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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6/02 01:52:23
Name fd테란
Subject [일반] 2011년 어느 늦은 밤 - 누가 더 손해인가 -
18.


'좀 쉬었다 가자'

한시간 좀 넘게 노래를 부른거 같은데 둘다 지쳤습니다.
저 보다는 자매님이 훨씬 더 지쳤겠죠.

근데 노래를 다 부르고 나니 뭔가 찝찝한게 있습니다.
뭘 빼먹은거 같은데 뭐지...아 맞다!

'야, 춤 보여준다며 빨리 춤 보여줘. 아 노래부르는라 까먹었다! 빨리 보핍보핍 춤 춰라.'
'아, 뭔데 인제 끝났다. 지금 보여줄까? 자 봤지? 이제 끝!'

'장난하냐? 팔만 까딱까딱 추는게 다냐? 그 다음이 중요한거지!
팔만 까딱까딱하는건 나도 하겠다! 그 다음 엉덩이 춰야지!
'싫어! 해봐! 해봐! 그 다음 뭐? 오빠가 해봐!'

'진짜 해봐? 그럼 너도할꺼냐? 빨리 치사하게 그러지말고 춤 보여줘!'
'싫다! 여기까지 밖에 모른다. 인제 춤 끝났다!'


으아! 도대체 노래방을 내가 왜 왔는데...
춤 보러 왓는데 춤을 못보다니! 이거 완전 억울 합니다.
노래방 시간도 끝나고 위에 조명도 꺼지고 아 이제 뭐하지.
맞다! 중요한게 하나 더 있다.


'내놔!'
'뭘 내놔?'

'사진 말야, 사진! 지갑속에 사진 몇장 들고 다니지? 증명사진 있으면 빨리 한장 내놔
작년에 못받아간거 지금 받아가야 겠다 빨리 한장 내놔!'

'실타. 그런거 없다. 사진같은거 안들고 다닌다!'


이게 어디서 뻥카를..
센터까면 다 나오는데!


'좋아, 그럼 내일 아침 사진관 문 여는대로 이 복장 그대로 가서 증명사진 박자!
아니면 요즘 지하철역 그런데도 사진찍는거 많더만 오늘 꼭 사진 받아 간다.'

'아 뭔데, 진짜 싫다 싫다고!!'
'싫어도 할 수 없다. 야 마지막밤인데 그거 한장 못주냐?'


마지막 밤 드립을 치니깐 자매님이 그제서야 지갑을 뒤적뒤적 거립니다.
그럼 그렇지, 지가 안 주고 배겨. 꼭 이렇게 마지막이 어쩌구 저쩌구 드립을 쳐야 나오는건가.
좀 뭔가 비굴한 느낌이 드는거 같지만 뭐 어때요. 마지막밤인데

지갑에서 사진을 주섬주섬 꺼내서 친구들과 찍은 스티커 사진 몇장을 꺼냅니다.
몇장인지 세보지는 않지만 대충 열장은 안되는거 같습니다.

'꼭 이렇게 말을 해야 듣는척을해요. 뭐 사진이 없어? 이렇게 많구만! 근데 다 스티커 사진 밖에 없냐?'

'다 친구들이랑 찍은 사진 밖에 없다.'


오, 럭키! 스티커 사진 사이에 증명사진 한장 박혀 있네요.
스티커 사진은 다 테이블위에 올려두고 증명사진 한장을 쏙 뺍니다.

'이건 내가 갖는다. 나머지는 필요 없어!'
'아, 그 사진 싫어 하는데, 꼭 그거 가져가야 되나?'

'뭐 사진에 장난친것도 아니고 딱 니같이 나왔구만.
괜찮네 이거 가져간다. 증명사진인데 하나밖에 없는 뭐 소중한사진 그런건 아닐테고?'


진짜 사진 한장 가지고 되게 뻣뻣하게 구네요.
사진한장을 자매님 얼굴 옆에 대면서 슬쩍 비교 해봅니다.


'음, 역시 사진보다는 실물이 낫다. 아님 지금 조명빨인가'
'뭔데! 내 사진 별로 안좋아한다. 그래서 안줄라고 한건데 그리고 원래 안이쁘다.'

'아니야 아니야. 지금까지 10년동안 본것중에 오늘이 베스트야.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네. 이제 사진도 챙겼으니 오늘 온 목적은 거의 다 달성한거 같다.'


자매님은 지갑에서 아빠,엄마,동생 사진을 꺼내 보여주며 자랑을 합니다.
어머니가 66년생이시라고 하는데 참 젊고 아름다우시네요.
그럼 도대체 몇살때 자매님을 낳으신건지 감이 안옵니다. 19살? 20살?
남동생이 어릴때는 엄청엄청 귀여웠다고 자랑질을 하는데 지금은 군대가고 아저씨 되서 하나도 안귀엽다고 합니다.
아빠 사진도 보여줬는데 자매님은 엄마를 쏙 빼닮았네요.

시내에서 엄마랑 같이 택시를 탄적이 있는데 기사가 엄마보고 언니같다고 자랑질을 합니다.
자기보다 엄마가 더 이쁘다고 하네요. 순순히 고개를 끄떡여줬습니다.
맞는말 한거 같은데 짜증을 내네요.
저도 지갑에서 동생 사진이랑 아빠 사진을 꺼내 보여줬습니다.

'이게 서승환씨야? 와, 나 서승환씨 처음 본다.'
'니 동생보다 잘생겼지? 암튼 보기보다 좀 무섭다. 나랑은 하나도 안닮았어.'

'음, 아닌데 닮은거 같은데? 둘이 닮았어. 형제같아'

'얼마전에 내동생이 병원에 입원했을때 여자애가 문병을 왔었거든.
그리고 그 문병온 여자애가 나랑 내동생을 보고 둘이 닮았다고 했다가 내동생이 뭐라고 한 줄 알어?'

썅! 야 가지고 온거 갖고 빨리 나가. 그냥 꺼져. 다시는 오지마.
아 재수없어 진짜. 빨리 꺼져 꺼져! 꺼지라고!!

이렇게 바로 지랄지랄을 하신다.
나보고 내동생이랑 닮았다고 한거 일르면 넌 바로 죽는다.'


'일러라, 일러! 근데 진짜 좀 닮은거 같은데?'

'하하 나야 뭐 손해볼건 없지만 글쎄 닮았나?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키 차이가 나서 그런가?
아 여기오기 전에 내동생한테 한번 물어봤거든.

승환아 외모만놓고 형이랑 최홍만이랑 싸우면 누가이기냐? 아 그리고 하승진은?

그러니깐 내동생이 헛소리 하지말라고 자꾸 꺼지라고 하길래 자꾸 졸라대니깐 개네보단 내가 더 사람같대.
뭐 개네는 돈도 잘벌고 싸움도 잘하지만!'

'하승진이 누군대?'
'하승진 모르냐? 농구선수 있는데 나보다 이십몇센치 큰 애 있다.'

'아 그렇게 말하니깐 뭐 알거 같기도 하다. 자 이제 부터 뭐할건데?'
'이제 사진도 받아서 여기서 가만히 밤새도록 그냥 니 얼굴만 보다 가도 상관없는데?'

자매님은 또 알듯 말듯한 미소로 쳐다봅니다.
저거 병인거 같습니다. 할말 없으면 그냥 웃는건지 내 얼굴이 웃기게 생겨서 웃는건지
그만 좀 웃지 계속 실실 웃기만 하네.

'자, 혼자서 노래부르는라 고생많았으니 노래방은 내가 쏜다! 나가자!'
'그래 알았다! 나가자!'


19.

노래방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간이 몇시쯤이나 흘렀는지 모르겠네요.
피시방 갔을땐 쫌 졸렸는데 실컷 노래부르고 나니 잠이 다 날아간거 같습니다.
아니면 시원한 밤공기를 맞아서 그런가? 처음 왔을때는 이슬비가 내리더니 다행히 비가오진 않네요.

'연산동에 술먹으러 거의 안오는데 이렇게 젊은 남자들 많은거 첨 본다. 여기서 술 마실만 하네?'
'그래? 동네에 젊은남자들이 돌아다녀야 술 마실 맛 나나? .'

'맨날 아저씨들만 득실득실 대는데서 술마시면 술맛 떨어진다 아이가'
'하하, 헌팅당하러 술마시러 오나? 지금 시간에 어디 문연 커피숍있나
근처에 24시 맥카페 그런거 있나? 일단 좀 걸을까?'

'응 좋다! 걷고 싶다! 우리 걷자!


그렇게 하염없이 연산동 밤거리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근데 지금 걷자고 한 말이 연산동을 아주 다 돌자고 말한건 아니였는데...
암튼 정말 오지게 걸었습니다.


'나는 걷는거 진짜 좋아한다. 회사퇴근하거나 친구들 만나고 버스타고 집에 올때
가끔씩 한정거장 전에 내려서 집까지 걸어온다. 저 쯤에서 내려서 집까지 걸어간다.'

'그래? 맨날 하이힐 신고다니는데 걸어다니면 발 안파?'
'발 안아프다. 그냥 걷는게 되게 좋다.'

'발 아프면 말해라. 내가 신발 바꿔 신어줄게!'
'웃기자마라! 안바꾼다. 그냥 걸어도 된다!'

그러고보니깐 지금 신고 있는 제 신발이 300mm정도네요.
자매님 하이힐은 발가락에도 안들어 갈거 같네요.

'아 그러고보니 신발줘도 못신겠네. 아 맞다 나중에 애 낳거들랑
키 크게 키우고 싶거든 꼭 신발 넉넉한거 신겨줘라. 발에 딱 맞춰서 신기지말고
좀 두치수 넉넉하게 신겨서 키워! 축구화 같은거 신기면 키 안큰다. 그럼 키 큰 아들 키울 수 있어! 나처럼!'

'에이, 오빠처럼 크면 그건 좀 아닌거 같다.'


하긴 그건 좀 괴물인듯...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를 넘겨가며 밤거리를 걷습니다.

'진짜 뭐할거야? 하고싶은거 말하라니깐!'

'글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뭔가 생각해왔을텐데 사진도 얻었고
딱히 바라는것도 없고 니네 집구경이나 하러 갈까.'

'진짜 집에 가고싶어? 가도 뭐 별거 없는데 가서 최고의사랑이나 다운받아 볼까 그럼?'

'여기까지 왔는데 집 구경 안하고 갈수 가 없지.아침에 최고의사랑이나 같이 보자고 문자 보냈잖니.
좀 더 걷다가 집으로 가자.'

'여기서 바로 들어가면 우리집이고 저쪽으로 가면 멀리 돌아가는데 어떻게 할래?'
'밤바람도 좋은데 돌아서 가자. 아직 시간도 이르고...'


자매님과 하고싶은것이라...
지금 막 생각난게 하나 있네요.
바로 옆에있는 자매님의 손을 잡고 걷는거요.

손 잡자고 말해볼까요.
슬쩍 다가서서 그냥 말 없이 손을 잡아볼까요.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용기가 없어서 아니면 남자친구가 있는 자매님에게
친한 오빠라는 명목으로 손잡고 걷자는게 웬지 수작부리거 같아 양심에 찔려서였다고 변명할 수 도 있지만
마지막까지 와서 손잡고 걷자고 하는건 또 아닌거 같습니다.

그리고 정말 혹시라도 손잡고 걷자는거 까이기라도 하면 그거 데미지 회복 안됩니다.
그때는 마지막인데 안되긴 뭘 안되 하면서 억지로 잡을려나? 완전 남자다잉? 뭐 이렇게?
그냥 나란히 붙어서 걷습니다.

근처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들고 입에 물면서 다시 또 걷기 시작합니다.


'왜 이렇게 동네에 피시방 간판이 많지? 전엔 잘 몰랐는데 오늘 보니깐 피시방 진짜 많네?'

'그 만큼 폐인들이 많다는 증거 아니겠냐? 하하 뭐 피시방 다닌다는게 폐인은 아니지만서도...
아 그거보다 짝사랑 오래하는게 진짜 폐인된다니깐!!
만약 연애를 하면 어떤게 가장 이상적인것일까 생각했었는데
예전에는 '그 사람과 함께 늙어가고 싶은 것이다.' 었거든.
근데 요즘에 좋은 말을 하나 주워 들어서 그게 또 맞는거 같더라고.'

일단 오늘을 사랑을 하는거야. 그럼 그 만큼의 사랑이 더해져서 서로 더 좋아지게 되는거지.
그리고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 날 사랑한것만큼 서로 더 좋아지게 되는거지.
하루 하루 연애할수록 매일 더 1%씩 좋아지는 연애 해보고 싶다 뭐 이런거?'


'에이 그건 말도 안된다. 진짜로 연애해보면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나도 알아. 근데 이렇게 사랑이 진행 될 수 있는 경우가 있어.'

'에이 거짓말하지마라 그게 뭔데?'

'짝사랑. 짝사랑은 오늘 좋아진만큼 내일 더 좋아지고 또 더 좋아지더라고!
그게 짝사랑의 특권이야.

그리고 내가 널 짝사랑하면서 그걸 배웠지. 오늘보다 내일 더 니가 좋아지더라.
그래서 폐인된다는걸 최근에야 느꼈고  또 폐인 안될라고 지금 내가 여기에 있는거고!'


역시 마지막 밤이라서 그러는지 못하는 말이 없네요.



20.

또 한참을 걷습니다.


'오빠 내가 그렇게 막 불편하나?'
'난 너 오래 알고 지내서 개인적인 평가는 별로 도움이 안될텐데...'

'오빠말 들어보니깐 내가 안 털털해서 그런가.
남자들도 그렇고 여자들도 그렇고 나를 좀 불편해 하는거 같다.

나는 남자들이랑 편한 사이가 되고싶거든. 꼭 연애 관계 그런거 말고 친구같은거 있잖아.
근데 친하게 지내고 싶긴 한데 남자들하고 막 편하게 잘 지내지 못하겠어.
여자친구들도 내 보면 맨날 '여자짓' 한다고 뭐라 한단말이야. 막 말도 잘 안하고 막 그런다고...'

'여자짓 한다는게 정확히 뭐냐? 뭐 내숭떠는척하고 조신한척 하고 뭐 그런거?
친구들이 진심으로 그렇게 말하더냐? 너 여자짓한다고?'

'친구들이 말하는건 진담반 농담반인데...

응 그런거 있다 아이가. 내가 어중간하게 생기고 어중간하게 놀아서 그런가?
난 일부러 여자짓할려고 하는건 아닌데 다른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여자짓하거나 좀 답답해보일 수도 있나봐
다른 사람들도 오빠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생각만큼 안되는거 같아.
그리고 내가 관심있어하는 남자들은 내 멀리하고 또 내 보고 관심있다고 하는 남자들은 내가 아니고...영 자신이 없다.'


재밌는 고민이네요.


'하나만 물어보자. 너는 내가 편해서 편한거나?
아니면 내가 편하게 해줄려고 노력해서 편하게 느껴지는거냐?
둘다 비슷한 말이긴 한데 뭔 말인지는 이해 하지?'

'응 무슨말인지 알겠다.'

'그래서 뭔데. 편해서 편한거야 아니면 내가 편하게 보일려고 노력해줘서 편한거야?'
'굳이 따지면 오빠가 편하게 해줄려고 노력해줘서 편하게 느끼는거 같다.
근데 그런거 안해도 편하긴한데...'

'아오 결국 내 잘못이였구나. 뭐 전부는 아니지만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건 한 90%는 내 잘못이네'

'그렇지? 난 잘못 없다. 다 오빠 잘못이지.'

'까불고 있네,  너도 10% 잘못있거든. 너도 과실있으니깐 잘못없는 척 하지말고
하나 묻겠는데 혹시 남자들이 만나서 니가 하는 애기 들을때 재미있어하나?
처음 만났을때 말고 좀 몇번 자주 얼굴 부딪히는 남자들중에서...'

'글쎄, 재미 없을거 같은데...지루해할려나?'

'그렇지? 나야 뭐 상관없지만 다른 남자들이 보기엔 좀 지루해보일 수 있기도하다.
니가 남자들 말 잘들어주고 잘 웃어주긴해도 그것만으로 부족하게 느낄 수 있다.
또 너한테 풍기는 묘한 분위기가 있거든.
뭔가 막 함부로 하지말아야될거 같고 말로 설명은 잘 못하겠는데 좀 어려운게 있긴하다.

너도 잘 노는 남자들이랑 옆에있으면 안맞는거같고 위화감 느끼고 그런다매?
10년간 알고 지낸 가장 편한오빠라고 하는 작자도 그런거 느끼는데 나 말고 다른 남자들은 오죽할까.'


'맞나? 내가 좀 문제 있는건가.
예전에 남자친구랑 사귀고 얼마 안됐을때 둘이 영화관에 갔었는데 손을 잡더니 내 무릎에 올려 놓은적이 있었거든.
좀 그때 기분이 살짝 이상했는데 티내면 안될거 같아서 그냥 꾹 참고 있었어.
근데 남자친구랑 기숙사 올라오는데 계속 남자친구가 나한테 뭔가 잘못한거 같다고 뭐라 말하는거라.'

'뭐, 스킨쉽하는데 강박증있고 그런건가 전에 말 들어보니깐 둘째오빠나 셋째오빠들이랑 손잡고 잘 다녔다매.'
'아니 뭐 그런건 없는데 그래도 쫌...'

'남자들이랑 무조건 친구관계 이상을 넘지 않고 니가 원하고 생각하는 관계는 '게이남자'한테나 가능할 일인거 같고
서로 마음에 들고 관심있으면 스킨쉽이건 또 다른문제건 분명히 서로 남녀 차이를 느끼고 부딪히는 경우가 있을거야.
니가 그런 상황에서 많이 서투른거 같은데 좀 마음을 열어봐. 노력을 해.'


'내가 좀 자신감이 많이 없는거 같다.
다른사람들한테 지금 오빠하는 것 반만큼만 해도 참 편할텐데.'


저만 조선시대 남자인줄 알았는데 여기 삼국시대 여자 한명이 있는거 같네요.
남자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고 말 들어보면 여러 남자들이랑 많이 만나본 녀석인데
딱 처음 남자 사귀는 소녀들이 예습복습까지 다 끝내고 맞췄어야 할 문제를 아직까지 끌고 있는거 같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맨날 자매님이 차이는 이유를 알거 같기도 합니다.



21.



계속 걷고 또 걷습니다.

'되게 신기하지 않나? 롯데리아랑 맥도날드가 길 하나 두고 붙어 있다'
'어 그러네? 여기 맥카페 문 열었나? 이런데는 테이블 빨리 빨리 돌아가게 하려고 등받이 없는 불편한 의자 쓴다.'

'아닌데? 의자 되게 편해보이는데 봐라. 등받이도 있잖아'
'헐 뭐지 우리동네는 다 등받이없는 불편한 의잔데 여기 괜찮네'


이왕 고백하기로 한거 몇개 더 까발려야겠습니다.

'예전에 니가 아침에 나 공원으로 불러내서 막 울었던적 있었잖아?'
'언제? 내가 그랬나?'

'응 그것때문에 나 그날 수업도 못들어갔다.
암튼 니가 막 그때 가정문제로 막 공원에서 울면서 내가 막 달래주고 위로해주고 그랬어.
너 우는건 그때 처음 봤다.

근데 너 그때 반바지 입고 왔었거든. 그때 니 다리 처음봤어.
처음에 니 다리보고 병원가야 되는거 아냐고 막 호들갑떨고 내가 걱정하고 그랬잖아.'

'어? 예전에 수원에서 만났을때도 치마 입고 간적있는데 그때 못봤나?'

'그때는 두근거려서 니 얼굴도 제대로 못봤는데 다리까지 볼 수가 없지.
아무튼 그때 니 다리 보고 막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거야.
도대체 이놈에 대해서 뭘 아는척을 했는지 오빠인척 어른인척 했는지 막 부끄러워지는거야.

그리고 되게 이뻐보이더라고, 그때 결정적으로 반했다.
그날 니 다리만 안봤어도 평생 고백 안했다.'

'뭔데? 진짜 이상한 아저씨네.'
'아니야 정말 그때 반했어. 뭐 그때 안반했어도 담에 또 반했을지도모르지만...'

'솔직히 내가 좀 다른사람들한테 자신감이 없는게 그거때문인것도 좀 있다.'
'아니야 정말 이뻐.'


드디어 말했네요.
아 후련하다.


'아, 그리고 오빠 내 친구중에 하나가 얼마전에 취업을 했거든 인디안이라고 아나?'
'응 안다 옷만드는회사 거기 맞지?'

'응 친구는 내 공부할때 막 놀러다니고 학교도 전문대 나왔고 맨날 일도 하다가 때려치고
다시 일하고 또 일하다가 금방 때려치고 그러는 애인데 몇일전에 취업을 했는데 기분이 이상한기라.'

'왜 배아프냐?'

'아니 뭐 꼭 그런건 아닌데 아이다 약간 그런것도 있다.
내가 재보다 공부도 더 잘했고 더 열심히 한거 같은데 기분이 이상해지는거야.
막 친구가 잘되서 배아프기보다는 그런 생각하는 내가 막 밉고 치사하고 그러는거야.''


'이거 작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거 같은데...하하
직장 말고 친구가 의사나 검사 이런 남자 잡아서 결혼하면 진짜 억울해서 잠도 못자겠다 그치?'

'아인데! 아무튼 속좁은 생각하는 내가 막 싫어진다. 나 왜이러지?'


'지난주에 내 친구 승현이 취직한거 알지?
취직하고 첫 출근날 친구들끼리 집에 몰려가서 선물도 주고 깜짝파티 해줬다고 했잖아.
아오, 누가 보면 나라라도 구한줄 알겠네. 진짜 별거 별거 다 해준다.'

'응, 서프라이즈 그거 했다매?'


'응, 네명이서 비싼펜도 사주고 아 물론 회비로...그리고 케잌이랑 편지랑 해서 줬거든.
근데 남자들끼리 평상시에 편지 쓸 일이 없잖아.
다들 훈련소 갔을때다 써보고 5~6년만에 편지써보는거거든.
아예 안써본 친구들도 있고...사실 편지라고 하기도 뭐하고 그냥 5~6줄짜리 롤링페이퍼 처럼쓰는건데...
회현이가 편지에 뭐라고 써야 될지 너무 고민을 하는거야. 쓸말이 없다고...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해줬거든.

'멍청아 그냥 니 출세하고 앞으로 잘 나가도 나 모른척하지말고 무시 하지말라고 써.
그리고 대충 축하한다고 쓰면 되지 뭐 그렇게 고민하냐 그렇게 써!'

그렇게 말하니깐 진짜 말한 그대로 쓰대?'



'아하하 뭔데! 진짜 그렇게 썻나? 오빠는 뭐라고 썼는데?'


'나는 마지막으로 썼는데...대충 뭐라고 썼냐면.

'야 나는 진심으로 안축하한다.
너 잘된것도 좋지만 뒤쳐지지 않게 분발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든다.
그래야 지금처럼 서로 웃도 편하게 떠들고 놀 수 있을거 아니냐.
지금도 멋지지만 더 멋있어져라. 남자놈들끼리 사랑은 무슨 그냥 많이 좋아한다'

대충 이렇게 써서 줬어.'

'잘했네. 승현이 오빠 많이 좋아했겠네.'



'그래, 너만 그런게 아니라 다 비슷비슷해. 나도 똑같이 속좁은 인간이야.
친구들끼리는 우정도 있지만 라이벌관계 경쟁관계 뭐 그런것도 있잖아.
그니깐 너무 자책하지 말고 편하게 생각해.
친구 잘되면 너도 나중에 친구 덕 볼 수도 있고 좋은거지.
잘난친구 두고 싶지 못난친구 두고 싶냐?

지금 그 마음이 자연스러운거니깐 좀 풀리면 친구 잘되라고 진심으로 빌어줘.
어차피 오래 볼 친구고 나중에 다 니 결혼할때 축의금으로 돌아온다.'

'아 진짜 그런가?'

'그래 너도 내가 뭐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는게 아니라
이런 공감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거지? 뭐 여기서 더 바라는거 있어?'

'아이다 됐다 그만하면 충분하다. 고맙다.'



22.



얼마를 걸었는지 모릅니다.
그냥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매님이 횡단보도 건너편 가로등 밑을 쳐다보다 무엇인가 발견합니다.

'와! 민들레다.'


아스팔트로 도배되있는 매연냄새 풀풀 나는 도로변에 노란 생명이 피어있네요.
생명의 기적이 따로 없습니다!
민들레는 정말 척박한 환경에서도 꽃을 피우는 아주 독하디 독한 품종입니다.
그래서 일편단심 민들레라고 하나봅니다.

민들레를 처음 보자 마자 머릿속으로 어린시절 식물도감에서 본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우리나라에 지금 피어 있는 민들레는 거의 다 외국에서 목재에서 씨앗이 붙어서 배타고 흘러온거고...
시골 말고는 토종 민들레는 도시에서 거의 볼 수 없다고 민들레 꽃을 뒤집어서 잎이 말려져 있으면 외국민들레고...
곧게 펴져있으면 토종민들레인데 요걸 아는척 할까 싶었는데!

설마 이 분위기에서 저런 개드립을 치는 바보는 아닙니다.


'이런데도 민들레가 피네. 그냥 꺾지말고 가자.'
'맞지? 냅둬서 꽃씨 만들어서 하늘로 날라가게 둬야지.'

'아니, 그게 아니고 민들레 하면 일편단심 지조 절개 딱 그런거 떠오르잖아.
지금 내 모습이 딱 민들레 같지 않니?'

'아인데? 내가 민들렌데 오빠가 아니고 내가 다 민들레다.'

'죽을래? 니가 민들레면 내가 독고진이다. 내가 민들레다!'
'아이거든 내가 민들레거든!'
'진짜 맞는다. 니가 왜 민들레야 내가 민들레지!'

그깟 꽃 한송이가 뭐라고 잘들 놉니다.



'진짜 오늘 괜히 왔나. 이제 이짓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깐 조금 아쉬워지네.
니 얼굴 못보면 내가 더 손해일텐데 허전하겠다.'
'아인데! 내가 훨씬 더 손해거든!'

'와 이게 또 그러네. 야 솔직히 좋아하는건 난데 니가 어떻게 더 손해냐? 내가 더 손해지.'
'아이다. 내가 더 훨씬 훨씬 훨씬 더 손해다!'

'이게 진짜 맞을라고? 근데 니네집 다 온거 같은데 여기는 뭐 보이는게 죄다 모텔이냐?'
'맞제? 아침에 출근할때 남자랑 여자랑 둘이서 어색하게 손잡고 가는거 맨날 본다.'

'이야, 진짜 환경죽이네. 어떻게 이런데 살 생각을 다 하셨대?
아침에 모텔에서 나와서 손잡고 나오는 커플 보면 무슨 생각 드냐?'

'아무생각 안나는데? 맨날봐서?'
'어 진짜? 그래도 무슨 생각날거같은데 보고 아무렇지도 않아?'

'무슨생각? 무슨생각? 아무생각도 안나는데? 무슨생각?'
'오, 안낚이는데? 이제 집에 다 온거냐?'

'응 거의 다왔다 집에 아무것도 없다. 오렌지 쥬스 라도 좀 사가자'
'난 물이나 한잔 줘도 되는데...생수도 없냐?'

'우리 물 끓여 마신다. 여기서 뭐 좀 사가자. 뭐 먹을거 만들어줄까?'
'이 새벽에 피곤하게 너 뭐 시키긴 그렇고 집구경이나 하면서 최고의 사랑이나 다운받아 보자.'


근처 24시 싱싱빅마트에 들어가서 오렌지쥬스를 사고...
자매님이 살고 계시는 원룸 맨션으로 갑니다.
문앞에 들어서자 후다닥 들어가더니 '잠깐만' 하더니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렌지쥬스를 든 검은 봉다리를 들고 어두컴컴한 복도에서 기다립니다.
한 5분쯤 기다렸나?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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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있게
11/06/02 02:30
수정 아이콘
재밌고 보고 있는데 자매님이라는 단어 때문에 너무 헷갈려요 ㅜㅜ
무슨 뜻으로 쓰시는 단어인가요? 종교적인 용어인가요?
fd테란
11/06/02 02:36
수정 아이콘
아 교회는 안다니구요-_-;;
그냥 '야,너,임마,아가씨' 같은 그런 호칭이요.
가끔 이름부르기도 하는데 저렇게 부르는게 웬지 더 편하더라구요.
모든 사람들에게 다 그런건 아니고 가깝거나 편한사람들한테 붙히는 호칭이요.

그러고보니 지난주에 캐치볼모임에서 피지알 분들에게 'xx형' 이라고 불렀다가 놀라시더라구요.
'~님'~'씨' 보다는 나이차이 얼마 안나면 '형'이 더 친근해보여서 그렇게 불러본건데;;;
이번 한번에 다 정리해서 올릴려고 했는데 뭘 그렇게 만나서 주절거렸는지 너무 적을게 많네요.
게시판 도배느낌도 나고 너무 청승떠는 글을 올려놔서 민망하네요.
그래도 쓰던거는 마저써야 될테니 딱 두개만 더 써서 올릴게요!
11/06/02 06:58
수정 아이콘
서군 화잇힝.. 힘내세요
그리고 저도 캐치볼 끼워주시면 안될까요? 하하.
열심히 잘 보고 있으니 연재(?) 마무리 잘 맺어주시길..
11/06/02 10:30
수정 아이콘
정말 잘 읽고 있습니다 ^^
두편밖에 안남았다니 아쉽네요 흑흑
청승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워서 좋은걸요^^
조용히 응원해봅니다^^
다리기
11/06/02 10:57
수정 아이콘
자매보다는 처자가 어감이 착착... 크크크
11/06/02 12:45
수정 아이콘
재밌네요 크크
저 역시도 자매님이 어감이 좋은듯
홍마루
11/06/02 13:47
수정 아이콘
연애소설 읽는 느낌이네요...
다음편 기대하고 있을께요~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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