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8/03/27 11:26:24
Name Secundo
Subject 태조 왕건 알바 체험기 (수정됨)
20대 초반

젊어서 뭐든 할수있었던 우리는 돈빼고 다있었다.



돈을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드라마 보조출연을 찾게 되었다

'현대극'이라는 문장에 멋있는 세트장을 떠올리며 두근두근 하고 있었고 마침내 전화가 왔다.



"아 이번에 그 태조 왕건이라는 드라마가 있는데 이거는 30만원인데. 할래요?"

잠시 뭔가 이야기가 달라진 것 같았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 했다.

"네! 하겠습니다."



새벽부터 친구와 함께 약속장소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한대가 우릴 태웠고 어딘지 모를곳으로 몇시간을 달렸다.

그때라도 탈출했어야 했다....





손끝이 베일 것 같은 추위에 수많은 보조 알바들이 내렸다.

대기시간이 한시간이 지날때쯤 300명 정도가 시작도 하기전에 못해먹겠다며 돌아갔다.

얼어 죽을만큼의 엄동설한에 도망간 300명을 뒤로하고

나머지 100명만 남았다.

남은 우리 100명은 금방 시작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기다렸다.



그리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스탭들이 우리를 불러 모았다.

"아아. 의상입고 분장하게 다들 모이세요오오~"

준비된 옷을 입고 우린 분장을 받기 위해 모여들었다.



그마저도 너무 추워서 죽을 것 같았다.

고려시대에 패딩을 못만들어낸 조상들이 부끄러웠다.



"아아. 자 얼굴들 대고 계세요오오~"

돼지표 본드를 코밑에 바르고 뭔가 털같이 생긴것들을 붙였다.



"아 이게뭐에요 저 지금 광대뼈에 털 붙었어요"
"저는 너무 일자로 된거같은데요"
"아저씨 저는 박상민 스타일로 해주시면 안되요?"

나역시 콧수염이 V자로 붙었지만 늬들은 안보인다는 피디의 말에 그냥 생존에 집중하고 있었다.



털붙이기 작업을 끝낸 우리는 대규모 전투씬 촬영에 돌입했다.

"아아. 횃불이랑 창이랑 뭐 들고싶은거 들으세요오오~"

너무 추워서 사람들은 횃불을 먼저 들고 싶어서 난장판이 벌어졌고
그과정에서 몇몇은 눈썹과 횃불에 닿아 타버렸다.



전투 인트로 씬을 찍는동안 여기저기서 우는소리가 들렸다.

"앗뜨거!" "아 얼어 디지겠네"

그 난장판을 피워서 횃불을 차지한 사람들은
횃불을 잡은 쪽 손은 화상을, 횃불을 안잡은 쪽 손은 동상에 걸리는 이중고를 겪고 있었다.



"아아. 아까 사람들이 너무 많이 가서 100명끼리 싸우는거 찍어야해요오오~ 얼른 옷갈아입어요오오~"

우린 창을 미친듯이 휘두르고 맞는 시늉을 했다.
잠시 옷을 갈아입고 주민이 되어 돌을 던지는 장면도 함께 찍었다.

가끔 너무 화가나서 돌을 쎄게 던지던 미치광이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냥 그날에 모였던 화와 설움을 돌던지기에 쏟아내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나마 화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씬이었다.



아까 손에 화상입은 사람들은 돌을 잘 못던지겠던지 잡자마자 떨어뜨리기도 하고

손이 얼어서 창을 떨어뜨리는사람도 있었다.



"아아. 자 이제 불화살 씬 들어갑니다~"

우리에게 절대로 날아오지 않을거라던 불화살들이 1미터 앞에 떨어지기도 하고

그걸본 우리 100인의 전투단은 비명소리와 함께 촬영장을 벗어나는사람들도 발생했다.

이게 진짜 전쟁이구나 싶었다.

그곳은 바로 아비규환의 극치였다.



"아아. 이제 거의다 끝났으니까 식사하시고 좀만 더 힘내주세요 여러부우운~"

한쪽손은 화상과 동상에 눈썹없이 불화살을 피하다 지친 100인은 밥소식에 조금 힘이 나는가 싶었다.

밥이 나왔다. 얼었다. 반찬도 밥도 전부 다 얼었다.

"악!!" 소리와 함께 턱이 나간것 같다며 우는 사람이 발생했다.

다들 치아를 잃지 않기위해 혓바닥으로 밥을 녹여먹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아아. 밥 다먹은거 같으니까 빨리 나오세요오오~"

이게 뭔 개소리지? 나는 한 1/3이나 먹은거 같은데?

하지만 빨리 하고 가고싶어하는 사람들의 눈치에 밥을 다먹지 못한사람들도 하나둘 일어났다.



"아아. 사람들이 지금 많이 집에갔어요오오. 아까 여러분이 던졌던 돌맞는 장면을 찍겠습니다아아~"

이건 무슨 미친소리지?

갑자기 스탭들이 돌을 바구니에 담아 던져댔다.

아까 내가 돌던지던 역할이었는데 돌까지 맞고 있으니까 이젠 나도 눈물이 났다.

내가 여길 왜 온건지도 잊어버렸고 그냥 시키는것만 빨리 끝내고 가고싶었다.



"아아. 마지막 대규모 전투씬 한번 더 갑니다아아~"

이제 다 끝나간다. 이제 이창만 들고 몇번만 더 뛰어다니면 이제 다 끝이난다.

어벤져스 뺨치는 실력으로 창과 칼을 휘둘러대며 내 남은 모든 에너지를 다 뿜어내고 있었다.

아까 내 광대뼈까지 올라온 V자 콧수염도 마지막 씬이란걸 아는지 좀 더 멋지게 휘날리는 것 같았다.

촬영이 끝나고 잠시 쉬는시간이 되었다.



장군역할의 배우가 카메라에 찍힌 모습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었다.(다들 아시는 그배우)

"이장면 저는 다시한번 찍고 싶습니다! 더 멋지게 장면을 연출 해 보겠습니다!!!"

"아아. 자 다시 아까 그 전투한복으로 갈아입고 모이세요오오~"

그때 사람들의 눈빛은 들고 있던 창으로 우리 장군님을 찔러 죽일 기세였다.

나중에 그장면이 TV에 나오는걸 보니 장군님 뒤에 있던 병사들은 정말 장군 허리까지 창을 들이밀면서 달려가고 있었다.

"지는 천막안에 있었으면서 ㅜㅜ"

"우리는 얼어 죽을것 같은데 ㅠㅠ"

하며 흐느끼는 군중들도 있었다.



덕분에 모든 전투씬은 광기에 젖은 피비린내 속 병사들의 열연으로 정말 현실감이 뛰어났다.



아무튼 서울로 다시 버스를 타고 내린 우리들은 단체로 지하철 역으로 들어갔다.

수염이 이상하게 난사람. 떼다가 거뭇거뭇해진사람. 한쪽눈썹이 없는사람. 손에 붕대를 감은사람.

핫팻을 손등에 둘둘 말고가는 사람. 제대로 못걷는 사람. 넊이나간 사람.등등

좀비떼가 출연하자 사람들은 우리를 피했고

그렇게 우린 3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다신 만날수 없겠지만 그날 100인의 전우들이여. 잘살고 있길 바란다.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8-07-20 15:42)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소린이
18/03/27 11:28
수정 아이콘
이거 분명히 고생담이고 슬픈 이야기인데 피식피식 실소가 나오네요 크크크 잘봤습니다
벨라도타
18/03/27 11:29
수정 아이콘
추천합니다. 재밌게 읽었어요.
軽巡神通
18/03/27 11:33
수정 아이콘
전우죠 크크
18/03/27 11:34
수정 아이콘
어휴 혹한기훈련 다시하고 일당 30만원 받은 느낌이네요.
Maiev Shadowsong
18/03/27 11:35
수정 아이콘
웃으면 안되는데 ㅠㅠㅠㅠㅠㅠㅠ
현직백수
18/03/27 11:41
수정 아이콘
크크크킄크 웃으면안되는데 ㅜㅜㅜㅜ
메가트롤
18/03/27 11:43
수정 아이콘
우와 크크크크
하나의꿈
18/03/27 11:54
수정 아이콘
와우 20년도전에 일당 30만원이라니. 고생한값은 톡톡히 받으셨네요
Mr.Doctor
18/03/27 12:04
수정 아이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모다?
스테비아
18/03/27 12:24
수정 아이콘
히읗....호... 호재다!!
人在江湖身不由己
18/03/27 14:17
수정 아이콘
사극이다?..
及時雨
18/03/27 12:26
수정 아이콘
최수종이 잘못했네
담배피는씨
18/03/27 12:33
수정 아이콘
역시 사병의 주적은...
말다했죠
18/03/27 12:41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 잘 읽었습니다
Multivitamin
18/03/27 12:52
수정 아이콘
단가가 세긴 세네요 크크 역시 돈 많이 주는데는 이유가 있군요
무가당
18/03/27 12:52
수정 아이콘
고생하셨네요.요즘은 환경이 좀 나아졌나요..?
18/03/27 13:14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크
도토루
18/03/27 13:49
수정 아이콘
명성황후 뮤직비디오였던가요... 홍유릉에서 찍었던 곳에 고등학교 때 일일 알바(학교에서 보내줌;;;) 했었는데
나름 재밌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한명이 나름 훈남이라서 다 끝나서 먼산을 바라보는 씬을 특별히 따로 찍었는데 (결국 영상으론 나오지 못함 ㅠ)

암튼 그때도 엄청 추웠었죠.... 수염도 따가웠었고 ㅠ 근데 돈 그렇게 많이 주던가요? 우린 2만원인가 줬던거 같았는데;;;
18/03/27 14:42
수정 아이콘
라이트유저와 하드코어유저의 차이...
코우사카 호노카
18/03/27 14:44
수정 아이콘
크크크 와 고생하셨네요
-안군-
18/03/27 18:29
수정 아이콘
와... 글만 봐도 하드코어함이 느껴져요 덜덜덜;;;
살랑살랑
18/03/28 00:39
수정 아이콘
크크크 필력 좋으시네요. 한참 웃었습니다.
미도리
18/07/21 14:13
수정 아이콘
그분들도 평생 술 안주거리 아닐까요 흐흐흐
거룩한황제
18/07/23 09:08
수정 아이콘
아...반가워요. 저도...태조왕건 단기역 알바 했었죠.
1화때 나오는 대규모 씬에 나왔는데...
그때 장난 아니었죠. 조연출이 완전 막말에...아우...

그거에 학 떼서 다시는 안했...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957 심심해서 써보는 미스테리 쇼퍼 알바 후기 [34] empty23717 18/05/22 23717
2956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30] 글곰11571 18/05/12 11571
2955 육아를 뒤돌아보게 된 단어들 (feat 성품학교) [22] 파란무테14204 18/05/09 14204
2954 내 어린 시절 세탁소에서 [41] 글곰13798 18/05/03 13798
2953 육아 커뮤니케이션. [29] 켈로그김13480 18/05/02 13480
2951 이번 여행을 하며 지나친 장소들 [약 데이터 주의] [30] Ganelon12327 18/04/20 12327
2950 아내가 내게 해준 말. [41] 켈로그김19185 18/04/19 19185
2949 텍스트와 콘텍스트, 그리고 판단의 고단함 [34] 글곰14228 18/04/11 14228
2948 [7] '조금'의 사용법 [27] 마스터충달10685 18/04/06 10685
2947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의 이해 [151] 여왕의심복32722 18/04/04 32722
2946 독일 이주시, 준비해야 할 일 [25] 타츠야15047 18/03/30 15047
2945 내가 얘기하긴 좀 그런 이야기 [41] Secundo14466 18/03/27 14466
2944 태조 왕건 알바 체험기 [24] Secundo12820 18/03/27 12820
2943 요즘 중학생들이란... [27] VrynsProgidy16817 18/03/26 16817
2942 부정적인 감정 다루기 [14] Right10755 18/03/25 10755
2941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28] 삭제됨16444 18/03/11 16444
2940 고기의 모든 것, 구이학개론 #13 [44] BibGourmand12801 18/03/10 12801
2939 일본은 왜 한반도 평화를 싫어할까? <재팬패싱>이란? [57] 키무도도19670 18/03/10 19670
2938 더 늦기 전에, 이미 늦어버린 은혜를 갚아야지. [10] 헥스밤12587 18/03/04 12587
2937 우울의 역사 [57] 삭제됨11826 18/03/02 11826
2936 억울할 때만 눈물을 흘리는 누나였다. [32] 현직백수19841 18/02/21 19841
2935 올림픽의 영향들 [50] 한종화16957 18/02/19 16957
2934 지금 갑니다, 당신의 주치의. (5) [22] 자몽쥬스8508 18/02/11 850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