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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6/11/08 12: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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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무엇이 그들을 구해줄 수 있는가 ..

요새들어 자주 나오는 이야기이자, 이번 프로리그 확대 건에 있어서도 가장 큰 반대 이유
중 하나가 된 이야기가 바로 경기의 "질적 하락" 입니다. 여기서 질적 하락은 게이머들이
게임을 건성건성(소위 말하는 발컨 -_-;)으로 해서 팬들을 허무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획
일화 된 게임 양상 이겠지요.

글쎄요, 저도 팬의 입장이기 때문에 질적 하락은 반기지 않습니다. 질적 하락으로 팬들
이 떠나게 된다면 이 판이 망하는건 순식간일테니까요. 하지만 E스포츠의 팬으로서, 그리
고 게이머들의 팬으로서 게이머들을 조금 옹호해 보려 합니다.

프로게이머는 프로를 떠나서 게임 자체가 그들의 생업입니다. 먹고 살 수단이죠. 그리고
그 생계수단은 게이머들의 승리와 직결됩니다. 내가 여기서 이겨야 먹고 살 수 있다, 는
생각이 그들의 생각이죠.

하지만 이 판의 팬들은 좀 다릅니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판은 팬들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조차 없다, 는 압박 아닌 압박을 게이머들에게 가하고 있습니다. 팬들은 게이머들이 재
밌는 경기를 해주기 바랍니다. 아니 어쩌면 몇몇(혹은 상당수)의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혹여 그 경기가 지루하더라도)" 경기에서 이겨주길 바라고,
나머지 선수들은 자신이 보고 즐길만큼 재밌는 경기를 펼쳐주길 바랍니다.

게이머들도 팬들의 의견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갈등합니다. 그들이 새로운 양
상을 펼치기 싫어서 기존 양상을 따라가는 것일까요. 새로운 양상이 "승리를 보장" 해 준
다면 너도나도 연구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이유는 역시나 승리를 위해선 "계속
해오던 최적의 방법"을 따라가는 것이 최적이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식으로 질적 하락이 초래되면 이 판이 망하는것도, 그리고 게이머들도 사라지는것도
시간문제라고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결국 게이머 손해겠죠. 하지만 문제는 과연 질적
하락을 막을(즉 새로운 경기 양상의 추구) 총대를 누가 짊어질 것이냐 하는거죠.

A선수는 매 경기 매번 하던대로 꽤 지루한 플레이를 합니다. 하지만 승률은 매우 좋습니
다. B선수는 매 경기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하며 기존 양상이 아닌 색다른 플레이를 많이
합니다. 그만큼 승률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A선수는 스타리그 우승을 하고 B선수는 이
판을 넓혀줍니다. 사람들은 누구를 더 많이 기억할까요. A는 우승자로, B는 그저 그런 재
밌는 플레이어, 심하게는 엽기 플레이어로도 까지 기억에 남을겁니다.

누구나 우승을 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이 판을 넓혀주고 그 판에서 다른사람이 우승하길
그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들은 심각하게 갈등할겁니다. "왜 내가 안정적인 전략으로 높은 승률을 거둬서 높은
자리에까지 올라가고도 이 판이 망할것을 걱정해야 하는가", 혹은 "왜 내가 재미있는 경
기를 펼쳐서 이 판의 수명을 연장시킴에도 불구하고 내 수명에 대해 걱정해야 하는가"

재미있는 경기가 꼭 승률이 낮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만일 새로운 양상이 나
와서 높은 승률을 거둔다 한들, 그 당시에는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내겠지만, 결국은 그
양상 조차 굳어갈 것이고 전혀 새로운것이 아닌 기존것이 되어 또다른 의미에서의 질적
하락을 초래하겠지요.

프로리그가 확대된다고 해서 더 많은 질적 하락이 초래된다거나 확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질적 하락이 감소된다거나 하진 않을겁니다. 프로리그가 일주일에 한번이든 두번이든 다
섯번이든, 선수들은 매일 연습을 합니다. 이미 수년간의 E스포츠 역사동안 많은 경기양
상이 나왔습니다. 선수들은 이미 다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상태입니다. 이제는 어떤 경기
양상이 나와도 "어 이건 XXX선수가 예전 어디에서 썼던~ "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하물며
승률이 얼마나 되는지, 상성 전략은 무엇인지까지 데이터가 좌르륵 나오죠. 이렇게 거의
모든 양상이 나온 상태에서 선수들은 그 중에 가장 안정적인 양상을 선택합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과연 누가 이 판의 확대를 위해 승률도 미지수인 새로운 양상 연구를 위해 기존
양상 연습을 소홀히 할까요. 하루는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는데 말이죠.

차라리 프로레슬링 처럼 각본이 있다면 선수들의 압박이 덜할까요. 지금처럼 승리와 재미
가운데서 갈등할 필요도 없을테니까요. 이판에서 선수들과 팬들은 언뜻 하나처럼 보이지
만, 서로 양보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신경전이 있습니다. 팬들은 끊임없이 재미있는 경기
를 외치고, 선수들은 어쨌든 내가 이겨야하는 경기를 해야합니다.

무엇이 그들을 구해줄 수 있을까요. 그동안 버팀목이라고 믿고 왔던 팬들도 그들과 큰
경계선을 그어놓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은 이제 무엇을 위해 싸워야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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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1/08 12:22
수정 아이콘
이 글을 보니까 수시아님의 추게글 Don't Cry Boxer 가 생각나네요.
새로운 것에 대한 콤플렉스...
프로게이머들도 많이 힘들겠지요.

그래도 자기 스타일이 있는 게 오히려 장기적으로 승률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타일 자체가 하나의 훼이크가 될 수 있으니까요.
임요환선수에게 다크 대비 제대로 하게 만들어놓고, 정작 결승전에서는 다크 쓰지 않고 이긴 오영종선수...
정석 전략을 쓰는 걸 뻔히 보고 있어도 상대 입장에선 왠지 불안한 임요환, 강민선수...
상대선수 입장에서는 보기만 해도 짜증이 밀려올 박용욱 선수의 프로브.

게임 세계에 부동산이 있는 것도 아닌 이상 ^^
low risk, low return입니다.
오히려 이겨야만 한다는 압박이 최고로 올라갔을 때의 경기들 중에
명경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요.
요컨대 승리와 재미가 꼭 별개는 아닌 것 같은 생각도 든다는 거지요. ^^
두 선수 모두 정말 독하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이기려고 하다 보면 재미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달까요.
두 선수 모두 안전빵으로 지지는 않으려고 할 때 재미가 따라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달려라
06/11/08 12:25
수정 아이콘
솔직히... 좀 이기기 위한 경기보다는 팬들을 즐겁게 할수있는 경기를 보았으면 하는군요 머 팬들의 입장에선 자기가 좋아하는 게이머가 이기는게 재밌고 즐거울수도 있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게이머가 지더라도 정말 재밌는경기가 많이 나온다면 그거만으로 즐겁게 스타 중계를 볼수 있지 않을까요.... 머 흔히 축구에서 말하는 좋아하는 팀이 1:0 이기는 상태에서 지키는 수비적인 축구보다는 정말 치열한 공방전이 있는 그래도 잘싸웠으나 아쉽게 2:3으로 지는경기가 훨신 재미있듯이 말입니다!
06/11/08 12:33
수정 아이콘
저도 달려라님 말에 동감해요. 요즘 대부분의 선수들이 이기기 위한 경기를 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쉽습니다. 임요환선수가 가기 전에 이기기 위한 경기보다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보여줄 수 있는 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한다는 말, 심히 공감 됐거든요. 전 제가 응원하는 선수가 지더라도 '이 경기 참 재밌게 잘 봤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아요.
sway with me
06/11/08 12:34
수정 아이콘
'이미 검증된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승률이 좋다'...라는 명제가 과연 참일까요?
'이기기 위한 안정된 전략'이라는 것이 정말 안정된 전략일까요?
그것에 대한 저의 생각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입니다.
오히려 더욱 진실에 가까운 명제는 '이미 검증된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일정한 승률을 가져다 준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입니다.

대개의 고승률을 보여왔던 선수들, 특히 우승권에 근접했던 선수들은 '이미 검증된 전략을 구사하는'선수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대개 그런 선수들은 8강 내지 4강 정도가 한계였던 것 같습니다.

정말 놀라운 승률을 보여주는 선수들은 대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선수들이었고, 그 선수들의 패러다임이 '검증'이 끝나갈 무렵까지 스스로의 패러다임을 극복하지 못하면 그 고승률의 선수들 역시 승률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냥 어느 정도까지만 하고 말 생각이 아니라면, 패러다임을 깨기 위한 고민을 지속해야 하고 그 결과물이 있어야 진정 강력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게 저의 생각입니다.
06/11/08 12:46
수정 아이콘
저 역시 '안전한 플레이가 승률이 좋다'는 명제부터 다시 따져봐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온겜 결승에 엄청난 공격성을 자랑하고 거기에 전략을 갖춘 이윤열 오영종 선수가 안정적인 플레이의 대명사급인 이병민 전상욱을 이기고 올라왔고, 엠겜 결승의 심소명 선수도 말 그래도 '겜블러'죠. 묻힌 감이 있지만 매 경기 히드라 러쉬라는 외줄타기를 감행하고 중간엔 상대본진에 해처리 러쉬까지 할 정도입니다. 또 프로리그에서 한창 기세를 타고 있는 이스트로의 서기수, 김원기 선수도 안정성보다는 공격성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힘과 전술을 바탕으로 승수를 쌓아나가고 있다는 것도 안정성과 검증 우위에 대한 반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분발합시다
06/11/08 13:39
수정 아이콘
안전한 플레이가 승률이 좋다... 제생각에는요. 준비할 시간이 많을수록 안전지향 경기는 승률이 별로 좋지 않다고 봅니다. 예전에 최연성선수도 제대로 준비하고 나온 박정석선수에게는 완전 완패를 해버렸죠. 전상욱선수도 마재윤,오영종에게 졌습니다. 뭐 마재윤선수에게 진거는 이 글이랑 별로 맞는것같지는 않네요. 하지만 오영종선수에게 진것은... 너무 수비적으로만 하다가 오히려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어버렸죠. 그나마 이긴 2,3경기도 오영종선수가 무리하게 전략을 써서 그런거지 5전3선승제에서 계속적인 안정지향 플레이는 좋지 않다고 보입니다. 안전지향을 꺼리는 대표적인 선수가 이윤열선수인데 이선수는 안전지향 이런거 없죠. 일단 5전3선승제를 하면 공격적으로 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제가 딱히 이윤열선수의 팬은 아니지만 이윤열선수는 5전3선승제를 하면 게임도 재미있고 승률도 좋습니다.
분발합시다
06/11/08 13:44
수정 아이콘
최연성, 전상욱 선수는 대표적인 안정지향적 선수들이죠. 물론 가끔 초중반 운영이나 타이밍을 노리긴 하지만 대부분 그렇다는겁니다. 4강이상 가게되면 일단 거의 당시 최고의 선수들만 모이게 되죠. 그런데까지 올라서는 안정지향은 오히려 독이 된다고 보입니다. 최연성선수가 예전 한창 날릴때는 안정지향,수비지향으로 다 떄려잡았었죠. 하지만 스타 실력이 상향평준화되다보니 이제 그 플레이는 먹히지 않게 되어버렸죠. 에버배 이후로 최연성선수가 몇번이나 4강에서 좌절했는지 모릅니다. 선수 입장에서는 이기는 경기를 하는게 당연하지만 4강 이상으로 가면 수비지향, 안정지향적 경기가 꼭 승리를 보장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쓰고보니 글의 주제랑은 별 상관이 없는 쌩뚱맞은 얘기였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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