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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1/29 01:21:47
Name 헤븐리
Subject [일반] 이별 즐기기.
이별 한지 딱 1주째가 되갑니다. 되게 오래된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오래 안됬네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첫 연애를 했던 저는 나름 각별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전 제가 이별을 겪는다면 엄청나게 슬플 꺼라 생각했습니다. 연애를 하기도 전에 이별 노래를 들으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던 저기에 " 아. 나도 이별을 하면 저런 가슴아픔을 겪겠구나. " 라고 생각을 많이 했었지요. 그런데 막상 이별을 하니 그런 것도 아니더군요. 사실 좋게 헤어진 건 아니니까요. 그 흔한 크게 싸움조차 한번도 해보지 못하고 헤어진 사이였습니다. 그녀를 항상 이해만 하려 했던 제 자신의 잘못도 있겠지요. 그저 이해하려고만 했습니다. 무엇을 하던 제가 조금 이해하면 넘어갈 수 있을만한, 큰 잘못을 한적은 없는 그녀였기에 아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좀 더 화낼 상황이 많았는데 제가 왜 참았나 싶기도 합니다. 내가 그녀를 이해해준다면 그녀도 당연히 제 욕망, 행동에 대해 이해를 해줬어야 하는데 제가 조금 참으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을 했으니까요.그래서일까요? 저의 헤어짐은 슬픔보단 그저 분노가 가득했던 것 같습니다.

헤어지기 3주전 우리 너무 자기 할 일을 안하고 자주 만난거 같다. 좀 연락을 안할테니 이해해달라고 했던 그녀의 말에 사실 이별을 눈치챘었습니다. 그래도 설마해서 하루에 몇번 연락을 해봤지만 저만 일방적으로 얘기하는 기분이 들었었고 그것으로 화도 내보았지요. 화를 냈을때 그냥 자기 일을 하는 것 뿐이다. 아직 난 너를 좋아한다고 했던 그녀의 말을 듣고 알았다고 했지만 그 후로도 그녀는 의무적으로만 연락을 하였습니다. 그때즈음부터 저도 마음의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미안한 감정을 가진 그녀는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기다리는 듯 했기 때문에 먼저 연락을 안해보자라고 했지요. 일주일 시간을 연락 없이 보내는 동안 그녀와 있었던 추억, 사진등을 모두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땐 이미 그녀에게 미움의 감정만 가득했지요. 이정도로 잘해줬고 이해해줬는데 그 것에 대한 보상이 저에게 먼저 질렸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설날.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서로 마음의 정리는 끝난 것 같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헤어지기 전 그래도 나는 너에게 잘 해 준것 같다고 했을때 자기도 안다고. 그래서 언제나 미안했다고. 자기도 계속 미안하기 싫으니 헤어지자던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던 마음까지 떠나버렸습니다. 이젠 그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라 얼굴조차 마주치지 싫은, 연락조차 하기 싫은 사람이 되어버렸지요. 그렇게 저의 첫 연애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였을까요? 제가 들었던 이별 노래는 이별택시, 사랑한다는 흔한말, 기억해줘, 좋은사람등 같은 제가 평소에 좋아하던 절절한 이별 노래보단 쿨하게 헤어지는 방법, 아무말도 하지마, 이별뒤에 해야 할 몇가지,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같은 다소 상대방에 대한 원망(?)의 노래를 주로 들었습니다. 근데 그 노래들을 들었을때도 어느정도 먹먹함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제가 헤어지자고 했지만 먼저 질린 건 그녀였기에 인과관계로 따지면 제가 차인 입장(..)인지라.. 그런데 그 기분들이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제가 25년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이 저에게 흘러 들어왔으니까요. 그저 그런 노래들을 들으며 이틀동안은 그 것들을 즐겼습니다. 아. 수많은 이별중 하날 내가 겪고 있구나. 라는 사실이 좋았던 것도 있겠네요. 그렇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커플일기. 싸이월드 일촌, 전화번호를 삭제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들 해보는 헤어진 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위로도 받아보고 원망도 같이 해봤습니다. 이때 친구들에게 감사함을 느끼면서 아. 이 기분도 내가 이별을 하지 않았으면 느껴보지 못했겠지. 라고 생각이 드니 웃기게도 즐거웠습니다. 그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 그녀에게 조금의 감사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이별 뒤 그녀와의 추억을 생각하는 것 보다는 그동안 못했던 많은 것들을 하며 이별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젠 그녀가 뭘하는지 모르지만 아마 저처럼 자신의 일을 하며 저를 잊고 있곘지요. 단 하나 궁금한게 있다면 전 이번 이별에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았는데 그녀는 한번이라도 울었을까네요. 근데 솔직히 별로 울었을 것 같진 않아서 씁쓸합니다 흐.


그리고 1주가 지난 지금. 이제 모든 걸 털어낸 기분입니다. 그녀의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고, 원망의 기분도 사라졌습니다. 이별 노래를 들어도 예전같은 느낌이 나질 않네요. 이별 후에도 털어지지 않던 원망의 감정 때문에 아직도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나 생각했지만 이제야 벗어난 기분이 드네요. 이제야 사귀기 전 솔로의 행복을 느끼던 저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아직은 좀 더 이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녀와 있으면서 눈치를 보면서 해야 했던 LOL, 친구들과의 만남,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 그동안 쌓인 메탈 음악감상, 미뤄왔던 토익 공부(..)등등 많은 것들이 남았네요. 대학원 입학이 한달이 남은 이 시간동안 좀 더 이별을 즐겨보려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웃으며 그녀와 사귀었던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도 나름의 이별 즐기기가 아닐까요?

제가 피지알을 하는 걸 알았던 그녀기에 사실 이 글을 읽을까 두렵기도 하지만 어떻습니까. 이제 그녀의 눈치를 안보고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것도 저의 이별 즐기기가 되겠지요. 흐.

P.S 그래도 기왕이면 역시 최고는 여자친구가 피쟐하는 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은근 불편합니다 이거 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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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원숭이
12/01/29 02:42
수정 아이콘
저도 어제 헤어졌어요, 우리 조개구이에 소주한잔해요
12/01/29 03:04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읽으면서 뻘 생각이 들더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까지 이별을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도 사랑하는 지금 이 사람과 이별할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이별을 경험해보고 싶기도 합니다. 그녀가 싫어서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슬픔을 한번 경험해보고 싶었거든요.
크크 그런데 만약 이별한다면 글쓴이와 비슷할 것 같네요. 막상 그 이별 느낌이란거 한 1주일 즐기고 마는...이별을 위한 이별은 안해야겠습니다.
12/01/29 04:10
수정 아이콘
글 잘 봤습니다. 어디에서 읽었는진 모르겠지만 1월엔 많이들 이별하신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도 몇일전 솔로복귀 했습니다.
저도 헤븐리님 처럼 비슷한 상황에 처해졌었고 또 비슷하게 이별준비를 하고 헤어져서 와닿는 말이 참 많네요
저희는 장거리 연애여서 시간이 나면 꼭 보자는 주의 였지만 2~3주간 서로 일이다 뭐다 안좋은 일을 겪게 되면서 소홀해지고 아니나 다를까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더군요

먼저 헤어지자고도 해봤고 헤어지잔 소리도 들어봤고 어떤 종류의 이별이든 먹먹해지는건 사실이고 또 얻는것도 있는거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없는게 제일 좋은것이고 또 이별을 하였다고 해도 다음에 있을 연애에 대한 초석이라고 생각하고 억지로 추스리고 일어나는 편이 마음이 편하더군요 그리고 장거리 연애 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 하시단걸 느꼈습니다. 하기전엔 쉽게 봤는데 여간 어려운게 아니더라구요

무튼 저도 조개구이에 소주 한잔 해야겠습니다
EternalSunshine
12/01/29 04:12
수정 아이콘
힘내셔요. 전 그저께 헤어진지 3년된 사람이 꿈에 나왔는데 꿈에서도 마지막때처럼 굉장히 쌀쌀 맞더군요. 할말이 뭐냐는 말에 한참을 망설이다 그냥 행복하라고 했더니 그제야 눈을 마주치고 갑자기 다정해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질려하며 잠에서 깼죠. 한때 정말정말 사랑했지만 지금은 아무 감정도 없고 유감도 없고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됐고 그런 사실조차 아무렇지 않은데도, 일어나고선 참 슬프고 씁쓸하고 그랬습니다. 오래 전 그때 제 자신을 부정당했던 느낌을 다시 상기하게 된 것 같아 그날은 종일 마음이 안좋았어요. 불편했고.

저는 꿈에 나온 그분과 헤어진 후 한달동안은 정말 매일같이 울기만 했고 그 좋아하는 술을 술먹고 전화할까봐 석 달을 끊었었어요. 그후로도 1년 반 가까이 힘들어했는데 헤븐리님은 씩씩하게 이별을 이겨내고 계신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아프건 확실한 건 지나고 나면 인생의 큰 자양분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이별의 터널을 지나온 나는, 이전보다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 저는 그 긴긴 터널을 지나며 거의 모든 종류의 감정을 다 곱씹게 되는 기회를 가졌고, 다시 하라면 절대 하지 못할 그 시간들에 감사하곤 합니다. 슬픔을 즐기셔요. 그리고 즐기는만큼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하셔요. 부디 힘든 이별이 헤븐리님의 삶에 약이 되기를.
평행선
12/01/29 12:12
수정 아이콘
어제 헤어졌네요. 저도 첫 연애였고요. 같이 즐겨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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