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이래 지금만큼 언어를 돈 안들이고 배울 수 있는 시대는 없었습니다. 유튜브를 키면 전세계의 언어로 된 컨텐츠가 흘러넘치고, 전세계의 사람과 언어교환 하거나 통화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챗지피티 보이스나 제미나이 라이브 같은 대화형 AI 서비스까지 공짜로 쓸 수 있으니 이제는 약간의 지식과 의욕만 있으면 누구든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고질적인 약점이었던 영어 스피킹(더 정확히는 읽기와 말하기를 포함한 아웃풋)을 연습하기 위해 챗지피티와 영어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내 편한대로, 심지어 생각 안나면 한국어까지 섞어서 얘기하는데 심지어 교정까지 해주는 대화는 웬만한 원어민이랑도 힘듭니다. 이건 혁명이에요!
그런데 최근들어서 부딪힌 중대한 문제가 있으니 바로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언어의 문제가 아니었던 겁니다. 애초에 전 한국어로 대화할 때도 과묵한 사람입니다. 이야기를 주도하기보단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따라가며 반응하는 쪽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AI는 자아가 없다는 특성상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주도적으로 말을 해야하고 AI는 거기에 반응하는 참모형(?) 대화상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하고 주도적으로 얘기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AI한테까지, 심지어 영어로 이야기를 끌고 가려하니 정말 죽을맛입니다.
사실 비슷한 일은 제 인생에 꽤 여러번 있었습니다. 가까이는 언어교환, 멀리는 교환학생. 언어교환 어플이나 통화를 관 둔 이유도 똑같았습니다. 상대랑 인사 하고나면 할 말이 없어요! 교환학생으로 유럽에 반년 머물렀을 때도 나름 즐겁긴 했지만 사람과 교류를 그닥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언어를 말할 일이 적고, 발전도 느렸죠.
그러고보면 주변에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 대부분은 인싸였습니다. 외국인을 보면 스스럼 없이 말 걸고 수다 떨 수 있는 사람들. 전 여태까지 그게 배짱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배짱 이전에 컨텐츠의 문제였습니다. 우선 말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하는데, 인싸는 여러 사람 만나고 잘 돌아댕기고 하다보니 말할거리도 많고 또 그걸 말하고 싶어합니다! 저랑 정반대의 사람이었던 거죠.
물론 롤플레이를 한다거나, 가짜 일상생활을 꾸며서 말해 보라고 하면 되긴 하는데 이것도 결국 제 프롬프팅의 한계인지 AI의 한계인지 자꾸 주도권을 저에게 쥐어주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영어 고군분투는 요상한 부분에서 막히게 됐습니다. 미래에는 자비스처럼 지가 수다스러운 AI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래도 몇 년 내로 나올 것 같긴 하다는 게 희망적이군요. 사실 지금도 기술적으론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안만들어서 그렇지...
수다스러운 분들, 존경스럽고 부럽습니다. 지금 보니 그것도 재능임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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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완전히 전자 유형이라... 말 뿐만 아니라 행동 자체가.
근데 언어는 실수 감안하고 많이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느는 시스템인지라 이게 잘 안맞더라고요.
심지어 실수 해도 아무 상관 없는 AI 상대로 얘기할 때도 그게 안고쳐지는 거 보면 인간이란 참 변하기 힘든 존재다 싶습니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