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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7/10/27 18:53:00
Name 고무장이
Subject [일반] 할무이... 나 라면...
* 피지알에 쓴 글은 많지 않지만 오랜 세월 함께했던 사이트여서 그런지 마음이 힘들 때 글을 쓰고 싶어지네요.

이 글은 저의 의미 없는 넋두리이자 한탄 섞인 글입니다. 한마디로 일기장은 일기장에 같은 글이니 원치 않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모님은 맞벌이셨습니다. 자연스레 어머니와 아버지보단 어린 시절 할머님의 손에서 오랜 세월 길러졌죠.

할머님은 정말 그 나이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고 힘이 넘치시는 분이셨고

고집과 자존심도 강한 분이시란게 어린 저에게도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손자와 손녀에겐 한없이 작아지시는 분이었습니다. 말씀으로는 이래저래 안된다고 하시면서도

해달라고 조르면 결국 마음이 약해지시면서 손자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시곤 하셨죠.

라면이 건강에 안 좋다고 항상 저에게 말씀하시면서도 면을 좋아하는 저에게 기분이 안 좋아보일 때나

뭔가 입맛이 없어 보이거나 제가 라면이 먹고 싶어 할 때면 언제나 "라면 끓여줄까?" 하면서 끓여주시고는 했죠.

손자의 마음은 또 그렇게 기가 막히게 잘 읽으시는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 먹먹해지기만 합니다.

왜냐면 항상 저에게 관심과 애정이 넘치셔서 관찰하고 보시다 보니 다 알게 되신게 당연할 테니까요.

특히 제가 몸이 아파서 끙끙 앓고 있으면 할머니께서는 와서 뭐 먹고 싶은게 있냐고 죽 끓여 줄까 하면서 물어보시곤 하셨는데

입맛도 없고 언제나 면을 좋아하던 저는 할머니에게 자주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일종의 애칭처럼 할무이 라고 하면서요...

"할무이.. 나 라면..."

그러면 몸도 안 좋은데 뭔 건강에도 안 좋은 라면이냐고 말씀하시면서도 주방에 가셔서 끓여주시곤 하셨습니다.

라면... 그 따뜻함 이란...



저는 대학교 때부터 자취를 했고 직장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면서도 부모님과 할머님이 계신 곳에서는 멀리 떨어져나와서

타지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타지 생활은 자유를 갈망하던 저에게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습니다.

간섭도 안 받고혼자 있는 생활을 즐기던 저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죠. 하지만 몸이 아플 땐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외롭고 비참한 신세라는게 정말 눈물 나올 지경이더군요.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라면 아니 그 애정이 너무나 고파지더군요.

아프면 병원보단 집에 가고 싶어지곤 했습니다. 이불 속에서 끙끙 앓더라도 할머니가 와서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고 가곤하는

그 손길이 너무나 그리웠습니다. 할머니 손은 정말로 약손이었습니다... 어루만져주시던... 정말 그 순간만큼은 아프지 않았습니다.

아플 때면 나이가 들어도 응석을 부리고 싶었습니다. 이만큼 의지가 되는 존재가 있나 싶을 정도로 아플 때면 항상 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어제 목요일 할머니께서 뇌출혈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당장 모든 일을 다 그만두고 휴가를 내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이미 수술실에 들어가 계시더군요.

5시간이 넘는 대수술 그것도 신경외과에서 가장 큰 수술이라고 누나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5시간이 다 되어서 담당 의사분께서 나와서 상황을 설명해 주시는데 수술은 잘 됐지만 연세도 많으시고 원래

뇌출혈로 동맥이 터지면 생명유지를 하려고 수술을 하는 것이지 정상으로 돌아오긴 힘들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연세도 80이 넘으시고 평소에 고혈압에 당뇨도 있으셨던 터라 건강은 더 걱정이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할머니의 모습은.. 정말로 정말로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로 일말의 도움도 드릴 수가 없더군요.

그저 옆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마음이 찢어진다는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오른쪽이 다 마비되셔서 감각도 없으실 거라는 할머니의 오른손을 붙잡고 수술 후의 그 차가움에 놀랐습니다.

언제나 너무나 따뜻하던 손이었는데... 만병통치약이었는데... 할머니의 손...

해주신것에 비해 해드린 것도 너무 없고, 평소에 잘해 드리지도 못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 희생만 하시다 이렇게 말 한마디 못해보고

의식도 없으신 채로 생명만 유지하셔야 된다는게 미친듯이 괴로우면서도 결국 또 저는 아플 때의 버릇처럼 응석을 부리고 싶어졌습니다.

"할무이... 나 라면... 너무 아파서 할무이가 끊여준 라면 너무 먹고싶다. 그러니까 제발 일어나세요..."


정말 어제부터 오늘까지 펑펑 울기만 했습니다. 지난주 주말에 집에서 회사 기숙사로 돌아오기 전에 할머니께서 너무 곤히 주무셔서

안 깨워야겠단 생각에 인사를 안 드리고 나온게 세상에 그렇게 한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주무시는 뒷모습이 할머니가 의식이 있으신 마지막 모습이 될 거라고는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그때 꼭 안아드리고 간다고 하고 갈껄... 할머니 목소리 만이라도 듣고 갈껄... 편찮으신데 없는지 여쭤보기라도 할껄...

쓰러지시기 전전날에 평소에 제가 살갑게 간다고 인사도 잘하고 다녀서 좋았는데

인사도 안 하고 갔다고 섭섭해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는데 정말 그 말을 듣는 제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평소에 잘해드릴걸 모두 다 후회밖에 남지 않아서 인생 선배들이 그렇게 말해줄 때 말 들을걸 있으실 때 잘할걸 하고 또 후회합니다.


할머니께서는 행복하셨을까요 지금까지의 생이... 못난 손자 만나서 받으실 사랑 다 못받고 쓰러져 버리신건 아닐까요...

세상에 기적이란게 있으니 할머니가 절 알아보실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이런 글을 쓴다고 달라질껀 없지만 한탄이라도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어서 글을 써봅니다.

슬픈 마음에 두서 없이 쓴 글이니 너그러이 봐주시고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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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a Joaquina
17/10/27 19:08
수정 아이콘
꼭 쾌차하셔서 하지 못한 말들 다 나누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저도 언제나 다 큰 손주 어리광을 받아주시던 할머니가 보고싶어지네요...
고무장이
17/10/27 20:39
수정 아이콘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기적이란게 있으니 꼭 그런날이 오길 저도 바래봅니다.
우와왕
17/10/27 19:43
수정 아이콘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고무장이
17/10/27 20:39
수정 아이콘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공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이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게 힘이 됩니다.
RookieKid
17/10/27 20:10
수정 아이콘
쾌차하실겁니다 힘내세요
고무장이
17/10/27 20:40
수정 아이콘
저도 꼭 쾌차하셔서 의식이라도 돌아오셔서 알아봐 주시기만 해도 너무 감사할꺼 같아요. 응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17/10/27 21:09
수정 아이콘
꼭 쾌차하시길 빕니다. 그리고 고무장이님 따뜻하게 손 잡아주실 수 있게 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고무장이
17/10/28 02:27
수정 아이콘
저도 꼭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댓글을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은우
17/10/27 21:32
수정 아이콘
저희 할머니도 암과 싸우고 계신데 먹먹해집니다.
모든 할머니들이 손주들이 효도하시는거 다 받고 가실만큼 건강해지셨으면 좋겠네요.
고무장이
17/10/28 02:29
수정 아이콘
정은우님도 매우 심적으로 힘드시겠네요. 저야 이제 막 오랜 투병생활의 시작을 지켜보는 것이지만 정은우님은 옆에서 오래 지켜보시느라
저보다 더 힘드실꺼 같습니다. 저희들도 힘을내고 아프신분들도 다 힘을내서 다 건강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둑아위험해
17/10/27 23:00
수정 아이콘
중학생때 할머니집에 살았었습니다.... 학원수업이 끝나고 밤 10시가되어 귀가하면 라면을 끓여주시곤 했습니다.... 이 글을 보니 할머니가 보고싶어지는 밤이네요.. 먹먹합니다. 고무장이님 할머님이 꼭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고무장이
17/10/28 02:33
수정 아이콘
할머님들은 부모님과는 다른 따뜻함이 있으신거 같습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손주 이기는 할머니는 정말 없으실 겁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시라 손주 버릇없게 만들기 딱 좋지만 또 이렇게 크게 기억에 남는 정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Betty Blue 37˚2
17/10/27 23:19
수정 아이콘
저도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난 요즘에도 생각만 하면 눈물이 흐르는 우리 할매가 있었어요. 할매집의 따뜻한 온기,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맛있었던 빨간 소고기국, 잠들때 까지 등 긁어주시던 따뜻하고 작은 손. 아직도 눈만 감으면 할매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떠올라요. 할매가 정말 오랫동안 병원 생활 하고 돌아가셨는데 저도 궁금하더라구요. 할매의 인생이 행복했을까, 허구한날 병실에서 수십알씩 되는 약만 겨우 삼키면서 살았던 그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이가 드는
요즘에서야 새삼 느끼고 또 다시 가슴 아파와요.
할매는 돌아가셨지만 저는 아직도 기쁜일이나 슬픈일 있을때마다 작게 할매... 라고 부릅니다. 할매를 다시는 만날 수 없어도 항상 제 곁에 있어요. 느껴져요.
비록 할머니께서 고무장님을 잘 못알아 보시더라도 항상 고무장님 곁에 있으실거에요. 힘내세요!!
고무장이
17/10/28 02:39
수정 아이콘
저도 워낙 라면의 존재감이 커서 라면만 적어놨지만 할머니의 음식들도 정말 잊을 수 없을거 같습니다. 청국장, 된장찌개, 김치, 만두 등등
제가 잘먹으면 제가 질릴때까지 주시곤해서 "요 반찬 좀 고만 달라"고 투정부리곤 했습니다. 만두는 정말 만들기 힘드신데도 어느날 가보면
손주 잘먹는다고 해놓고는 하셨어요. 할머니께서 쓰러지시고 나니까 정말 그게 너무 그리운 느낌이 듭니다.

아직 돌아가시진 않으셨지만 돌아가실때까지 제가 꼭 옆을 지켜드릴 것이고 돌아가시고 나시면
Betty Blue 37˚2님 말씀처럼 할무이는 꼭 제 곁을 지켜주실껍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힘내보겠습니다.
힘내라는 응원 감사합니다.
블루시안
17/10/28 23:20
수정 아이콘
저랑 반대의 생각을 가지고 계시네요.
부모님의 맡벌이, 그리고 정정했던 할머니의 모습이 너무 겹쳐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지금 할머니와 사이가 무척 좋지 않으며 의절하다 시피 지내고 있습니다. 한때는 가장 사랑했었던 사람.. 의 표현이 맞겠네요. 지금은 할머니, 하면 제 사랑하는 사람을 아프게 했던 사람, 정말 미운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그나저나, 할머니 얼른 쾌유하시길 빕니다.
고무장이
17/10/29 10:01
수정 아이콘
마음 아프시겠네요.. 일단 위로를 드립니다. 가족들은 언제나 가장 의지되는 존재라고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다 보니 언제나 사이가 좋을수만은
없는게 맞겠죠. 저도 부모님과 의절까진 아니지만 의견충돌로 좀 떨어져 지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매일매일 마음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의절까지 하실 정도라니 정말로 힘드시겠네요. 언젠가 모든 일이 잘 풀리시길 기원해봅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쾌유를 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피지알에 글을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위로를 받고 있어요.
블루시안
17/10/30 20:13
수정 아이콘
뭘 이렇게 간단하고 대강 설명드려서 어줍짢네요..
뭔가 글을 쓰려고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만, 참 힘든 이야기라 펜이 잘 떨어지지가 않아요. 다음에 자게에서 뵙게 된다면 반갑게... 맞아주셨으면 하네요 힛
고무장이
17/10/30 20:57
수정 아이콘
네 어떤 일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렇네요. 자게에 블루시안님 글 기대하겠습니다.
블루시안
17/10/30 21:08
수정 아이콘
ㅠㅠㅠ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필력이 구데기라
열심히 준비해야겠네요...흙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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