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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6/11 22:10:27
Name Eternity
File #1 20250607_142610_(1).jpg (86.1 KB), Download : 1689
Subject [일반] [영화공간] <인천상륙작전>에서 <바스터즈>의 향기를 느끼다 (수정됨)


※ 반말체인 점 양해바랍니다.
※ 영화 <인천상륙작전>,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스포 있습니다.





[영화공간] <인천상륙작전>에서 <바스터즈>의 향기를 느끼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다른 장면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 지웠다. 굳이 잊지않기 위해 노력해야할 수준의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의 시퀀스 만큼은 9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기억에 남아있다. 극장에서 볼때의 상당했던 긴장감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얘기하자면, 문득 그 순간에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한국전쟁 중 낙동강 전투가 한창이던 1950년, 대한민국 해군 첩보부대 대위 장학수(그냥 이정재라고 부르겠음)는 북한군 간부 박남철 중좌로 신분을 위장하여 북한군이 점령한 인천 지역에 잠입한다. 그리고 사방이 북한군으로 깔린 인천에서 그곳을 책임지는 북한군 사령관 림계진(그냥 이범수라고 부르겠음)과 만나게 된다.

어느날 '락원'이라는 술집에서 이정재와 이범수, 그리고 인천시립병원 소속 남한의 의사, 간호사들이 모인다. 그 자리에서 사령관 이범수는 한 간호사에게 "만약 너의 삼촌이 기독교 신자라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대뜸 묻는다. 삼촌을 죽일 수 있는지를 묻는 가혹한 공산주의식 사상검증에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아편과 같은 종교는 뿌리를 뽑아야죠."라는 답변으로 테스트를 넘긴다.

그러자 이범수는 이내 시선을 돌려 이정재에게 똑같이 질문을 한다. 그러자 이정재는 "그건 개인의 몫"이라며 애매하게 답한다. 그러자 순식간에 장내가 싸늘하게 얼어붙는다. 이범수는 담배에 불을 붙인 후 "신이 있소?" 라고 차갑게 묻는다. 이정재는 "이미 당에서는 신이 없다고 했지요." 라고 나직히 대답한다. 매서운 눈으로 가만히 노려보던 이범수는 "소속, 암호명이 뭐냐?"고 러시아어로 묻는다. 그러자 이정재도 러시아어로 "그런 거 함부로 말하면 총살이오."라며 답변을 거부하고, 순간 장내에 긴장감이 치솟는다. 말없이 상대방을 응시하던 이정재가 이윽고 수첩에 암호를 적은 후 종이를 찢어 이범수 앞에 내민다. 찢긴 종이에 적혀 있는 러시아 글씨는 "붉은 도스토옙스키."

<신세계>에서도 그러했듯 이정재의 억누르는 긴장 연기는 언제나 훌륭하다. 불안하고 긴장되는, 이른바 식은땀나고 떨리는 상황에서의 쫄리는 감정을 절제하며 억누르는 이정재의 연기는 이 작품에서도 일품이다. 반면, 눈을 도끼처럼 치켜뜨고 마치 위압감을 찍어내리듯 상대방을 압박하는 이범수의 날카로운 악역 연기도 탁월하다. 연출도 연출이지만, 쪼이기 전문가들이 만나니 확실히 달랐다.

영화 <인천상륙작전>은 전체적으로 졸작이지만 이 사상검증 시퀀스의 마지막 절정씬에서 뿜어지는 긴장감과 압박감은 단 몇초 간이지만 순간적으로 <바스터즈> 수준까지 치솟는다. 이 시퀀스에서 순간적으로 휘몰아치는 몇초간의 긴장감 만큼은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한스란다(크리스토프 왈츠)의 전설적인 오프닝씬의 긴장감과 아치 히콕스(마이클 패스팬더)가 프랑스 술집에서 독일 나치군 장교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마주 하던 술 게임씬의 스릴에 비견될만 하다.(적군 점령지에 몰래 잠입한 스파이 군인이 발각될 위기에 처했을 때의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두 영화 모두 잘 살렸다.)

물론 거기까지다. 그 이후의 <인천상륙작전>의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 영화는 이 술집 시퀀스 하나만 내게 남았다.

영화를 본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지인들과의 술자리 모임에서 이 얘기(인천상륙작전에서 느껴진 바스터즈 향기론)을 사뭇 진지한 태도로 설명한 적이 있다. 그때 내 얘기를 끝까지 묵묵히 듣던, 영화 마니아 친구 한명이 나직한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구린내도 향기다."

아아.. 이 생각을 못했구나.. 나는 아무런 항변도 하지 못한 채, 순간 무릎을 탁 쳤다. 그러곤 한참을 멍하니 빈 술잔만 바라봤다. 내가 <인천상륙작전>에서 느낀 건 향기일까, 구린내일까. 9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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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충달
25/06/11 22:42
수정 아이콘
발꼬랑내, 빼갈, 쳥국장.... 가치는 다르지만 비슷한 향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죠.

그래서 셋 중에 햇반을 부르는 것은 무엇입니꽈!!!
녹용젤리
25/06/12 13:42
수정 아이콘
발....꼬랑내??
LuckyVicky
25/06/12 00:05
수정 아이콘
딱 그 장면만 봐바야겠군요
25/06/13 01:25
수정 아이콘
근데 이정재 북한말 연기는 많이 별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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