문에 이것을 의리로 삼으려고 뜻을 받들지 않고 있는데, 신하들의 노론이니 소론이니 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관계가 있기에 하나는 무함이라고 하고 하나는 무함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어떻게 견디어 낼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세자를 욕 되게 하더라도 조상께 죄를 지을 수 없다느니, [세자에게 효성이 있다면 지금 내 명을 들어야 된다]느니라는 말을 했죠. 진눈깨비가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 늙은 영조는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하고 있었죠. 다들 만류하지만 영조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세자 역시 땅바닥에 엎드려야 했구요.

그 해 10월에는 홍역이 크게 번졌습니다. 이 때 세자와 유일하게 친했던 화협옹주가 죽습니다. 영조의 딸들 중 유일하게 미움받았던 그녀는 이렇게 한 많은 세월을 마감했죠. 그리고... 세자는 이 슬픔은 물론 그 자신도 홍역에 걸렸었죠. 그리고 홍역이 겨우 나을 무렵 이런 일을 겪었던 것입니다. 성치 않은 몸으로 무조건 안 된다고 하며 눈보라를 이겨내야 했죠. 이 날은 인원왕후가 계속 말리고 나서 겨우 진정되었습니다.

영조는 일단 이 이유를 한 달 전에 올라온 노론 홍준해가 소론 이종성을 탄핵하는 것, 즉 탕평을 깨뜨리려 한 것을 내밀었습니다. 정병설 교수는 여기에 대해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죠. [대천록]에는 영조의 총애를 받던 후궁 문씨가 임신 중이었는데, 영조가 세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오만하게 행동했다고 합니다. 이 때 문씨가 세자의 어머니 선희궁과 다투면서 막말을 했고 인원왕후가 이에 대해 세자가 보는 앞에서 회초리로 때렸다고 하죠. 이 때문이라는 건데...

이 설은 일단 시기가 절묘하게 일치합니다. 영조가 이유로 건 홍준해와 이종성 문제는 한 달은 지난 후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보자고 해도 이해가 안 가죠. 문씨는 다음 해에야 후궁이 됩니다. 왕은 늙었고 세자는 나이가 찬 상황, 선희궁을 다들 얕잡아 봤으니 막말을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후궁도 아니었던 그녀가 정말 세자 자리까지 노렸을지는 의문이죠. 한중록에서는 그녀가 딸을 아들로 속이려고까지 하면서 노렸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정조 때 그녀가 이 죄로 죽긴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얘기해야겠네요.
다만 여기서 전 다른 부분을 보고 싶습니다. 위에 적었듯 세자는 이 때 홍역을 앓고 있었고, 위험한 상황이었죠. 또한 영조가 했던 건 어디까지나 쇼였습니다. 그런데 세자가 죽기 직전의 상황이었다면, 쇼 한 번 벌이려다가 세자가 죽으면 일이 너무 커지죠. 일단 자기 뒤를 이을 유일한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래서 탕평 문제 또 걸렸으니 쇼를 벌이긴 해야겠는데 세자는 아프니까 좀 기다렸다가 하자, 이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만약 이게 맞다면 세자의 기분이 어땠을지는 짐작이 갑니다. 일개 후궁의 일 때문에 자기가 이 짓을 하고 있어야 되는 거니까요. 이 정도면 진짜 미칠 만 하죠.

이 상황은 일주일간 계속됩니다. 이 중 12월 14일,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죠. 그동안 신하들이 계속 전교를 거두어 달라고 청했지만 듣지 않았고, 일체의 공무도 보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왕세자가 팔짱을 끼고 임금의 앞에 서있었는데, 임금이 손으로 휘저으며 가도록 하고 말하기를,
“너는 무엇 하러 나왔는가?”
하고, 또 말하기를,
“내가 시를 읽을 것인데, 네가 눈물을 흘리면 효성이 있는 것이므로 내 마땅히 너를 위해 내렸던 전교를 취소하겠다.”
하고, 이어서 육아시를 읽어 끝 편에 이르자, 왕세자가 앞에 엎드려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종성이 말하기를,
“전하께서 친히 동궁에게 하교하셨는데, 동궁의 효성이 지극하였습니다. 반한하겠다고 하신 명을 식언하시면 안됩니다.”

이 때 세자는 몸 때문인 건지 역시 영조의 기대에 비해 퍼포먼스가 부족했던 건지 우두커니 있었돈 모양입니다. 심심하면 울었던 영조입니다. 세자가 울면 효성이 깊으니 선위를 취소하고, 아니면 선위하겠다는 거죠. 결국 이번 선위도 충성 서약일 뿐이었던 겁니다. 다행히 세자는 울었죠. 하지만 약속과 달리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세자에게 들어가라고 재촉했을 뿐이죠. 이미 한 방 당한 세자가 어찌 들어가겠습니까. 들어가다가 기둥에 붙어서 있었던 모양입니다. 계속 뭐라고 하는 영조, 신하들은 선위를 취소하라고 재촉합니다. 이 때 박문수는 계속 재촉하다가 제주도로 귀양가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도 하죠.

15일에는 정식으로 선위 명령을 내립니다. 한중록에서는 인원왕후가 늙어서 잘 듣지 못 해서 허락했다고 적고 있네요. 영조는 그녀의 허락을 받았다면서 또 찬 바닥에 드러눕습니다. 인원왕후는 뒤늦게야 "내 귀가 나라를 망치겠다"면서 말리죠. 글쎄요... -_-; 그녀도 질렸던 게 아닐까요? 아무튼 신나게 선위 소동은 계속됩니다. 실록에서는 이 때 세자의 모습을 기록하면서 계속 찬 바닥에 있으니 안 좋다 이런 걸 거듭 말 하고 있습니다. 영조도 "세자가 찬 곳에 있으면 안 좋으니 빨리 명령을 받고 들어가라"고 하고 있죠.

하지만 이미 당한 것, 학습효과는 있어야죠. 기사들을 보면 영조가 문을 안 열어주자 매일마다 세자가 문을 밀치고 들어가서 선위를 취소해 달라고 빌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영조가 안 된다고 하자 "일곱 번"이나 다시 말 하고, 글을 올리기도 하면서 말렸다고 하죠. 결국 선위가 취소된 건 18일이었습니다.

+) 그리고 한중록에서는 이 때 세자와 홍봉한 사이에 보낸 편지가 잔뜩 있다면서 홍봉한의 세자에 대한 충성이 이 정도였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뭐... 이렇게 영조 28년, 1752년도 흘러갔습니다. 대리 청정 후 5년째, 어찌됐든 둘 사이에 큰 갈등은 보이지 않고 있죠. 하지만 일은 갈수록 커졌습니다.

영조 31년 4월 28일, 약방 도제조 이천보는 세자에게 병이 있음을 보고합니다.
"삼가 의관의 말을 듣건대, 동궁이 근래에 가슴이 막히고 뛰는 증상이 있어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이런 증세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세자의 병이 공식적으로 나타난 것이 이 때일지, 아니면 한중록 쪽이 너무 이른 시점으로 쓴 것인지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이렇게 세자의 병이 시작됩니다. 세자의 아들은 갈수록 커 갔구요. 이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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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9/19 03:43
수정 아이콘
똑똑하고 노련한 정치가였던 아버지와 기대의 중압감에 짓눌리는 아들이란 참 보기 안쓰럽네요. 오늘날의 부자관계처럼 반항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게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집은 점점 세지는데 도대체 건강에는 흠집하나 안나는 아버지를 보면서 사도세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쩌면 그가 죽는 과정은 무의식적 자살은 아니었을까...하고 새벽에 소설을 써 봅니다.크

+)다른 부품들 스펙이 어떠신진 모르겠지만 10만원대의 i3정도면 무난하게 돌아가지 않을까요.
11/09/19 05:12
수정 아이콘
군시절때 저의 윗윗선임이 딱 영조같은 사람이였습니다.
근접기수끼린 다 친하게 지내는데 그 선임은 자기 바로 밑 후임을 2년동안 영조처럼 괴롭혔죠.
태어나서 사람을 그렇게 잘 괴롭히는 사람은 처음 봤습니다. 진짜 세포 하나하나까지 다 말려버릴정도로.
아이러니하게 밑밑후임은 저에게는 잘 해주고..

그때나 지금이나 2년동안 별 탈없이 무사히 제대한 제 선임이 대단해 보이네요. -_-;
제 선임이 사도세자로 태어났다면 조선의 역사는 바꼇을텐데..
백육십근
11/09/19 05:27
수정 아이콘
예전에 읽었던 역사소설에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는 장면을 읽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기억이...;;;
Je ne sais quoi
11/09/19 07:10
수정 아이콘
실제 원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런 기록들만 봐도 영조의 편집증적인 성격을 잘 알 수 있군요 -_-;;
11/09/19 08:27
수정 아이콘
이 설은 일단 시기가 절묘하게 일치합니다. 영조가 이유로 건 홍준해와 이종성 문제는 한 달은 지난 후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보자고 해도 이해가 안 가죠. 문씨는 다음 해에야 후궁이 됩니다. 왕은 늙었고 세자는 나이가 찬 상황, 선희궁을 다들 얕잡아 봤으니 막말을 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후궁도 아니었던 그녀가 정말 세자 자리까지 노렸을지는 의문이죠. 한중록에서는 그녀가 딸을 아들로 속이려고까지 하면서 노렸다고 하고 있습니다만... 일단 정조 때 그녀가 이 죄로 죽긴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얘기해야겠네요.

이 부분이 두 번 중복되어 있네요~
붙여넣기 실수 하신듯.
SperoSpera
11/09/19 08:33
수정 아이콘
권력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 라는게 느껴질때가 아무래도 실록을 읽다보면 피부에 와닿는것 같습니다.

부모자식을 떠나, 그 권력의 무게로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 참 뭐랄까, 이런게 인간과 동물의 차이인가 싶을 정도더군요,
무리수마자용
11/09/19 15:36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영조 성격은 바짓바람이랄까요?? 울 어부지랑 좀 닮은 구석이 있네요 [m]
절름발이이리
11/09/19 15:45
수정 아이콘
네안데르탈인의 수명은 크로마뇽인보다 짧지 않았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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