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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1/05/06 16:19:36
Name 눈시B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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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정유재란 - 4. 군인은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이다





ost는 태극기 휘날리며 ost입니다.
명량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네요. 휴... 두 개로 나눠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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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산 전투
저번 편에 못 다 한 얘기부터 마무리 지어야겠습니다.

이 때 조정의 상황은 정말 훈훈했습니다. 명군이 증원될 때마다 꼬박꼬박 찾아가서 인사하고 다니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대간들은 왕자 등이 피난 가는 걸 철회해 달라고 하고, 왕은 대신들이 가족 피난시키는 걸 욕 하고... 수령과 무관들은 전투는커녕 관직을 받는 걸 피해서 숨으려고 하고 조정에서는 또 뜬금 없이 한산에서 도망친 장수들을 죽이라고 하질 않나 -_-; 그 사이에 공주에서는 한명련이 작은 전공을 올렸다는 보고가 들어오고 강동에서 전 부사 조호익이 의병을 일으켰다는 보고도 들어오죠. 아직 조선군의 항전 의지는 꺾이지 않았던 듯 합니다. 하지만 적은 너무 많았고, 조선 조정은 과연 어땠을지...

이런 상황에서 양호는 양원과 진우충을 체포하고 적이 충청도에 들어섰다는 보고를 받은 후 명군을 출동시킵니다. 이 때의 병력은 해생을 대장으로 한 파귀, 파새, 양등산 등의 기병 4천이었습니다. 이들과 일본군 선봉 구로다군이 만난 곳은 천안의 북쪽 직산이었습니다. 선공은 구로다군의 조총 사격이었습니다.

명군의 병력은 해생 휘하 파귀, 우백영, 양등산의 철기병 이천이었습니다. 이에 맞선 구로다군의 선봉은 구로다 주소노스케와 구리야마 도시야스. 구로다군의 총 병력이 사오천 수준인 것을 생각하면 선봉은 많아도 천이 안 되었겠죠. 이들은 명군이 풍뎅이 같은 갑옷을 입었으며 엄청난 돌격을 감행해서 위기에 처했다고 하죠. 이런 점으로 이 명군의 선봉은 철기병이었다고 추측됩니다. 일본에서는 물론 임진왜란 중에도 볼 수 없었던 이 장대한 돌격, 여기까지 분위기는 정말 좋았겠습니다만...

구로다와 사이가 안 좋았지만 일단 부하였던 고토 마타베에가 후방에서 흙먼지를 일으키고 많은 깃발을 들고 소리를 질러서 구로다군 본대가 도착한 척 했습니다. 이에 명군은 적을 전멸시키지 못 합니다. 구로다군으로서는 최악의 위기를 넘긴 것이었고, 명군 역시 최고의 기회를 놓친 것이었습니다. 구로다 나가마사가 직접 야산에 올라 이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얼마나 떨렸을까요.
결국 구로다군 본대가 오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됩니다. 명군 역시 파새와 이익교, 유우절이 이끄는 기병 이천이 도착하면서 양군은 비슷하게 되구요. 명군은 100% 기병이었습니다. 명군은 여러 차례 공격을 감행했지만, 구로다군은 무너지지 않았고 뒤이어 달려온 모리군이 명군의 측면을 공격하면서 명군은 수원으로 후퇴하고 일본군도 천안으로 후퇴합니다.

2. 직산 전투 이후
조정에 직산 전투에 대한 소식이 들어온 것은 8일이었습니다. 이 때는 적을 무찌른 말 그대로의 대승이라는 거였죠.
하지만 9일 제독 접반사 장운익의 보고에서는 교전하다가 적을 많이 죽였지만 아군 피해도 커서 수원에서 야영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10일에는 왕이 마귀를 접견하면서 내전의 피난을 도와 준 것을 사례합니다. 마귀는 적을 다 쓸어버리러 왔느니 하면서 큰 소리 치죠. 이어서 이방춘을 만나러 가는데 그 역시 부산포까지 쓸어버리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다느니 하면서 호언장담합니다.
하지만...
11일에는 적이 다가와서 도성이 텅 비고 각 사의 하인들이 열명 중 한 명도 남지 않아서 각 도의 병력을 모아 창고를 지키게 하자는 건의가 올라옵니다. 이 날 경기 방어사 유염이 무한 산성에서 창고를 불태우고 도주했다는 보고가 올라오고, 양호가 수원에 간다는 말을 듣자 선조가 급히 따라가려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이게 피난 가는 것이 아님을 설명"하라고 지시합니다. 같은 날 양호가 왜 양원을 감싸냐며 질책하는 말이 들어오기도 하고 양호가 철수할지도 모른다는 급보가 들어오죠.
12일에는 대신들이 양호가 수원으로 가는 것을 만류하자고 건의합니다. 전날의 말이 영향이 컸던 거죠. 이에 양호는 직접 동작진에서 서울을 지킬 거라고 장담합니다.
13일에는 하인들이 도망가서 큰 가마 말고 작은 가마인 소여를 타고 거동할 것을 선조에게 건의합니다. 한강 방어를 위해 경기 수군을 한강에 투입할 것이 얘기되고 권율에게 죽산과 안성 방어를 할 것이 논의되기도 했죠.

이상이 직산 전투 이후에 나타난 조정의 모습입니다. 적과 교전한 것까지는 맞는데, 그 후에도 적의 한양 공세에 대한 위협은 그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조정은 여전히 패닉 상태에 빠진 게 보이죠. 당대부터 현대까지 직산 대첩이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의 퇴각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직산 전투의 결과입니다.

일본의 기록에서는 명군을 물리친 대승이라고 하면서 후에 명의 장수가 매를 보내면서 화친을 구걸했다느니 명군 장교를 하나 잡으니 오고 싶어서 온 게 아니라고 통행증을 주면 명으로 돌아가서 다시 오지 않겠다느니 하는 처량한 모습들이 보이죠.

글쎄요... -_-; 애초에 일본군의 북진에서 명은 압록강을 방어선으로 할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소수나마 직산에서 붙은 의의가 적지는 않죠. 하지만 양호가 철수한다는 말이 돌아서 직접 "서울을 지키겠다"고 장담해야 했다거나 하는 모습을 보면 이것이 과연 얼마나 큰 의의를 가질지는 의문입니다.
이 직산 전투의 의의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후에 다시 하기로 하겠습니다. 어쨌든 곧 있을 사건과 같이 얘기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확실한 건 직산 전투 이후에도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조정의 패닉은 계속되었다는 겁니다. 이런 아수라장은 적의 퇴각이 확인되는 9월 중순까지 계속됩니다.

이제 본 얘기를 시작해 보죠. 잠시 광고 들어가겠습니다.



"나 뿐인가? 아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3. 다만 속히 죽기만을 기다릴 다름이었다
뭔가 일본과 싸운 얘기하는데 일본 만화를 가지고 얘기하니 기분이 참 거시기하군요. 분위기를 잠시 업 시키려고 했습니다만... 힘들 듯 하네요. 계속 우울한 얘기만 해서 죄송해요. ㅠ

정유년의 일기는 4월 1일의 "맑음. 옥문을 나왔다"는 너무나도 간단한 말에서 시작됩니다.

그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요. 그가 한산도에서 원균과 교대해서 체포된 날은 2월 26일, 3월 4일에 투옥됩니다. 실록에서 찾을 수 있는 이순신의 죄는 세 가지, 임금을 기망한 죄, 적을 놓아준 죄, 남을 모함한 죄죠.
+) 이순신이나 임진왜란 관련 서적에서 죄가 네 가지라고 말하면 그 책은 바로 내려놓으실 것을 추천합니다. 이게 원균옹호론에서 해석 잘못한 걸 그대로 받아들인 거거든요. 원균옹호론의 유무로 그 책의 가치를 비교적 쉽게 가늠할 수 있어서 참 좋네요.

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 부분이죠.
"이렇게 허다한 죄상이 있고서는 법에 있어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니 율(律)을 상고하여 죽여야 마땅하다. 신하로서 임금을 속인 자는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므로 지금 형벌을 끝까지 시행하여 실정을 캐어내려 하는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대신들에게 하문하라."
(3월 13일)
다른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죽이라는 거였죠. 보통 국문한 기록이 중요하면 실록에 남는데 그런 게 아예 없습니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설혹 있다 하더라도 감히 나의 원균을 모함한 죄 정도겠죠. 류성룡조차도 이순신을 도울 수 없던 상황에서 당당히 맞선 것은 정탁이었습니다. 그 중 한 부분을 옮겨 보죠.

"이제 이모가 이미 한 번 형벌을 겪었는데, 만일 또 형벌을 하게 되면, 무서운 문초로 목숨을 보전하지 못 하여 혹시 성상의 호생하시는 본의를 상하게 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바입니다."

정탁은 이 상소문에서 선조의 말이 무조건 옳다고 하면서 이순신이 큰 죄를 지어서 죽어도 할 말이 없지만 부디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쪽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곳곳에 원균을 언급하면서 그 관련성을 강력하게 나타내었고 선조의 말을 따르는 척 하면서 그 죄를 하나하나 조심해서 반박하고 있죠.

"이제 이모는 사형을 받을 중죄를 지었으므로 죄명조차 극히 엄중함은 진실로 성상의 말씀과 같습니다. 이모도 또한 공론이 지극히 엄중하고 형벌 또한 무서워 생명을 보전할 가망이 없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은혜로운 하명으로써 문초를 덜어주셔서 그로 하여금 공로를 세워 스스로 보람 있게 하시면, 성상의 은혜를 천지부모와 같이 받들어 목숨을 걸고 갚으려는 마음이 반드시 저 명실 장군만 못지 않을 것입니다."

선조가 내건 죄명인 불충을 인정함과 동시에 이순신을 위함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살려야 된다는 반론, 이것이 이순신을 구해낸 것입니다.

그렇게 옥문을 나선 것이 97년 4월 1일, 정 2품 정헌대부에 삼도 수군 통제사에 올랐던 그가 모든 직급을 잃은 채 밖으로 나온 것이죠. 그보다 더한 것은 일생 동안 바쳤던 충을 부정당했다는 것일 겁니다.

그럼 이제부터 9월까지 그의 삶을 난중일기를 통해 재구성 해 보겠습니다.

슬픔과 고통 속에 백의종군이 시작됩니다. 이 날 아들들과 있다가 지사 윤자신, 비변랑 이순지가 찾아와서 위로하고 나중에는 입부 이순신도 와서 같이 술을 마십니다. 류성룡, 이정형, 김명원, 정탁 등도 종을 보내서 안부를 묻죠. 이순신이 죄가 없었다는 확실한 근거 중 하나입니다. 위로하기 위해 와서 술을 주는데 거절할 수가 없죠. 이 날 크게 취했다고 합니다.
"슬픔이 더해짐을 이길 수 없다"
이 날의 일기 중 한 대목입니다.

이후 그는 고향 아산으로 떠납니다. 5일에 도착한 아산, 전쟁 후 처음으로 돌아온 고향이었습니다. 이후 몇 일간은 친척과 동네 사람들이 위로해 주었다는 기록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동네 안 사람들이 각각 술병을 들고 와서 먼 길 떠나는 것을 위로하는 정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서 몹시 취하여 파했다. (중략) 나는 노래를 듣는데도 즐겁지 않았다."
9일자 일기의 한 대목입니다.

11일. 악몽을 꾸어서 아들들에게 얘기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려고 했죠. 가장 걱정인 것은 그의 어머님의 소식이었습니다. 임란 당시 좌수영 부근으로 모셔서 효도하려고 했으나 전쟁이 계속되고 통제영이 경상도로 가면서 오히려 제대로 모실 시간이 없어서 늘 한이 되었었죠. 아들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에 병을 얻으셨고, 옥에서 나오면서 아들을 만나러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
12일. 종으로부터 어머님의 소식이 들어오는데 다행히 무사히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죠. 하지만...
13일 마중하러 가는 길에 배는 오지 않았고, 저녁에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뛰쳐나가 가슴을 치고 날뒤었으나 하늘이 캄캄했다. 곧 해암으로 달려가니 배가 이미 와 있었다. 길에서 바라보며 슬픔으로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다 적을 수가 없다."

16일 "영구를 상여에 올려 본가로 돌아오며 마을을 바라보고 통곡하니 찢어지는 듯한 아픔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리오. (중략) 부르짖어 통곡하며 다만 속히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조선 시대에 상을 치르는 것은 삼 년이 걸리죠. 하지만 그가 어머니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채 몇 일이 되지 못 했습니다. 죄를 입은 몸으로 어서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죠.

19일 아산을 떠나기 전 어머니의 영전을 다시 들려서 하직을 고하고 통곡합니다.
"어찌하리오. 어찌하리오. 천지간에 나와 같은 사정이 어디에 있으리오. 어서 죽는 것만 같지 못 하다."

그렇게 이순신은 아산을 떠납니다.

4. 어째서 속히 죽지도 않는 것인가?

이후 그가 이동한 경로를 간단히 줄이면 이렇습니다.
20일 공주 -> 22일 전주 -> 24일 남원 -> 27일 순천
다행이었던 것은 이런 남행기간 동안 각 고을 수령들이 잘 대해 주고 근처에 살던 이들도 들려서 위로해 주었다는 거겠죠. 거기다 순천에 도착하자 철저한 원균의 심복이었던 우치적도 원균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그를 만나러 옵니다. 그의 부하였던 정사준도 와서 원균의 일을 전하죠. 다음 날에는 권율이 이순신의 소식을 듣고 군관을 보내서 위로합니다.

뭐 이런 게 그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을지는 의문이지만요. 이후 그는 순천에 계속 머뭅니다. 자질구레한 일들을 빼면, 일기는 슬픔과 원균에 대한 분노로 나누어집니다.

5월 3일 - 우치적이 찾아 왔다. 진흥국이 눈물을 뿌리며 원균의 일을 말했다. / 홀로 빈 동헌에 앉아 있으니 비통한 마음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4일 - 이날은 바로 어머님 생신이니 비통한 마음을 어찌 감당하랴. 닭이 울자 일어나 앉아 눈물만 줄줄 흘렸을 뿐이다.
5일 - 원유남이 한산도로부터 와서 원공의 충측하고 패악한 점을 많이 전하고, 일이 장차 어떻게 될지 측량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 곡하고 우는 것도 뜻대로 할 수 없으니 이 무슨 죄로 이런 갚음을 당하는가. 나와 같은 사정은 고금에 짝이 없을 것이니 슬픔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 하다.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이 한스러울 따름이다.

6일에는 꿈에 죽은 두 형을 만나 서로 붙들고 울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처지를 걱정해서 형님들이 위로해 주고 갔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비통함은 더 해질 뿐이었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그립고 비통한 마음에 눈물이 엉기어 피를 이루건만 하늘은 어찌 막막하여 내 사정을 살펴 주지 못 하는 것인가? 어째서 속히 죽지도 않는 것일까? / 저녁에 정명원이 한산도에서 돌아와 흉측한 사람의 하는 짓을 많이 이야기했다."

그나마 이 이후에는 슬프다는 내용이 적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추스린 듯 합니다.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소연하기 위해서인지 전달해 주는 게 나을 것 같아서인지 우치적부터 시작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원균의 말을 전합니다. 그 중에는 남의 처를 강간하려고 했던 것도 있고, 권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거나 수군에게 뇌물을 받아 집으로 돌려보내고 그 뇌물을 계속 서울에 바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을 모함하고 있다는 것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14일에는 순천을 떠납니다. 우치적은 노자를 보내 주고 떠나는 당일에 만나고 갑니다. 구례로 간 이후에는 배흥립도 와서 하루 자고 가기도 하죠.
+) 원균에게 많은 은혜를 받았고 나이에 비해 엄청난 출세를 한 우치적, 하지만 그의 마음은 늘 이순신에게 가 있었고 결국 이순신을 모시게 되죠. 이 둘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면 괜찮을 듯 하네요.

이후 그는 구례에서 한동안 머물다 하동, 진주, 합천으로 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진주 근처의 모여곡이라는 곳의 군사적 가치를 가늠해 보았다고 하네요. 아무리 아픔을 겪었다 하나 그의 마음은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5. 들려 오는 것마다 통곡이 나오는 것을 이길 수가 없다

6월 5일, 마침내 원수부가 있는 초계에 도착합니다. 초계 군수가 "달려 왔고" 중군 이덕필도 달려 와서 얘기를 나누었죠. 집을 잡고 방을 도배하고 구례와 하동에서 함께 온 종과 말을 돌려보냅니다. 8일에 드디어 권율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됩니다. 이 때 어릴 때의 친구인 서철이 합천에 살아서 보러 옵니다. 이후 심심하면 이순신을 찾아온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에는 적의 정세와 원균이 하는 짓이 많이 적혀 있습니다. 나중에 이를 평가하는 우리가 봐도 어이가 없는데, 자기가 힘들여 쌓은 수군의 상황이 저러니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한편으로 경상우병사 김응서와 권율의 갈등도 나타나 있습니다. 26일의 일기에 군관들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는데, 이 기록의 전말은 권율이 이순신을 오랫동안 모신 군관들을 붙여주려 하니 김응서가 막았고, 권율이 독촉하니 풀어줬는데 정작 이원익에게는 그 군관들이 싸우기 싫어서 원수부로 간 것처럼 보고했다고 하는군요. 권율은 당연히 노했고 이순신도 어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필 그 날이 어머님의 장례식을 언제로 할 지에 대한 편지가 온 날이었습니다.

25일에는 수군이 망하는 전조가 나타납니다. 이 날 안홍국의 전사를 듣습니다.
"놀랍고 슬픈 마음을 이기지 못 했다. 적을 하나도 잡지 못 하고 먼저 두 장수를 잃어 버렸으니 통탄스러움을 어찌 말하랴."

7월 7일, 꿈에서 원균을 만납니다. 음식상을 받는데 그가 윗자리에 앉자 원균이 기쁜 기색을 띄었다고 하죠. 호칭도 특별히 오랜만에 원공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무슨 의미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마침 수군이 마지막 출동을 했을 시점이었죠.
이 날 박영남이 원균의 잘못 때문에 대신 곤장을 맞기 위해 원수부로 왔다가 이순신을 만나고 갑니다. 그의 심정이 어땠을지 짐작할 순 있지만, 어떻게 말 해야 될 지 모르겠네요. 결국 수군은 출진했지만, 원균은 계속 권율과의 갈등을 일으키고만 있었습니다.

14일 조선 수군이 적을 쫓다 표류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다음 날에는 배 20여척이 또 패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죠.
"이 말을 들으니 분함을 이길 수가 없었다."
"패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통분할 노릇이다. 통제하고 방어할 방책이 없으니 매우 한스럽다"

16일에는 다대포에서 적선 8척을 격침시켰다는 소식고 함께 서생포에 표류한 아군의 생존자 세남에게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상륙해서 돌아가려고 하다가 전멸했다는 것이었죠.
"오게 된 것을 듣고 나니 참으로 놀랄 일이다. 우리나라가 믿는 것은 오직 수군 뿐인데, 수군이 이와 같으니 다시 바랄 것이 없다. 반복해서 생각할수록 분하여 가슴이 온통 찢어질 것만 같다."

그리고 18일, 마침내 그 소식을 듣게 되죠.
"다수가 해를 입어 수군이 대패했다고 하니 들려 오는 것마다 통곡이 나오는 것을 이에 이르렀으니 어찌하리오."

소식을 듣자마자 권율이 직접 와서 대책을 논의합니다. 하지만 무슨 수가 나올 리가 없죠. 새벽에 온 권율은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찌하리오"라는 말을 하면서 계속 돌아가는 말만 한 모양입니다. 오전 10시까지 별 다른 대책이 나올 수 없었죠. 결국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연해안 지방으로 가서 듣고 보고 한 뒤에 결정하겠다고 고했더니 원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했다."

이렇게 이순신은 담담하게 그 날의 일을 적고 있습니다.
일생 동안 바친 충성은 바로 그 임금에 의해 부정되고, 죽을 뻔한 위기에까지 몰렸습니다. 나라일에 매달리느라 신경 쓰지 못 했던 효는 결국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빈소조차도 몇 일도 못 지키는 큰 불효를 낳게 돼 버렸죠. 온 힘을 다 해서 키운 조선 수군은 이렇게 흩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가운데서도 그는 일어나서 남해 바다로 향했습니다. 권율은 결국 그걸 부탁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말 할 수 없었던 모양이구요. 그 때 그 누가 이순신에게 그런 무거운 짐을 짊어지울 수 있었을까요. 하지만 그는 그 짐을 거부하지 않고 스스로 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조선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다른 말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네요. 그저 김경진님이 임진왜란에서 쓰신 말을 다시 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군인은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바다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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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끊겠습니다. 도저히 한 편으로 다 얘기할 수 없을 거 같네요. 다음은 이순신이 수군을 다시 모아가는 과정을 다뤄보죠.

다음 편이 진짜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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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루
11/05/06 16:37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저 말을 볼 떄마다 눈물이 날려고 하내요..
그림자군
11/05/06 16:45
수정 아이콘
어떤 작가가 써도 저런 멘트는 못 쓰죠.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심금을 울린다는 게 이런거죠...
메밀국수밑힌자와사비
11/05/06 16:52
수정 아이콘
이런 걸 볼 때마다 이순신이 자살을 생각했다는 설이 괜한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평생의 목적으로 생각했던 것에 부정당하고, 부모님이며 자식이며 슬픈 방식으로 사별하니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모모리
11/05/06 17:21
수정 아이콘
현실은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아아 장군님 ㅠㅠ
양정인
11/05/06 18:16
수정 아이콘
피땀 흘려 만들어놓은 100척이 훌쩍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함대를 1/10 수준도 안되게 줄여버린 위대한(?)원균...
그 전력을 가지고 다시 나라를 지키겠다고 직접 나가는 이순신 장군...
11/05/06 18:33
수정 아이콘
충과 효가 최고의 덕목이였던 시대에 충은 부정 당하고 효는 최소한의 기회마저 잃어 버렸죠. 그동안 쌓은 공은 산산히 부서지고......
그분에게 남은 건 결국 백성이였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처럼 본인의 의지 혹은 능력과 상관없이 모든 걸 잃어 버릴 수 밖에 없는 힘없는 백성들, 그 백성들이 마지막 남은 그분의 버팀목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11/05/06 18:58
수정 아이콘
카이사르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등 명언이라고 할만한 말들이 많지만
역시 이순신장군이 최고죠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그한마디에 그분의 모든것이 현실과 미래가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ㅠ.ㅠ.
Je ne sais quoi
11/05/06 19:59
수정 아이콘
단지 계약 관계인 회사에서의 평가만으로도 사람이 그렇게 화가 날 수 있는 법인데 저런 경우라면 정말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지 짐작도 안 가네요. 그래도 그걸 이겨내셨으니 정말 더 대단합니다.
11/05/06 20:21
수정 아이콘
"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신의 몸의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저들이 우리를 가벼이 여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 또한,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지 않았을까요.
말도 안 되는 불가능한 전투 속에서, 절망속의 조선 수군이 가지고 있던 단 하나 붙들 수 있었던 실오라기는
바로 그들을 지휘하는 것이 이순신이었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는 일본 수군에서 오직 단 한가지 껄끄러운 것은
상대 지휘관이 이순신이었다는 것.

아직 울돌목에 나가기도 전이지만, 계속 이 말을 할수밖에 없네요.
deathknt
11/05/06 20:42
수정 아이콘
이겼던 전쟁 부정당해,
자신의 기반 다 날라가고,
부하와 재건 기반이 없는 상황인데,
어머니 상중이었으면 통제사 직위도 거절 할 수있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100명중 99명은 거절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11/05/06 21:45
수정 아이콘
로그인 잘 안하는 저도..
정말 그분 이야기가 나오니 글을 안남길수가 없군요..

잘은 모르지만..이건 동서고금 어디에 털어봐도 가장 완벽한 군인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눈시울이 붉어 지네요.

정말 이분 아니였으면 지금 일본말 하고 있을지도..ㅜ.ㅜ
휴..악몽같은 상황이군요.
"신에게는 열두척의 배가 있습니다...."
허허....
저같으면 에라... 선조..조선 좆까..
나안해..이랬을듯...^^
그..후..
11/05/06 21:50
수정 아이콘
음..눈시BB님 나빠요..
전 예고편에서 분명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라고 하시고선..
"여기서 끊겠습니다" 하시는건 인기 예능에서 보이는 낚시질(?)을 답습하시는............

제 짧은 지식으로 칠천량패전 이후에 이순신 장군께서 백의종군 하신걸로 알고 있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군요..^^;;;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행한다는 것.......
구국강철대오
11/05/06 21:54
수정 아이콘
저같은 역덕에게는 사실 명량해전 보다는 이후 명량까지의 수군재건과정과 특히 명량이 끝나고 무에서 함대를 창조하는 기적의 생산력에 대한 디테일이 더욱 궁금합니다.
무리수마자용
11/05/06 23:20
수정 아이콘
백전불태의 명장으로 멸망위기의 나라를 구하고
말도 안되는 모함으로 하루아침에 수군 총사령관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떨어지고
그 사이에 어머니가 죽고 고문당하고 충성한 나라에게 버림받고
힘들여 일궈놓은 군대를 후임자가 다 말아먹어버리고
분연히 전멸수준의 군대를 이용해 기적가 같은 역전승을 일궈내고
물러나는 적의 마지막을 쫒다 장렬히 전사
영화여도 억지스럽다고 할 스토리에 그런 주인공의 심정을 적은 일기까지


제가 김태희랑 사귀는 게 더 현실적일법한 한 편의 스토리네요. 오늘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이전 세상 돌아가는 일도 영화보다 더 영화같아서 어이가 없을 따름입니다. 이야기나 영화로 각색하면 오히려 극적인 맛이 죽어버릴 정도니 크크크크 [m]
Surrender
11/05/07 03:01
수정 아이콘
글 항상 잘보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요청(부탁)이 있는데..혹시 바쁘시지 않다면 조금이라도 들어주실 수 있으실지..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에 명나라 장수들이나, 조선 장수들, 신하들, 선조나 광해군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반응이 항상 궁금했습니다.
구체적인 언급이나 예가 있다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는 건 명나라 진린 제독이 통곡했다는 것 정도 뿐이거든요.
짤막한 구절이라도 괜찮습니다. 다만 성웅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어떻게 통곡해했으며 얼마나 많은 이가 안타까워 했는지 궁금합니다.
11/05/07 09:23
수정 아이콘
아.. 진짜 너무 슬프네요.
진주성 2차 전투 때도 마음이 먹먹했는데,
이번 편도 정말 만만치 않은 거 같습니다.

게다가 한 개인의 너무 처절한 비극이다보니 더 슬프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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