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뇽하세요. 오랜만에 자게 글쓰기 버튼을 눌러봅니다.
지난 글까지 쓰다가, 개인적으로 회사 업무에 현타가 좀 와서 멈췄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든 생각이, 앞으로도 쓸 얘기가 주구장창 이어질텐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크크;
이 곳에서 아주 인기가 좋은 '그 분'에 대해서도 나올텐데, 과연 괜찮을까 싶기도 하고. 딱 그 전까지만 써야 하나 싶기도 하고.
이런 똥 글 하나 쓰는 게 뭐라고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
그런데 가끔 댓글 알림이 와서 읭? 하고 보니 댓글로 몇 분이 끝났냐고 물어보시기도 하니
재밌게 봐 주신 분들이 조금이라도 계신데 예의가 아닌가 싶기도 해서.
쓸 때까진 써 볼까 하고 느리게 나마 가끔 올려보자 하는 마음으로 다시 올려보게 되었읍니다.
하필 타이밍이 물난리에 '윤느님' 정국 때문에 자게가 어수선해서, 괜찮을라나 싶긴 한데
그래도 똥 글로 한 번 쉬어가시는 타이밍 만드는 것도 나쁘지...않겠죠? 크크
혓바닥이 길었는데, 지난 번에서 이어지는 얘기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12. 직책 명? 어디까지 들어봤니?
이전 글 :
https://pgr21.net/freedom/95386?divpage=19&sn=on&ss=on&sc=on&keyword=%EA%B3%B5%EC%97%BC%EB%B6%88
DM?
하면 사람들은 보통 뭘 제일 많이 떠올릴까?
다이렉트 메시지 아닐까? 크크
그런데 말입니다. 이게 직책 명인 회사가 있다?
“K PM의 업무는 당분간 팀장님들이 알아서 진행해 주시고요.”
어차피 별로 하는 일도 없었으니까 상관없는 이야기.
그리고 중요한 K의 직책 명이 바로
DM. Data Manager.
읭?
엔진 데이터 관련해서 PM팀에 이런 직책이나 업무관리자가 있는 건 나중에 들어보긴 했다.
하지만 당시는 이런 말을 정말이지 처음 들었다.
데이터 매니저라고?
대체 그게 뭐 하는 자리인데?
“엔진 데이터를 올리고 머지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관리하는 자리입니다.”
…..
아, 눼.
모두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고 대 놓고 말하지도 못해서 정적만 흘렀던 회의실이 똑똑히 기억이 난다. 크크
이게 사실 뭐 말이 안 되는게, 빌드가 여러 개이고 이 때문에 데이터 관리가 힘든 개발 막판이나 라이브 단계면 몰라도
아직 통 빌드에 언제 분기가 될 지도 모르는 시기에 데이터 관리를 전담하는 사람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리고 K가 프로그래머도 아니고, 전문 PM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어서 (즉 데이터 관리 프로그램이나 머지 툴에 대한 지식이라던가 이런 부분이 뛰어난 것도 아님) 그냥 짬밥 좀 있는 걸로 어떻게 자리 마련을 위해 만들어 준 임시 직책일 뿐이라는 거.
이걸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아무튼 이렇게, 파란만장한 K의 사내 무용(?)은 그 이후 갈수록 잠잠해져 갔다. 성격이 어디 가지 않아서, 그 이후로도 자잘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려고도 했지만, 완전한 부활은 불가능했다. 그러다 타 프로젝트에 있다가 현란한 정치질로 이 프로젝트에 자리잡은 H가 등장하면서 관 뚜껑에 못질을 당했…
기획 팀은 그럭저럭 잘 운영됐고, 나도 잘 살았었다.
직책을 처음 맡아 봐서 초반엔 어려움이 많았었지만, 곧 적응을 했다. 내 손으로 처음 뽑아본 팀원에 대한 애착도 컸고. 신입 직원을 한 명 뽑고 타 실에서 전배를 받아 파트원이 네 명이 되면서 업무도 잘 진행됐었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었고.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은 참 많았다.
우선 짧게 회사를 거쳤다 퇴사한 친구들이 있는데. j와 b가 참 기억에 남는다.
j라는 친구는 동갑이었는데 능력자였다. 영어를 참 잘했다. 기억하기로 미국에서 생활을 했던 걸로 아는데, 그만큼 사고도 자유분방하고 열려 있었다.
문제는, 음…당시는 지금에 비해서도 옛날이고, 게임회사가 사람들의 편견(?)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상명하복적인 문화가 있는지라 (지금은 많이 빠졌지만, 당시는 심했다. 이 회사도 마찬가지였고.) 이 j가 적응이 쉽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 이 기획안은 왜 이런식으로 된거예요? 어제 회의에선 분명…”
“아, 결정했는데 PD님이 바꾸라고 해서요.”
“에? 아니, PD가 바꾸라고 했다고 그냥 이렇게 바꾼다고요? 회의를 다시 하거나 리뷰를 새로 하는 것도 없이?”
“...c(팀장)가 가서 설득했는데 안 됐고, 수정본 공유해서 컨펌 난 건데.”
“하아…”
이런 정도로 멘탈이 나갔던 친구였었다. 크크
그리고 이 j라는 친구가 친 희대의 에피소드가 있었으니.
“어어, 질문들 더 할 거 없지?”
무슨 일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스튜디오 직원들 모아놓고 C회장님이 연설을 할 일이 있으셨다. 그 끝에 질의 응답이 끝나고 마무리 하려는 찰나, 회장님께서 말씀하셨다.
“나한테 더 할 말 있으면, 내 이메일 알지? 거기로 편지하세요. 익명으로 비밀보장 다 될 테니까, 회사에 대해서나 일에 대해서나 사람에 대해서나…블라블라.”
‘에휴, 저걸 누가 당해?’
‘군대 안 간 여직원들도 안 속겠다.크크’
모두 이렇게 생각하며 해산하던 그 순간
한 사람이 눈빛을 빛내고 있었음을
누구도 깨닫지 못했다.
다음날, 대폭발한 PD의 우렁찬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퍼졌더랬다.
“j씨 아직 출근 안 했나? 출근하면 곧바로 회의실로 오라고 해!”
크크크크
j가 회장님께 ‘마음의 편지’를 날린 것이었다.
모두 경악하는 가운데, 초췌한 얼굴로 회의실에 불려 들어갔다가 나오는 j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난다.
“염불씨, 제가 부탁이 있는데요.”
이 친구가 퇴사하기 전, 내게 이야기 한 게 있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자신의 행동이나 업무 스타일, 마인드에 대해 평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한 페이지 정도의 리스트를 건네 받았던 것 같다.
살짝, 아니 많이 당황했고 거절했었다. 하지만 진심이었다.
이 친구는 자신의 열정에 대해 설명하며, 적응을 잘 하려면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바뀌어야 할 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었다고 이야기했다.
솔직히 난 굉장히 감탄했었다. 자신에 대해 반성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난, 꼴에 조직에 적응 좀 했다고, 내가 잘하고 있으며 나쁘지 않은 기획자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리스트를 보며 정말 진지하게 j에 대해 생각하고 평가해 주었다. j도 진심으로 고마워 했던 기억이 나고.
이 친구는 몇년 전 동료 결혼식장에서 봤는데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다. 능력도 인정받았고. 어딜 가도 잘 될 능력과 마인드를 소지한 친구라 뭐, 당연했지만.
j는 시스템 파트의 같은 팀원이었다면, b는 내 파트의 팀원이었다.
면접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었다. 나를 빼고는.
자유분방한 사고 방식과 태도, 언변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걸로 기억한다.
난 사실, 당시 우리 파트의 직원이 나 빼고 모두 여자였고, 뭔가 다들 조용하고 착실한 타입이었는데.
이 b는 굉장히 재기발랄한 스타일에 할 말 다 하는 캐릭터여서 꼭 필요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 설정, 이 쪽이 좀 이런 게 필요하니까.
합격한 b는 뭐, 적응은 잘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일단 근태가 안 좋았다. 근무 시간에 딴짓을 많이 한다는 피드백을 받아서 주의를 주곤 했는데.
일이 터졌다.
직책자 회의 자리.
회의 중, 추가 내용 때문에 필요한 인원을 부르러 나갔다 온 우리의 DM(크크) K께서 자리에 앉으며 내게 빈정댔다.
“와우(WOW) 참 열심히 하네 신입이?”
“네?”
“지금이, 가만보자. 점심시간이 20분 가까이 지났는데 말이야. 레이드 중이더라구?”
“....!”
다름 아닌 b였던 것이다.
회의 끝무렵에 이 때문에 나와 c는 관리 제대로 안 하는 직책자로 가루가 되도록 까였고
가뜩이나 와우를 싫어해서 사내 와우 금지령까지 (물론 비공식적으로지만) 만들었던 PD는 대놓고 더욱 성을 냈었다.
정말 그날 만큼은 이 b라는 친구를 대차게 깠던 기억이 났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일이 생겨 버려 이 사건은 단숨에 묻혀 버렸다.
사실 지금은, 그리고 조금 지나고 나서는 별 거 아닌 일이 됐지만.
당시는 이 b라는 친구 때문에 골치 꽤나 아팠고 혈압도 많이 올랐었다.
그 정점의 일이 바로 일어난 것이었으니.
“b님? 지금 뭐하세요?”
한창 근무가 진행되고 있는 오후 3시쯤.
팀에서 간식을 먹자고 하여, 직책자 세 사람이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진 파트에서 각출을 해서 간식을 사러 가기로 한 타이밍.
파트 막내 둘이 가기로 했는데, 우리 파트 막내 b가 미동도 하지 않아서 자리로 간 내 눈에
“뭐하시길래…읭?”
b의 모니터에 이상한 화면이 떠 있는 게 들어왔다.
분명히 우리 회사, 우리 팀에서 쓰는 문서 양식이 아니었고
큼지막하게 떠 있는 이미지와 헤드라인 텍스트 내용 역시 우리 게임의 것이 아닌.
그런 문서 화면이었다.
“아아, 네네! 무슨 일이시죠?”
게다가 눈에 띄게 당황하며 Alt+Tab으로 화면을 바꾸며 가리듯이 비켜서 일어서는 b.
이 친구는 평소 워낙 만만디 같은 성격을 갖고 있어서
지난 레이드 사건 때 내가 일장훈계를 했을 때도
‘뭐, 눼눼. 지송하무니다. 눼눼. 아 그럴 수도 있지, 거 참…꼰대 시키’
이런 표정과 태도를 보였던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그 때 보인 표정과 몸짓, 그런 동작에서 나온 느낌은, 꽤나 당황하고 있었다는 것.
“...b님.”
“(꿀꺽) 눼.”
내 싸늘하게 굳은 표정을 보고 b의 얼굴 역시 얼어버렸다.
난 일단 b에게 간식을 사러 다녀 오라고 이야기를 한 뒤에 자리로 돌아왔다.
팀장이 내게 뭔 일 있냐고 물었음에도,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하고 있는 파트원 얘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s님,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
업무가 끝난 뒤, 난 UI파트장으로 있는 s에게 술 한잔을 청했다.
이 s라는 분은 나이도 나보다 많으며 경력도 높고, 무엇보다 마당발이어서 업계 여러 사람들에 인맥을 가진 분이다.
지금도 친분을 잘 유지하며 1년에 한 번쯤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메신저로도 도움을 주고 받는 사이이기도 하다.
사족이 길었는데, 아무튼 이 s에게 b에 대한 레퍼 체크를 좀 부탁했다.
입사할 때 이런 거 안 했냐고?
솔직히, 안 했다.
그때까지의 내 생각은, 사람이란 직접 내가 봐야 아는 법이지 쓸데없이 과거를 캐고 소문을 묻는 건 이상하다, 는 것이었다. 그래서 b라는 사람의 경력이 짧고 여기저기 좀 옮긴 이력이 문제로 나와도 ‘내가 커버 하겠다’는 걸로 넘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고, 달라야 했고
그리고 내 생각과 달랐다.
s가 건너건너 물어물어 나온 b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히 좋지 않았다. 물론 다른 모든 이야기는 솔직히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찾던 이슈는 딱 하나였다.
본인이 하는 ‘사이드 잡’이나 ‘자기 개발’에 대한 부분이 ‘회사의 정상적인 업무 처리’에 영향을 줬던 케이스가 있었던가?
그리고 s를 통해 들은 대답 중, 이직했던 케이스에 비슷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며칠 고민을 했는데 답이 없었다. 주위 지인들에게 상담을 해도 두 가지 중 하나로 나뉘었다.
1. 경고를 하고, 또 그런 모습이 보이거나 업무 태만으로 이어지면 보고를 해서 조치한다.
2. 당장 보고를 하고 조치를 기다린다.
“b님, 회사에서 다른 일 하지 마세요.”
“...”
결국 난 우선 경고를 하기로 했고, 커피를 마시며 짧게 말했다.
b는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다가, 내가 재차 확인하자 마지못한 듯 ‘눼’라고 답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왜 끝이냐고?
b는 얼마 안 있다가 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건 때문에 퇴사하는 건가? 아니었다. 물론 나도 그런 건가, 하며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하지만 퇴사 날 아침 커피를 마시며 힘겹게 말을 꺼낸 내게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b가 한 대답은…
내 입장에선 가관이었다.
“원래 얼마 안 있으려고 했어요. ‘I사 용마굿간’에 2차 끝나고 대기 상태였는데 길어졌어서 들어왔었거든요. 되면 바로 나갈 거였어요.”
아, 눼.
얼척이 없어서 그날 술을 좀 마셨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 b의 사건은 며칠도 지나지 않아 내 머리 속에서 깔끔히 사라져 버렸다.
왜냐하면,
하늘에서 메테오가 떨어졌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