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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5/11/20 04:20:35
Name The xian
Subject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격려를...
어제 굵직굵직한 승부들이 참 많이도 있었습니다.

WCG, WEG, 서바이버... 그리고 K-1 경기까지. 많은 승부가 있었고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그 승부에 있어서 PGR의 글을 포함한 많은 사이트들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역시나 그다지 아름답지는 않았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PGR에 있는 글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PGR을 떠나 다른 여러 사이트들을 돌아다니다가 욕설로 도배된 아귀들의 외침에 눈을 돌려야 했고,
키보드 앞에서 부르르 떨던 손떨림은 다른 손으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나서야 겨우 멎었습니다.

예. 다 맞는 말들입니다. 다 옳은 말들입니다. 다 당연한 말들입니다. '그럴 수도 있다'라고 인정합니다.
심지어는 욕설로 도배된 아귀들의 외침까지도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저의 마음 속에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      ]을 들어 줘야 하는가'라는 반발 또한 일고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온 금언이고, 진리로 여기고 있는 말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더러운 말에 밟혀 짓이겨지는 광경을 오늘만 해도 몇천 번 이상 본 것 때문입니다.

그 말은 바로 - 다소간의 표현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격려를"이라는 말입니다.


PGR뿐만 아니라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승자에 대한 축하도, 패자에 대한 격려도 사라져 가고 있음을 요즘 들어 더욱 절절히 느낍니다.


잘한 것, 이긴 것에 대해서 축하를 하기보다 그 승리의 의미를 축소하려 하는 말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승리를 승리로 인정하지 않고 잘한 것을 잘했다고 인정하지 않는 게 마치 당연한 것인 양 많은 이들이 말합니다.

심지어 자신 또는 자신과 관계가 있거나 자신이 호감을 가지는 대상이 패자가 되었을 때에는
그 승자에게 '네가 잘해서 이겼다'가 아니라 '나(또는 우리, 누구)가 못해서 네가 이긴 거다'는 말이
마치 당연한 듯, 응당 그래야 되는 듯 너무 자연스럽게 쓰입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승리를 한 사람에 대해선 별다른 감정은 없지만 패자에 대한 애정 때문에 그런 거라고요.
패자를 위로하고 싶어서 그랬다고요. 또는 아쉬운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그랬다고요.

하지만 어떤 기회가 있고 그 기회가 패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 기회를 승자가 '잡지 못한다면'이기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이상,
승자에 대한 축하와 인정을 하는 것이 패자나 자기 자신을 위로하는 일보다 먼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 아쉽다면 패자에 대한 위로와, 승자에 대한 인정과 축하를 적어도 동등한 위치에라도 놓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어떤 승부에 있어 패자에 대한 격려를 찾아내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듯 합니다.

정말 '격려'가 없어서 찾기 어렵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로는 격려를 하기 위해 비판을 하는 것이라 하지만
비판을 빙자한 비난이나 모욕이 너무도 많아, 패자에 대한 격려를 담은 건강한 비판을 찾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잘 되라고, 애정이 있으니까 비판을 한다고 하면서 수없이 늘어놓는 허다한 비판들은
각각의 승부마다 쌓이고 또 쌓여 하나의 거대한 탑이 되어 가고 있지만,
비판을 빙자한 비난은 물론이고, 애정어린 비판을 한다면서 말하는 여러 가지 많은 말들 중에서
'애정'이나 '격려'의 부스러기도 갈수록 찾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연 저만의 착각일까요.

바벨탑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여 가는 비판(?)의 탑을 보며 저는 제 눈이 장님이기를 오늘도 기원합니다.
(물론 제가 모든 부분에 대해 비판과 비난 같은 것들을 제대로 구별한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무슨 제가 '신'도 아니고...)


거의 모든 이들은 패자가 되기보다는 승자가 되기를 조금이라도 더 원합니다.
어떤 승패는 우연에 의해 갈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승패는 전혀 납득할 수 없는 무언가에 의해 갈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승패는 저나 다른 이들 개개인의 마음과는 전혀 상관 없이 갈려지기도 합니다.
어떤 승패는 그리 불공평해 보이지 않는 반면 어떤 승패는 많은 이들에게 불공평해 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분명한 건,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과 직접, 간접적으로 관련된 인생의 모든 승부에서
저나 다른 이들 모두, 더러는 승자가 될 수도 있고 더러는 패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그러기에 누구든지 승자가 될 수도, 패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승자와 패자에 대해 그 어떤 말보다, 축하하고 격려하는 말을 우선시하고 가장 중하게 여기는 것은,
넓게 보면 승자와 패자는 물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알고는 계시겠지만, 알고 있으시겠지만, 어떤 승부가 있고, 그에 따른 승패를 보실 일이 생기셨을 때에는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격려를" 이라는 안경을 꼭 써 달라고 권면하고 싶습니다.

어떤 승패에 대한 말씀을 하시려거든 "승자에겐 축하를, 패자에겐 격려를" 이라는 펜으로 쓰셨으면 합니다.
(물론 저도 가끔 안경을 벗고 다니다가 장님이 되기도 하고, 펜을 가끔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도 적잖은 분들이 지금도 그렇게 하시고 계십니다만. 더 많은 분들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  The xian -

덧글 : [     ]안에 있는 말은 일부러 뺐습니다. 굳이 밝히지 않아도 아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굳이 한 단어가 정답인 것도 아닙니다.

       [     ]안의 글자는 각 사람의 마음 속에 하나 또는 여러 개가 정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제 마음 속에 있는 글자를 일부러 밝히지 않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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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1/20 06:17
수정 아이콘
와아...이정도면 추계감이 안되려나요..? 100분 넘게 읽으셨는데 제가 첫 댓글이로군요..;; 일단 추계로 한표!!
영웅을사랑한
05/11/20 08:00
수정 아이콘
근데 너무나 당연한 글인데도 몸으로 실천을 절대 안되네요...
정말 이런글이 당연한 글이 되는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wcg 이재훈선수가 우승하기를 기원합니다..
05/11/20 08:27
수정 아이콘
충동...글쓰신분과 키스한번 해도되요?
05/11/20 08:46
수정 아이콘
이런 글이 적절하게 필요한 시점이었어요. The xian님 ㅡ.ㅡ)=b
카이레스
05/11/20 08:56
수정 아이콘
어제 피지알을 하루 안 오고 몇몇 글들과 리플을 몰아서 봤는데
참 답답하더군요..저도 아직은 아닌 분들이 더 많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좋은 글 보고 갑니다.
05/11/20 09:01
수정 아이콘
기대가 크기에.. 실망도 큰법..
하지만.. 게임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우리나라의 모든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성숙한 의식을 보여줘야겠죠.. 가장 실망을 느끼는 건 프로게이머 자신일 겁니다
얍삽랜덤
05/11/20 09:49
수정 아이콘
우리는 재미를 느끼고 그들은 스트레스를 느끼고.
05/11/20 13:23
수정 아이콘
비판과 비난을 가르는 요소 중의 하나는 '애정'일 겁니다.

그 선수에게 애정이 있다면, 그렇게 선수에게 도움이 안 되는 방법으로 비판을 할까요?

비판이라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진보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지식을,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비판의 대상이 어떻게 받아 드릴 것인가가 빠진 비판이라는 것이 과연 목적에 부합하는 것인가? 비판을 할 때에는 이런 면을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패배, 자신도 생각치 못한 패배에 절망에 빠져 있을지도 모르는 선수에게 '네 노력이 부족하다' '네 정신자세로는 글렀다' '네 핑계는 잘못되었다' '너는 비판받을만해서 내가 비판하는거다' 이런 비판을 한다고 해서 그 선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요?

비판의 대상에게 애정을 가지고 비판의 대상에게 효율적으로 나아갈 수있는 비판을 해 보도록 노력합시다...(저부터..)
천재를넘어
05/11/20 23:12
수정 아이콘
먼저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이런글이 추게로 가서 약간은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보셨으면 하네요..

저도 한마디 한다면, 경기가 끝나자 마자 아무 생각도 안한듯 쓰인 글들을 보면 한숨이 길게 나왔습니다. 더군다나 pgr에서까지 그런글을 본다는것이 더욱 긴 한숨이 나오게 만들었죠. 물론 '아무 생각도 안했다'는 말은 좀 오바지만, 어쨋든 심사숙고하고 쓴 글은 아닐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더군다나 한 선수에게 상처를 줄만한 글을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올렸다고는 더더욱 생각할 수 없죠.(지극히 주간적이지만 말입니다) 조금은 pgr스럽게, 그런 글들을 쓸때는 많은 생각을 하면 할수록 좋은거죠.

그리고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선수가 졌더라도, 먼저 상대에게 악수를 청하는 조용호 선수(요즘은 임요환선도)처럼.. 저희도 그런 악수를 청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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