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2/01/27 12:54:29
Name Owen
File #1 보고만~2.jpg (0 Byte), Download : 55
Subject [일반]  보고만 있어도 준내 행복하다


삼겹살은 맛있다. 소주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그래서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그러다 보면 술만 먹게 된다.
소주만 먹으면 괜찮다. 섞어먹지만 않으면 괜찮다. 중간에 물도 마셔주면 더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에서 깜박 잠이 들었다. 일어나보니 내려야 할 정거장에서 두 정거장 더 온 역이었다. 취한 김에 반대로 탈 생각을 못하고 지하철 역을 나가 버스정류장에 섰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했다. 환승 메시지가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이름이 들렸다. 맨 뒷자석에 친구놈들이 있다. 오랜만이다. 반갑다.

집까지는 15분 정도 걸렸다. 어머니와 동생은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을 꺼내어 켰다. 목이 말랐다. 귤이 먹고 싶었다. 베란다 문을 열었다. 지금 날씨와 잘 어울리는 색의 캔. 맥주 5개가 있었다. 차가웠다. 섞어먹지만 않으면 괜찮다. 섞어먹지만 않으면 괜찮다...

집 안이 부산하다. 동생의 다녀오겠단 인사 소리, 드라이기 소리.
핸드폰 화면을 켜 보았다. 배터리가 7%다. 8시다. 숙취가 올라온다. 눈을 감았다.

전화기 소리가 들린다. 핸드폰은 아니다. 집 전화는 사용을 잘 안하는데. 아무도 없나, 왜 전화를 안받지. 전화기 소리가 멈췄다. 눈을 감았다.

전화기 소리가 들린다. 아까랑 같은 소리다. 몸을 일으키는데 끄응 소리가 났다. 아버지였다.

‘어... 집에 있었냐’
‘핸드폰을 잊어서 말이지’
‘혹시 가져다 줄 수 있냐 아빠가 좀 바쁜데’

아버지는 사업이 어려워질 수록 나를 어려워 하신다.

예전 ‘지식e’ 에서 아버지에 관한 주제로 된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글귀가 생각난다.
‘아버지들의 슬픈 착각’.. 마음이 뭉클했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난 또 쌀쌀 맞아진다.
자주 가는 유머게시판이 두 군데가 있다. 눈을 끄는 제목이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준내 행복하다’

서글픈 피아노 소리와 함께 나타난 것은 한 아이와, 그 아버지가 담긴 사진이었다. 사진의 귀퉁이에 적힌 숫자들로 언제 찍은 사진인지 알 수 있었다. 아이는 빵을 먹고 있었다. 그 탱탱한 볼안에 가득채우고도 모자랐는지 빵이 입 밖으로 한껏 삐져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주름 가득한 아버지. 굳게 닫힌 입술의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누웠던 몸을 일으켜 컴퓨터를 켰다. 아버지 회사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전화번호는 대부분 나와있지 않았고, 나와도 이전 번호였다. 아버지 핸드폰을 열어 회사번호를 찾아보았다.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다시 구글링을 하였지만 역시 실패하였고, 아까 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어 보았다. 어느 여직원이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여기 사장님 집인데, 혹시 사장님 계신가요?’
‘아.. 핸드폰 가지러 가셨는데.’

아빠가 좀 바쁜데.. 아빠가 좀 바쁜데..

아버지 핸드폰 속 문자는 온통 돈 얘기 뿐이었다.
머리를 감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궁색맞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미안해. 다음에는 가져다 줄게.’

나는 사랑한단 말도, 전화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조금 따뜻해지려 한다.














제목과 글 내용안에 표준어가 아닌 단어가 있는 점 사과드립니다.
사진과 글 분위기상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어울릴 듯 하여 그렇게 올려보았습니다.
문제시 자삭 혹은 수정하겠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피렌체
12/01/27 14:14
수정 아이콘
아....
좋은글이네요
12/01/27 14:25
수정 아이콘
잘읽었습니다. [m]
내사랑 복남
12/01/27 14:27
수정 아이콘
글도 좋고 사진도 흐뭇하네요^^ 효도합시당~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34956 [일반]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보시나요? [9] 브릿덕후4814 12/01/28 4814 0
34954 [일반] 가장 좋아하는 마이클 잭슨 뮤직비디오 TOP 5 [20] Absinthe 5280 12/01/28 5280 0
34953 [일반] [축구] FC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의 미드필더 <백승호> 선수를 소개합니다.. [20] k`6683 12/01/28 6683 0
34952 [일반] 호주오픈도 이제 남녀 결승만 남았군요 [11] 사상의 지평선3725 12/01/28 3725 0
34951 [일반] SK 맷값 폭행 처리검사, SK전무로 '취직' [38] 알킬칼켈콜7940 12/01/28 7940 0
34950 [일반] UFO에 관한 설득력 있는 주장 [74] ArcanumToss6320 12/01/28 6320 0
34949 [일반] 안 좋은일이 매주 계속 되고 있네요 ㅠ_ㅠ [27] Eva0105793 12/01/28 5793 0
34948 [일반] 내가 사랑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 [45] 왼손잡이6746 12/01/28 6746 0
34947 [일반] [프야매] MVP는 누가 탔을까요? (퀴즈 정답 공개~) [50] 리콜한방3784 12/01/28 3784 0
34946 [일반] 대몽항쟁 2부 - 4. 외침보다 중요했던 것은... [6] 눈시BBver.24927 12/01/28 4927 1
34944 [일반] 뉴스타파 1회가 업로드되었습니다. [12] RedSkai6473 12/01/28 6473 0
34943 [일반] 강용석 BBK 폭로하겠다->강용석의원이 사실무근이라고 합니다 [44] 아즐7261 12/01/28 7261 0
34942 [일반] '테리우스' 안정환, 은퇴 [54] 반니스텔루이7708 12/01/27 7708 0
34941 [일반] 밑에 사교육의 팽창글과 관련해서 ..... [20] 다음세기3756 12/01/27 3756 0
34940 [일반] 돼지갈비 [16] AttackDDang5463 12/01/27 5463 0
34939 [일반] 프랜차이즈 싫어하시나요? [41] 로렌스6189 12/01/27 6189 0
34938 [일반] 사교육 잡는다더니,이제는 전국민이 다 사교육 받는 나라 [59] 無의미6479 12/01/27 6479 0
34937 [일반] 최시중 방통위원장 사퇴발표 [25] New)Type4986 12/01/27 4986 0
34936 [일반] 군대 이야기를 하는 이유 [17] 삭제됨5132 12/01/27 5132 0
34935 [일반] 어제 하이킥...크크 크리스탈 뿜었네요 [37] 다음세기7023 12/01/27 7023 2
34934 [일반] 우리나라 대표 번화가들 [81] 김치찌개10197 12/01/27 10197 0
34933 [일반] 마눌님의 일본 번역 (8) - 사랑하는 그녀에게 질려버린 순간 후편 [13] 중년의 럴커4280 12/01/27 4280 0
34932 [일반] 첫 휴가를 나왔습니다. [29] 기차를 타고3666 12/01/27 3666 0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