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우병 (Haemophilia, Royal Disease)
러시아 마지막황제 니콜라이 2세 (Nikolai II, Aleksandrovich, 1868~1918) 의 유일한 아들인 알렉세이 (Alexis) 는 혈우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혈우병은 출혈이 멈추지 않아서 작은 상처에도 과다 출혈로 죽을 수 있는 치명적인 병입니다.
지혈이 되는 메카니즘이 위와 같이 매우 매우 복잡한데 알렉세이가 앓았던 혈우병은 그 중 Factor IX 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Haemophilia B 로 매우 드문 유전병 ( 1/30,000 이하) 입니다.
Factor IX 를 생성하는 유전자는 X염색체에 존재하는데 이로 인해 반성유전으로 전달되는 유전질환입니다.
지난 번에 소개해 드린 적 있죠. 반성유전이라서 보통 어머니가 보인자 (X'X) 에서 나온 경우가 많은데 아들은 50% 확률 (X'Y, XY) 로 혈우병환자가 발생하고 딸들은 증상은 안나타나지만 정상인과 보인자가 각각 50% 확률 (XX, X'X) 로 나타납니다.
그 전에 러시아의 로마노프왕가에는 혈우병환자가 없었고 니콜라이 2세 또한 혈우병증상이 없었으므로 그의 아들 알렉세이의 혈우병은 니콜라이 2세의 부인 알릭스 (Alix, Alexandra Feodorovna, 1872~1918) 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알릭스는 독일 헤센주 대공 루드비히 4세 (Ludwig IV) 와 빅토리아 여왕의 셋째딸 알리스(Alice) 사이에서 태어난 딸입니다. 역시 루드비히 4세 가계에도 혈우병이 없었고 빅토리아 여왕의 딸인 알리스가 혈우병 보인자였습니다.
즉 대영제국의 빛나는 여왕인 빅토리아 여왕 (Victoria, 1819년 5월 24일 ~ 1901년 1월 22일) 이 혈우병 보인자로서 러시아 제국을 무너트리는데 혁혁한 공이 있으신 분입니다.
켄트공작 에드워드 (Prince Edward, Duke of Kent, 1767년 11월 2일~1820년 1월 23일)
켄트공작 에드워드는 빅토리아 여왕의 아버지로 원래는 왕서열 (조지 3세의 넷째 아들) 이 매우 낮았고 50살이 넘어서도 결혼을 하지 않은 노총각이었습니다. 51세에 19세 연하인 당시 32세의 미망인 독일 작세-코부르크-잘펠트의 빅토리아 공주(1786-1861) 와 1818년 5월 29일 (독일에서), 7월 11일 (영국에서) 두번에 결혼식을 올렸고 이듬해 1819년 5월 24일 빅토리아 여왕이 되는 빅토리아가 태어납니다. 빅토리아 여왕 탄생일로부터 역산해보면 1818년 8월 초에 임신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32세 미망인 빅토리아 공주가 혈우병환자와 바람을 피지 않는 한 이쯤 51세 켄트공작의 정자 생산 중 혈우병을 일으키는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딸인 빅토리아에게 전달되지 않았을까 예상합니다. 그 전에 켄트공작이나 미망인 빅토리아 공주 가계에는 혈우병 증세를 나타내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1818년 8월 어느 어두운 밤 정원을 걷던 켄트공작에게 우주에서 우주선 (X-ray) 이 쏟아졌고 하필이면 빅토리아 공주를 생산할 정자에게 영향을 미쳐 혈우병 돌연변이로 발생했을 거라는 소설을 쓰고 싶네요. 아주 늦은 나이인 51세에 정자를 생산하여 아이를 만들었으니 역시 돌연변이 (Replication error)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합니다. 켄트 공작 에드워드는 빅토리아가 태어난 다음해인 1820년 1월 23일에 53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아버지 조지 3세, 첫째형, 둘째형 (그 전에 사망) 도 곧 사망하고 셋째형이 왕위를 물려받으나 후사 없이 사망해서 결국 빅토리아가 예정에도 없었던 여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돌연변이 (Mutation)
돌연변이 (Mutation) 는 X-ray, Oxygen radical, Alylating agents, UV light, Polycylic aromatic hydrocarbons, Replication errors 등의 이유로 세포의 DNA 염기서열이 바뀌어서 발생합니다. 지난 번에 소개해 드린 것처럼 인간은 단일세포인 수정체로부터 약 47 번정도만 분열하면 ( 2의 47제곱승 ) 100조개가 넘어 인간 구성세포를 모두 만들 수 있습니다. 뇌세포처럼 일정양 이상되면 세포분열을 멈추고 평생 사는 세포들 등을 감안한다 해도 약 50여 번만 세포분열을 하면 한명의 인간이 탄생합니다. 그 후 피부세포, 동맥혈관세포, 각종 epithelial cell 등 피로도 높은 세포들은 쉽게 손상이 되는데 이런 손상된 세포들은 제거되고 건강한 세포가 다시 세포분열되어 이를 대신하면서 평생 많아야 수백 번정도 더 세포분열하고 일생을 마감합니다. DNA 복제시 교정되는 프로세스에 의해 10^7~10^10 개당 1개 미만 오류가 납니다. 즉 세포 1개 복제될 때 수십개 미만의 오류가 발생합니다. 또 우리 몸의 DNA 중 약 2%만 유전자로 발현하기 때문에 98%부분의 염기가 바뀌었을 경우엔 별 이상이 없이 정상적인 세포분열 (물론 예외가 있습니다.) 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염기 3개당 1개의 아미노산이 결정되는데 이때 다양한 3개문자가 하나의 아미노산으로 해석되는 등 중복되는 것들도 많아서 실제 생성되는 단백질로는 차이가 없는 돌연변이 (Slience mutation) 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체세포 돌연변이 (Somatic mutation) 는 암발생 등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해당 세포와 그 이후 분열된 세포에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자손에게는 유전되지 않습니다.
진화의 원동력인 우리가 말하는 돌연변이체는 오직 생식세포 돌연변이(Germline mutation) 에서만 일어납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DNA 염기서열 중 약 2%유전자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뀌어야 하고 (좀 더 들어가면 복잡한데 예외가 있습니다.) 일부는 같은 아미노산으로 표현되어 DNA염기 변화에도 아무런 영향을 못미치는 돌연변이(Slience mutation) 도 있다고 앞서 이야기했죠. 반면 단 하나의 DNA염기가 바뀌어 엄청나게 영향을 미치는 돌연변이 (Missense mutation) 도 있습니다.
β-헤모글로빈 6번째 코돈이 GAG → GTG로 단 한개의 염기가 바뀌었음에도 산성 아미노산인 글루탐산 (GAG: Glu) 이 비극성 아미노산인 발린 (GTG: Val) 으로 치환되어 단백질의 입체구조가 바뀌어서 적혈구가 찌그러져 낫모양으로 바뀝니다. 이로 인해 그 유명한 겸상적혈구 빈혈증(sickle cell anemia) 이 나타납니다.
특히 삽입 및 결실 돌연변이 (InDel mutation) 가 심각한데 염기 3개당 1개의 아미노산이 순서대로 결정되므로 염기 1개가 삽입되거나 빠지면 3배수 서열이 엉클어져 완전 새로운 설계도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OMR카드에 정답을 마킹하면서 한줄 밀려쓰거나 한줄 당겨쓴 것과 같은 효과를 발휘하죠. 이 유전자에 해당하는 단백질은 아예 기능을 못할 수도 있고 새로운 기능을 할 수도 있습니다.
역시 빅토리아 여왕가에 나타난 혈우병 (Haemophilia B, Royal Disease) 도 단 1개의 DNA염기 치환으로 돌연변이가 발생하여 나타난 병인데 겸상적혈구의 경우랑 다르게 조금 복잡합니다. Factor IX 를 결정하는 DNA 염기서열에서 인트론 (intron) 부분의 A가 G로 단 1개 치환되었지만 이 때문에 엑손 (Exon) 을 시작하는 부분이 달라져 삽입 및 결실 돌연변이 (InDel mutation) 처럼 2칸 당겨져서 아예 새로운 아미노산 서열로 해석되어버립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Factor IX 가 정상적으로 작용을 하지 못해 결국 혈우병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라스푸틴 (Rasputin)
러시아 무당 라스푸틴 (Rasputin, Grigorii Efimovich, 1872?~1916.12.30) 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유일한 아들인 알렉세이의 혈우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해서 황후 알렉산드라 (앞서 말한 알릭스-Alix, 결혼 후 Alexandra Feodorovna 개명) 의 총애를 받았습니다. 기도 요법으로 병세를 완화시켜 신망을 얻었다고 하는데 꼭 "육영수의 현몽" 으로 박근혜의 총애를 받은 최태민과 비슷하네요. 이 후 극심한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황후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 없이는 하루도 못견디었다고 하네요. 역시 누구처럼 사람을 혹하는 능력이 출중했나봅니다. 이후 니콜라이 2세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황후 알렉산드라의 지지 속에 가혹한 세금으로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웠고 이에 저항하는 농민들을 폭력으로 진압하여 수천 명을 죽인 피의 일요일 (1905년) 이란 엄청난 사고를 치기도 했다고 하네요. 1916년까지 계속 국정농단을 하다가 결국 황제파 귀족들에게 암살 당했다고 합니다. 쉽게 죽지도 않았고 이상한 예언도 많이 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라스푸틴은 누구처럼 최고권력자를 현혹하여 권력을 잡아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고 국정농단을 한 전형적인 무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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