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처음으로 아이 때문에 펑펑 울었습니다.
아기가 태어났을 때는 뭐 사실은 그냥 얼떨떨하고 제 품에 안겨줬을 땐 이게 내 애가 맞나? 얼굴이 쭈글쭈글하네? 보면 눈물이 난다는데 아무 감정이 안 드네 생각보다는?
의외로 이런 생각 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 당시의 저는 아내로 머리가 가득 차서 아내가 무사한 지에 대한 걱정 밖에 없어서 애기는 뒷전이었고
출산 후의 아내가 수술 후에 덜덜 떠는 걸 보고 너무 안쓰러워 보여서 펑펑 울었던 기억 밖에 없습니다. 그마저도 아내가 마취 풀린 직후라
본인은 전혀 그런 기억이 없고, 저는 퉁퉁 부어 있는 아내의 압박 스타킹을 손을 덜덜 떨면서 신기고, 너무 춥다는 말에 간호사만 찾아 다니던 기억 밖에 없습니다.
그 이후에도 저에게 있어, 딸임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생각보다 귀엽지 않았습니다. 그냥 마치 제 지인 말을 빌리자면 어떤 크리쳐 같았다? 그냥 본인 욕망에 충실해서 마음에 안 들면 울고, 배고프면 울고 뭐 하나라도 불편하면 찡찡 대고, 또 말은 못해? 보호 해줘야 할 건 같은데 그냥 짜증 나고 귀찮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어릴 때부터 잠을 푹 자야 하는 스타일이고, 나이가 든 현재에도 중요한 일정이 아니면 웬만하면 알람을 안 맞추고 푹 쉬어서 눈 떠질 때 깨야 되는 사람 인지라, 애가 울어서 깨면 극도의 짜증 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가 아이를 돌보지 않으면 몸도 약한 아내가 몸을 갈아 넣어야 하며, 그리고 애한테 뭐라고 하면 제 자신이 인간 이하가 되는 것 같아서 참으면서 오밤중, 혹은 이른 새벽에 애가 울면 억지로 애를 달래거나, 기저귀를 갈거나, 분유를 주곤 했습니다.
한 번은 애가 우는 걸 보고 너무 짜증이 나서 젖병을 쑤셔 넣었더니 더 서러워서 엉엉 우는 걸 보고 아... 내가 지금 사고도 못하는 애에게 짜증을 내는 건가? 하고 심한 죄책감에 미안함을 느껴 그 이후로 애한테 그런 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 했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에서도, 사실은 보통 저녁에 항상 제가 씻기기 때문에 제 바쁜 일정에 걸림돌이 되고, 개인 시간을 저해하며, 아내와 저의 시간을 방해하는, 하지만 돌봄이 필요한 건 어떻게 생각 해봐도 사실이니 억지로 가면을 쓰고 행동하던 나날들이 계속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아이를 돌보느라, 제 업무에 차질이 생겨, 제 직장 내 퍼포먼스도 급격히 저하되는 와중 이었구요.
그런데, 오늘 늦게 집에 들어오고 바로 아이를 씻기는 시간이 되어 아... 집에 오자마자 벌써 씻길 시간 하아......... 하고 기계적으로 아이를 씻기고 있었는데,
평소와 다르게 갑자기 아이가 펑펑 울기 시작 했습니다. 아니 아 얘가 도대체 또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울지? 피곤해 죽겠는데 아씨 오늘도 달래다가 저녁 다 가겠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겉으로는 아이를 우쭈쭈하며 살살 달래던 와중.
젖병? 아니었습니다. 기저귀? 씻기고 있었으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엄마 품? 엄마한테 안기니까 더 펑펑 울었습니다. 아닙니다. 자고 싶나? 침대에 눕히니 비명비명을 지릅니다.
언제 괜찮았냐? 제가 안았을 때. 오로지. 제가 안았을 때만 애가 울음을 다그치고, 그마저도 서러워서 펑펑 울었습니다.
물론 제가 평소에 틈이 나면 안아주고, 가끔씩 보면 웃어주고, 나름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했습니다만, 저는 주 양육자인 엄마에 비해서는
정말 손톱 만큼도 더 나은 점이 없고, 많이 못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가 저랑 보낸 시간이 부족했다고 펑펑 서럽게 울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제 생각엔 제가 해준 것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나를 사랑해준다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점, 그리고 내 주관적으로는 아이에게 크게 잘해주고 있다는 체감이 전혀 없는 점들이 복합적으로 다가와서 말로 표현 못 할 감정이 갑자기 북받쳐 올라 아이를 안고 있는 와중에 눈물이 줄줄 흐르더군요.
그걸 보자마자 와이프가 득달같이 놀리려고 달려들어서 영상을 찍기에 바로 도망 다녔지만, 이 아이를 기른 이후로 개인적으로는 아이 덕분에 울고, 고맙고, 행복하단 감정을 가진 첫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이래서 아이를 키우라고 하는구나....'를 느끼게 되더군요.
뭐 제가 피지알에 글을 쓰는 편은 아닙니다만.. 제가 이런 부끄러운 감회를 익명으로 나눌 커뮤니티는 저에게 있어 피지알 밖에 없기에.. 치기 어린 시절 스타글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자유 게시판에 제 소회를 남겨 봅니다.
저는 항상 제 마음 속에서 할 건 의무적으로 해주지만, 이성적으로는 제가 극한의 딸천재라고 생각 했었으나, 오늘부터 딸병X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큰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