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광안리.
신한 위너스 / 프로리그 통합챔피언전.
KTF 대 SKT.
선봉으로 나선 김택용과 이영호는 40분 가까운 대혈전을 펼치고 전용준은 오랜만에 1경기에서 목이 쉰다. 김택용은 이젠 거의 스카웃 수준의 유닛이 되어버린 캐리어를 보란듯 모으며 플레이, 이영호의 멀티를 깨고 승리한다. 두부대 가까이 모인 캐리어의 위풍당당한 위용에 김태형 해설은 게임방송 사상 최초로 해설 중에 목이 메인다.
김태형 : 캐..캐리어가 드디어, 흐.. 드디어, 드디어... 으흑...
좀처럼 세리모니를 하지 않는 김택용의 다이내믹한 어퍼컷 세레모니. 스타리그 2회 우승자 이영호는 우키요에(일본 풍속화) 표정으로 굳어버린다.
2경기는 준우승에 한이 맺힌 비운의 프로토스 도재욱과 2010년 최고의 테란으로 거듭난 정복자 박지수의 경기.
전용준 : 아.. 프로브가.. 프로브 한 기가 경기 초반에 이동하는데요..
엄재경 : 저건! 저건 틀림없어요, 네 6파일런! 야하 네 테란상대로 저런 빌드를 쓰네요!
김태형 : 오랜만에 보는 전략인데요.. 저건.. 네. 예전.. 그러니까 벌써 10년도 훨씬 넘었네요.김동수해설도 보여줬었죠...
충격에 빠진 관중석 사이 고요한 가운데 관중석에 앉아있던 한 사내가 천천히 일어나며 중얼거린다.
김동수 : 하드코어... 질럿러시....
그 말과 함께 고요하던 관중석에서 열화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온다. 테란이 정찰을 소홀히 하고 앞마당을 가져가는 사이 벌써 질럿은 앞마당에 도착한다. 터지는 커맨드센터와 함께 프로토스 유저들의 환호성과 눈물이 터져나온다.
엄재경 : 여러분들은 왜 프로토스를 시작하셨습니까! 하템의 스톰? 리버의 한방? 그럴수도 있겠습니다만, 무엇보다도 프로토스의 로망이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저 질럿, 질럿이에요! 아이어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다는 일념하나로 마인밭이건 러커밭이건 그냥 돌진하는 질럿! 저게 바로 남자의 종족, 프로토스입니다!!
계속 추가되는 질럿에 박지수 GG. 도재욱은 관중들과 하이파이브하는 세레모니를 펼치고, 프로토스 유저들은 눈물섞인 환호성을 내지른다.
3경기 전상욱 대 박정석. 초반에 대등하던 경기는 전상욱의 탱크가 모이면서 테란쪽으로 기운다. 모두가 SK텔레콤의 3:0 리드를 예상하는 가운데 박정석은 짜내고 짜낸 한방병력을 모으지만, 엄청난 수의 탱크 앞에 질럿과 드라군은 너무나도 약해 보인다.
전용준 : 아~ 전상욱선수 탱크 진군하는데요...
엄재경 : 네 박정석선수 힘듭니다. 그래도 이정도면, 네~
김태형 : 아 그런데 지금 다리지형에서 탱크가 약간 뭉친 듯한...
그순간.
"펑!"
!!!!!!!!!!!!!!!
그 마인은.
지금까지 그 어떤 마인보다.
더 큰 폭발을 일으켰다.
전용준, 엄재경, 김태형 : 아!!!!!!!!아!!!!!!!!!!!!!! 마인대박!!!!!!1
역대 두번째, 아니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뚫었어요! 프로토스, 한방, 있거든요! 네 진군하는 질럿, 드라군, 역대 최고의, 아아 대박이에요!!!!!
순식간에 줄어든 탱크를 질럿 드라군이 정리하며 단숨에 앞마당에서 본진까지 격파. 박정석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경례 세레모니를 작렬시킨다. 이미 늦가을의 광안리는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있다.
4경기는 최연성 대 박찬수. 2010년, 어렵다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골든마우스를 따낸 최연성의 경기력은 전성기 시절 그 이상이었다. 박찬수가 어떻게 해보려고 바둥대는 사이 최연성의 메카닉 병력은 모이고, 화면을 뒤덮는 장판파 탱크들.
김태형 : 아~ 답이없어요~ 저그 망했어요~
전용준 : 네, 안타깝지만, 저그에는 마인이 없습니다.
GG.
100게임도 넘게 연습했다며 인터뷰에서 자신을 보이던 박찬수는 눈물을 보이고, 경기장은 묘하게 고요했다. 최연성은 타임머신을 나와 그런 광안리를 당연하다는 듯 훑어보았다. 10만명 모두가, 최연성이라는 한 남자에 압도당해 버린 느낌이었다.
SK텔레콤의 3:1 리드.
5경기. 이승석 대 김재춘의 저그 대 저그전. 0.5초라도 타이밍이 틀리면 한번에 밀려버리는 저저전이기에 양선수는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그 순간, 뮤탈접전에서 아스트랄하게 터져나오는 스커지 컨트롤. 관중석은 다시한번 환호한다.
전용준 : 네! 와~ 환상의 컨트롤이네요!
김태형 : 이쯤 되면 저희가 하고싶어지는 말이 있는데.. 괜찮으려나요?
엄재경 : 껄껄 뭐 어떻습니까 저쪽 동네에서도 이해하겠죠.
.
.
.
.
.
해설진 일동 : 김~재~춘~~!
환호하는 관중들. 무려 13년 만에 MBC게임과 온게임넷이 진정으로 하나되는 순간이었다. 제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요즘 사회, 양 라이벌의 극적인 만남은 광안리의 밤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장식했다.
이승석 GG. KTF의 3:2 추격.
6경기는 최근 스타리그 결승에 진출하며 팀의 테란 주축이 된 오충훈과 KTF 저그 고강민의 대결. 팀의 모든 것을 짊어진 고강민은 초인적인 전투력을 발휘, 경기는 눈이 정화되는 명승부 난전으로 이어진다.
전용준 : 야~(목소리 갈라짐) 두 선수 치열한 경기네요! 명승부입니다!
엄재경 : 네 고강민선수 가난하게 출발해서 멀티를 많이 가져가지 않는 대신에 상대방 테란도 이리저리 치면서 부자가 못 되게 하고있죠~
김태형 : 저 스타일은..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요... 가난하면서도 공격적이고.. 빠른 체제 전환...
관중들도 알고 있었다. 10년 넘은 올드 팬들은 이미 심각한 표정으로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고 있었고, 해설진은 그것을 차분히 긍정했다.
해설진 일동 : 폭풍...!
홍진호를 아는 모두의 눈가가 다시금 촉촉해졌다. 공군 제대후 프로게이머의 길은 포기하겠다며 너털웃음을 짓고 떠나간 남자. 누구나 그를 비웃었지만 누구나 그를 비웃지 않았다. 누구나 그의 악질까였지만 누구나 그의 열성팬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보여준 저그의 희망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었다.
전용준 : GG~! 오충훈선수 GG선언입니다!
엄재경 : 네 고강민이 오충훈을 잡네요~ 역시 스타는 모르는거에요 껄껄껄
7경기 에이스 결정전. 여기까지 왔다.
경기장은 최연성의 승리 때처럼 묘하게 고요해져 갔다.
유리장 같은 침묵. 돌멩이 하나라도 떨어지면 그대로 와장창 깨어질 침묵이었다.
전용준 : (떨리는 목소리) 네 그럼.. 선수 입장을.... 양팀 선수, 발표해 주십시오!
SK는 최연성? 역시 최연성이겠지? 어쩌면 김택용? 각자 모두가 속으로 추측하는 가운데, 초반에 열심히 춤을 추다 지쳐 앉아 있던 벙키 코스튬이 갑자기 머리를 벗는다.
"임!!!!!!!!!!요!!!!!!!!!! 환!!!!!!!!!!!"
E-sport를 만들어낸 장본인, 테란의 황제.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마우스와 키보드를 챙겨 천천히 타임머신으로 걸어 올라가는 임요환을 보며 너도나도 함성과 환호,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이미 몇몇 여성팬들은 경기고 뭐고 목놓아 울고 있다. 누군가 임요환의 연호를 시작한다.
"임요환...! 임요환...! 임요환...!"
10만명이 하나되어 외치는 연호가 광안리에 울려 퍼졌다. 임요환은 특유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KTF 벤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전용준 : 자 그럼, KTF 에이스결정전, 선수는 누구입니까!
팟..!
바로 그 순간, 스튜디오의 모든 조명과 백 스크린이 꺼져 버린다. 뭐지? 방송사고인가? 캄캄한 가운데 다들 술렁이는 사이, 아무것도 없는 검은 백스크린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audio)"꼭 우승하고 싶죠"
광안리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파도가 높아지고 일부 관중들을 덮치지만 아무도 그것에 불평하지 않는다. 관중들의 턱이 벌벌 떨려온다. 이미 퉁퉁 부은 눈에서는 새로운 눈물이 줄줄 흘러나온다. 광안리에, 폭풍이 오고 있다.
"홍!!!!!!!!!진!!!!!!!!!호!!!!!!!!!!!!"
팟!
조명이 켜지자 이미 홍진호가 KTF타임머신에 앉아 있다. 기절하는 여성팬이 속출하며 남성팬들 몇몇은 이미 경기장에 난입하려 시도하다 안전요원에 제지된다. 전용준은 말조차 두렵다는 듯 더듬거리며 발표한다.
전용준 : 네, 이번..... 위너스 프로리그, 에이스결정전은........
임진록이.... 성사되었습니다!!!!!!
와 아 아 아 아 아!!!!!!!!!!!!!!!!!!!!!!!!!!!!!!!
광속조인. 게임 스타트.
그다지 멀지 않은 공중상의 거리.
마린 한기가 나오는 순간, SCV 3기가 저그 진영으로 곧바로 출발한다.
전용준 : 아니, 저것은...
김태형 : 네 그렇죠?
엄재경 : 허허, 설마.....
벙 커 링!!!!!!!!!!!!!!!!!!!!!!!!!
여성팬들 중 울지 않는 이는 없다. 비명과 괴성이 난무하고 e-sports 사상 최초로 경기장에 물병이 난입하며, 누군가 경기장에 의자를 집어던지기도 한다. 안전요원은 제지하기는 커녕 같이 달려가 임요환의 멱살이라도 잡아 끌어낼 기세다. 하지만 두 선수는 밖의 시끄러운 사정에 전혀 개의치 않고 게임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때, 관중석의 누군가 벌떡 일어나 외친다.
"홍진호는 뭐야! 뭐냐고!"
벙커링에 정신이 팔려 홍진호의 본진은 비추지도 않았던 옵저버는 황급히 저그 진영을 찍는다.
0.5초간의 정적. 그리고.....
이럴 수가...
4 드 론!!!!!!!!!!!!!!!!!!!!!!!!!!!!!!!!!!!!!!!!!!
마린은 도착하자마자 잡히고, 벙커를 짓지 못한 SCV 3기 또한 허무하게 잡혀버린다. 테란 본진으로 뛰기 시작하는 저글링들. 이미 경기장의 의자는 다 내팽개쳐진다. 10만명이 넘는 팬들이 너도나도 스테이지 코앞으로 몰려든다. 그들 머릿속의 마음은 다 같았다.
설마, 드디어, 말도 안돼, 이제야......
Slayer_'Boxer' : GG
전용준 : 홍진호 선수 승리! KTF매직엔쓰으~~~ 위너스프로리그~~~~~~~~ 우승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노란 수건의 홍진호 팬클럽 회원들은 스테이지 아래에서 눈물을 흘리며 콩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흡사 미♡것 같은 그들의 춤. 콩댄스를 추던 사람들 사이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는 대성통곡이 이어진다. 홍진호는 타임머신을 박차고 나온다. 환희. 비명. 미칠 것만 같은 기쁨에 그대로 관중석에 몸을 던지고, 락카페를 방불케 하는 슬램이 이어진다. 감격과 기쁨의 순간, 어떤 말이 필요하랴. 해설진조차 아무 할말을 잃고 시상식 준비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스테이지 위에 올라선다.
"E-sport 공인심판 창석준입니다. 방금 임요환선수와 홍진호선수의 경기에서 홍진호선수의 gg응답이 ggg로 1회 더 입력되었습니다. 홍진호선수의 몰수패를 선언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스갤은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