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6/08/28 20:21:04
Name santacroce
Link #1 http://santa_croce.blog.me/220798552031
Subject [일반] 프리다, 도망쳐! 나르비크에서 온 소녀 이야기

PGR에 오래 간만에 인사 드립니다. 그동안 페북과 블로그만 집중했는데 기회가 되는 대로 PGR도 찾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글은 노르웨이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나르비크에서 온 소녀


우선 결코 순탄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한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이 소녀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고도 몇 달 후인 1945년 11월 노르웨이 북부의 항구 도시 나르비크(Narvik)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집을 떠나게 되면서 엄마와 외할머니 품 속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그리고 2살도 되기 전인 1947년 초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아기는 엄마와 떨어져 이웃한 스웨덴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다행히도 오래 지나지 않아 엄마도 스웨덴으로 넘어오면서 삼대 모녀가 상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엄마는 딸아이의 2번째 생일도 보지 못하고 콩팥에 문제가 생겨서 1947년 9월 숨을 거두었습니다.    


* 소녀가 태어난 노르웨이 북쪽 항구 도시 나르비크(Narvik)



이제 할머니와 덩그러니 낯선 땅에 남겨진 소녀는 그나마 가끔씩 노르웨이에서 찾아오는 외삼촌과 이모들의 귀여움을 받으며 외로움을 견뎌야 했습니다.  

소녀는 18살에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지만 6년 이상 가지는 못 했습니다. 그나마 운명적인 새 연인을 만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32살 되던 해인 1977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 노르웨이에서 온 소녀와 아버지의 극적인 만남



소녀는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아버지를 태우고 독일로 가던 배가 침몰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기에 2살 때 죽은 엄마와 함께 부모가 모두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중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였으나 이 부녀 상봉은 그녀에게 아버지라는 존재가 있음을 알려 준 것 못지않게 계속 굴레가 되었습니다.  

노르웨이 나르비크에서 온 소녀의 이름은  Anni-Frida Synni Lyngstad인데 바로 스웨덴의 전설적 혼성그룹 ABBA의 두 여성 멤버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32살에 만난 생부는 전직 나치 독일군 상사로 2차 대전 중 독일군이 점령한 노르웨이의 전략 요충지 나르비크에서 주둔하였던 상사 Alfred Haase였습니다. 독일군 병사와 현지 노르웨이 여성과의 결혼은 점령군과 피정복지 국가 여성 간 결혼이라는 전쟁의 비극을 담고 있지만 이러한 결혼을 통해 태어난 12,000명 정도의 아이들은 사실 전쟁 중임에도 히틀러의 축복과 재정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아이들이 히틀러가 장려한 아리아 인종 개량 사업(푸른 눈의 인종)의 결실인 'Lebensborn'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바의 멤버가 된 프리다는 전쟁 종전 직후(1945년 11월)에 태어났기에 아버지가 바로 철수하면서 이산 가족이 되었고 아버지의 생사도 모른 채 고향을 떠나 스웨덴에서 할머니와 힘겹게 살아가야 했지만 그룹 아바는 프리다 덕분에 나치와 연계되어 있다는 오명을 짊어져야 했습니다.   


* 나치 병사와 노르웨이 여인 사이에 태어난 Lebensborn Child의 세례식

Norway’s Hiddens History - "Aryan" Children Subjected to LSD Experiments, Sexual Abuse & Mass Rape


Frida, Run!: 정의라는 이름 아래 자행된 북유럽 국가의 야만적 폭력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었던 프리다의 유년기였지만 엄마를 노르웨이에 남겨 두고 먼저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스웨덴 국경을 넘은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사실 나치의 노르웨이 점령기였던 1940-1945년 사이 프리다와 같은 운명을 타고난 12,000명의 아이들과 이들의 엄마이자 독일 병사와 결혼한 14,000명의 여인들에게 해방된 조국 노르웨이는 결코 따뜻한 안식처가 아니었습니다.   
국외로 탈출하지 못하고 잡힌 5,000명의 여인들은 집단 수용소로 보내졌고 독일 아이들이라는 뜻의 Tyskerbarnas라고 불린 12,000명의 아이들은 노르웨이 사회의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다른 가정에 강제로 입양되거나 200개의 시설에 수용되었습니다.
이 여인과 아이들은 지금은 세계 최고의 부국이자 복지국가 반열에 오른 조국으로부터 국가 반역자이자 장차 노르웨이 사회의 5열이 될 수 있다는 명목하에 가혹한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여인들과 여자아이들에 대한 상시적인 집단 성폭행은 오히려 고전적 방식에 속할 정도였습니다. 시설에 수감된 아이들은 적군 사이에서 태어난 우생학적(특히 지능이)으로 열등하다는 가정(히틀러의 축복이 저주가 되어)하에 정신질환자들과 함께 지내야 했으며 적지 않은 아이들은 새로운 화학약품의 실험 대상으로 전락했습니다. 
밝혀진 것만 해도 LSD 투약 실험 중 최소 5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Anne-Marie Grube라는 여성은 독일 병사와 관계를 맺은 것은 그녀의 지능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라고 판정을 받았으며 시설에 갇힌 채 최소한의 음식과 옷만 가지고 수치감 속에 살아야 했다고 증언을 했습니다. 
일반 가정에 보내진 아이들도 집주인의 성노예나 동네 주민의 학대 속에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 아이들 중 한 명이었던 Harriet Von Nickel(여)은 영국 텔레그라프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9-10살 때 술 취한 동네 사람들이 이마에 나치 문양을 새겨 넣었으며 이를 지우기 위해 스스로 사포로 피부를 문질렀다고 당시의 끔찍한 악몽을 회고했습니다.   
아무리 노르웨이가 전후 부유한 사민주의 복지국가가 되었다지만 전쟁 후 여성과 아이들에 대해 자행한 야만적 복수 행위를 스스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70대와 50대에 접어든 여인들과 아이들이 노르웨이 정부에 대해 본격적으로 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지만 노르웨이 정부는 당시로서는 다른 수단이 없었다며 과오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유럽인권재판소에 호소한 것이 주효하여 2002년에 가서야 노르웨이 대법원은 2,000 파운드(2천원으로 계산해도 400만원 정도?)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 전부였습니다. 
당시 피해자들이 제기한 보상 건수는 1만 건에 이르렀으며 아직도 수백 명의 여인들이 자신의 아이들 행방을 찾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정말 프리다 할머니가 손녀를 먼저 안고 국경선을 넘는 결단을 하지 않았다면 프리다의 운명은 물론 그룹 ABBA의 운명도 크게 바뀌었을 것입니다. (이 비극적 상황을 글로 정리하다 보니 마치 프리다의 엄마가 'Frida, Run!'이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과연 노르웨이는 오욕의 과거사를 바로 잡았을까? 


이야기를 좀 더 확대해서 노르웨이가 어떻게 2차 대전에 휘말렸으며 프리다의 아버지는 왜 나르비크에 주둔했을까를 살펴보겠습니다. 

2차 대전의 세세한 전쟁사에 대해서는 관련 문헌과 자료가 넘쳐나고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노르딕 3국 관련 이야기만 아주 간단히 다루겠습니다.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는 일찌감치 중립국 선언을 했으나 독일은 폴란드 침공 이후 중립국 노르웨이에 대한 정복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우선 전쟁 개시로 너무나 중요해진 전략 자원이 된 스웨덴 Kiruna 지역(맨 위 지도 참조) 철광석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철도로 연결된 노르웨이 항구 나르비크를 차지하고 싶어 했습니다. 물론 위 지도를 보면 Kiruna-Lulea 철로를 이용하여 발트해로 수입하는 것이 거리도 짧고 영국군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지만 결정적으로 발트해에 끝에 자리 잡은 Lulea 항구는 낮은 염도로 겨울에 얼어붙어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Kiruna-Narvik 철로를 이용하여 부동항인 나르비크를 통해 북해를 거쳐 독일로 수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이 이유 말고도 독일 해상로의 확보 등 다른 전략적 이유도 있었으나 어쨌든 스웨덴 철광석의 확보는 매우 중요했고 프리다의 아버지도 그래서 나르비크에 주둔했던 것 같습니다. 

노르웨이 전역이라고 불리는 노르웨이 침공은 따지고 보면 아무리 중립국 선언을 한들 강대국 사이의 전쟁에서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으면 중립국 선언은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먼저 영국은 1940년 2월 16일 독일의 병참선 Altmark가 침몰된 영국 상선의 포로를 싣고 노르웨이 해역을 지나는 것을 탐지하자 중립국 해역임에도 국제법을 무시한 채 강제로 299명의 자국 선원을 구출하였습니다. Altmark Incident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그렇지 않아도 노르웨이를 노리던 독일의 참전 명분을 주었습니다. 나치는 1940년 4월 9일 먼저 노르웨이 침공로 확보를 위해 덴마크를 침공하여 6시간 만에 무릎을 꿇렸습니다. 왕실과 사민당 등 주요 제정파가 모두 나치 손아귀에 들어간 덴마크는 이어진 점령 기간 동안 나치에 협력하게 되었고 그 결과 종전 후 스웨덴과 노르웨이와 달리 홀로 레지스탕스를 벌였던 공산당의 쿠데타 위협을 크게 받아야 했습니다. 또한 사민당의 주도권도 다른 노르딕 국가들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습니다.  

히틀러의 기대와 다르게 노르웨이 정복 전쟁은 시간을 끌었는데 전쟁의 참화는 유럽 대륙에 비할 바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인구 소국 노르웨이 산업 생산은 쉽게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남겼습니다. 

특히 노르웨이군과 영국 및 프랑스군의 저항이 치열했던 노르웨이 북부 Finmark와 Nord-Troms 지역은 노르웨이 전체 피해의 1/3에 해당하는 큰 손상을 입었으며 전체적으로 12,000 채의 집과 공공시설이 파괴되었고 주요 도로와 다리들이 끊겨 교통 인프라도 제구실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1945년 노르웨이 산업 생산은 전쟁 전의 절반 수준으로 급락하였습니다. 

한편 스웨덴 정부는 노르웨이 항전 기간 내내 엄정한(?) 중립을 지켰으며 심지어 노르웨이 왕가의 망명지 제공도 단호하게 거부하였습니다. 

특히 전시 자국산 철광석의 특수로 스웨덴은 큰 호황을 맞이하였고 중립국임에도 노르웨이 점령 이후에는 독일군과 군수물자의 자국 영토 이동을 허가하여 3년 동안 약 200만명의 독일군이 스웨덴 철도를 이용하였습니다. 

물론 사민당 정권의 스웨덴이 형제국 노르웨이의 딱한 처지를 완전히 눈 감은 것은 아니었고 약 6만명의 난민을 수용하고 프리다 같은 전후 친독 난민도 받아 주었습니다. 1942년에는 식량 부족 사태를 겪는 노르웨이로 식량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스웨덴은 전쟁 중 어떠한 생산 시설 파괴도 겪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적 호황을 누렸으며 심지어 전후에는 미국의 마셜플랜 자금을 받아내기도 하였습니다. 혹자는 전후 스웨덴의 놀라운 사민주의 발전을 전쟁 시기 친독일적인 경제 정책으로 축적한 부와 냉전 시기에도 정치적 중립국이라는 위치를 활용해 발렌베리 가문이 통제한 SAAB과 같이 매우 강력했던 스웨덴 군수산업이 만든 무기와 공산품들을 양쪽 진영 모두에게 수출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다시 노르웨이로 돌아와서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노르웨이 망명 정부와 왕실은 1945년 복귀하는데 위에서 언급한 Tyskerbarnas와 이들을 낳은 여인들에 대한 야만적 보복과 달리 독일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은 극히 소수에 그쳤습니다. 

대표적 친독 정치인으로 독일 점령 기간 동안 총리였던 크비즐링(Quisling)과 일부 인사는 사형이 선고 되었지만 총 92,803건의 기소 중 37,150건이 기각되었고 기소된 인사들 대부분도 매우 관대한 처벌에 그쳤다고 합니다. 

물론 1948년 2월 체코슬라바키아에서 벌어진 볼세비키 세력의 쿠데타가 노르웨이 정부의 친독 부역자들에 대한 정치적 보복 의지를 꺾었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 노르웨이는 스웨덴과 달리 1949년 NATO에 가입하며 군사적 중립주의를 포기하였습니다. 


짧게 훑어본 노르웨이 현대사의 비극을 보면 각 사건마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 실제 책임을 져야 할 엘리트에 대한 처벌은 의외로 허술했으며 분노한 대중의 증오를 모두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은 여인들과 아이들이었다는 점에서 큰 회한을 남깁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의 전후 번영은 어쩌면 각자 나름의 비겁한 역사를 모두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상 노르웨의 어두웠던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참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의 2차 대전 전후의 상황은 Mary Hilson의 the Nordic Model, 프랜시스 세예르스테드의 사회민주주의 시대 그리고 영문 위키피디아를 참조하였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겜돌이
16/08/28 20:48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MTOXdSA0oLQ 나르비크는 역시....
마스터충달
16/08/28 20:50
수정 아이콘
프리다라길래 프리다 칼로의 이야기인줄... 이 프리다도 그 프리다 만큼이나 삶의 굴곡이 순탄치 않았네요;;
이치죠 호타루
16/08/28 21:49
수정 아이콘
언제나 비극은 가장 힘이 없었을 민중에게 닥쳤다는 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비극이었죠. 소련도 독일에게 잡혔다는 이유로 포로의 가족을 강제 수용소로 보내고, 전후 독일군에게 잡혔다가 돌아온 포로들도 독일에게 "오염되었다"는 이유로 수용소로 보냈으니... 그 과정에서 죽은 사람이 또 수백만 명에 달하죠. 그리고 더 큰 비극은 그러한 비극들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이구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67315 [일반] (데이터, 이미지, 스압) 연예인 Ben님 만난 썰, 그리고 제 꿈 [30] 전기공학도9161 16/08/29 9161 3
67314 [일반] 시진핑이 추구하는 중화제국이 예전과는 다른 점은.. [16] 군디츠마라7223 16/08/29 7223 2
67313 [일반] 애플이 그렇게까지 바보는 아닐 수도 있다... [64] Neanderthal11611 16/08/29 11611 1
67312 [일반] [해외축구] BBC 여름 이적시장 가쉽 [22] V.serum4704 16/08/29 4704 3
67311 [일반] 유플러스 인터넷 이전설치 이야기 - 결과 이야기 [10] 이시하라사토미6339 16/08/29 6339 3
67310 [일반] 청와대 vs 조선일보 1차전... 청와대의 1승? [44] 에버그린10434 16/08/29 10434 10
67309 [일반] 타점이 얼마나 부질없는 스탯인지를 보여주는 케이스 2개. [142] 비타100012076 16/08/29 12076 2
67308 [일반] 메갈/워마드 늪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는 정의당 외 2 [57] 로빈13010 16/08/29 13010 10
67307 [일반] 보이스피싱이 참 문제네요.. [42] QD7302 16/08/29 7302 2
67306 [일반] 이명박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161] 치킨너겟은사랑20015 16/08/29 20015 0
67304 [일반] 네이마르가 브라질의 슈퍼스타인 이유 [12] 에버그린9056 16/08/29 9056 16
67303 [일반] 2016 가온차트 스밍 누적.txt (1.1~8.20) = 연간차트 [11] 삭제됨4338 16/08/29 4338 1
67302 [일반] 청일전쟁 - 완. 새야 새야 파랑새야 [19] 눈시7776 16/08/29 7776 12
67301 [일반] 문재인의 리더십과 정치력? [41] 에버그린10980 16/08/29 10980 15
67300 [일반] 열 살 혜경이 [8] swear4275 16/08/29 4275 4
67299 [일반] 역대 누적 천만부 이상 팔린 일본 만화 판매 랭킹 [32] 드라고나15931 16/08/29 15931 0
67297 [일반] [야구] 2016프로야구 22주차 감상(부제 : 확대엔트리, 경찰제대선수) [39] 이홍기5372 16/08/28 5372 4
67296 [일반] [5차 기부 이벤트] 추억에 관한 글쓰기 이벤트입니다.[곧 종료] [15] OrBef4951 16/08/21 4951 6
67295 [일반] SNS를 시작한 김종인?.jpg [46] 아리마스9586 16/08/28 9586 1
67294 [일반] 2012~2015년 년도별 걸그룹 음원 스트리밍 성적 [7] evene16568 16/08/28 16568 2
67292 [일반] 프리다, 도망쳐! 나르비크에서 온 소녀 이야기 [3] santacroce6354 16/08/28 6354 11
67291 [일반] 아이돌마스터 커버곡 소개 [18] JUFAFA5854 16/08/28 5854 2
67290 [일반] 이건 양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5] 토다기9998 16/08/28 9998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