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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8/22 16:27:56
Name 王天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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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찌질이에 대한 분노 이것은 정의인가 열폭인가



<열받는 놈 날려버리는 만화를 주로 그리는 니시모리 히로유키의 [차를 마시자] 중에서>

요즘처럼 세상 살기 팍팍한 시대에 웃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웃고 싶어도 웃을 일이 없어서 못 웃고 있는 사람들에게 각종 유머 사이트들은 잠깐이나마 스트레스의 배출구가 됩니다. 시시한 언어유희에서부터 덕력이 넘쳐나는 패러디 영상까지 유머들의 종류는 그야말로 천양각색입니다. 별의별 사람들이 모여들다보니 웃음코드도 다양해지고 거기에서 웃기네 안웃기네 웃을 수가 없네 등등 시비가 붙을 정도에요. 긍정적으로 본다면 최불암 시리즈가 횡행하던 80년대보다야 웃을 거리가 훨씬 많아졌으니 어찌보면 웃음이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걸수도 있겠지요. 막장이든 저질이든 문화코드가 다양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니까요.

별놈의 유머가 쏟아지는 요즘 제가 꽂히는 코드가 하나 있습니다. 장르를 뭐라고 해야할지...통쾌 실화라고 하면 말이 될려나요? 텍실타 가 아니라 통실타 정도로 축약하고 싶군요. 뭐 용어 정리가 중요한 건 아니고, 이런 유머를 보다가 약간 머리가 복잡해졌습니다.

대충 이런거요. ↓ 시원~하지 않습니까??

http://www.fomos.kr/gnuboard4/bbs/tb.php/talk_gossip/293653/dfd94412bf9e1d60a78009c9a5f1a963

http://www.fomos.kr/gnuboard4/bbs/tb.php/talk_gossip/294222/970211decca3af97b4d6c260bf0ef5c5


실화라는 점, 그리고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짜임새 있는 구성, (거기다가 감동을 돕는 bgm의 첨부), 재치넘치면서도 권선징악을 잘 살려주는 주제의식(?), 마지막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완벽한 조건. 텍스트가 살아 숨쉬는 이런 유머는 언제 봐도 참 즐겁습니다. 꼬장꼬장한 저에게 인신공격이나 희화화의 비극적인 유머들보다는 이런 류의 당위성이 있는 유머가 좀 맞나봐요. 보통의 유머가 팍!! 터지는 개운함이 있다면 저런 글들을 읽고나서는 쓸데없이 훈훈함(....)마저 느끼게 되더군요. 그 주제의식에서는 불의를 용서치 못하는 뜨거움이, 선량한 주인공이 해피엔딩을 맞이한다는 점에서는 안도감이, 세상에 참 나쁜 놈들 많다는 부분에서는 스릴과 공포가 느껴지는 누군가의 고백을 다 읽고 나면 괜시리 뿌듯합니다. 그래도 아직 세상 살만하구나, 나라도 정신 차려야겠다 하면서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되는 계기도 되고 말이죠. 아주머니들이 막장드라마를 욕하면서도 시청률을 한없이 퍼주는 심정을 알 것도 같았습니다. 저 착한 애가 백혈병으로 죽는 꼴을 볼 수 있겠습니까? 저 몹쓸 것이 부잣집 자식과 희희낙락 하는 꼴을 어찌 가만 놔두겠어요?

이리도 남의 이야기에 쓸데없이 열올리고 낄낄거리는 주제에, 드라마는 현실성이 없다고 못봅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남의 이야기를 가지고 대리만족하는 내 자신의 초라한 모습이 싫어서”입니다. 정의가 승리하건 재벌집 아들 딸과 결혼하건 알게 뭡니까, 내 현실이 시궁창인데. 원체 나랑 관련없는 남의 이야기 잘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편이기도 하고 제가 주인공이 아닌 이야기는 싫어라 하는 편이라(누구든지 그렇잖아요) 드라마가 암만 시청률이 높고 입소문을 타고 번져도 못봅니다. 안봐져요.

그러고 보니 제 심리에 갑자기 괜한 의심이 들었습니다. 읽고나서 느끼는 개운함에 저는 항상 나는 역시 정의로운 사람이야 하고 묘한 시민의식을 불태웠단 말이죠. 역시 이놈의 사회는 썩었단 말이지 하면서 조소를 던지거나요. 아니 사실 저 멀리서 불의에 분노하는 거야 누가 못하겠습니까, 정말 대단하고 필요한 건 불의에 항거하는 용기와 의지죠. 이런 제 자신을 문득 발견하니 여태 웃었던 게 다 정의를 휘두르지 못하는 찌질이의 열폭과 망상인가 싶어서 영 씁쓸해졌습니다. 왕따가 격투 만화 보고 흥분하듯, 모태솔로가 하렘물을 보고 단 꿈에 젖듯 나 역시도 알량한 자존심을 먼 곳에서 찾으려 하는 건 아닌지 괜히 씁쓸해졌습니다. 드라마는 유치한 대리만족이라 못보면서 저런 유머에 죽어라 웃는 건 대리만족이 아니고? 음....

밥만 축내는 소모적 인간으로 살고 있으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저런 이야기에서라도 우월감을 느끼려 하는 건 아닌가 복잡하네요. 으이그 이런 막장들, 난 중간은 간다!!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 같아요. 아니면 이런 유머조차도 배배꼬아서 생각하는 지금의 여유없는 제 모습이 가장 큰 문제일지도?

아무튼 이 시대의 빌런 無槪念들에 정의와 슬기로 맞서는 글 속의 히어로들 항상 응원합니다. 깨소금맛 참기름맛 좀 느끼면서 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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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이리
11/08/22 16:33
수정 아이콘
옳은 말씀입니다. 용기가 빠진 정의는 절름발이이고, 그 장애가 있는 정의가 인터넷의 알지도 못할 아무개들의 진상짓에 소모되는 건 열폭까진 아니더라도 불구인 정의일 뿐이지요.
항즐이
11/08/22 16:38
수정 아이콘
저런 건 다 재미로 보는 거 아니었습니까? 작가 지망생들의 화려한 스토리텔링에 감동하면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잘 쓴다고 감탄하고 있습니다. 부러울 때도 많아요.
업매직
11/08/22 16:47
수정 아이콘
재미있네요. 크크. 감정 상할 필요 없이 이런 글 읽으며 웃고 딱 잊으면 그만이죠.
사악군
11/08/22 16:53
수정 아이콘
1. 그럼 외모밖에 안보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던 본인은 뭐가..?-_- 누워 침뱉기죠.
2. 사례금은 그렇다치고 국제전화는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하루 천원이다
11/08/22 16:57
수정 아이콘
요즘 첨부된 글들을 읽어도 다 자작이란 생각이 먼저 들고 씁쓸하고 공허한 이느낌 지울수가 없네요.
세상에 찌들었나 봅니다.
그래도 재미는 있으니까 읽어보고 하하호호 하고 있네요.
정말 현실에서 저런일이 가능할까 싶네요.
11/08/22 16:58
수정 아이콘
제목을 보니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라는 김수영 시인의 시가 생각나네요.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이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에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하여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30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후략)

하지만 저는 이 시와는 달리 사회 구성원 개개인의 의식이나 윤리가 결국 거대 담론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굳이 열폭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켈로그김
11/08/22 17:34
수정 아이콘
통쾌하려면 본인도 선을 넘게 되죠..
실제로 통쾌한 일을 행하더라도 인터넷에 올리기가 망설여지는 이유입니다.
11/08/22 18:12
수정 아이콘
과연 정의의 실천은 어떻게 어느 선까지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1. 적어도 자기 스스로 자기가 믿는 정의를 지키는 것
-> 이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사항이겠고요.
2. 남들의 불의에 대해 커뮤니티에서 비판 or 풍자하는 것
-> 수많은 커뮤니티에서의 논쟁, 그리고 본문의 경우 여기 해당할 텐데,
올바른 것이 무엇이고 그릇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남들에게 알리고 설득하기 위해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남들의 불의에 대해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 노력하는 것
-> 시위라던가 여러 가지 사회활동 속에 참여한다던가 혹은 실제 상황에 맞부딪혔을 떄 남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주는 행동을 통해 불의를 적극적으로 막으려는 것.

3단계까지 행할 수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겠지요.
그런데 대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론적으로 알더라도 현실 속에서 남들이 불의를 행하지 못하도록 어떻게 바꿔나가야 하는지 잘 보이지 않고 막막하죠;
자기 스스로의 믿음과 행위를 바꿀 수는 있고, 남들의 불의를 입이나 키보드놀림을 써서 비판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 행동으로 남까지 설득시키고 바꾼다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니까요.

나 혼자 옳게 행동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자니 다른 사람들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는 경우가 있고,
입으로 비판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에만 의존하자니 실제 행동은 못하는 절름발이나 다름없고,
다른 사람에게 실제로 영향력을 줄 만한 마땅한 방법이나 힘이 없는 경우 현실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 보이고,
마음은 몇번이고 먹을 수 있지만 행동이 쉽지는 않다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그 옳음을 어디까지 어떻게 행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절실히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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