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게임 끝나고 팬미팅 끝나고 신천에서의 뒷풀이 끝나고 오느라 재방송을 보지 못해서,
확실히 상황파악이 안된 상태에서 글 올리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렇지만 여기저기 게시판 분위기를 봐서는 방송에 어떻게 나왔을지 대강 짐작이 되기에,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1.

사실 경기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지나친 함성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강민동 팬 분에게 문자가 들어왔더군요.
강민동 또 소리 너무 지른 것 때문에 여기저기서 말이 많다구요...


아차 싶었죠. 정말 아차 싶었습니다.

'오늘 소리 정말 많이 질렀던 것 같은데...모두들 너무 흥분한 나머지 방심했구나...'



#2.

다들 아시겠지만 작년 2월 19일,
팀리그에서 강민 선수의 올킬이 있던 그날,
소위 "8옥타브" 파문으로 엄청난 비난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정말 다양한 표현으로;; 끝도 없이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마침 그 현장에도 있었고 그 소리도 들었었지요.
그렇지만 경기에 몰입해서 그런지, 현장 자체의 흥분과 열기에 묻혀서 그런지
크게 문제가 되리라는 생각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그 경기 vod를 보니 좀 심하다 싶더라구요.
(그날의 세 경기를 편집해서 기념동영상을 만드느라 아마 수십번은 봤을 겁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괴성이 나오는 부분은 일일이 볼륨조절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그 자비심없는;; 비난과 조롱에 불특정 다수로 지적될 수밖에 없었던 강민팬들은 상처도 입었지만,
반성도 하고 자제도 했었습니다.

팬들 때문에 선수가 욕먹는 것만큼은 저희 스스로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단지 몇마디 욕을 먹고 끝나는 것이라면 그나마 괜찮지요.


그 희대의 명경기.

예고올킬.

"무슨 프로토스가 올킬해야 된다고 하니까 정말로 올킬을 하려고 합니까"라는 그 경기.

팀리그 역사에 길이 남았을 것이고 VOD 다시보기가 폭주했을 그 경기가,

"개념없는 강빠들이 8옥타브 괴성 질렀던 경기"로 기억되는 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더군요.


그냥 한번의 해프닝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고,
제대로 방음시설을 안해준 방송국의 잘못을 탓할 수도 있고,
응원의 자유를 주장할 수도 있었지만,

"강민 올킬 정말 명경기라 다시 보고 싶지만 귀가 따가워서 볼 수가 없다"는 말...

반은 농담조로 하는 말일지라도,

그건 팬으로서의 존재가치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응원을 한다고 했던 것이 선수의 명경기의 빛을 바래게 하다니요.

한 번이라도, 한 사람에게라도 더 강민 선수의 경기를 보여주고 싶은데,
응원소리 때문에 보기 싫게 만들다니요...


뭐 팬카페나 홈페이지에서 명시적으로 "함성을 지르지 말자"라든지 "자제하자"라는 말은 없었지만,
분명히 많은 강민동 분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셨던 것 같고,
스스로 자제하셨던 것으로 믿습니다.

(강민 선수 경기의 특성상-_-;; 함성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지만,
그렇게 크게 물의를 일으킨 적은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4.

그런데 오늘 정말 미칠 듯한 기쁨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위에서 말씀드린 그 문자 하나에 OTL..

공든 탑이 무너진다, 도로아미타불...


작년 올킬할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경기가 함성을 강제한 측면이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이 변명이 될 수는 없겠지요.

방음시설이 잘 되어 있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직 그렇지 못한 여건이고,
함성은 최대한 자제해야 되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



#5.

참 이상한 일이지만 강민동 팬미팅은 굉장히 조용합니다.
(길게 하고 자주한다는 건 인정하지만;; 적어도 시끄럽진 않습니다..^^)

"8옥타브의 함성"만을 기억하시는 분들이라면 강민팬들이 강민만 보면 꽥꽥 소리를 지르고,
팬미팅이라도 하면 소리지르고 달려들고 붙잡고 난리치고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시겠죠??

강민동 팬미팅에 한번이라도 와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다들 그렇게 조용할 수가 없어요.

그저 선수건 팬이건 서로 쳐다보면서 웃어주고,
게임 내용에서부터 일상의 소소한 것들까지 질문하고 대답하고..
그게 다죠.


그런 사람들을 그렇게 "무섭게 변해버리게 만드는 건" - 변명같지만 - 강민의 경기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아닌, 강민의 경기가 그렇게 만들어 버립니다.

강민팬이라면 그런 경기에도 익숙하고 무덤덤해지고 그래야 되는데,
저도 그렇고 그게 잘 안되나 봅니다..;;

매번 봐도봐도 머리끝이 쭈뼛 서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이,
사람 긴장하게 만드는 건 호러 영화 저리가랍니다.

혹시 그래서 비명이??..;;



#6.

마지막으로 저는 아무것도 아닌 일개 강민팬일 뿐이지만,
어제 경기장에서 응원을 했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어제의 일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제 경기 보시면서 거슬리셨던 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특히 김남기 선수와 팬분들께는 더 많이 죄송합니다.


아직 경기를 못보신 분들께는 미리 죄송합니다.
(그래도 꼭 보셔야 합니다. 안보면 후회하실 경기입니다..ㅠ_ㅠ)


그리고 강민 선수를 좋아하시는 수많은 분들.
이렇게 좋은 날, 눈살 찌푸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무엇보다 강민 선수.
아마도 강민 선수라면 이해하고 허허 웃어넘기시겠지만,
그래도 참 많이 미안합니다.

눈물이 날만큼 기쁘셨다는데 저희도 그랬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강민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약속.

꼭 지키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머리 참 잘 어울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