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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2/01/02 01:04:54
Name 격수의여명
Subject [일반] 학교 폭력?
<Blind Sight>라는 심리학 책이었다. 집이었고. 어머니가 책을 던져버렸다. “너 고등학생 돼서도 이렇게 공부할 꺼야?”. “그러다가 따까리 대학밖에 못 간다.” 중간고사가 한 달 남은 시점이었다. 이때가 계속 생각나는 걸 보면 은근 트라우마였나 보다. 그 후로 쳤던 시험에서 나는 전교 1등을 했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이었다>. “요건 수능 끝나고 읽어도 되지 않겠니.” 여름방학 말이었나? 2학기 초였나? 해는 보이지 않고 하늘이 새파랗던 날이었다. 나는 교장선생님의 눈앞에서 예예 했다. 그대로 야자실에서 그 책을 다 읽었다. 그때 내 내신 성적은 전교 세 손가락 안에서 놀았다. 약간의 일탈.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중2인 그 친구는 책을 읽지 않는다. 나는 심리학과에 사회의식이 있는 대학생으로 컸다. 키는 아직 작지만 체격이 튼튼하다. 예의가 바르다. 때로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면 문제를 잘 풀지 못한다. 그럴 때면 나도 짜증난다. 좀 갈구고 난 뒷면(“나 군대 갔다가 오면 넌 경상북도에서 열심히 대학을 다니고 있겠지.” “아이고, 형. 그러지 마세요.”, 혹은 “너 도대체 하는 게 없니? 그만둘까?” “.......”) 자괴감이 나를 덮친다.

요즘 중학생 유서가 공개되고 왕따 사건이 자주 회자된다. 나도 초등학교 말과 중학교 초까지 괴롭힘 당했던 기억이 있다. 고2때도 한 친구가 괴롭힘 끝에 전학가는 걸 막지 못했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지만 결코 그 순간 그 울분과 그 분노를 잊지 않았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넓어진 시야로 다르게 대처하겠지만, 결코 겪어볼만한 경험이라 합리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더 큰 폭력을 보아왔다. 그 폭력에 대한 내면화가 내 안에 존재하는 것도 느낀다. 이는 직접적이고 큰 아픔은 아니다. 그러나 나를 잘라버리고, 나를 지루하게 만들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지루하게 만든 그 폭력을 나는 기억한다. 그러나 이 폭력은 더 뿌리 깊고, 더 잘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은 분노하지 않는다. 분노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대중의 ‘Blind Sight'.

이를 구제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인간을 바로 보아야 한다. 학생을 단순히 함수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f(x(정책))=y1, y2, ..., yn (각 학생들의 성적). 그리고 y1부터 yn까지의 ‘줄세우기’를 교육이라 이해해서도 안 된다. 교육에서 나오는 모든 트러블은, ‘줄세우기’를 위해 없애야 하는 ‘불순물’이 아니라, ‘배움과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체벌금지와 체벌허용의 사이에서 추만 왔다갔다하는 게 아니라(‘오장풍’이 나오면 체벌금지, ‘학생자살’이 벌어지면 체벌허용이나 청소년 사법 강화?) 민주주의와 배움의 의미, 정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글을 쓰면서도 가능성을 의심한다. 이런 소리쯤이야 “전교조 빨갱이” “가해자 인권 따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같은 각다귀소리에 휩쓸려 가겠지.

‘수레바퀴’는 언젠가 굴러갈까? 벽은 때로 너무나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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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1/02 02:00
수정 아이콘
삐걱거리고 덜컹거려도 굴러야 함을 아는 이들이 많으면 구르지 않을까요. 뒤에서 미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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