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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9/08 19:53
그렇죠 사실 보통 오이디푸스를 비유로 드는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필연성을 들면서 비유하는게 정석이긴 하죠. 그래도 보통 신선한 해석은 재밌긴 해요
25/09/08 20:12
운명의 필연성은 이야기의 내용이라기보다는, 형식에 가까운 것 아닐까 싶어요. 이 얘기 저 얘기에 다 들어간 것이니, 그 작품의 본질적 내용은 아닌 것 같거든요.
25/09/08 20:45
번개맞은씨앗님 기준으로 보면 오이디푸스는 정보를 알지 못해서라기 보다는 제대로 알지 못해서 겠죠.
자신의 운명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랑 결혼한다는 건데, 그 예언을 알고 양부모를 떠나죠. 그리고 여행 도중에 누군가를 죽이고 스핑크스의 문제를 풀어서 테베의 영웅이 됩니다. 그리고 테베의 왕이 없는 상황에서 참주가 됩니다. 참주는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1인 통치자가 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도 참주 오이디푸스라고 하죠. 이때는 중립적인 의미로 봐야 합니다.(이 비극이 상연될 때는 대부분 나쁜 의미로 쓰였지만요) 테베의 역병의 원인이 된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의 눈을 멀게 하겠다고 했을 때나 그 원인이 사회풍속을 어긴, 일종의 휘브리스의 범죄(보통 오만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기존의 질서를 해치는 행위 일반으로 살인이나 신을 부정하는 행위, 불륜 같은 것), 구체적으로 테베의 전대 왕을 죽인 자 등으로 부정한 사람이 어떤 자인지 좁혀져 올 때도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그 부정한 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죠. 당시 그리스 사회-아마도 그 시기의 대부분이-는 부정한 자가 폴리스의 타락이나 역병,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것에 대비해 '희생양'을 아예 따로 준비해 두었죠. 불구자 등 사람이 그에 해당되기도 했고, 양 같은 동물로 대신하기도 했죠. 소포클레스 작품의 경우 오이디푸스가 친아버지를 죽인 범인인지는 명확하게 기술되지 않아요.(하지만 오이디푸스 신화는 관객들이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오이디푸스가 범인이라고 생각했을 거긴 합니다) 그래서 후대의 평론가들 중에는 오이디푸스의 잘못을 '성급함' 같은 성질에 국한시키기도 합니다.-어머니와의 결혼은 참주(왕)이 되기 위한 과정 중 일부지, 그걸 오이디푸스의 잘못이라고 보기 힘드니. 스핑크스의 문제의 답도 사실 '인간'이 아니라 '오이디푸스'라고 하는 견해도 있죠. 저녁에 세 개의 발로 걷는 것은 눈이 멀어서 지팡이를 짚는 것을 뜻한다고 보기도 하죠. 고전은 다양하게 읽히고 해석되는 것이니...
25/09/08 21:04
신선한 해석이네요. 근데 거울이 관념이라는 말은 조금 이해하기 어려웠네요. 직접 보는 게 아니라 관념적으로(추상적으로) 보았다는 말이겠죠?
25/09/08 21:16
네 그렇게 생각해요. 위 이야기에서는, 혐오의 대상이 악한 존재로 그려졌지만, 우리들 삶에서는 악하지 않은데, 겉으로 보이는 것들로 인해 혐오가 일어나기도 하잖아요. 그때 그 혐오를 극복하는 방법은 관념일 거란 거죠.
이를테면 '인간은 누구나 존중받아야 한다.' — 이것은 관념이죠. 이미지, 소리, 냄새 — 이런 것들이 혐오를 자극하더라도, 인간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할 때, 인간이란 관념을 써서 본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를 방패 즉 거울에 매칭해서 생각할 수 있겠고요. 물론 거꾸로 관념에 의해 혐오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지 않냐는 반문이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그러나 고대 기준으로 보면, 우려해야 할 것은 주로 감각에 의해 일어나는 혐오였겠죠. 뭐 여담이지만, 연의 기준으로, 삼국지에서 조조가 통일을 할 기회가 있었거든요. 익주의 장송이 지도를 들고 조조를 찾아갔죠. 익주를 갖다 바칠 셈이었던 거죠. 그런데 장송의 외모가 추하여, 조조가 박대를 했고, 그 결과 장송은 조조 대신 유비에게 익주를 바쳤죠. 그 똑똑한 조조도 감각적 혐오를 극복하지 못하고, 일을 그르친 거죠. 조조가 그대로 익주를 취했다면, 조조 생전에 통일할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해요.
25/09/08 22:17
고전 시대 + 그리스 콤보를 맞은 비극이잖아요. 너무 현대적인 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
저 이야기의 틀 안에서 정보를 아느냐 모르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 오이디푸스는 그렇게 될 운명이었으니까요. 어떤 인간도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고전 시대에는 전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관념이었고, 그리스인들은 유독 더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죠. 아버지가 아버지인 걸 알았다고 한들, 어떤 식으로든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살해했을 것이고, 어머니가 어머니인 걸 알았다고 한들, 어떤 식으로든 오이디푸스는 어머니를 아내로 맞았을 겁니다. 그가 얼마나 똑똑하든, 얼마나 대단한 영웅이든 간에요. 그렇게 되어 있는 이야기고, 그렇게 되어 있는 세계관이니까요. 사실 이 이야기는 애초에 오이디푸스에 관한 이야기도 아닙니다. 아버지 라이오스 왕이 자신의 악행의 대가로 자신의 목숨과 아내를 모두 아들에게 빼았기는 운명을 맞았다는 거죠. human agency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훨씬 더 현대적인 관념입니다. 그 관념을 거울로 써서 과거를 보면, 옛 사람들의 행동이 무언가의 결핍으로 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쉽죠. 씨앗님은 여기서 정보가 결핍되어 있었다고 보셨겠지만, 그 자리에 넣을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할 겁니다. 아마도 앞으로 올 시대의 사람들은 다른 무언가를 거울로 써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보겠죠. 그들 중 누군가는 우리가 겪는/일으킨 문제를 무언가의 결핍에서 비롯됐다고 볼 거고요.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도 다음에 올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씨앗님의 해석을 거울로 써서 이런 관념을 분석해 보는 것도 재미 있겠네요.
+ 25/09/09 00:09
다양한 해석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닐까 싶어요. 제 생각에 그리스 신화는 그저 재미로 만들어진게 아니라, 무언가 근본적인 걸 깨달은게 있고, 그걸 전달하여 사람들이 이로워지도록 만들어진게 아닐까 싶거든요. 현명한 사람이라면 아무리 고대라 할지라도, 저 두 가지는 깨달았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아무리 똑똑해도 정보 부족으로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게 있다. 감각적인 혐오는 정신을 둔하게 만든다. 관념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 — 이건 특히 '고대 그리스'이기 때문에, 그럴 법한 것 같거든요. 마치 인사이드아웃처럼, 인간 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의인화하여 만든 신들이 있죠. 그리스에서는 철학 즉 관념적 사고와 관념적 소통이 활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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