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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09/18 22:39:48
Name 윤여광
Subject [yoRR의 토막수필.#28]Nice Dream.


[BGM]
[久遠 -光と波の記憶 - FF X-2 Piano Collection]



#.외톨이.

  내가 처음으로 혼자라는 느낌을 알게 된 것은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강릉으로 전학을 나온 14살의 봄이었다. 이제 막 초등학교를 벗어나 제법 젖비린내를 털어버릴 채비를 마친 나. 꼭 그렇게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막 이사를 마치고 집안 정리 때문에 바빴던 부모님과 함께 하지 못했던 입학식이 나는 아직도 못내 아쉬웠다. 반을 배정받고 담임이라는 사람이 들어와 뭐라뭐라 간단히 말을 마친 뒤 학부모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그 자리가 그랬다. 우리 아이 좀 잘 부탁합니다. 나는 내 옆에 서 있었으면 했던 어머니가 그런 말을 해주시길 바랬다. 그러나 나는 종례가 끝나자 마자 가방을 챙겨 조용히 학교를 빠져나가 곧장 집으로 향했다. 허리가 안 좋으신 어머니 혼자서 그 많은 짐덩이들을 정리하게 냅둘수는 없는 일이었기에. 그 때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서운한 생각 없이 그저 짐정리가 걱정스러웠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다. 보통의 또래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옆에서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니 나는 어딜 가든 부모님과 함께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때도 전날 새로 산 책가방과 실내화 주머니를 들고 학교가 어떤 곳인지도 모른채 몸에 걸치고 있는 새 물건들에 설레서 마냥 즐거웠던 매년 3월 2일.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기에 따로 부모님이 학교로 호출되는 일도 없었다. 사고라도 쳐볼걸 그랬나 하고 생각하기엔 아버지의 몽둥이가 지금도 겁이 난다. 아버지의 몽둥이는 정말 아프다. 정말.....아팠다...

  두 번째로 내가 혼자라고 느꼈던 날은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5월달에 떠난 중학 시절 첫 소풍. 대관령 근처의 산기슭으로 떠났던 그 날. 어린 애들도 아니고 하니 학부모들이야 동행하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학급 위원이나 치맛 바람 좀 세게 부실 것 같은 어머님들이 몇 분 따라오시긴 했었다. 하지만 그 날은 그게 부럽거나 그러진 않았다. 오히려 보기 싫었으니까. 집에서 밥이나 하지... 따위의 건방진 생각을 곱씹고 있었다. 별 생각없이 준비된 행사를 즐기고 상인들이 파는 불량 식품을 좀 사먹으며 무난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하는 시간. 보통의 어린 녀석들이 그렇듯. 버스의 맨 뒷자리는 반에서 좀 힘이 있고 지 딴에 좀 잘 나간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의 전용석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자리를 그 따위 쓸모없는 권위에 젖어있는 한심한 녀석들에게 내주기 싫었기에 나는 버스 앞 문 뒤로 늘어선 줄의 맨 앞에 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문이 열리고 버스로 올라서려는 순간. 내 어깨를 강하게 뒤로 낚아채는 손이 보였다. 그렇게 허무하게 그 녀석에게 자리를 내준 나는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당당하게 문 안으로 한 발 들여놓은 그에게 꽤나 굴욕적인 말을 들어야했다.

“촌놈 새기가 어딜 먼저 타려고 그래.”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 목소리. 완벽하게 나를 자신의 아래에 깔아뭉갠 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급 내에서의 내 위치를 정해버리는 그 매정한 목소리.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겨우 촌에서 전학나왔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그 놈들의 아랫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용케도 그래봤자 나만 손해라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지금 내 주변에 내 힘이 되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를 옹호해 줄 사람이 없다는 말은 곧 학급 내 다수의 인원을 내 적으로 돌린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들과 활기차게 어울릴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적으로 만들 생각도 없었기에. 나는 혼자라는 것이 이렇게나 서러운 일이구나 하는 느낌을 간직한 채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올라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혼자 어영부영 3년을 보내고 새로 입학한 고등학교. 어딜 가나 쉴 새 없이 떠드는 소리. 내 친구는 고등학교 친구들밖에 없어. 자랑도 아닌 말을 그렇게나 쉽게 떠들고 다니는 내 입이 원망스럽긴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분명 그 때는 몇 명 되지 않지만 관계를 잘 유지하기만 하면 어설프게 가지만 쳐놓는 것 보단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나와 비슷한 생각 비슷한 행동으로 삶을 채워온 내 친구들. 요새 들어 나는 그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사랑보단 우정이 먼저라며 길거리의 커플들을 저주하던 녀석들은 만나자고 전화하면 지금 여자 친구랑 같이 있다며 매정하게 전화를 끊어버리기 십상이고 그래도 안부라도 묻고 싶어 다시 전화를 걸면 왜 쓸데없이 자꾸 전화를 거냐며 화를 내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고 그 다음 날 눈치없이 왜 전화질이냐며 성의 없이 문자로 화를 내곤 한다. 어떤 이는 힘든 꿈을 가슴에 안고 서로 도우며 살자며 말하다 지금에 와서는 뒤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야속하고 서운하다. 같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조금만 신경쓰면 짧은 시간이라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마다 자기 살기에 바쁘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매일 늘어나는 일거리에 계절에 따라 바뀌는 제품의 배합표를 외워야 하며 그 빌어먹을 이스트가 그 날 그 날 기온에 따라 발효시간이 달라진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매일같이 생각하는 공과금 납부와 밀린 핸드폰 요금. 담배를 끊을까 싶어 겨우 하루 참았다 그 새를 못참고 편의점으로 달려가 말보로 한 갑을 사드는 내 알량한 손. 챙겨야 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분명 그들도 그럴테지. 점점 담고 챙겨야 할 일이 제곱으로 늘어갈테다. 알고는 있는데 그걸 서운하게 생각하는 좁아터진 내 새가슴.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 생각을 털어놓기엔 나도 어린 시절의 객기는 조금 사그러든지라 그러질 못한다. 그래봤자 서로 싸울 뿐이다. 적어도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는 싸우고 싶지 않기에. 원래 사는게 이런 것인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 다 그렇게 되는 것이냐고. 점점 혼자가 되어 살아가는 것이냐고.

  혹자는 웃는 소리로 그러니까 여자가 필요하다고 말하긴 하지만 그게 꼭 소용 없는 말은 아닌 듯 하다. 나도 연애라는 것을 겪어봤으니까. 아무 이유 없이 불러내서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앉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 빈말이든 진심이든 사랑해 라고 말하고 직접 말하진 않더라도 내 속에 감추고 있는 고민거리를 잠시 진정시킬 수 있는 그런 사람. 일전에 떠들기는 연애는 관심없다던 나였지만. 부끄럽고 한심한 소리지만. 지금에 와선 그런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선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친구들이 부럽긴 하다. 아마 그들에게 좀 놀아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것은 부러움과 동시에 내 처지에 대한 한탄 섞인 헛소리일지도 모르겠다.


#2. Nice Dream.
  
  내가 생각하는 높은 곳. 그 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 만약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게 된다면 아마 유명 호텔의 조리장으로 들어가는 것이 높이 올라가는 길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내가 지금의 일을 계속하게 된다는 보장도 없고 또 지금은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릴 생각도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다.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실상이 그렇듯 결국은 어느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자기가 원하든 그게 아니든.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닌 남은 인생을 한 가지 일만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참 억울하고 분한 일이다. 그래서 그걸 한 번 깨보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잔뜩 하고 살면서 친구들과는 또 나름대로 즐겁게 만나고 이런 저런 평범한 꿈. 글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꿈은 아쉽게도 잠시 접고 있지만 아직 이것만은 깨지 않고 있다. 아니 평생 깨고 싶지 않다. 내 현실과는 별개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동정하기 위해선 그런 꿈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니까.

  어떻게 보면 꿈이 아니라 미련이다. 조금만 시간을 뒤로 돌려준다면 원래의 내 꿈도 지켜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후회가 섞인 미련.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에 있어 후회는 아무 소용 없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나도 사람인데. 나도 감정이 있는 사람인데. 자유다. 그런 미련에 젖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있던지 아니면 과감하게 그것을 버리고 냉정하게 현실만을 직시하며 살아갈지. 어중간하지만. 나는 그 중간을 택하고 싶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중간 중간 쉬어가는 시간동안 뒤를 돌아보며 즐거웠던 시간을 그리고 또 그랬으면 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후회하고. 그렇게 한 숨 돌리고 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고. 22살. 어린 나이가 아닌데. 적어도 이제 무얼 하고 살아야 할지 정해야 하는 나이인데. 왜 이렇게 생각만 많은 것일까. 왜 이렇게 욕심만 많은 것일까. 왜 나에겐 내 욕심 하나 채울 수 있는 작은 힘 조차 없을까. 왜 나는 힘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게을리 하고 있는 것일까. 정신 차리고 안간힘을 써서 내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자 허공을 가르는 몸짓을 바라보고 있자면 왜 이리 허무한 것일까. 왜. 왜. 왜.

  나는 왜.....이렇게 나약할까.

  시간을 원망하며 살아온 날들이 많다. 조금만 천천히 가주지 않겠니. 날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되겠니. 오늘 하루는 조금만 천천히...내일 하루는 조금만 빨리....그렇게 흘러가주면 안되겠니. 나 한 사람 소원 들어주는게 그렇게 힘드니. 내가 원하는 것 만큼 다른 이들이 원하는 것도 많다는 걸 시간은 잔인하리만큼 확실히 현실을 통해 느끼게 해준다. 내 노력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허다하고 때로는 운이 따라야 하고 운까지 따라줘도 죽어도 가질 수 없는 욕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내일이 되면. 어젠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지 하며 지금 이 글을 쓰는 시간을 과거로 기억하고 또 오늘의 생각들을 기록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의 나와는 달라진 내가 되어있겠지. 달리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 쪽이든 나는 변하게 될테지. 그것이 궁금해서 사는 것 뿐 지금은 별다른 의미를 두고 있지 않다. 내일...에 대한 의미.

  누가 알려줄까. 알려주려나? 저절로 알게 될지도. 평생 알지 못 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궁금하잖아. 알려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 그 답.

  결국엔 뭐 먼 앞길을 내다보며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걷다 쉬어가는 시간을 활용해 지난 추억을 그리며 향수에 젖었다가 그 미칠 듯이 그리운 향이 내 몸에서 다 날아가면 다시 걸어야지...별 수 있나...


[글이 살짝 늦었네요. ^^. 아쉽게도 지난 랜파티 참석하질 못했습니다. 그 날 일이 자정을 넘겨 끝나는 바람에...어떻게 서울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없더군요. 정말 아쉽지만. 언제일지 모를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아. 다음 글부터는 토막수필은 잠시 쉬고 임요환선수와 관련한 짧은 팬픽을 연재할까합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입대일. 그의 입대가 정말 아쉽지만 그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달래보자 하여 부족하겠지만 성심성의를 다하여 찾아뵙겠습니다. 그럼. 월요일 하루 고생하신 회원분들 편안한 밤 되세요.]
[새기...는 의도적 오타입니다....어떻게 저 말을 대체할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질 않더군요...아...의도적인 오타가 아닌 글자도 많습니다..ㅠㅠ...손가락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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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미
06/09/18 22:49
수정 아이콘
우와, 수필도 멋진데 팬픽은 얼마나 멋질지 기대되는데요!
06/09/18 22:53
수정 아이콘
매번 좋은 수필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팬픽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My name is J
06/09/18 22:54
수정 아이콘
그래요...그렇죠...친구들이 커플이 되면 버림받게 되는 것이 인생.

근데 뭐 어때요.
조금 외로우면. 그냥 외로운데로 주욱- 살다보면 괜찮아 진데요.
무엇보다, 우리 엄여사님 말씀에 따르면 같이 있어도 외로운게 삶이라더이다.
빈곳- 굳이 채우려고 애쓰지 말고 비워둔채로 있는것도 나쁘지 않다니까요.

무엇보다..그거 채우자고 우리 애들 외롭게 만드는 건 좀 미안하잖습니까. 으하하하.
(그렇다고 우리애들한테 잘하는건 아니지만서도. 미안타-)

근데요..미련은 가져도 후회는 하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랬을 수도 있지만...이랬다면 더 좋았을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순간에 할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만큼은 스스로를 믿어주는게 그나마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요. 그정도는 고생한 스스로한테 잘했다고, 열심히 했다고 칭찬하는 의미에서라도요.

아아...이러니 저러니 해도 전 그저 백수가 꿈인 20대일뿐이죠. 으하하하-
06/09/19 01:02
수정 아이콘
아.. 뇌 안의 통로가 탁 트입니다 :)

랜파티 때 꼭 뵙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ㅠ ㅠ
팬픽 기대하겠습니다 ^ ^/
06/09/19 01:04
수정 아이콘
커플이 돼고 서로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어도 외로울때가 있어요. 내 자신도 나를 잘 모를때가 있는데 커플이 돼도 여전히 서로의 자신을 이해해주고 달래주는 사람이 돼는건 노력해도 쉽지 않거든요. 그리고 먼저 다가가지 않았는데 먼저 다가오는 친구 찾기 쉽지 않고 먼저 열지 않았는데 먼저 열어주는 친구도 찾기 쉽지 않죠. 또한 먼저 열었더라도 일방적으로 한쪽으로만 열린 관계는 지속이 돼지 못합니다. 그래서 요즘엔 스스로를 외롭게 만든건 본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DNA Killer
06/09/19 01:38
수정 아이콘
나두미키
06/09/19 03:50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합니다.
06/09/19 11:59
수정 아이콘
수필도 잘읽고 있는데...팬픽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06/09/19 16:52
수정 아이콘
#.외톨이.
어딘가에서 본 글귀처럼 외로움은 평생 그냥.. 함께 가야 하는 친구 같은 것 아닐까요. 세상에 나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아요. 자신조차 말이죠.^^;

#2. Nice Dream.
제 경험을 빌어 말씀드리자면, 하루하루 살다 보니 무엇인가 수면 위로 탁. 떠오르는 순간이 있더군요. 그 순간을 기대하는 맘으로 기다려 보심이 어떨런지요.^^

여광님께서 임요환 선수의 팬이신 게 진정 감사할 일이네요. 팬픽 기대하겠습니다.
붉은낙타
06/09/19 19:45
수정 아이콘
너무 잘봤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정말 잘 썼다고 칭찬하시더군요;;
아~ 그리고 팬픽도 기대 하고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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