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회원들이 연재 작품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연재를 원하시면 [건의 게시판]에 글을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Date 2012/07/02 22:46:50
Name VKRKO
Subject [청구야담]피재길의 웅담 고약(進神方皮醫擅名) - VKRKO의 오늘의 괴담
피재길은 의원집 아들이다.

아버지는 종기를 치료하는 의원이었는데, 온갖 재료를 섞어 용한 약을 만들어내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피재길은 아버지의 기술을 전수 받지 못했다.



그리하여 어머니가 보고 들었던 것으로 여러 방법을 피재길에게 가르쳐 주었다.

피재길은 의서를 읽은 적이 없고 다만 약재를 모아 달여서 고약 만드는 방법만 알 뿐이었다.

아는 것이 없다보니 모든 부스럼과 상처에 이 약을 팔아서 먹고 살았다.



그러다보니 피재길이 마을에서 의술을 행하기는 해도 감히 의사 축에 끼지는 못했다.

사대부들이 피재길의 고약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약을 써 보니, 효험이 자뭇 훌륭했다.

1793년 여름, 정조 대왕께서 머리에 부스럼이 나셨다.



온갖 침과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오랫동안 효과를 보지 못하고 끝내는 얼굴과 목의 여러 부분까지 점점 부스럼이 퍼지게 되었다.

그 때는 한여름이라 왕의 심기가 편치 못하였다.

모든 궁중의 의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고, 조정의 신하들은 날마다 줄을 지어 왕의 처소에 문안하였다.



그런데 신하 중 피재길의 약의 효험을 본 이가 있었기에 임금께 그 사실을 알렸다.

임금께서는 분부를 내려 피재길을 대궐에 불러 들여 물으시니, 피재길은 천한 사람인지라 임금님 앞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며 땀을 흘리느라 대답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이를 보며 좌우의 여러 의원들은 모두 남몰래 비웃었다.



임금께서 피재길에게 앞으로 다가와 진찰하여 보라고 하시며 말씀하셨다.

[두려워 할 것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술을 모두 내가 발휘해 보거라.]

피재길이 대답했다.



[소인에게 다른 재주는 없으나, 딱 한가지 시험해 볼 처방이 있나이다.]

임금께서 피재길에게 물러나서 약을 지어오라고 명하셨다.

피재길은 웅담을 여러 약재와 섞은 뒤 볶아서 고약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임금님의 환부에 붙여 드렸다.

임금께서는 며칠이면 병이 치유될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피재길이 대답했다.



[하루가 지나면 통증이 잦아 들 것이고, 사흘이 지나면 부스럼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모두 그의 말대로 되었다.

임금께서는 글을 지어 의원들에게 널리 알리셨다.



[고약을 붙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통증이 씻은 듯 없어졌다. 놀랍게 요즘 세상에도 이런 숨겨진 기예와 비방을 가진 의원이 있었으니, 가히 명의라 부를 만하고, 이 약은 신이 내린 약이라 할 만 하구나! 피재길의 노고를 어떻게 치하해야 할 지 의논해 보거라.]

의원들은 우선 피재길을 내침의로 임명한 뒤, 6품복을 내리고 정직을 제수할 것을 청하였다.

임금께서는 흔쾌히 허락하시고 곧 피재길을 나주의 감목관으로 임명하셨다.



이에 조정의 모든 의원들이 다들 놀라 탄복하였고, 두 손을 마주 잡고 공손히 서서 피재길의 의술을 찬양하였다.

그리하여 피재길의 명성이 나라 안에 가득 퍼지게 되었으며, 웅담 고약은 마침내 천금의 비방이 되어 세상에 전해졌다.




원문 및 번역본 : http://koreandb.nate.com/life/yadam/detail?sn=59





영어/일본어 및 기타 언어 구사자 중 괴담 번역 도와주실 분, 괴담에 일러스트 그려주실 삽화가분 모십니다.
트위터 @vkrko 구독하시면 매일 괴담이 올라갈 때마다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 VK's Epitaph( http://vkepitaph.tistory.com )
네이버 카페 The Epitaph ; 괴담의 중심( http://cafe.naver.com/theepitaph )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2/07/02 22:46
수정 아이콘
그러나 이 이야기로부터 7년 뒤인 1800년, 정조는 종기 때문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피재길은 이 때도 투입되어 고약을 처방했으나 이번에는 웅담 고약도 안 들어서 정조는 사망...
결국 임금의 생명을 살리지 못한 죄로 유배를 간 피재길은 이후 1832년 순조 3년에야 석방됩니다.
인생 한 방에 떴다 한 방에 가는 조선시대...
하야로비
12/07/03 10:13
수정 아이콘
순조는 1800년에 즉위했으니 1832년은 순조 32년이 맞는 것 같습니다.
몇가지 추가하자면...
1. 원래 왕이 승하하면 담당 어의는 왕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죄로 귀양을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다만 이런 경우 어차피 다들 알기에 형식적으로 귀양을 갔다가 곧 풀려나는 것이 보통인데
아마도 피재길의 경우는 정식 의원이 아니다보니 뒤를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귀양 보내고 잊어먹은(...) 게 아닌가 싶네요.
중신1: 근데 요즘 피재길이는 뭐한데? 그래도 그사람이 만든 고약이 잘 들었었는데.
중신2: ...아 맞다 재길이!!
2. 이러한 기록들은 정조 독살설이 그닥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조는 멀쩡하다가 하루아침에 약빨고(...) 승하한 게 아니라 상당히 오랫동안 병으로 고생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거든요.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세츠나
12/07/03 10:10
수정 아이콘
그러나 두번째에는 안들었다는 점 때문에 더 리얼한 내용이네요. 요번 이야기는 야담이나 야사보다는 정사에 가까운 내용인 듯.
12/07/03 15:41
수정 아이콘
그사이에 내성이 생긴걸까요..
세츠나
12/07/05 11:59
수정 아이콘
어느 쪽이 맞나 싶어서 몇군데 찾아봤더니 순조 3년 (1803년)에 석방된게 맞는 것 같네요. 32년이나 귀향생활을 한건 아닌 듯합니다.
다만 정조 사후 형식적으로 유배를 간 것이 아니고, 치료의 중심적 역할을 한 3명의 의원이 국문을 당했고 그 중 하나는 죽었다고 하는데
피재길도 그 중 하나였다니 꽤 고문도 당하고 고초가 심했을 것 같습니다. 피재길의 인생도 부침이 많았네요.
12/07/09 15:35
수정 아이콘
약은 약사에게 라는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네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493 [번역괴담][2ch괴담]택시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7516 12/07/15 7516
492 [번역괴담][2ch괴담]피부 박리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7759 12/07/13 7759
491 [청구야담]사람을 환생시킨 애가(起死人臨江哀輓)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7238 12/07/12 7238
490 [번역괴담][2ch괴담]숲의 나쁜 요정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7312 12/07/09 7312
489 [번역괴담][2ch괴담]뒤를 보지 않는 남자 - VKRKO의 오늘의 괴담 [5] VKRKO 7616 12/07/07 7616
488 [번역괴담][2ch괴담]사랑의 결실 - VKRKO의 오늘의 괴담 [14] VKRKO 8299 12/07/04 8299
487 [번역괴담][2ch괴담]드럼통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8243 12/07/03 8243
486 [청구야담]피재길의 웅담 고약(進神方皮醫擅名) - VKRKO의 오늘의 괴담 [10] VKRKO 7883 12/07/02 7883
485 [번역괴담][2ch괴담]백사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7015 12/07/01 7015
484 [청구야담]오래 된 무덤을 지켜준 최규서(憑崔夢古塚得全)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7597 12/06/29 7597
483 [실화괴담][한국괴담]귀문 - VKRKO의 오늘의 괴담 [7] VKRKO 8381 12/06/28 8381
482 [번역괴담][2ch괴담]우물의 신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7608 12/06/25 7608
481 [실화괴담][한국괴담]퇴마 사이트 - VKRKO의 오늘의 괴담 [2] VKRKO 8723 12/06/22 8723
480 [번역괴담][2ch괴담]너스 콜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7884 12/06/21 7884
479 [번역괴담][2ch괴담]합숙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7149 12/06/20 7149
478 [실화괴담][한국괴담]살인마 - VKRKO의 오늘의 괴담 [6] VKRKO 8616 12/06/19 8616
477 북유럽 신화 - 토르와 하르바르드 [7] 눈시BBver.29691 12/06/14 9691
476 [번역괴담][2ch괴담]임대 기차 - VKRKO의 오늘의 괴담 [11] VKRKO 7906 12/06/12 7906
475 [번역괴담][2ch괴담]오두막 - VKRKO의 오늘의 괴담 VKRKO 7275 12/06/11 7275
474 [번역괴담][2ch괴담]안개 속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6953 12/06/09 6953
473 [번역괴담][2ch괴담]숨바꼭질 - VKRKO의 오늘의 괴담 [3] VKRKO 7354 12/06/08 7354
472 [번역괴담][2ch괴담]악마에게 홀린 여자 - VKRKO의 오늘의 괴담 [4] VKRKO 7567 12/06/07 7567
471 [번역괴담][2ch괴담]배 속의 못 - VKRKO의 오늘의 괴담 [1] VKRKO 7031 12/06/05 703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