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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2/11/26 13:39:44
Name 황무지
Subject 책을 읽다가...
콜롬비아 상설 인권위원회의 존경받는 회장이자 전 외무장관이었던 알프레도 바스케스 카리소사는 이렇게 썼다. "콜롬비아는 이제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비극적인 나라가 되었다. 이는 바로 빈곤과 불충분한 토지개혁 때문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외부 요인들에 의해 폭력이 격화되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가 말하는 외부 요인은 주로 케네디 미국 행정부의 주도적 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이 외부 요인으로 인해 "콜롬비아인들은 정규군이 폭동 진압 특수부대로 전환되는 고통을 겪었다." 케네디 행정부의 이러한 조치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국가안보 독트린"이라고 불리는 조치를 불러왔다. 이 독트린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으로부터 국가를 지킨다는 것"이다. "살인 특공대의 새로운 전략은 사회사업가, 노동조합원, 기득권층을 지지하지 않는 남녀노소, 극단적인 공산주의자로 간주되는 모든 사람들과 싸우고, 그들을 처단할 권리"를 군부에 부여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인권 문제에 관한 가장 저명한 미국 학계의 전문가가 설명한 바와 같이, 전반적인 목적은 "과반수의 인구, 즉 민중 계층이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게 배제함으로써 기존의 사회 경제적 특권 구조에 대한 위협을 영원히 제거하려는 것" 이었다

(중략)

클린턴 정부는 - 콜롬비아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 어떤 평화 협정도 작물을 파괴하는 조치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적인 계획이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그저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로 치부되었다. 미국은 군사작전에 치중할 것인데, 이는 당연히 군사장비를 생산하는 미국의 첨단 기업들에 이익을 안겨 줄 것이다. 이들 기업은 콜롬비아에 대규모 투자를 한 옥시덴탈 석유회사 및 다른 기업들과 더불어 콜롬비아 플랜을 놓고 '광범위한 로비'를 벌이고 있다.
게다가 IMF와 세계은행의 프로그램은 여러 나라들이 (엄청난 보조금을 받고 있는) 부자 나라의 농업 생산물을 수입하기 위해 국경을 개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그 지역의 농업 생산 기반이 파멸에 이를 것은 분명하다. 농토에서 내몰린 사람들은 도시의 빈민가로흘러들어 외국 투자가들을 위해 임금 수준을 낮추는 기능을 하거나 아니면 '영리한 농민들'이 되어 수출 시장을 위한 것이자 동시에 높은 값을 받을 수 있는 작물을 생산하도록 배우게 된다. 고소득 작물이란 당연히 '코카인, 마리화나, 아편'을 가리킨다. 이렇게 마약을 재배하게 된 농민들은 끝내 무장 헬리콥터의 공격을 받게 되었으며, 그들의 농토는 화학무기와 생물학무기에 의해 파괴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노엄 촘스키 저, <불량국가> 중에서


이 책을 읽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루어낸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오직 국민대중 스스로의 힘으로 이끌어내었다는 위대한 업적. 4.19 혁명은, 그리고 6월 항쟁은 세계사적으로 기록될만한 업적입니다.

미국은 동남아시아, 아랍, 남아메리카, 발칸반도 등에서 '민주주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분투하던 사람들, 소수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사람들을 지원한 것이 아니라 사담 후세인(후세인을 키운 것은 미국입니다), 노리에가, 수하르토 등 잔인한 학살을 일삼은 독재자를 후원했습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싹은 미국 군사 고문단의 훈련을 받고 미제 무기들을 지원받은 군인들과 사병들, 조직화된 갱들에 의해 압살되었습니다.
이런 콜롬비아의 경우를 보면서... 미국은 한반도의 사례에서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콜롬비아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얻어내기 위해 제도 정치권으로 진입하려 했던 이전의 무장 게릴라세력들은 폭력에 의해 좌절하게 되는데, 선거구에서 상당한 지지를 이끌어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후보, 시장과 의원 후보자들을 포함한 약 3천 명의 운동가들이 암살당합니다. 당시의 - 그래봤자 빌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이던 시절입니다 - 콜롬비아 대통령 세자르 가비리아는 미국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독재권력을 휘두르는데, 미국의 압력에 의해 미주기구(OAS) 의 사무총장이 되기까지 하는군요.

빌 클린턴의 미국 민주당 정권은 부시의 공화당 정권에 비하여 '점잖았다'라는 평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티모르에서, 콜롬비아에서 독재정권이 민간인들을 고문하고 학살하는 데에 도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사담 후세인을 이라크에서 축출하고 이라크 야당 인사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라크에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것 따위에는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이라크 야당 인사들의 발언들과 요청들은 미국의 거대 언론들에 의해서도 철저히 무시당하고 묵살당했지요. 미국은 '인도주의'와 '인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먼지 한톨 만큼의 관심도 없습니다. 자국 농산물을 무기화하기 위해, 반영구적인 농산물 수출 시장을 만들기 위해 타국의 농업을 황폐화시킵니다. 자국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해주는 정권의 지속을 위해 무차별 학살과 암살, 고문을 직접, 간접적으로 지원해줍니다.

노엄 촘스키의 <불량국가>는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자행된 미국의 위선과 패악을 건조하고 냉정하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엄청난 일들이라 저같이 '미국'이 '악하다'라고 생각해온 사람도 경악하게 될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책을 쓴 사람 또한 미국인입니다.

노엄 촘스키는 누구인가. 언어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는 이름이고, 전공이 인문계열인 분들께도 많이 알려진 이름입니다.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로 현대 언어학의 혁신을 불러온(촘스키라는 이름을 빼면 현대의 언어학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언어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정치비평가로서 현재 매사추세츠 공대 교수입니다. 프랑스의 피에르 부르디외와 함께 세계의 '실천적 지식인'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꼽히는 이름이 바로 촘스키입니다. 미국 정부가 가장 불편해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요.

노엄 촘스키의 <불량국가>
도서출판 두레
책값은... 12800원 이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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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pgr의 마에스트로 황무지님 경의를 표합니다..(_ _)
항즐이
02/11/26 13:54
수정 아이콘
촘스키는 역시 정치비평가로서 좀 더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까 .. 하는.. ^^ 학부시절때 다들 "사회비평"을 하는 모임에서 필연적으로 마주치는 이름이죠. 그 박학다식함에 놀라게 됩니다. ^^ 미국정부가 불편해하는 사람이라는 표현 멋지네요. 한 사람의 펜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는 촘스키. 그의 솔직한 "미국말하기"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
02/11/26 14:14
수정 아이콘
흔히들 미국을 민주주의의 표본처럼 여기지만, 개인적으로는 미국만큼 완벽하게 중우정치를 성공하고 있는 나라가 어디 또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9.11 테러 이후, 그 것을 이용해 타국에의 압박을 정당화시키고, 장기화되고 있는 경제난, 회계 부정 사건 등에 대한 비난 여론을 전쟁으로 무마시키려는 부시 행정부와 그 공화당이 여전히 압도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주류 언론을 장악한 한나라당이 여전히 30%대에 머물며 답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황무지
저는 '혹시 우리나라가...' 콜롬비아같은 경우를 당할 수도 있었지 않나... 라는 생각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물론, 그런 가정은 부질없는 일이기는 하지요. 독재에 맞서 싸워서 조금씩이나마 성과들을 얻어 내어 절차적 민주주의를 얻어 낸 우리의 선대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싸우다가 다치고 상처받고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감사하다 죄송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군요. 그 성과들을 이어가고 늘려가기 위해서라도 12월 19일에는 꼭 투표~
똘레랑스
02/11/26 15:39
수정 아이콘
조금 오래된 다큐멘터리이지만, 아옌데정권의 수립과 피노체크가 이끄는 군부에 의한 전복을 담은 '칠레전투'가 생각나네요.
5시간 넘게 살 떨리며 보았던 기억..
일국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위해 제3자를 업신여긴다는 것. 무서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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