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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11/30 16:17:18
Name 마스터충달
File #1 1235996_24005539.jpg (33.4 KB), Download : 63
Subject [일반]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이란


저는... 자신에게 뛰어난 문예감각이 있다고 착각했었지만, 지금 냉철히 돌아보면 솔직히 필력이 쩌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옛날부터 피지알에 글을 썼지만, 추천은 거의 받아보질 못했거든요. 그러다 올해 들어오면서 글을 제대로 써보자는 생각으로 글에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뭐 엄청난 비기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글 쓰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 것뿐이었어요. 그런데 그 결과 많은 추천을 받고 추게에도 글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오늘 올라온 글의 댓글에서 [정성이 들어간 글]이라는 말을 보니 제가 올해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글에 정성을 담았던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쓰면 쓸수록 글이란 건 잘 쓰기가 어렵더라고요. 젠장 맞게도 세상에는 빌어먹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좋은 글을 볼 때마다 그런 능력이 없는 자신이 한탄스럽죠. 그런데 이 글쓰기라는 것이 정말 마약 같은 게 정성을 쏟을수록 발전해요. 이전에 없던 정성을 들이면 내 필력의 한계가 또 한 번 높아지는 경험을 해요. 포기할 수 없는 무한한 희망 고문이랄까요.

이런 경험을 통해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좋은 글이란 쩌는 능력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란 겁니다. 물론 문예 대회 같은 곳은 그런 게 필요하겠지만, 인터넷 공간이라면 그런 능력이 아니라 정성만 있어도 (상대적으로) 좋은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정성이란 글을 쓰는데 들이는 시간과 퇴고하는 노력과 그리고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 전 다시 한 번 더 글을 읽어보고 언제든지 백지까지 되돌아갈 수 있는 수고로움 같은 거라고 봐요.

그 시간과 노력과 수고로움이 아마도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이란 녀석의 정체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이런 시간과 노력과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저의 경우 처음에는 '욕먹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글을 블로그가 아니라 커뮤니티에 올리는 이유는 '욕을 먹기 위해서'였습니다. 혼자만 쓰면 발전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그리고 '욕먹지 않기 위해' 글에 공을 들였죠. 그러나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욕먹지 않기 위한 글은 좋은 글이 아니란 걸 깨달았습니다. 그곳에는 틀리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잃어버린 죽은 글만 있을 뿐이었죠. 그다음은 만족하기 위해 공을 들이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자신이 만족할만한 글은 이뤘지만, 사람들에게 관심받지 못하는 저만의 글만 남았습니다. 혼자만의 글이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혼자만 만족하면 언젠가 도태될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잘 팔리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단계가 지금 제가 글을 쓰는 단계가 됐습니다. 이런 고민에 대해 어떤 분께선 (매춘에 빗대어) '매문'이라는 말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저 잘 팔리기 위해, 인기만을 위해 영혼 없는 글을 쓰면 안 되겠죠. 하지만 그런 악의가 없다면 많이 읽히는 글을 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잘 팔리는 글이란 건 그만큼 사람들을 배려하는 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쓰기 위해 시간과 노력과 수고로움을 감수하는 것은 아마도 '읽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뭐 어찌 보면 처음의 이유였던 '욕먹지 않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은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에게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이란 읽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감내하는 수고로움]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을 이유로 글쓰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렇다고 글쓰기 버튼의 무거움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 그 무거움이라는 것이 뛰어난 재능이나 지식이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무거움을 위해서는 글쓰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썼던 글을 한 번 다시 읽어보며 이상한 구절이 없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공을 들이자면 제목란 옆에 있는 [#맞춤법 검사기]를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수고로움이 읽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함이라는 점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좋은 글은 훌륭한 글을 쓰겠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추천도 글 내용의 훌륭함 만큼 타이밍 같은 것의 영향력도 큽니다. 운이 좋으면 내가 쓴 글에 많은 사람의 마음이 동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운이 나쁠 뿐 내 글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읽는 사람이 잘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노력만 있다면, 피지알에선 충분히 좋은 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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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악군
15/11/30 16:29
수정 아이콘
보통 필력 좋으신 분들이 이런 엄살을 피시곤 하지요. 추천!
Jace Beleren
15/11/30 16:34
수정 아이콘
크 짤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추천합니다.
15/11/30 16:38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추천!
파란아게하
15/11/30 16:44
수정 아이콘
필력 쩌시네요, 잘 읽고 갑니다
칼라미티
15/11/30 16:50
수정 아이콘
잘 쓰기 위해 공을 들인 글을 몇 번이나 끄적이다 지우곤 했는데, 어느 날 술김에 새벽의 몽롱함을 빌어 속내를 솔직히 써내려간 자게 첫 글에 추천이 우수수 달리는 걸 보고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말씀대로 뛰어난 재능이나 지식보다 정성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 뒤로 아직 자게에 글을 못올리고 있다는건 함정(...)
마스터충달
15/11/30 17:03
수정 아이콘
솔직함은 현란한 수사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능가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원초적이면서 가장 강력한 필력이 바로 솔직함이죠. 칼라미티님이 쓰신 그 글은 솔직함이 있는 훌륭한 글이었습니다.
칼라미티
15/11/30 21:43
수정 아이콘
감사합니다.
주제가 애매한가 싶어 고민하고, 소재는 적절한지 되짚어보고, 문장이 마음에 들지않아 고치고... 그러다보면 타이밍이 지나있거나 글 자체가 별로인 것 같아 그대로 휴지통행...

다 내려놓는데는 술만한게 없는 것 같습니다. 하하...
catharsis
15/12/01 22:50
수정 아이콘
이 댓글을 보며 비슷한 경험, 생각이 있었던 사람들은 한 번쯤 공감하며 웃었을 겁니다.
주제가 애매한가 싶어 고민하고, 되짚어보고, 고치고... 그리고 올릴까 하다가 타이밍이 지난 것 같거나 글이 별로인 것 같아 휴지통에 버릴 정도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분들이... 술 먹고 쓴 글은 애초에 보통 글이 아니죠... +솔직함과 용기가 첨가됐을 뿐. 솔직함과 용기 떄문에 군더더기는 더 빠지기 쉬울 테고... 아무튼 기회 되시면 글 또 써주세요.
칼라미티
15/12/02 09:42
수정 아이콘
이건 사실 본인의 능력 부족에 따른 자신감 결여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크크크
노력해보겠습니다!
양주오
15/11/30 18:38
수정 아이콘
처음 읽었을 때의 좋은 느낌이 지금 다시 봐도 여전히 새롭다고 먼저 밝히고 싶습니다.
읽는 와중에 고 장영희 선생님의 스테디셀러에서 읽었던 내용이 별안간 떠올랐습니다.
한번은 영어 강좌를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영어로 연애편지를 작성해보라는 과제를 냈는데, 평소 영작시에 자주 실수하던 문법 등을 이 때만큼은 학생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어쩌면 기술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는데 그치는 이야기같지만, 보다는 어떤 내용을 어떻게 담느냐에 글의 힘이 나오는지 더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스트라빈스키는 어린 아이들과 동물들이 자신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한다고 말했습니다.
진정성이 있는 솔직한 이야기에 열린 마음과 더불어 정성도 없을 리 만무합니다.
현란한 수사가 넘쳐흐르는 이 간지가 첨단까지 치닫은 세상에, 진솔함은 아래 마스터충달님이 적으신 것처럼 내용과 기술을 동시에 다잡는 것일지 모릅니다.
칼라미티
15/11/30 21:44
수정 아이콘
예전에 작법을 뒤적이다 인상깊게 본 '당신만이 전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라. 당신보다 더 똑똑하고 우수한 작가들은 많다'라는 문구가 기억나네요.
이를 체험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진솔함이야말로 진정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요.

고맙습니다.
시노부
15/11/30 18:49
수정 아이콘
저도 추천 흉작꾼입니다. 그 뿐만입니까.. 댓글도 적습니다. 크흡 ㅠㅠ
중딩때부터 포에티카 등등의 인터넷 포럼에서 소설/시/수필등을 써(싸!)재끼며 나름 필력을 갖춘줄 착각했지만
천만에요 ㅠㅠ; 오히려 둔하고 떨어집니다.
그러나 마스터충달님 같으신 분들이 이렇게 엄살 부리시면 심히 곤란합니다. '무'거워서 글을 '못쓰'는 증상.
[무못쓰]가 아직도 낫질 않는데 더 악화 되어버렸습니다.

좋은글 읽고 공감해서 마침 예전에 썼던 글이 생각나서 찾아서 다시 읽었는데 마스터 충달님 께서 댓글을 달아주셨더라고요? 크크
글에 많은 공감 하고 갑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15/11/30 19:27
수정 아이콘
필~력!!
15/11/30 20:00
수정 아이콘
필~력!!(2)
이거 좋네요 크크크
신의와배신
15/11/30 20:01
수정 아이콘
늘 댓글을 적지만 한번도 본문은 적지못한 흔한 피지알 댓글러입니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수고로움 에 하나를 더하자면 그건 자신감일겁니다.

와 이런 멋진 일이 멋진 생각이 멋진 글감이.. 라는 생각에 글을 적어내려가다보면 중간쯤 작성하고 백스페이스를 눌러버리는 자신을 보게되곤 합니다.
마스터충달
15/11/30 22:33
수정 아이콘
일단 한 번 글을 질러보세요. 처음이 어렵지 일단 똥글이라도 싸놓아보면 이후에 또 글을 쓰는 건 생각보다 쉬워지더라고요.
후후하하하
15/11/30 20:02
수정 아이콘
괄호안의 빨간 글씨만으로도 전체내용이 요약되네요
정성이 들어간 글은 읽는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감내하는 수고로움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고 실제적인 방법으로는 맞춤법 검사기를 이용한다
리니시아
15/12/01 12:16
수정 아이콘
꾸준히 잘 읽고있습니다 ^^
cafferain
15/12/02 03:1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감사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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