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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1/20 12:51:07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유길준의 서유견문에 대한 고찰 (수정됨)

병인양요, 신미양요 이후로 급격하게 밀려들어오는 서구외세와 이를 등에 업은 일본의 침투에 대해 조정과 재야의 인사들은 대부분 이항로나 최익현의 척화상소에서 보듯 수구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양을 금수로 규정하며 그들과의 교류는 조선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고 가난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하며 쇄국을 역설하였죠. 이는 그들이 강력한 주자학적인 유교의 도그마에 빠져 아편전쟁 이후 급격하게 변하는 세계정세와 이를 주도하는 서양의 실체에 대해 거의 무지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김윤식이나 김홍집 등은 서양의 물질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하며 이를 수용하되 정신적인 것은 동양의 것을 지키자는, 이른 바 동도서기론적 입장을 취했지만 이들도 서양의 물질문명의 단순한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상의 포괄적인 제도개혁이 뒷받침된 것임을 모른다는 점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다른 한편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지도받았던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과 같은 이들은 서양을 보다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이를 위한 전반적인 개혁을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김옥균 일파의 개혁에는 여러 제약이 있었습니다. 임오군란 이후 사대자소의 전통적 천하질서는 심각하게 변질되고 중국은 조선의 자주를 제약하며 매우 강압적인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중국 본인들부터가 전통적인 조공질서가 아닌 근대적 주종관계를 실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국내적으로는 김옥균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이 그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었습니다 . 이에 따라 김옥균은 국외와 국내의 이중의 문제를 신속히 해결하기 위해 쿠데타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김옥균의 정변시도는 삼일천하라는 오명을 남기고 무위로 돌아갔으며 조선의 개혁을 더욱 어렵게만 하였습니다. 이 거사는 재야는 물론 조정 내에서도 시국에 대한 인식을 공감하는 조력자가 거의 없는 가운데 실행되었고 구체적인 개혁방침이 부재하였으며 무엇보다 일반대중에게도 전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데에 그 실패가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유길준, 서재필, 윤치호 등은 정권장악에 못지않게 신문창간, 저서출판, 학교설립 등을 통해 일반국민에 대한 계몽을 서둘렀습니다. 갑신정변의 실패가 앞서 언급했듯이 국민일반의 공감을 얻지 못한 것을 인식하고 이를 계몽시키는 것이 국정개혁 과제의 선결과제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길준의 저서 『서유견문』은 이러한 시각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서양을 제일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일반의 언어로 설명하며 그리고 국가의 개혁방침을 꽤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조선인의 저서로서 『서유견문』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서유견문은 총 20편의 챕터로 구성되어있으며 서양의 정치, 경제, 사회 등을 넘어 지리, 교육, 법률, 생활관습, 농업, 보건, 군사, 종교, 기계, 도시 등 사실상 모든 부문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물론 『서유견문』이 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을 카피했다는 비판이 있으나 『서유견문』 제3편에서 논의되는 "방국의 권리"와 제14장에 논의되는 "개화의 등급"은 후쿠자와의 저서와는 달리 매우 한국적인 고민을 나타낸 것입니다. 더불어 이는 서양의 문물을 소개하는 것을 넘어 조선에 시급한 과제를 고민한 것으로 유길준의 '양절적'인 사고를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뿐만 아니라 서유견문은 정치-경제-사회를 하나의 일관적인 체계로 전개하며, 또 그가 갑오개혁의 주역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데에 있어 청사진을 마련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서유견문에서 나타나는 유길준의 '시공간관'과 더불어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논의와 당시 그를 둘러싼 정치적 조건을 함께 고려하며 유길준이 어떻게 새로운 '문명표준'에 적응하려고 했던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유견문, 한국적 근대국가를 향한 발걸음.

 (중화중심에서 세계중심으로, 전통적 사유에서 근대적 사유로)

   유길준은 매우 흥미롭게도 『서유견문』을 천문과 지리학으로 시작합니다. 왜 서양 정치를 논의하는 책에서 하필 천문과 지리학을 제일 먼저 언급하고 있을까? 서유견문의 제 1편과 제2편의 목표는 지구의 자연적 환경에 대한 '과학적' 이해입니다. 근대 천문과 지리학의 표상, 특히 지구설은 지구의 자연적 세계에 대한 표상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제1편 지구세계의 개론에서 지구는 계란 같은 타원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해변에 서서 육지로 다가오는 선박을 보면서 먼저 돛대가 보이고 그 다음 차차 그 본체가 드러나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또 6대주의 구역을 설명하며 지구는 중심을 기준으로 동반구와 서반구로 나누어지며 중국, 일본, 조선은 6대주 가운데 동반구에 속한 주의 하나인 아세아주에 속한다고 말하고 중국, 조선, 일본은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지구세계의 한 일부에 불과합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지구설의 수용은 '지표면의 어느 곳도 중심일 수 없다'는 관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부연하자면 그는 지구상의 위치를 확정하는 경도 체계가 영국의 그리니치 섬에 있는 천문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한 후, 영국을 경도의 주인이라 일컫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는 의견이 있으며 어느 나라도 관계없는 곳에 경도의 기점을 마련하자는 중이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는 중국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그 밖에 어떤 나라도 지구 세계의 중심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는 생각을 표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는 그때까지 중화 중심적이던 조선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더불어 그는 서양의 학문을 소개하면서 사물의 원리 또는 법칙응 탐구하는 측면과 실용과 편리를 추구하는 측면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양의 학문이 사물의 원리를 탐구하는 데에 있어 서양에 대한 관심이 비단 실용주의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편 서양의 근대학문은 분석적인 방법론에 의거합니다.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에 이어지는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맹신은 유길준의 『서유견문』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예컨대 그는 제1편과 제2편에서 태양계->지구->6대주를 차례대로 분석하는 것과 산과 바다, 인종, 그리고 각국의 물산을 측량, 위계화, 수량화하는 작업을 통해 분석적 사고를 엿보입니다. 또 제1편에서 동물과 식물간에 탄소와 산소가 교환되는 원리, 바람, 빌, 서리, 우박, 이슬 등의 기후, 화산, 지진, 뇌성 등의 현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유견문』제13편에서 서양의 학문 중 가장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은 화학과 물리의 영역입니다. 

   유길준은 이처럼 시공간을 서양적으로 재구성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면서 당대 조선인의 시야를 넓히려고 하였습니다. 세상을 과학적 사유체계를 통해서 바라보는 방법은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으며 유길준은 이를 통해 조선의 사유체계를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확대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어떤 정치가 바람직한 것인가?)

   유길준은 제5편에서 정체(政體)에 대해서 상세하게 논의했습니다. 그는 태초의 인간세상을 논의하면서 인간이 차츰 '개화'하면서 정부를 구축한다고 논의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미개한 세계에서는 인품이 차이나기 떄문에 피래를 입는 경우가 아주 많았지만, 풍속이 차츰 개화되기에 이르자 인품이 조화되지 않은 상태를 통일하기로 하였다∙∙∙∙∙학문으로써 사람의 도리를 가르치고, 벌률로써 사람의 권리를 지켜서, 인생의 정당한 도리로 신명과 재산을 보전하여 국가의 대업과 정부의 규모를 세워 나갔다." 

   또 그는 "이성으로써 힘을 제어하여 일정한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정부가 시작된 근본 의도였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서양 근대 정치관념인 홉스나 로크식의 "사회계약론"과 어느 정도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더불어 천명(天命)이나 왕권신수설과 같은 관념이 아닌 '이성'으로써 정부를 확립한다는 매우 급진적인 사유를 하고 있습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더불어 그는 5가지의 정부형태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첫째, 임금이 마음대로 하는 정치 체제. 둘째, 임금이 명령하는 정치 체제. 셋째, 귀족이 주장하는 정치 체제. 넷째, 임금과 국민이 함께 다스리는 정치 체제. 다섯째, 국민들이 함께 다스리는 정치 체제.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자면, 폭군정, 군주정, 귀족정, 입헌군주정, 그리고 민주정을 의미한죠. 이는 자못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분류한 정부형태와 유사합니다. 더불어 입헌군주정의 특징을 삼권분립이라고 말하면서 몽테스키외의 정신이 다시금 나타납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각 정치체제에 대한 가치판단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가 가장 높이 평가했던 정치체제는 바로 임금과 백성이 함께 다스리는 군민공치, 이른 바 입헌군주정이었습니다. 그 이유인 즉 가장 발전되어 있는 유럽 국가들의 대부분 이 정치형태를 채택하고 있고, 또 임금과 백성이 합심하여 만든 법률이 보다 잘 지켜지고 국가의 기강과 국민의 후생을 책임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지식이 없는 국민은 국정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면서 입헌군주정이 가능한 조건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정치 체제는 언제나 그 국민들의 학식 정도에 따라 제도의 등급이 이뤄지기 때문에, 장치 체제의 종류가 어떠하든지 간에 사실은 그 나라 국민이 스스로 성취한 것입니다. 서양의 옛날 학자가 말하기를 착한 국민 위에 나쁜 정부가 없고, 나쁜 국민 위에 착한 정부가 없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맞는 말입니다."  따라서 유길준은 무엇보다 국민들의 교육을 중요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갑신정변과는 달리, 개혁을 위해서는 국민들의 계몽이 우선과제라는 점을 유념하고 있었습니다. 

   한편 유길준은 민주공화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는 "서양 학자 가운데는 이 법[공화정]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는 자도 있지만, 이는 사세에 미달하고 풍속에도 어두워 어린이의 우스갯소리에도 미치지 못할뿐더러, 정부를 시작한 유래가 피차간에 차이가 많다. 이러한 의견을 주장한 학자는 임금이 다스리는 정부에서는 죄인이라고 하여도 그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길준의 이와 같은 견해는 당시 조선의 시대적 한계를 보여주는 가시적인 사례입니다. 일례로 갑오개혁 당시 박영효는 공화주의자로 몰려 다시 망명길에 오르게 됐습니다. 따라서 유길준은 공화정에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유길준은 정부의 정치 제도에 대해서 말하면서 문명이 개화된 정치에는 여섯 가지 조건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국민들이 자유롭고 임의롭게 행동하도록 해준다. 둘째, 종교를 믿게 해준다. 셋째, 기술과 학문을 장려하여 새로운 문물을 발명하도록 길을 열어준다. 넷째, 학교를 세워 국민을 교육한다. 다섯째, 정부를 믿게 하고 국민을 안정시킨다. 여섯째, 국민들의 굶주림과 추위, 질병과 괴로움을 구제한다. 여기서 첫째 조건, 국민들의 자유에 대해 주목할 수밖에 없다. 당시 관념상 매우 급진적인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시 유길준이 미국유학 당시 배운 '자유주의 사상'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몽테스키외의 자유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유길준의 주석에서는 '자유임의는 결코 국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제 멋대로 방탕 한다는 뜻이 아니다"고 부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제가 바람직한 것인가?) 

   유길준은 직접적으로 경제체제에 대해서 "경제학"적인 논의를 하지 않지만, 부국하는 한 방법으로 "경쟁"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사욕을 억누르고 절제를 미덕으로 삼는 성리학적 세계관과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컨대 유길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저마다 자기의 직분에 힘써야 하고, 자기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바에 따라 자기의 의도를 달성하려고 앞을 다투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의 경쟁이다.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공익이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이뤄지고, 천하의 현실 상황이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보존된다. 만약 세상에 경쟁하는 마음이 없다면, 마음과 힘을 기울여 공명을 희구하고 사업을 경영하는 자의 그림자가 끊어질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사람들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긍정합니다.

 "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양보하지 않으면서 우열을 다투는 까닭은 사람에게 활기가 있고 살아보려는 의욕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과 기백을 지니지 못하면, 날마다 한 말 밥을 먹더라도 산송장이다." 

 여기서 유길준은 홉스식의 욕구의 적극적인 긍정 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인간욕망의 추구는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교육되고 잘 인도된 형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유길준이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잘 이루어지는 현상을 경쟁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편 경쟁은 다분야에서 서로 각자의 본업을 충실히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것이 궁극적으로 국부에 기여한다고 말합니다. 예컨대 유길준은 "학자는 학문에 힘쓰고, 농부는 농사에 힘쓰며, 직공과 장사꾼도 각기 종사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남에게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면, 자연히 경쟁하는 습관이 생겨서 훌륭하고도 아름다운 경지에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논의되는 분업과 경쟁은 Adam Smith의 『국부론』을 연상케 합니다. 유길준은 제7,8편에서 조세와 관련한 방대한 논의와 제10편에서 화폐제도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이와 같은 기술적 내용보다 본 편에서 논의하는 사유체계가 당시 조선의 사유체계에 있어서 가장 큰 충격을 주었으리라고 짐작해 봅니다. 

(바람직한 사회란 무엇인가?)

   조선시대의 사회는 신분제의 사회였다. 양반과 천민 그리고 노비의 차별뿐만 아니라 사농공상의 차별, 남녀간의 차별도 존재하였고 한쪽은 무한정의 특권을 누리며 다른 쪽은 무한정의 의무와 속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갑신정변은 이러한 신분제를 타파하고 근대국가를 수립하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사람위에 사람이 없고 사람 아래 사람이 없다, 천자도 사람이고 서민도 또한 사람인 것이라고 말한 유길준 또한 이와 같은 입장이지만, 유길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에 대해 논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길준의 자유관을 면밀히 고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길준은 "자유란 우리 마음이 하고 싶어 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행동을 하는 데 있어서 천지의 올바른 이치에 따라 취사선택하는 것 말고는 그밖에 어떠한 사고가 있더라도 조금도 속박받지 않으며, 또한 굽힘이 없어야 한다. 사람이 이미 이 세상에 살면서 인간적인 교제를 할 때에는 이러한 교제를 통하여 받는 혜택과 이익이 또한 클 것이다. 이러한 혜택과 이익을 갚기 위해서는 타고난 일신상의 자유를 조금쯤 양보하거나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유길준은 자신과 공공의 안녕을 위해 자유를 조금 양보거나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홉스와 로크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회계약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습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그는 "일신상의 자유 가운데 일부를 양보하거나 포기하고 인간 세상의 규범에 순종하여 그 혜택과 이익을 얻는 것은 피차 물물교환을 하는 것과도 같다" 라고 함으로써 사회제도에 경제관념을 덧붙이고 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상업국가로 발전한 유럽의 사회 관념을 수용한 것이기에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당시 조선인으로서 서구의 근본적 사유체계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인민의 자유에 대해서 유길준은 다음과 같은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신명의 자유. 둘째, 재산의 자유. 셋째, 영업의 자유. 넷째, 집회의 자유. 다섯째, 종교의 자유. 여섯째, 언론의 자유. 일곱째, 명예의 자유가 그 예입니다. 특히 재산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로크의 관념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그는 "나라에서는 국민의 재산권을 방해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말고, 극진히 보호하여 털끝만큼도 침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와 같은 자유와 권리들은 당대 서양국가들이 명시하고 있는 권리를 그대로 따온 것이지만, 이를 조선인의 언어로 매우 통찰력 있게 설명하는 조선인으로서는 유길준이 최초입니다.

   특히 매우 오랫동안 전통적인 폐쇄적 세계관에 머물러있었던 조선에서 영업, 집회, 종교, 언론의 자유를 역설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이룩해야 근대적인 사회로 진입할 수 있습니다는 유길준의 인식은 굉장히 진보적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조선이 처한 국제정치적 현실에 대한 고민)

   당시 유길준과 조선이 처해있었던 국제정치적 정세는 매우 암울했습니다. 일본은 정한론 이래 호시탐탐 조선을 노려다보고 있었으며, 조선책략을 건네면서 균세와 자강을 도모하라고 권유하였던 중국은 오히려 조선의 자강을 가로막고 조선을 속국화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유길준이 논의한 국가의 권리는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선 유길준은 서유견문의 첫 장에서부터 중국이 주장하는 세계관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는 지구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그 어느 국가도 세계의 중심이라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중국의 천하관념에서 상당히 멀어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임오군란 이후 심화되었던 중국의 간섭은 갑신정변의 주역은 물론, 유길준 또한 개탄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유길준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서유견문』 제3편에서 나라의 권리를 논한 것입니다.  

   유길준은 나라의 권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라라고 하는 것은 한 겨레의 인민들이 한 지방의 산천을 차지하고 정부를 세워, 다른 나라의 관할을 받지 않는 것이다....한 나라를 비유하자면 한 집과도 같다. 그 집의 일은 그 집이 자주적으로 처리하여 다른 집이 간섭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여기서 유길준은 당시 중국의 내정간섭에 대한 불만을 은연중에 표출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그는 '주권'에 관해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으며 이를 국내적 주권 그리고 국외적 주권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당시 서양의 주권 개념을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는 나라끼리 교제하는 것은 공법으로 규제된다고 말하고 있고 따라서 큰 나라도 한 나라고 작은 나라도 한 나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국가간의 위계질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유길준은 주권과 평등을 권리로 보고 있으며 권리를 다시 자연법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세'로 인해 불가피하게 국가들간에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발생하는데 그것에 의해 주권이 침해당하지는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그는 국가들이 주권을 지키는 방법을 상세하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가령 중립을 도모하는 것 혹은 더 큰 강대국의 도움을 받아 수호국이 되는 것 또는 강대국에 공물을 바쳐 침략을 면하는 조공국이 되는 것을 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나라로부터 보호를 받거나 또는 공물을 바친다는 관계 때문에 그 나라의 주권이나 독립권이 손상 받지 않는다는 것을 역설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조선은 속방이지만 조공국이며 동시에 주권국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권이 없는 '속국'과는 구별되는 것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조선은 형세에 따라 중국에 불가피하게 조공을 바치게 되었으나 이 때문에 조선이 주권을 잃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고 또 중국이 조선에 대해 주권을 행사하려고 했던 적도 이론적으로도 없다는 점을 밝히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길준은 갑신정변의 주역들처럼 조공국도 아닌 완전한 자주독립을 주장하지 못했습니다. 갑신정변이 실패한 마당에 자주독립을 외치는 것은 자살행위였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것은 중국과 일본의 압력 사이에 시달리는 조선을 위한 양절적인 구제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방과 독립의 개념이 섞인 조공국의 개념은 중국을 포용하면서도 일본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자구책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일전쟁에서 중국이 패한 후, 조선은 근대적인 개념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물론 일본의 영향력은 점점 심해졌지만, 조선은 de jure 독립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조선은 "독립"이란 담론을 중시하여 이를 유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갑오개혁에서 왕이 대군주 폐하로 바뀐 것과 조선의 개국연호를 공식 연호로 사용한 것은 주권의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칭제건원을 하지 않았던 점에서 다시 유길준의 신중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유길준은 de jure 독립을 유지하려면 이를 de facto로 유지시킬 힘을 키워야 한다는 점도 유념하고 있습니다. 

(개화의 등급)

   제14편은 서유견문의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의 독창적인 논의가 가장 잘 담겨있는 챕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개화의 등급을 논하는 챕터에서 유길준은 상인의 정신 또한 논하고 있습니다. 유길준은 상인이야말로 국부를 증진시키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업자로 보고 있으며 상인의 교육과 덕은 매우 중요합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개화 정신은 이러한 상인 정신과는 연계되는 것이라고 파악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기존 조선사회에서 강조되었던 농민에게서 나오는 비르뚜Virtu보다 상인에게서 나오는 비르뚜Virtu, 다시 말해서 "계약론적 행실과 사고"가 개화를 가능케 하는 요소로 파악했던 것이 아닐지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한편 여기에서 유길준은 개화의 개념과 그 방법론을 논하고 있습니다. ‘개화한 자, 반쯤 개화한 자, 개화하지 않은 자’로 등급을 나누고 있습니다. 또 "오륜의 행실을 순독히 하여 사람의 도리를 아는, 즉 이는 행실의 개화며, 국가의 정치를 장대히 하여 백성의 태평한 즐거움이 있는 것은 정치의 개화며, 법률을 공평히 하여 백성이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은 법률의 개화며, 물품의 제도를 정교히 하여 사람의 생활을 후하게 하는 것은 물품이 개화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각 분야의 개화를 말하고 있으며 또 개화가 이미 고정된 목표물이 아니라 꾸준히 추구해야할 善으로 인식하였다. 그는 다시 "고금을 통틀어 세계 어느 나라를 돌아보든지 간에 개화가 지극한 경지에까지 이른 나라는 없었다" 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화의 등급은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그에 따르면 개화하는 일을 주장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개화의 주인이고, 이를 부러워하여 배우기를 즐거워하는 자는 개화의 손님이며, 그리고 개화하는 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하면서도 마지못하여 따르는 자는 개화의 노예입니다. 개화의 노예부분은 개화를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행할 수밖에 없었던 소극적인 개화파와 민씨일가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또 다시 개화의 구분에서 개화의 죄인, 개화의 원수, 그리고 개화의 병신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개화의 죄인은 외국의 것을 칭찬하는 나머지 자국의 것을 업신여기는 이를 가리키고, 개화의 원수는 자국의 것만을 최상의 것으로 내세우고 변화를 거부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개화의 병신은 그저 외국의 외형만을 사모하면서 겉치레만 하는 속물을 지칭합니다.

   이와 같은 분류를 통해 유길준은 과거 갑신정변의 주역들과 그의 반대파들을 모두 비판하고 있습니다. 갑신정변의 주역들은 지나치게 성급한 방식으로 기존 사회의 관습을 무시한 채 개혁을 단행하려고 했다가 패가망신하여 개화를 어렵게 하였기 때문에 죄인이고, 이들을 반대한 세력들은 변화를 계속 거부하려고만 하여 국운을 기울게 하였기 때문에 원수인 것입니다. 

   따라서 유길준은 개화란 자국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오랜 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개화의 방식에서 서양의 것을 무조건 받아들이자는 것이 아니라 앞선 서양의 신문화를 받아들이되 우리 실정에 맞게 수용하여야 하며 우리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만 참다운 개화가 될 수 있습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서유견문이 서술된 형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유견문은 국한문 혼용체를 사용하였으며, 더불어 당시 언문이나 암클이라고 비하되던 한글을 당당하게 我文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박규수와 김윤식 그리고 김옥균으로 이어지는 고민들이 유길준의 개화사상으로 이어지며 이것이 바로 한반도 개혁의 중추가 되었던 것입니다.

(서유견문과 갑오개혁)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주지합니다시피 갑오개혁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 출판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저술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서유견문은 개혁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청사진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갑오개혁은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시 조선은 점진적으로 개화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었습니다. 열강에게 둘러싸여 힘이 없었고, 조선 스스로의 개혁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외국의 힘을 조금씩 빌려 국가의 체질개선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 국내역량이 충분히 결집되지 못하고 백성에게 충분히 혜택이 가지 않아 여러 불만이 쌓이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세웠지만 양반자제들의 학교였고, 군대를 개편했지만 이 역시 양반자제들을 위한 군대였습니다. 한편 농민들이 원한 것은 잡세를 없애고 토지개혁을 추진하며 신분제도를 철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동학농민운동의 배경중 하나였고 갑오개혁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입니다.

   우선 개혁의 내용을 포괄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치 개혁의 핵심은 조선을 자주독립국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대군주 폐하를 왕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고 중국연호를 폐지함과 동시에 개국연호를 공식적인 연호로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대내적 정치 개혁의 핵심으로는 입헌군주정을 표방하는 것이었습니다. 더불어 부정부패로 변질된 과거제도를 폐지하고, 신분의 구별 없이 인재를 등용하게 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모든 지배계급의 권한을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경제를 보다 투명하고 근대적으로 개선하고, 법에 있어서는 "연좌 죄를 폐지"하는 등, 개인의 개념을 도입시키고, 사회적으로는 "신분제도를 철폐"하는 등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독립신문"의 발족은 서유견문에서 말하는 언론의 자유를 어느 정도 실행하는 것이었으며 개혁세력은 이를 통해 국민을 계몽시키고 개화의 담론에 익숙하게 하는 것을 장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일련의 개혁조치들은 조선을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근대국가'로 만드는 데에 일조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개혁은 실행되지 못하였습니다. 바로 군사ㆍ군제개혁입니다. 제국주의 시대 부국강병이 모든 국가에게 요구되던 당시 한 국가가 살아남을 길은 궁극적으로 군사력에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조선은 당시의 표준에 맞춰서 국민 개병제를 실시하고 신식 무기를 들여왔어야 했습니다. 한편 서유견문에서도 군사에 관련한 논의는 다소 뒷전으로 밀려나있습니다. 갑신정변의 실패도 군사력의 부재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일본의 강압으로 갑오개혁이 추진된 마당에 군사력을 감히 키울 수 없었겠죠. 외세에 의한 개혁의 가장 큰 한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가며)

  유길준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조선의 생존문제는 1876년 조일조규 이래 시작된 개화를 향한 고종과 개화파의 눈물겨운 노력 끝에, 갑오경장과 광무개혁을 클라이맥스로 러일전쟁으로 인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은 실패하였으나, 그들의 노력은 값진 것이었고, 그들의 실패를 그들 자체의 결함이나 외세의 강압적인 제국주의에만 돌려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었으며, 여기에는 수많은 복잡한 국제정치적-국내정치적 요인이 거미줄처럼 엉켜있었고 이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은 어쩌면 당시의 조선의 물리적인 여건상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시 한국의 고민을 담고 있는 서유견문은 현재 21세기에도 지속적인 함의를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19세기 근대국가를 지향하려고 했던 조선의 모습과 매우 유사합니다. 전통적 근대국가의 위상이 축소되고 사이버, 디지털, 자동화, 인공지능의 경쟁이 대두하는 상황에서 세계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서프프라임 위기로부터 발생한 금융위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세계경제는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엉켜있고 한쪽의 불안정이 다른 쪽으로 직접적으로 옮을 수 있는 전염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호연계성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영역에도 그대로 해당됩니다. 

   한편 트럼프의 당선, 유럽의 쇠락, 중동의 혼돈 등 세계는 다시 격변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은 과거의 잘못, 또는 과거의 환경 및 여건을 다시 성찰해보고 21세기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제대로 직시하고, 이에 적응할 수 있는 훌륭한 개혁안을 마련해야 될 것입니다. 과거 개화파가 성리학적 사유체계에서 자연과학적인 사유체계로 넘어갔던 것처럼 우리도 근대국가적-냉전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서 탈근대-탈냉전의 사유체계에 적응하고, 동시에 탈근대의 naivete에 빠지지 않으면서 행동해야할 것입니다. 더불어 과거 서유견문을 넘어 "지구견문"을 통해 Cosmopolitan적인 개념과 시야를 한반도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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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왕
20/01/20 13:45
수정 아이콘
생각보다 서양 사상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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