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e |
2002/02/19 23:12:43 |
Name |
Apatheia |
Subject |
[잡담] 너, 힘 안내면 죽어. |
겜티비 예선장엘 갔었습니다.
유명한 선수도 많고, 따라서 정말이지 빡센 대진표가 기다리고 있더군요.
친한 선수들의 이름을 찾아보며
대진운이 좋으니 나쁘니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9시 반...
시간이 너무 이르게 잡힌 탓인지
많은 선수들이 도착을 하지 않았고
경기 시작은 30분 정도 늦추어졌습니다.
제가 기다리는 선수들 중 하나는
-게임하는 선수들 중에 제가 유일하게 반말하는 사람이죠-
아슬아슬하게 실격을 면하고
뛰어오기라도 했는지, 붉어진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앉더군요.
혹시나 안 와서 실격이라도 되는 거 아닌가 조바심하던 저는
어깨를 툭 쳐주며
왜 이렇게 늦었어 너...라고 싫은 소리를 했습니다.
그 말 대신에
게임 잘해...라고 말해줄 걸 그랬나 봅니다.
손도 채 풀지 못하고 그 선수는 게임에 들어갔습니다.
나중에 말하더군요... 키보드 단자를 꽂으면서야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았다고요.
3차전까지 가는 난타전끝에 잘하고도 경기에 지고
그 친구는 조용히 자리를 정리한 채 나왔습니다.
어떡하니...하고 말을 흐리는 저에게 그 친구는
내가 못해서 진 걸 뭐...라면서
붉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짓더군요.
한 번의 공식전 전적이 아쉽고
한 번의 예선통과가 절실한 지금도, 그 친구는.
사무실로 돌아와 접속해 본 배넷에서
저는 다시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저그한테 지고 떨어진 것이 아무래도 분했던지
엄한 저그 유저 하나를 잡아와서는
오늘 형님이 너하고 무한리겜을 뛰어야겠다며 을러댑니다.
이번 일요일에 있을 게임벅스 대회와
힘들게 잡힌 방송 스케줄이 겹쳤다며 울상이던 그 친구는
그러나 벅스대회 일등 먹고 방송하러 가겠다면서
밉지 않은 호기를 부립니다.
까닭없는 박탈감과 지독한 회의감에 시달렸던 요 며칠...
언제나 그랬듯
참 열심히 사는 청년 하나의 모습을 보고서야
저는 어느 정도 제정신을 차리고
제 자리로 돌아옵니다.
...이봐, 자네.
힘 안내면 나한테 죽을 줄 알아.
-Apatheia, the Stable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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