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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31 08:19:16
Name opscv
Subject [일반] [잡담] 세상에 공짜는 없네요.
다 쓰고 나니 스크롤 압박 쩌네요;




1.

친구놈이 결혼을 하네요.
가까운 지인 결혼식이 아니라 정말 곁에 두고 오래 사귄 벗이 결혼을 하는건 또 색다른 일이네요.
아무래도 10년넘게 같이 굴러먹으면서 쌓인 시간의 무게나 추억들이 만만치는 않네요. 그래서인지 감회가 새롭습니다.

외모,성격,능력 뭐 하나 빠질 것 없는 아가씨가 인간성 하나 말고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친구 놈을 데려가줘서
이렇게 선뜻 데려가 줘서 배가 아픕니다가 아니라 정말 신부 될 그녀에게 고맙기 짝이 없네요

친구가 3년정도 연애를 했고 3년만에 처음으로 여자친구 부모님댁을 찾아뵙는데 아버님의 간단한 호구조사 이후 연애 오래 해봤자 별로 좋을 거 없으니 결혼할 마음이 있으면 빨리 해치우라고 상견례 날짜 잡자고 말씀하신게 한달전입니다.

그렇게 여차저차 상견례,혼수,집리모델링,결혼식장,웨딩사진 기타 등등 결혼식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한달안에 썩쎄쓰(발음 조심하세요.)하고 이번주 토요일날 드디어 식을 올리네요.

정말 가진거 하나라고는 불알 두쪽 밖에 없는 친구녀석을 냉큼 받아주시고 여자친구가 살고 있던 집을 신혼집으로 건네주신
친구놈을 보니 정말 배아파 죽겠습니다가 아니라 신부 아버님께 무한한 감사와 존경심이 모락모락 샘솟네요.
그것도 딸만 네명있는 집에 큰 딸을 시집 보내는것인데 신부 아버님께 존경심과 감사하는 마음이 두배이상 더 솟구칩니다.

아흑 부러운놈...이 아니라 잘살아라 친구야.



2.

제가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요 한달 사이 묘하게 친구 커플과 많이 얼굴을 부딪힌거 같습니다.
여자친구 부모님을 뵙고 난 그날 밤 신랑,신부 두 녀석이 저희 집 앞으로 찾아와서 
 '아버님이 결혼 이야기를 꺼내셨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친구야!' 를 가장 먼저 접했거든요.

아니 둘이 잘 생각해서 좋으면 잘 결정해서 결론 낸뒤에 자랑하러 올 것이지...
결혼 한다도 아니고 결혼할까를 물어보러 오다니 사람 괴롭히는 방법도 여러가지 인거 같습니다.

두 녀석다 내심 결혼쪽으로 기울여져 있길래 잘해봐라. 날짜 정해지면 말하고 친구 녀석들과 함께 조금씩 보태서
혼수 하나 정도는 마련해 볼테니 뭐가 좋을지 생각해봐라. 뭐 이런저런 덕담을 나누며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아 부럽다가 아니라 가장 친한 소울메이트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으로 가득 채운채로요.

대충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 집에 가는 도중에 친구녀석이 결혼하게 된다면 저에게 양복을 하나 해주고 싶다는군요.
아니 이게 웬 벼룩이 콩까먹는 시츄에이션 이랍니까. 대충 웃으면서 말만 들어도 고맙다 나 결혼할때 좋은 선물 하나 해다오.
이렇게 흘려 넘겼죠.

친구 녀석은 자뭇 진지한 말투로 양복을 하나 해주고 싶은 이유가 하나는 자기 결혼할때 패션테러 하러 오지 말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랑 너는 정말 좋은친군데 결혼할때 뭐 하나 해주고 싶다고 말도 안되는 오글 멘트를 날리더군요. 아니 이놈들이 결혼을 할지 안할지도 아직 모르는거 같은데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뻘소리 인가요

그렇게 이야기 하는데 차가 저희 집 앞에 도착해서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3.

아무튼 친구의 결혼이 기정사실화 되고 초등학교,중학교멤버로 이루어진 5명 패밀리가 분주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들중에 누가 사회를 봐야 하네 마네 축가도 불러볼까 뭐 프로포즈 이벤트도 도와줘야 하나.
혼수 선물은 뭐 해주지 이 놈은 결혼을 무슨 번갯불에 콩 볶아 먹나 통보 하고 바로 한달뒤에 한대.

이놈들 설마 애가진거 아니야? 전에 하도 결혼하고 싶다고 궁시렁대서 우리가 '선녀와 나무꾼' 프로젝트를 짜줬잖아.
내가 알아봤는데 그런거 같지는 않더라 장언어르신 분의 대인배다운 모습이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어.

아 부럽다 부럽네 저놈은 잘때도 처갓집에 절 세번하고 자야할거야.
부럽다 부럽다 아흑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 부럽다...잘됐다.
뭐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간거 같네요.

결혼식이 예배 형식으로 진행될거라 사회,축가는 별 쓸모 없는 고민이 되어버렸고 혼수 선물 뭐 주면 좋을지 결정하면 딱 되는거 같더군요.

아직 취업 준비중인 녀석들도 있고 마음은 좋은거 해주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아서
아니 그러니깐 누가 결혼을 그렇게 빨리 하랍니까 좀 우리에게도 마음과 시간 그리고 특히 금전적인 준비를 할 시간을 줘야 할거 아냐
다같이 투덜투덜 대며 백만원정도 현금으로 찔러주던지 거기에 맞는 물건을 하나 해주던지 정도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결혼발표 있고 일주일 정도 지난 다음 패밀리와 친구 커플 총 여섯명이 청첩장을 주고 받으며 회합을 하는 자리를 가졌습니다.

직접 선물 뭐 주면 좋겠냐 역시 현금이 좋겠지 라고 말하는데...
저희랑 동갑내기 신부녀석이 자기네들이 요즘 결혼하면서 이것저것 큰 돈 들이는라 금전감각이 사라졌다고 하더군요.
돈으로 주면 잘 쓰긴 하겠지만 그러면 친구들이 뭔가 해주는 추억같은게 흐릿할거 같다며 이왕 선물해주는거 오래 기억에 남게
금전 대신 현물로 전해주면 좋겠다고 하네요.

가난한 네명이서 그래도 백만원정도 내면 지금 상황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하는건데 이놈들 백만원은 돈도 아니구나.
이러니 저러니 하다가 침대를 하나 해주기로 했네요.

친구커플은 서울에 살고 저를 포함한 나머지 녀석들은 부천에 사는데 신랑될 친구놈이 퇴근하고 사흘에 한번꼴로 찾아와서
결혼식 준비 보고를 하더군요. 제가 제일 좀 한가하기도 하지만 원래 10년간 전속 상담원인것도 한 몫합니다.
근데 매번 올떄마다 양복 이야기를 꺼내더군요.

원래 결혼할때 예단이라는걸 맞추는데 친구녀석들 다 해주는건 그렇고 너한테는 꼭 해주고 싶다 뭐 부담없이 어쩌구 저쩌구 별로 말주변도 없는 녀석이 이러쿵 저러쿵 해가며 혹시라도 제가 기분 상할까봐 최대한 조심스럽게 꼭 해주고 말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이는데.

뭐 비싼몸이라고 계속 튕기기도 그렇고 또 혼자만 받는것도 좀 이상해서 다른 친구녀석들에게도 이러이러한데
어쩌먄 좋으냐 말을 꺼내보니 다들 기분좋게 받으라고 해서 아 난 정말 좋은 친구를 뒀구나 그러면서 받기로 했습니다.

얼른 출세해서 나중에 애 낳으면 유모차나 하나 해줘야지 하는 마음으로요.
고맙게 잘 받겠다고 하자 친구가 다음날 퇴근하고 양복맞추러 가자고 집으로 찾아오더군요.
이대 근처로 가서 거의 고등학교 교복맞출때 이후로 처음으로 옷을 맞춰본거 같습니다.

기분 삼삼하네요.
이때까지는요...



4.

친구가 나름 점찍어놓은 아현동 어디 에서 양복을 맞추고 이왕 해주는거 구두까지 해준다는걸 겨우 말리고 가게 밖을 나섰습니다.
사실 양복 맞추고 바로 개봉동쪽에 집 리모델링 하는 사무실에 가서 오늘 최종견적을 낸걸 받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데...
집에 가기 전에 자기네집 어떻게 리모델링 되는지 구경하라고 해서 저도 흔쾌히 그러마 했지요.

결혼준비에 집 리모델링 이걸 한달안에 준비하다니 무슨 가카님의 4대강 속도전이야 뭐야 라는 생각을 하며...
리모델링 사무실에 갔는데 친구놈이랑 10~20분만에 최종견적서를 확인하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사실 이렇게 헐랭이처럼 해도 되나 싶었는데 사장님이 좋으신 분이라고 알아서 잘 해줄거라고 지나치게 낙관적인 녀석을 보고 있는데
여친 아니 예비신부님이 지금 학원 끝나서 퇴근중인데 10분후에 갈테니 사인하지말고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지하철 타고 바로 집으로 가도 됐는데 이왕 온거 신부녀석 얼굴이나 보고 갈겸해서 저도 기다렸습니다.
신부님이 오자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우리가 체크한 공사 내용이나 기본적인 인테리어 장식 등등을 흩어본뒤..
가방을 내려놓고 견적서를 미분,적분 풀듯이 샅샅이 흩어 보더군요.

그리고 엄청나게 꼼꼼하고 섬세하며 디테일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사소한것부터 시시콜콜 캐묻는데
신기하게도 까탈스럽게 느껴지지는 않게 사장님과 문답을 주고 받으며 잘 정리하더군요.
그리고 3시간이 좀 지난 무력 새벽 한시가 넘어서야 모든 견적을 마치고 싸인을 했습니다.
신부녀석은 아직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머지는 차차 공사 해가면서 세부 조율을 하면 될거 같다고 하더군요.

신랑 녀석은 신부의 호기심천국이 개방된 1시간쯤 될 무렵부터 의자에 앉은채로 쿨쿨 잠에 빠져들었고...
사장님 신부 그리고 저 셋이서 주거니 받거니 주거니 받거니를 하며 리모델링 견적을 맞췄습니다.
저는 뭐 거의 예능에서 나오는 리액션전문 배우 그런느낌였지만요.

아 맞다.
최종견적에서 수정되거나 추가된 두줄은...
저랑 친구녀석이 10분동안 끝낸 것에 '인터폰추가' ' 슬라이드장 가격 조사' 이 두가지였습니다.



그리고 12시가 지난뒤에 해탈하신 표정으로 고객감동 발로 뛰겠소.
흡사 건축디자인 교수와 1학년 학생의 포스를 보여준 두 콤비에 정말 깊은 감동을 먹었습니다.
공사날짜는 모레더군요.



5.


차가 끊겨서 어쩔 수 없이 친구녀석 집으로 가서 자기로 했습니다.
친구녀석은 원래 이럴 계획으로 저를 사무실로 끌고 갔다고 하더군요.
가서 여자 친구 짐 정리도 도와주고 뭐 그래주면 좋겠다 식으로요.

집에 도착하니 내일 모레 공사할 집이 아직도 짐 정리가 하나도 안되어있습니다.
아니 뭐 포장이사 하는것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무슨 시츄에이션...
친구녀석은 아 피곤하다 내일 출근할려면 자야지 라는 말과 함께 바로 작은방으로 가서 쿨쿨 자네요.


이놈이....



신부가 저에게 살짝 미소를 띄며 말을 건넵니다.

'내가 먼저 씻을까? 아니면 니가 먼저 씻을래?
'아 그러면 먼저 씻어...'

'나 씻는데 시간 오래 걸리는데 괜찮겠어?'
'응 괜찮아...'

..
...
....

양말을 벗고 바지를 걷었습니다.
친구녀석 트렁크에서 꺼낸 박스를 모조리 안방으로 들고 와서 장롱에서 옷을 꺼내 차곡차곡 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잠 자기는 글렀습니다.
아침 해 뜰때까지 밤 새도록 옷이나 접어야 할 거 같습니다.
난 누군가! 여긴 또 어디인가! 아악!


사실 친구들의 애인과 친해질 케이스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정말 어릴때부터 셋이 오래 알고지낸 죽마고우 뭐 그런 내용이 아닌 이상 사실 이런 경우도 묘하게 꼬일 가능성도 있지만..
아무튼 친구 애인은 가까워지고 싶어도 가까워 질 수 없는 그런 미묘한 관계인 경우가 많더군요.

애시당초 남의 애인과 친해져서 얻는 이득이 몇개나 있겠습니까만은...
(소개팅 기회 비용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아무튼 결혼을 3주 앞에 둔 예비신부와 밤을 지새게 됐네요.
아무래도 직업 때문인지 신부녀석이 붙임성이 좋은것 보다는 지루하지 않게 말재간이 좋은편이고...
저도 그럭저럭 리액션을 눈치껏 알아서 넣는 편이기 때문에 짐 정리를 하면서 많은 대화를 했습니다.

친하든 안친하든 둘 밖에 없는데...
뭐라도 떠드는게 훨씬 덜 어색하죠.


무슨 이야기를 나눴더라...




커플의 초기 결성과 결혼 한달을 앞에 둔 심경이야기
처음부터 중간까지 동정과 연민으로 연애했는데 언젠가부터 신랑에게 중독되어 버렸네. 너 그거 낚인거임..
신부님의 파란만장했던 다른 연애사 이야기

친구녀석이 결혼하게 되면 바람을 필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바람을 피게 된다면 집에있는 제일비싼 가전제품 하나씩 뽀갤꺼야.
그러면 산지 일주일도 안된 저 에어컨부터 날려야겠네.
아마 우리 신랑이 바람을 피게 된다면 연상의 존경할 수 있는 상사가 아닐까. 재 여자 보는 눈을 보면...어쩌구 저쩌구...
그럴 수도 있겠지만 원래 남자란 생물이 본능에 충실해서 그딴거 필요 없고 먼저 작정하고 덤비면...

그 외 글에는 차마 담을 수 없는 뻘이야기들...


도대체 이 미친 개드립들은 무어란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나름 친구녀석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친구와 결혼 한달도 안냅둔 애인이 할만한 소립니까.
아무튼 묘하게 둘이 죽을 맞추며 그렇게 해는 떴습니다.

대충 마지막 쯤에 신부녀석이...

'집 공사 끝나고 우리 결혼하면 자주자주 와서 셋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옥상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내가 그 말이 언제쯤 튀어나올까 진짜 무서웠는데
제발 나 좀 살려줘.  니들끼리 잘 먹고 잘 살아라 나도 좀 살자!'

'아니 난 진심으로...'

'그 진심 마음만 받겠네 이 자식들 이럴라고 나한테 양복해준거지? 도로 물러! 가져가!'



사람 고문하는 방법도 참 여러가지네요.




결국 공사 전날 밤에 다른 친구와 함께 서울집 찾아가서 나머지 짐 정리랑 가전제품들 포장해서
창고랑 옥상에 넣어주고 왔네요-_-;;;



6.

결혼식을 한 2주 정도 앞둔 지난주쯤...


'친구야 시간있니?'
'아니 없다.'

'딴게 아니라 가전제품은 다 샀고 이제 침대랑 가구 몇개만 사면 되거든.'
'그래서?'

'너희가 우리 침대 하나 사준다고 했잖아. 근데 평일에는 내가 시간이 안되고
주말에는 둘다 천안에 내려가야 되서 시간이 없거든?'

'그런데?'
'그러니깐 내일 오전에 니가 신부랑 좀 가구 사는데 따라가주렴.'

'뭐라고?'

뚝...

야 이 새퀴야!

신부에게 문자가 옵니다.
'내일 아침 9시 30분에 역앞에서 만나^^'

...

아침에 만나서 전에 리모델링 사무실로 다시 갔습니다.
신부님과 함께 내부장식 장판 싱크대,욕실 타일 등을 골랐습니다.

그러니깐 내가 왜..........

그리고 택시를 타고 5분거리인 광명가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내리자마자 바로 눈 앞에 있는 시몬스 침대에 갔습니다.
침대는 직접 누워보고 앉아봐야 알수 있다며 저도 옆에서 같이 침대에 누워봤습니다.
내가 같이 누울 침대도 아닌데 남의 신부와 쿠션감을 확인하고 있는걸까...

사실 오늘 가구를 살게 아니라 그냥 둘러만 보는 목적으로 알고 있었는데 침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님 원래 마음먹었을때 신중하지만 후딱 후딱 해치우는 성격인지 처음 들어간 가게에서 한시간 정도 모든 물건을 꼼꼼하게 낱낱이 체크 한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과 함께 하하호호 웃고 아침에 시어머니가 싸주신 강원도 검은색 찰 옥수수를 사이 좋게 나눠먹으며...
침대를 구입했습니다.


신부녀석이 침대를 고르면서 자꾸 다른 신랑녀석의 이름을 부르면서 괜찮을까 식으로 물어보니깐...
매니저가 고개를 갸우뚱 하길래 제가 알아서 저는 신랑이 아니고요. 신랑이 보내서 온 신랑 친군데요.
원래 친구들이 혼수 선물로 침대 하나 해주기로 했는데 그래서 제가 대표로 엉엉.
저 지금 완전 시동생 같은 느낌이에요.

자폭 하고 말았습니다.
매니저도 하하 웃으며 신랑 친구랑 온 신부는 처음 봤다며 좋은 친구를 뒀다며 위로 해주더군요.
신부녀석에게 애인없는 저에게 소개팅이나 시켜달라며 한마디 하자 신부녀석이 딱 한마디로 받아칩니다.

'친구가 눈이 되게 높아서요'

내 눈은 마리하나 해구보다 더 낮거든요......
그냥 싫다고 해........






아무튼 침대랑 화장대랑 티비장을 샀습니다. 그리고 침대값이 예상보다 좀 많이 나왔습니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더니 생각보다 비싸네요.
친구들한테 저는 디졌습니다. 흑흑



그리고 영등포에서 밥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밥먹으면서 이런 저런 애기 하다가 요즘 혹성 탈출이 재밌다던데 그거나 봐야겠다 무심코 말을 꺼냈는데...
자기도 그거 보고싶다면서 퇴근길에 신랑이랑 만나서 전화할테니 같이 보자고 하네요.

아니요 됐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나 혼자 볼테니 니들끼리 봐.

남자친구랑 같이 보면 공짜로 보여줄텐데 그러지말고 같이 보자.
우린 영화 볼때 순수하게 영화만 봐. 나 정말 보고 싶었어. 같이 보자 응?

정중하게 사양할게 제발 님들아..
이따가 연락할게.

$#^#$^$@#^$#^#$@#%

...전 바로 친구놈한테 전화해서 여자친구가 밤에 영화 보러 가자고 꼬시면 오늘은 피곤해서 죽어도 못본다고 하라고
신신당부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날 혼자서 편안하게 혹성탈출을 보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게 봤더니 요날 친구녀석이 신부녀석에게 프로포즈를 한 모양이더군요.


그리고 리모델링 사무실에서 덜렁이 신부가 중도금을 몇백 놓고와서 급한대로 제 통장에 있는 돈을 빌려 줬습니다.
우리 엄마가 친구들이랑은 돈거래 하는거 아니랬는데는 훼이크고 원래 가구 값 계산해주려고 온건데..
그래서 중도금 준걸 친구녀석에게 받고 다시 신부님에게 가구값을 줘야 하는 요상한 채무 관계가 생겼네요.

아니 그냥 가구값 빼고 나머지 중도금만 받았어도 될 것을...






7.


혹성탈출을 보고 난 다음 금요일 밤이였습니다.
내일이면 친구 커플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가 되는 날입니다.

딱 오늘밤까지는 친구 커플이 저희 동네에 있을거 같아서 혼수 침대값을 어떻게 전해 줄까 하다가 친구들과 다같이 만나서 전달해주고
축하 인사도 해주고 생색도 내면 좋겠다 싶어서  패밀리를 모았습니다.
  
일단 친구들을 모으고 새신랑에게 일 끝나고 새신부랑 저희동네로 오라고 문자를 넣어놨는데 답장이 없습니다.
전화를 계속 해보는데 안받습니다 답이 없네요.

그래서 신부녀석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니네 신랑 죽었냐 전화 안받네...'

신부녀석에게 전화가 오네요.

'우리 신랑 오늘 회식이야. 그래서 학원 끝나고 심야 영화 한편보고 찜질방에서 잘려고...'

'아 그래? 니네들 오늘까지 부천에 있는다고 해서 친구들이랑 잠깐 얼굴 좀 볼려고 했지. 침대값도 주고 말이야.'

'그랬니? 친구들도 모인데? 아 참 너 이따가 뭐해?
나 과외끝나면 11시인데 우리 같이 영화볼래?'

'어 아니 음 응? 영화가 아니라 침대값 줄려고 음 친구 회식하면 음...
아니 나는 별로..어제 혹성탈출 나 혼자 봤거든!'

'오늘 같이 영화보자. 응? 내가 영화 보여줄게! 최종병기 활 보자!
내가 끝나면 연락줄게 아니다. 그냥 내가 끝나고 그리로 갈게 가서 연락할께.
나 지금 수업들어가야 돼! 이따 봐!'


...어?


이게 뭐야....


다시 아까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야 오늘 동진이 회식한다고 못온댄다. 대신 여자친구만 잠깐 온다네.'
'그래? 그럼 난 안가도 되겠네? 니가 잘 알아서 돈 줘. 난 쉰다.'

뚝......


'야 너 지금 어디야? 아까 전화 들었지?'
'어 동진이 회식한다매? 나도 방금 전화받았는데 나도 안가도 되지?'

'뭘 안와 야 그러지말고 이따 같이 영화나 보자 최종병기 활 보자.'
'미친 소리하네. 나 지금 여자친구랑 그거보고 집에 가는 중인데?'

'야 두번봐라 두번봐. 신부가 보여줄거야. 제발 님하 제발 플리즈 우리동네로 컴컴..'
'꺼져 나 힘들어 잘 놀아라.'

뚝...

이놈들이 왜 아까는 온다더니 지금은 왜 또 안온다는겨!
침대값에 니네 돈도 포함되 있는거거든!
아오 망할놈들...




아 그놈의 양복을 받지 말았어야 해!!!!!!!!!!!!!!


12시 구로역에서 송내역까지 막차 타고 오는 신부를 픽업하러 갔습니다.
근데 신부녀석 기다리는데 거기서 10년전에 헤어진 첫사랑보다 더 반가운 옛 친구를 만났네요.
죽기전에 꼭 한번 보고 싶었던 친군데 이렇게 재회할 줄이야 덕분에 번호도 따고 암튼 좋았습니다.

한국땅 진짜 좁네요.


신부님을 만나서 영화관까지 가는 버스를 타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화관에 들어갔는데 최종병기 활은 상영이 모두 끝났네요.


블라인드랑 혹성탈출 그리고 기억안나는 영화 셋만 남았는데...
신부녀석이 무서운거 잘 못본다고 이러니 저러니 해서 혹성탈출을 봤습니다.
제가 바로 엊그저께 본 영화입니다. 저 본거라고 말했는데 두번 보라고 해서 두번 봤습니다.


영화보고 찜질방가서도 잠 못잘거 같아서 근처 오뎅바가서 정종에 신부녀석이 고른 닭똥집을 먹으며
신랑 호박씨를 신나게 까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밤을 샜습니다.

새벽 다섯시쯤 전화기 끈채로 근처 피시방에서 졸고 있던 신랑녀석이 튀어왔습니다.
새벽 여섯시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튀었습니다.



...다음날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고 다른 친구와 함께 창고에 쌓아놓은 짐등을 다시 집에다 올려놓고
리모델링 사장님(무려 저는 세번이나 봤습니다.)과 함께 완성된 러브하우스를 살펴보며...
그렇게 결혼식 일주일 남겨두고 다 같이 고기를 뜯었습니다.

우라질...



너무 기네요...

세줄 요약 들어갑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습니다. 흑흑
제발 사람을 먹을걸로 길들일려고 하지 맙시다. 침팬지와 사람은 거의 비슷한 구조에요. 조련 당하니 슬프네요.
잘먹고 잘 살아라. 진짜 결혼 한달 앞둔 신부만 아니였어도 아흑흑!



이것들아 결혼 드럽게 축하한다!
니네 결혼했으니 제발 다른 노선을 걷자꾸나.
결혼식 끝나면 우린 이혼..아니 좀 멀어지자;


이 글을 신랑녀석과 신부녀석에게 보여주는건 무리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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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8/31 08:38
수정 아이콘
그렇지요. 그래서 사탕줄께 아저씨랑 같이 가자는 사람은 조심해야 하는 겁니다.
11/08/31 08:40
수정 아이콘
좋은 친구 사이네요. 부려먹고 부림 당해주고...크크
전 친구가 벌써 두 명이나 결혼했는데(참고로 전 25살입니다. 그 중 한 명은 작년 여름에 결혼해서 얼마 전에 딸까지 낳았습니다. 덜덜) 두 번 다 축가를 불러주면서... 뭐랄까 가슴이 참 뭉클하더라구요. 정말이지 좋은 짝들을 만나 결혼하고, 또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 걸 보고 있재면 '나도 언젠가는 결혼을!'이라는 생각이 불끈불끈 듭니다.


그래도 안 생겨요. [S2]
11/08/31 08:45
수정 아이콘
그나저나 구두까지 받으셨으면 결혼 전이 아니라 결혼 후에도 한 동안 노예로 사셨을 기세. 크크크 [S2]
승리의기쁨이
11/08/31 08:47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나같은 경우는 정말 눈치없이 정말 셋어서 정말 잘 놀았는데
좋지 않나요 ? 그만큼 절친이라는 증거구 신경써주고 있다는 것도 있지만
또 그만큼 님이 신경쓰셔야 하니 그것이 좀 부담스러우신듯 하신가보네요
그래도 글에서 뭍어나오는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게 하는 글이신가보니
정말로 두분의 결혼을 축하하는 글인것 같네요
저도 두분의 결혼을 축하드리겠습니다 행복하게 사시고 님도 행복하게 사세요
포포리
11/08/31 09:09
수정 아이콘
고생은 하셨지만 그래도 멋진 우정이고 그걸 또 한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신것 같네요.
'친구놈한테 이용당한거 같아!!!' 라고 하는 글인것 같지만 사실은 흐뭇하게 웃고 계신것 같네요.
부럽습니다~ 좋은 친구를 가지고 계셔서.
11/08/31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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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억 일단 신부분의 성격이 정말 좋은것 같네요!
글을 봐도 부러운데 바로 옆에서 보면 저 부러움을 어떻게 참죠....
Darwin4078
11/08/3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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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만 있어도 훈훈하네요.
opscv님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좋은 친구인것 같습니다.

opscv님도 곧 좋은 처자 만나서 행복해지실 겁니다!
켈로그김
11/08/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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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결혼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있으니 좀 쓸쓸해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먼저 해버렸습니다.

내가 제일 잘장가가 Yeah~

opscv님도 곧 좋은사람 만날거에요 흐흐..
훈훈한 글 잘 읽었습니다~
Montreoux
11/08/3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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핡~
재미있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나중에 신혼집에 가셔서서 삐대고 뻗대면서 게롭힐 묘안이 없을까요.
뽕을 빼세요;;;
친구분 결혼 축하드려요~

자유를 맘껏 누리시면 됩니당, 독신이 홀가분하고 좋아요.
저는 유세윤 이태원프리덤을 요즘 반복해서 듣고 있습니다.
부쩍 홍대, 강남, 이태원 모두 가보고 싶네요.
남편에게 말했더니 님 왜그러심 미쳤음? 노망크리=,.=b 이럽니다. 눙물이ㅠㅜ
하긴 가봤자 낑겨서 놀지도 못하겠죠?
그러니 차선책으루다 혼자서라도 꼭 롤러코스터를 타러 갈겁니다;;;
글쓴분은 이런거 지금도 하실수 있잖슴 ! 크크.

잘 읽었어요.
11/08/3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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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깨알같은 재미가 있는 잡담글 오랜만에 보네요 크크크크
Special.One
11/08/31 11:52
수정 아이콘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왠간해서 잡담을 읽지 않는 편인데 이건 뭐 너무 재밌어서 크크크크
저랑 동갑이신데 참 재밌는 일을 겪으시고 계시네요. 저도 한 번 겪어보고 싶네요. 그럴만한게 아닌가요?
11/08/3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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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이네요. 잘 읽고 갑니다.
11/08/3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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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을 기대했는데.................................




농담입니다. 재밌게 잘 읽었어요.



안생겨요~!!!
11/08/3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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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말 재미있네요. 읽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네요.
저도 아마 내년쯤엔 가장 친한 친구녀석이 결혼을 할 것 같은데..
신랑과의 관계.. 신부 될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저도 이 글과 비슷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
제 조언 덕분에 이 커플이 위기를 잘 넘긴적이 있어서.. 친구녀석이 결혼하게되면 양복 한벌 맞춰준다고 언질 한 적이 있는데..
이거 받으면 안될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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