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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18 21:42:37
Name 츄츄호랑이
Subject [일반] 신발 사이즈
1편 <헤어지는 방법> : https://pgr21.net/?b=8&n=28525
2편 <꽃다발> : https://pgr21.net/?b=8&n=29768

- - -

이번 기말고사는 정말 열심히 준비할 거야. 나는 생과일주스를 들고오면서 그렇게 말했다.
선배가 퍽이나. 준이는 이렇게 말하면서 2천 원을 내밀었다.
아, 걱정 마. 이건 내가 사는 거야.
그 돈, 아껴뒀다가 승 선배한테 쓰세요. 누나한테 돈 많이 든다고 불평하는데.
그... 그런가 미안해.
누가 나한테 미안해하래요? 승이 선배 때문에 그렇지. 나는 좋지만.

카페에 앉아서 주스를 마시면서 준이의 말을 곰곰 생각했다. 내가 돈이 많이 드나. 그래도 반 정도는 내는데. 그러다 승이가 사준 구두가 생각났다. 갑자기 얼마 전부터 따끔거리던 옆구리가 아프면서 기침이 났다.
왜 그래요? 신종 플루 아니에요? 격리 조치해야겠네. 라는 준이의 말.
그게 아니고 그냥 주스가 차가워서 그래. 라고 말하며 나는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2시 15분 전이야. 수업에 늦겠는걸.
조금 늦으면 어때요. 시험만 잘 보면 되지.
그러니......? 그래도 늦으면 안 되지. 얼른 가자. 라고 말하고 카페를 나섰다.

학교 언덕을 반쯤 올라가니까 숨이 차고 오른쪽 옆구리가 계속 따끔거렸다.
준아, 그냥 너 먼저 가. 숨이 차서 더는 못 가겠어.
누나 수업은요? 준이가 대답했다.
나는 오늘 수업 더 없어.
수업이 없는데 여기까지 따라온 거에요?
수업이 없으니까 따라왔지. 내가 한가한 사람인 줄 아니?
준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한가한 사람이잖아요. 라고 말해줬다. 저게......

그때 언덕 위에서 수업이 끝난듯 보이는 승이가 우릴 발견하고 불렀다.
준이를 보내고 벤치에 털썩 걸터앉아서 승이에게 괜히 변명하듯 말했다.
숨이 차.
운동을 안 하니까 그렇지.
숨이 차니까 운동을 못하는 거라고 승이에게 말하며 한 마디 덧붙였다.
업어줘.
무... 무슨 소리야? 사람 많은 데서.
업어주면 안 되니?
알았어... 업혀.
바보야 농담이잖아.
농담은 재미있어야 농담이지.
나는 그런가 하고 헤헤 웃었다. 웃을 때마다 옆구리가 아팠다.

국수 먹으러 가자. 네가 딱 좋아할 만한 국숫집을 찾았어. 교문을 나오자 승이가 말했다.
내가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 네가 어떻게 알아?
네가 좋아하는 게 뻔하지.
오늘은 안 돼. 갈 데가 있어서.
어디?
백화점.

승이와 헤어지고 왕십리역에 있는 엔터 식스 매장에 처음으로 들렸다. 짧은 거리를 걸어왔는데도 덥고, 숨이 차고, 자꾸 식은땀이 흘렀다. 돌아가는 길이 벌써 걱정됐다. 크고 복잡한 건물엔 분주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나는 신발 가게를 찾으러 건물을 빙빙 돌았다. 20여 분을 헤메다 겨우 신발 가게를 찾았다. 헤매느라 숨이 턱 끝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신발을 고르고 있자 직원이 와서 사이즈를 물었다. 사이즈. 정말 바보 같았다. 나는 승이의 발 사이즈도 몰랐다.
나는 직원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도망치듯 나왔다. 오른쪽 가슴이 아팠다.

바보 같고, 숨은 차는데 주위엔 모르는 사람들만 가득했다. 나는 승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이가 전화를 받자 나는 다짜고짜 힘든데 왜 업어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건 농담이라며.
농담이라도......
뭐야 바보야. 승이가 피식 웃었다.
승아.
응.
너 신발 사이즈 몇이야?
그건 왜?
알고 싶어.
280.
나...... 네 신발 사이즈도 모르고 여기 왔어. 너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싶은데. 내가 더 잘 챙겨주고 싶었는데. 그런데 숨이 차.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게 싫어. 나 바보 같지?
내 목소리가 이상해 보였는지 승이가 너 어디야? 하고 물었다.
엔터 식스.
아픈 거야?
응.
그리로 갈까?
응. 미안해.
뭐가 미안해.

옆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서 승이가 오기를 기다렸다. 승이는 택시를 타고 왔다. 병원으로 가는 길에 승이는 왠지 말이 없었다. 나는 배낭에서 신발 상자를 꺼내서 아까 고른 신발을 승이에게 신겨줬다.

꼭 맞아? 신발 앞꿈치를 꾹 누르며 내가 물었다.
응...... 꼭 맞아. 승이는 그렇게 대답해줬다.

병원 앞에서 택시에서 내리자 승이가 나에게 말했다.
업혀.
바보야. 그러면 중환자 같아 보이잖아.
업혀. 얼릉.
고마워......
나는 그렇게 승이의 등에 업혀서 병원에 들어갔다.

결국, 기말고사는 보지 못하게 되었다. 폐 수술로 말미암은 입원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승이의 등이 나한테 꼭 맞는 듯 따뜻하다고, 그래서 좋다고, 처음 업혀본 승이의 등 위에서 나는 생각했다.

- - -

읽어 보니 제 성격이 굉장히 피곤한 성격이네요. ^^
그래도 나름 씩씩하게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제목에 시리즈라는 걸 표시하고 싶은데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그리고 조금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는 분들이 있어서 정말 정말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이번달까지는 이 글을 모두 마쳐야 하는데 자꾸 글이 안 써져서 걱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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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19 00:18
수정 아이콘
무언가 말하기힘든 느낌이 느껴지네요. 잘보고있습니다^^
11/06/19 00:28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자기 소개 문구도 맘에 드네요 ^^;
한걸음
11/06/19 09:50
수정 아이콘
글 잘 읽었습니다. 익숙한 곳에서의 이야기라 더 반갑네요~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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