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3/20 06:02:37
Name 올라이크
Subject [일반] 에고와 욘두, 그리고 배트맨이 함께 싸우다 (수정됨)
안녕하세요.

영화 얘기입니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진짜입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명 캐릭터, 에고와 욘두가 배트맨과 함께 통쾌한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캐릭터는 바뀝니다.
에고 역의 커트 러셀, 욘두 역의 마이클 루커, 그리고 좀 덜 인기있는 배트맨인 발 킬머가 한 편이 됩니다. 그들의 상대는 터미네이터 때려잡으려 덤비던 카일 리스와 아바타의 악당 쿼리치 대령, 그리고 씬시티의 로어크 의원입니다. 동명의 영화가 최근 나오는 바람에 인지도에서 밀리지만, 까보면 훨씬 좋은 영화가 아닐까 하는 1993년작 '툼스톤(Tombstone)'입니다.

툼스톤은 애리조나주에 있는 도시로서 1877년에 개척되어 서부시대의 많은 드라마를 낳은 도시이죠. 그리고 툼스톤을 배경으로 일어난 사건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입니다. 달랑 한 30초 쏘아댄 이 결투가 어찌나 유명한 지, 이 사건을 바탕으로 찍은 영화가 제가 본 것만 네 편입니다. 93년작 툼스톤은 그 네 편 중의 하나이죠.

사건의 기본은 이렇습니다. 와이어트 어프는 툼스톤만큼이나 유명한 서부극의 배경, 캔자스 주 닷지 시티에서 명보안관이자 도박사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유명한 악당들을 처리해서 명성을 쌓은 그는 가족과 함께 안정되고 부유한 삶을 살아보고자 형제들과 함께 막 개발 붐이 일고 있던 애리조나 툼스톤으로 이주하죠. 아직 안정이 덜 된 도시는 법보다는 총알이 가까운 상태였고, 그러한 치안상태를 야기한 자들은 '카우보이 갱'이라는 작자들이었습니다. 이름처럼 소를 모는 목동이 아니라 지역단위로 일진노릇하며 살인과 약탈 등 각종 행패를 일삼던 말종들이죠. 성질 죽이고 조용히 살아보려던 와이어트와 그 형제들은 제 버릇 개 못주고 결국 카우보이들과 갈등을 빚게 되고 그게 곪고 곪아 터진 사건이 바로 OK 목장의 결투입니다. 이 결투에서 와이어트 형제와 와이어트의 절친인 닥 할러데이는 카우보이 갱의 멤버이며 달리 클랜튼 갱이라고도 불리던 아이크와 빌리 클랜튼 형제, 그 동료 맥로리 형제를 맞아 총격전을 벌이고 도주한 아이크 클랜튼을 제외한 나머지 셋을 사살합니다. 이 결투는 사실 사건의 결말이 아니라 발단으로, 이를 계기로 어프의 형제들이 카우보이 갱의 복수를 당하고, 와이어트는 또 그 복수를 이어나가게 됩니다.

다른 영화들, 특히 가장 유명한 57년작 'OK 목장의 결투(Gunfight at the O.K. Corral)'가 마치 이 결투가 어떤 사건의 결말인 것처럼 그려졌고, 영화의 재미를 위해 실화에 다양한 각색을 한 것에 비해서, 툼스톤은 이 결투의 이후까지 와이어트 어프와 카우보이의 싸움을 실화에 기반하여 보여줍니다. 와이어트 어프는 실존한 서부의 전설로서 가장 인기있는 총잡이 중 하나일 겁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서부 총잡이들 시대의 황혼으로, 어프가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의 막을 내린 인물이라고 봐도 되겠지요. 그런 인물이라서인지, 영화에서 어프의 역을 맡은 이들이 어마어마합니다. 46년작 '황야의 결투(My Darling Clementine)'에서는 배우 명문의 수장 헨리 폰다가 어프 역을 맡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전설의 명작 'OK 목장의 결투'에서는 무려 버트 랭카스터가 어프를 맡았고, 말했듯이 93년 툼스톤에선 가오갤의 에고로 건재함을 과시한 커트 러셀이, 그리고 아예 타이틀롤이 된 94년작 '와이어트 어프'에서는 서부영화 빠돌이로 유명한 케빈 코스트너가 어프로 분했습니다.
image
image

그런데 이 이야기와 영화들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어프는 페이크 주인공이고 진주인공이 따로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어프의 친구로 OK 목장의 결투와 카우보이 갱 사냥에서 네임드 킬딸을 제대로 때리신 닥 할러데이입니다. 그의 본명은 존이지만, 직업이 치과의사(!)여서 선생, 박사를 의미하는 Doc으로 불렸습니다. 라틴어에 능할 정도로 고등교육을 받고 치과의사가 된 엘리트인데, 당시로서는 건조한 기후에서 살만큼 살다가 갈 수밖에 없는 병, 결핵을 앓게 됩니다. 그래서 좋은 직업 걷어차고 서부 황야에서 도박사와 총잡이로 이름을 날리게 된 파란만장한 삶의 주인공입니다. 머리 좋아서 공부도 잘해, 도박도 잘해, 거기다가 나이프와 총으로 사람도 잘 죽여서 친구인 어프도 그를 '서부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서부시대의 엄친아군요. 이 분은 죽어가는 이 특유의 시니컬함과 제 몸 돌보지 않는 터프함, 그리고 그를 간지로 승화시켜줄 총솜씨를 두루 갖추셔서, 카우보이 갱의 우두머리인 조니 링고를 직접 처단하셨습니다. 닥 할러데이 역시 어프보다 인기가 많으면 많았지 적지 않은 인물입니다. 한 때 메이저리그를 완전 지배한 최고의 투수 故 로이 할러데이의 별명이 이 분을 따서 '닥'이었습니다. (RIP, Doc..) 그래서 닥 할러데이 배역도 짱짱합니다. 46년작에서는 빅터 머추어, 57년작에서는 무려 커크 더글러스, 93년작에서는 발 킬머, 94년작에서는 데니스 퀘이드입니다.
image
image

제목에서 끈 어그로를 회수하기 위해 93년작 툼스톤으로 돌아갑니다. 에고의 배우인 커트 러셀이 어프, 배트맨 발 킬머가 할러데이인데, 욘두는?? 욘두 역의 마이클 루커는 이때에는 아직 이름값이 있는 배우가 아니었고, 그래서 맡은 역이 셔먼 맥마스터라는 조단역입니다. 그는 원래 카우보이 갱의 멤버였다가, 여자들까지 무차별 살해하는 그들의 행태에 질려 변절하고 어프와 함께 옛 동료들을 사냥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카우보이 갱의 리더가 되는 인물 조니 링고가 함정에 빠뜨려 살해하고, 이는 링고의 명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지요. 
image
image

앞서 잠시 말했지만, 카우보이 갱이 등장할 시점의 리더는 컬리 빌이라는 인물로 씬 시티에서 로어크 의원 역을 맡은 파워스 부스가 분했습니다.
image
image

영화 보는 내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드는 천하의 개XX이자, 궁극 찌질이 아이크 클랜튼을 맡은 배우는 스티븐 랭입니다. 마스크와 연기력이 다 되는 중견배우인데, 아바타의 메인빌런 쿼리치 대령으로 유명합니다. 거기서는 그래도 마왕같은 포스가 있었는데 툼스톤에서는 진짜 아주 상찌질이입니다.
image
image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끝판왕으로 컬리 빌 사후에 카우보이 갱을 이끄는 당대 최악의 총잡이 조니 링고 역은 다름 아닌 마이클 빈입니다. 터미네이터의 카일 리스로 유명하고, 에일리언 시리즈 등 다수의 작품에서 꽃미모와 연기력을 보여준 좋은 배우죠.image
image

이 영화는 서부영화의 정석인 복수극의 흐름을 잘 따라가지만, 그게 또 실화 기반의 충실한 재연이라는 것이 재미있는 점입니다. 형제들이 죽고 다친 후에 어금니 꽉 깨물고 복수행에 나서는 어프의 총질은 서부극의 핵심 복수의 카타르시스를 잘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영화 아저씨의 칼부림 이전에 가장 통쾌한 악당 도살장면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역시 어마무시한 캐스팅과 배우들의 열연도 빛난 작품입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AkiraYuki
21/03/20 07:17
수정 아이콘
오 재미있어 보이네요. 좋은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
에브니저
21/03/20 08:27
수정 아이콘
유명한 서부영화들 많은데 저는 툼스톤이 서부영화 중 제일 재밌더라고요. 이 영화에서 발 킬머 진짜 너무 멋지죠.
valewalker
21/03/20 11:22
수정 아이콘
발 킬머 역대 배트맨들 중에서 비쥬얼로는 최고였습니다. 저 입술이랑 하관이 왜이리 멋있어보이는지 크크
유니언스
21/03/20 12:45
수정 아이콘
딴소리입니다만
욘두 사진 순간적으로 전소민 코스프레 생각이 나네요 크크크
GNSM1367
21/03/20 13:39
수정 아이콘
오 기회가 있으면 한 번 챙겨봐야겠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스무디
21/03/20 15:50
수정 아이콘
발킬머하면 히트죠.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0999 [일반] 저스티스 리그 스나이더 컷 감상기 [61] 주먹쥐고휘둘러12377 21/03/20 12377 2
90998 [일반] 자유의지주의-아인 랜드와 이영도 [8] kien10458 21/03/20 10458 1
90996 [일반] 1969년 이후로 우리에게 벌어진 일들... [12] 우주전쟁9000 21/03/20 9000 4
90995 [일반] 봄비 속에 매화를 바라보며 [14] 及時雨6046 21/03/20 6046 13
90992 [일반] 서양철학은 나르시시즘인가? [24] 아난10580 21/03/20 10580 4
90991 [일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후 발생하는 매우 드문 혈전 관련 질환 최신정보_2021. 03.20. [13] 여왕의심복12778 21/03/20 12778 30
90989 [일반] 에고와 욘두, 그리고 배트맨이 함께 싸우다 [6] 올라이크11011 21/03/20 11011 4
90988 [일반] 기초/기본 [12] toheaven8013 21/03/20 8013 0
90987 [일반] 기도,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합니다. [6] toheaven9234 21/03/20 9234 0
90986 [일반] 카센터쪽 눈탱이는 여전히 심하군요.. [58] 움하하19542 21/03/19 19542 6
90985 [일반] 주 프랑스 중국대사관의 국격 클라스 [74] aurelius17850 21/03/19 17850 17
90984 [일반] 유럽의약품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혈전관련 발표 요약 및 의견 [26] 여왕의심복14093 21/03/19 14093 39
90982 [일반] 애틀란타 총격 사건 이후 확산세를 보이는 #StopAsianHate [29] 레디11831 21/03/19 11831 8
90981 [일반] [13] 사라진 문명이 이끈 만남 (부제:배낭여행의 로망) [9] Jedi Woon7294 21/03/19 7294 10
90979 [일반] 교통딱지 끊다가 2.7억원 물어준 경찰관 [73] 로켓16571 21/03/19 16571 0
90978 [일반] 무위험(zero-risk)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회 [25] elaborate13844 21/03/19 13844 20
90977 [일반] 95억 보험금' 만삭 아내 사망 사건, 졸음운전 결론 [86] insane18567 21/03/19 18567 10
90976 [일반] [기사] 북한, 말레이시아와 외교관계 단절 선언 [15] aurelius10549 21/03/19 10549 4
90975 [일반] 미중 분쟁시 미국과 같이 중국 때리기에 동참하면서도 중국에게 보상할 방법 [103] 양말발효학석사13208 21/03/19 13208 0
90973 [일반] '게임하는 중장년 웰빙지수 높아' 뉴스가 나왔네요. [38] will9523 21/03/19 9523 4
90972 [일반] 화가 많으면 [4] toheaven7966 21/03/19 7966 2
90971 [일반] 남의 밥그릇을 깨기 전에 필요한 고민의 크기 [29] 눈팅만일년10754 21/03/19 10754 88
90970 [일반] [완전스포] 스나이더컷 2017 버젼과 차이점에 중점을 둔 정리 [61] 나주꿀12070 21/03/18 12070 8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