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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9/03 11:11
분명히 그 때 박정희 정권이 일궈낸 성과는 인정해야 합니다.
역사에 가정이 없듯이 다른 사람이 와서 그 만큼 할 수 있었겠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더 잘했을 수도 있고, 더 못했을 수도 있지요. 다만 박정희 정권이 있음으로서 이만큼이라도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그로 인한 피해가 그만큼 큰 것도 인정해야죠. 노동자의 희생을 기반으로 대기업,재벌을 위주로 한 발전이었기에 지금은 오히려 그 결과물인 사회 양극화 문제가 우리의 발전을 막고 있습니다. 당연히 이제는 성장에 못지 않게 분배에 신경써야 할 때라고 봅니다.
06/09/03 12:04
카리스마 리더쉽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합리보다는 맹목적이기 쉽습니다.
시대가 시대였던만큼 그러한 리더쉽이 보기좋게 먹혀들었고 경제 성장에서는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06/09/03 13:44
현대 사회로 넘어오는데 필수인 민주화와 산업화의 이중 혁명 중에서 산업화에만 너무 치중했죠. 어차피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통성을 못 이어 받은 정부가 할 것은 개발로 국민들을 배불리 먹여 입을 막게 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박정희가 집권 안 했으면 지금처럼 잘 살고 있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지금 우리가 혜택을 누리고는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당시 박정희의 행동으로 고통을 받는 측에게는 혜택이 없었다는 치명적인 모순이 있죠.
만약 지금 우리나라가 못산다고 경제를 살리자며 독재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목적에서 하는 일이라도 세금 조금만 올린다면 민심을 모른다며 사람들이 쌍욕을 해대는데, 박정희 때처럼 언론 막고 개발독재 하면 분명 난리가 나겠죠. 하지만 후세에는 지금의 우리모습처럼, 경제를 발전시킨 위대한 지도자가 탄생했었다고 맹목적인 찬양을 해댈지도 모르겠습니다.
06/09/03 13:46
경제 발전을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그에 반해 드리워진 그늘들도 생각을 해야겠죠.
"어쩔 수 없이 생긴 것이다." 라고 극단적으로 무시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좋아보이진 않더군요. 물론 박정희 덕분에 경제 성장을 일궜다는건 수긍합니다. 장면 정부는 오락가락하는 태도만 보였고, 굉장히 유유부단했죠.
06/09/03 14:12
애로우의 불가능성의 정리를 보면 독재는 필요악이죠.
그리고 저 당시 60년대 경제를 발전시킨 일꾼들과 노동자들이 바로 오늘날의 보수 꼴통 세대라 불리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 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한 세대라고 생각해요.
06/09/03 15:00
정책이 좋아도 국민들이 안따라주면 GG죠.
현재 문제는 박 전대통령을 공과를 너무 한쪽으로면 보려는 시선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대립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경제성장의 진정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안간 점이 이런 논란을 불러 일으키는 거구요.
06/09/03 15:01
윗분 말씀에 동의합니다.
우리나라를 이렇게 일으킨 주역은 40,50대 부모님세대죠. 한국전쟁이후 시골에서 배고프기 싫어서 맨주먹으로 연고지도 없는 도시로 나온 세대가 바로 이 세대죠(저의 부모님도 그렇습니다) 한민족의 역사상 '배고픔'이라는 것을 없애준 세대가 40,50대 세대이고 그혜택을 보고 있는게 지금의 10,20대입니다. 한민족의 역사상 지금의 10,20대처럼 남자가 180이 흔하고 여자가 뽀얀 피부에 곱상한 손를 가진 나라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당시 우리들 부모님들 세대가 그당시 개발도상국보다 탁월했던 이유가 자식들의 교육에 아낌이 없었다는 거죠. 다른 남미나 동남아국가들은 교육에 대한 개념이 희미했던 반면에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교육에 대한 관념이 강하기 때문에(물론 부작용도 심각합니다...ㅡㅡ;;)우수한 인적자원들이 계속 나올수 있엇죠.
06/09/03 16:08
에에..저는 말이죠, 경제에 대한 식견은 중고등학교때 성장을 멈춘녀석이지만;;; 박통시절에는 경제성장이, 경제성장이 어느정도 안정된 이후의 시대에는 박통식 성장의 부작용을 해소하는 것이 시대적 목표였다고 생각되는데요. 이후시대가 책임져야할 부분까지 박통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분배와 대기업의 구조정문제정도는 고도 경제성장에서 어쩔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런 것들은 이후정권이 할수 있었던 역할들이 아니었을까요. (뭐, 박통의 인권문제는 이것보다도 더 모르므로 ,예를 드신다면 할말없습니다;)
06/09/03 16:15
물론 국민이 안 따라줬다면 불가능 했겠지만..
박통의 추진력이 없었더라도 역시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경부선 공사하는 거 김대중씨랑 김영삼씨가 무지하게 반대 데모했었죠. 나라 말아먹는 공사라고.. 만약 그때 경부선 안 뚫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뿐만 아니라 박통은 정치는 자기가 군부 독재를 했지만, 경제 등 특정 분야에선 오히려 전문가에게 아예 일임해버렸죠. 그 덕에 당시 케이블 공사 하나 확실하게 해놔서 현재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되는데 크게 이바지하기도 했죠. (당시 전국적으로 통신 케이블을 깐 사람 이름이 갑자기 기억 안나네요...;;) 인권문제, 독재 등 박통이 잘못한 일이 있지만.. 적어도... "성장 중심의 경제 발전" 이라는 점에서 박통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했더라면 불가능했을것이라 개인적으로 봅니다.
06/09/03 16:36
군화발로 모든 걸 짓밟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너무 박통을 한쪽면만 보고 평가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잘한건 잘한거고 부정적 측면 또한 있는 거니까요. 경제적인 면에선 그를 인정합니다만, 기타 정치적 측면을 보자면 그는 쓰레기에 불과하니까요. 그로 인해 후퇴된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생각하면, 역사가 항상 앞으로만 나아가지는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과거 조선시대 사림파의 집권때도 그랬지만요..
06/09/03 16:41
박통의 처음 10년, 그러니까 유신전까지는 그럭저럭 봐 줄만 합니다. 경제발전의 측면만 보면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 공정도는 높이 사줄만 하죠. 하지만 절대로 박통 혼자서 했다거나 박통이 주축이 되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박통의 카리스마는 본인 자체에서 왔다기보다는 군부라는 그의 거대 배경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박통의 카리스마가 경제발전의 1등 공신이라고는...)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노동3권도 보장받지 못한 채 노예처럼 일했던 노동자, 독일의 광산에서 진폐증을 감수하고 광산 노동자로 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06/09/03 17:05
스타사이트니 스타식으로 보면
시대가 바뀌고 상대의 병력구성이 바뀌었으니 이제는 마인드를 무한확장중심에서 고테크유닛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예전처럼 단순히 마린만 뽑아서 양으로 승부볼때가 아닙니다 체제전환에는 시간이 걸리듯이 현재는 우리가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중이라 봅니다 그런데 지금 메카닉병력이 많이필요하다고 해서 "아 처음부터 메카닉 뽑아놓을걸" 하고 후회하는건 어리석은 마인드죠 5분전에는 바이오닉이 많이 필요했을수도 있으니까요 지금은 어느정도 확장과 자원수급에 성공했고 건물을 많이 쌓아올린상태이니 5분전의 바이오닉은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이제는 체제전환을 성공시켜 다시 새로운 조합의 병력을 모아야 할때가 아닐지요 ^^
06/09/03 17:06
hyuckgun // 정치적인 측면에서 쓰레기라고 보기는 어려운데요. 물론 유신은 민주화 후퇴에 박정희 개인의 몰락을 재촉한 악수였습니다만. 그리고 조선시대 사림파의 집권이야말로 조선시대가 한단계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었습니다. 깎아내리지 마세요. 사림파가 자리잡자마자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이 침략할 경우를 상정해서 여러 대비를 했던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신립장군이 배수진이 아닌 대평원(?)지대에서 전투를 벌였어도 전체 사림이 욕먹는 일은 없었을텐데.. 각설하고, 개인적으로는 군부통치라는 민주화의 암흑기가 있었기 때문에 요즘의 정착된(?) 민주화 사회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새벽 오기 전의 춥고 어두운 시간대였다고나 할까요.
06/09/03 18:25
60년대 시대에 지금 잣대로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평가할 수 없죠.
역사는 항상 상대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잣대와 기준으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성군 세종대왕님도 인권이고, 민주주의에는 속칭 hyuckgun님이 말씀하셨던 개념대로라면 '쓰레기' 일 수 있죠. 자기가 뭔데, 후궁 수십명이랑 잠자리를 한답니까. 정작 격동의 40년 50년대를 지난 60년대에도 그다지 인권이란 개념이 별로 없었던 시대 아닌가요. 지금은 제자가 200대를 맞으면 선생을 고소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거나 있었나요. 다들 오늘은 또 어떻게 끼니를 때우나 걱정이었죠. 인류 역사를 보나, 인근 나라를 보나, 경제 성장이 있고, 먹고 살만할때, 인권이란 소중한 가치를 생각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지금 같은 세상이죠. 그런데 60년대 시대적 상황에 소위 박통이 원래는 아주 민주적인 나라 상태였고 개개인의 인권을 훌륭히 존중해 주는 그런 나라였는데 쿠데타를 일으켜 국민들을 군화발로 짖밟았다고 보기보다는 민주주의 발전의 가능성이 있는 우리 나라의 민주적 발전을 후퇴시킨 장본인이라고 보는 것이 맞죠. 이것도 거시적으로 생각하면 아닐 수도 있지만, 일단은 그렇다고 생각해야 될 겁니다.
06/09/03 18:29
hyuckgun님..
사림파의 집권이 정치적 후퇴라니요. 이런말을 들을때마다 정말 일제식민지사관이 우리나라에 뿌리깊이 박혔구나고 느낍니다.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퇴계와 고봉의 사단칠정론도 말싸움일 뿐이고 남인과 서인의 예송논쟁도 한심한 정파싸움일뿐임니다.
06/09/03 20:00
사림파가 논쟁을 많이 하긴 했지만, 사실 그건 어느때나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근본적으로 예송논쟁은 왕권의 정통성에 대한 논란이었는데, 전혀 쓰잘데기 없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일본 넘들이 그런 소리를 해댔지만, 자기들로 따지자면 막부 정권에 대한 정통성 여부를 따지는 일이라고나 할까요.
06/09/03 21:13
결국 박정희식 발전을 지지하는 논리는 전체의 발전을 위해 소수를 어쩔수 없이 희생했다는 건데, 과연 자기나 가족이 희생을 해야 해도 이렇게 이야기 할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박정희의 공과를 제대로 보려면, 한국을 발전시켰다는 업적의 인정과 그에 따른 악을 전체적으로 봐야하는데 지금은 어느 쪽이든 한쪽을 보는 사람들 밖에 없죠. 어쨋든 우상화 시킬 인물은 아닙니다.
06/09/03 21:40
다른건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공부하고 보고 배우고 듣기로 '장면정권'이 민주적 정통성은 있었을지 모르되 장면내각 당시의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소위 '개판'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장면시절 경제개발계획을 이미 수립했다고 하는데, 계획은 사실 계획일 뿐이지 않습니까? 그걸 장면 정권의 치적으로 치부해버리는건 정말 넌센스라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많은 분들은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을 부정부패에 친일친미정권이기 떄문에 쓰레기라고 생각들 하시는데, 약간은 다른 시각도 가능합니다. 이승만이 미국의 정치적/군사적 요구에 설설기고 그에 따른 (지금으로보면) 치욕스러운 행동들을 하기도 했지만 give&take 라고 경제적으로는 많은 원조를 받아왔고, 고정환율제를 방어함으로 해서 서서히 2차/3차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drive를 걸은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지금 우리나라를 먹여살리고 있는 삼성/현대 등의 대기업들의 전신을 만들어낸것도 이승만정권입니다. 지금도 성장주도니 분배주도로 가야하니 갑론을박하는 판에, 그당시에는 '성장주도'가 확실한 답이었다는건 불문가지겠지요.(당시에도 분배가 중요하다고 주장한 사람은 충분히 많았습니다.) 물론 국가에서 찍어서 밀어주고 부정부패가 있긴 했습니다만, 세계사적으로 보면 독립과 전쟁직후 어수선한 시절 그정도 부정부패로 그친것이 다행이라고 할수도 있죠(최선 대신 차악정도라고나 할까요). 사실 4.19전까지 우리나라 경제발전은 완만히나마 발전해온게 사실입니다. 장면내각때에는 미국에게도 주체성을 확보하려고 했고, 부정부패/정경유착 처벌/해소 등을 위해 칼부리를 들이대고, 친일파 청산을 하려고 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결과는... 물론 약소국의 비애겠지만서도(너무 슬픕니다..) 고정환율제폐지에 따른 환율상승(지금이라면 환율상승이 호재입니다만, 그당시에는 다른나라에서 기계와 기술을 수입해서 산업체제를 만들어내는 때였기 떄문에 반대로 경제에 치명타였습니다.)으로 산업투자 악화.. 원조중지에 따른 해외차관 상환압박.. 게다가 아무리 정경유착/부정부패 척결이라지만, 당시 재계순위 20대기업중 19개던가가 총수가 구속되는등의 경제마비 상태........(정확히는 기억안납니다만, 대충 그랬던듯.. 대충 지금 삼성/SK/두산/롯데/LG/한화/현대 등등 총수들 다 감방가고 전부 세무조사 들어갔다고 보면 될듯. ) ... 거기다가 의원내각제의 특성 + 정치인에 의한 혁명이 아닌 민중에 의한 혁명으로 다수정당에 헤게모니가 없었던 등등 .. 해서, 박정희 등장직전의 우리나라는 정말 개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군인을 골통으로 생각할지 몰라도 그당시 전쟁과 독립시대에 군인은 분명 사회의 엘리트였습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당시 그병력가지고 쉽게 나라를 장악할수 있었던 것도 박정희 이외의 군부 및 국민/정치인들의 장면정권에 대한 실망감/정권불안 등이 큰 기여를 했다고 감히 추측해봅니다. 저는 그래서 , 물론 박정희를 인격적으로 존경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최소한 유신전까지의 박정희는 어떻게보면 그당시 생각할 수 있는 '국가발전을 위한 최적의 패'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최고라거나 이상적이라고는 할수 없습니다만, 누구말마따나 어느정도의 역사적 사명을 완수한 최적의 지도자였다고나 할까요? 물론 그로 인해서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하고,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 부작용은 있습니다, 또 박정희가 집권함으로써 장면정권 등을 따르는 민주적정권이 자생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룰수 있었던 기회를 박탈했던데에 대한 아쉬움과 그 억울함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장면정권을 신성화하고 박정희가 없었어도 확실히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이루어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 또한 어리석은 일이라고 봅니다.
06/09/03 21:59
연식글러브 // 어디까지나 제생각입니다만, 음.. 사림파의 집권은 정치적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모르되, 그것이 우리나라의 발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림의 집권이 정당정치의 모습을 띈것이 사실입니다만, 그것이 왕권의 모순이 드러나 입헌군주제나 민주정당체제를 만들었던 영국이나 프랑스의 정치발전과정(하다못해 일본..) 비교하는것은 좀 조악해보입니다. 결국 왕자의 난과 계유정난 등으로 이어진 훈구정권을 쪽수와 명분, 훈구에 염증이 난 왕과의결탁 등으로 밀어낸게 사림파니까요. 사림파가 집권해서 의회정치같은 방식이 우리나라에 등장한것은 사실이되, 몇몇 훌륭한 선비들을 제외하면 그네들이 보통 양반기득권의 강화를 위해서 민초들을 갉아먹는데 앞장섰던게 사실이니까요. 의회/정당정치의 힘은 절대왕권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서면서 진정 발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사림파의 집권은 훈구파의 정치를 사람구성만 바꾸어서 물려받은데 지나지 않는다고 전 생각하거든요. 쩝.
왕의남자를 보고, 또 연산군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전 이 연산군이라는 인물에 대한 아쉬움을 금할수가 없습니다. 분명, 그의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충분한 명분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가장 절대왕권에 가까운 권력을 손에 넣었으면서도, 그를 자기의 쾌락과 광기에 소비해버렸으니까요. 그가 그렇게 얻은 왕권을 전국적인 사대부세력의 약화 및 나라의 부국강병에 쏟았다면 어땠을까 즐거운 상상을 하곤 합니다. 저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일제가 말했던 '붕당정치는 편갈라 싸우기만 하는것'이라는 의견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만, '사림파'가 뭐 잘한게 있기나 한가? 라고 생각합니다. 쩝.
06/09/03 23:31
저는 박정희가 이룬 경제적인 업적은 인정합니다
'군부'라는 배경이 있다손 치더라도 개인적인 능력이나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인물이란건 인정 합니다. 하지만 정치적, 이념적인 입장에서 자게에 있는 글에 있듯이 우리 스스로가 우리가 선진국이란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가장 큰이유인 국민의식과 정치. 이 두 부분에 대해 박정희씨가 끼친 악영향이 지대하다고 봅니다.
06/09/04 00:04
율리우스 카이사르님//
밖에서 놀다오니 내이름이 적혀있군요.깜짝 놀랐습니다. 어제 친구놈이 '조선시대 우리나라는 정말 무능했다'고 입에 거품을 물고 얘기하는 것이 생각나서 몇자 적고 말았습니다.저도 님의 의견에 결과적으로 동의합니다. 결국 조선은 유교의 경직화로 인해 안에서 일어난 변화을 배척했고(실학, 동학) 19C의 급박한 세계정세에도 뒤졌으니까요. 그러나 주위의 사람들이 조선시대하면 무능력, 일제시대를 생각하는게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칸트의 절대이성은 정말 대단하게 생각하지만 정작 이황과 기대승의 사단칠정론은 유교의 캐캐묵은 논쟁으로 받아들입니다. 실제로는 칸트보다 200년이나 앞서서 이황이 절대이성을 언급했는데 말입니다. 대한민국이 급박하게 민주주의를 성취한 것도 조선시대에서 경국대전서문에 정도전이 언급한 민중혁명론부터 동학의 인내천의 흐름으로 우리민중에게 만인평등이라는 개념이 보급되었기 때문입니다.사실 우리나라처럼 '절대평등'이 강조되는 나라도 흔하지 않습니다. 영국의 마그나카르타가 의회민주주주의 시발점이라 말하지만 사실 그것은 '내 재산에 나의 동의 없이 왕이 세금을 때어갈수 없다' 라는 것을 선언한것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 말하는 민주주의는 서양에서도 20세기 초중반에서야 겨우 성립됩니다. 그전에는 세금을 내지않은자, 여성, 노예는 국민(The People)이 아니였습니다.그러나 정도전은 경국대전 서문에(이름을 잘 모르겠습니다) 맹자의 혁명론을 언급하면서 왕은 신에 의해 움직이고 신은 민에 의해 움직인다고 천명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헌법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 라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한스럽게도 이것을 뒷바침할 세력이나 제도가 없었던게 조선시대의 한계였고 영국은 제3세력(상공업자)이 힘을 받으면서 점점 제도을 구축하였습니다. 너무 말이 이상한쪽으로 지나갔는데 사림이 역사에 무엇을 공헌했나고 물어본다면 저는 이세상에서 유일하게 공자가 꿈꾸던 세상을 실현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권이 왕권을 제한하고 향촌은 유교적 원리로 지배되는 그런 유일한 사회를 실현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황과 이이의 수준높은 학문만으로도 사림파의 업적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제 생각을 덧붙인다면 이런 성리학적인 사회는 임진왜란후 실학파들에게 넘어갔어야 했다라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후 변동하는 사회에 위기를 느낀 사림들이 본래 자기들의 정통은 이이의 주기론에 있으면서도 신분체계를 고수하기위해 이황의 주리론으로 쫓았으니까요. 결국 이이의 적통인 서인이 정치는 이황의 것으로 하는 모순을 드러내죠. 결국 이것이 조선유교의 경직을 불러왔고 결국 변화의 흐름을 타지못하고 일제에게 흡수되는 비운을 맞게 되죠. 근데 본문과 관계없는 말을 너무많이 썻군요. 죄송합니다.
06/09/04 02:10
경제학이나 정치에 별 식견이 없는 사람이 한마디 적자면...
지금의 경제성장의 공은 박정희전대통령보다 우리의 부모님세대에게 가야한다고 봅니다 아시아에 많은 개발독제자들이 있었습니다만 정상적 국가형태의 성장를 이룬건 우리나라 뿐이죠....
06/09/04 03:39
일단 박정희의 경제성장을 수긍하면서 한말씀 드리겠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조선시대에 대한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일단 조선시대 GDP는 비록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 보다 더 높습니다. 조선시대 농업생산력 역시 동시대 일본보다 높았고 상업역시 전근대 시대중 가장 발달한 시대가 조선시대입니다. 이런 성장의 근원은 양반들이 받쳐준 유교사회에 있었구요. 19세기 급변하는 정세를 따라잡지 못한 죄는 아직까지 남아있지만 최소 19세기 초반 까지 조선은 절대 후진국이 아니었습니다. 구한말의 이미지로 조선시대를 전부 재단하는건 전형적인 식민사학의 폐해죠.
06/09/04 03:42
한가지더, 연산군은 광해군과는 달리 진짜 단순한 폭군일 뿐입니다.
왕권강화를 위해 노력했다기 보다는 자기 하고 싶은데로 하기 위해서 신하들을 억눌렀을 뿐입니다. 실례로 중앙의 군권을 강화해서 무려 5만이나 되는 군사를 사냥놀이에 동원하는데 보통의 경우 사냥은 구실이고 실제로는 왕권강화를 위한 중앙군을 장악하기 위한 정책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살펴보면 진짜 사냥놀이만 하고 끝낸 왕입니다. 부패한 신하를 처단할 마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연산군의 머릿속에 들어가질 못하니 알 수 없는 문제지만 실제 행동은 그냥 단순한 폭군이었을 뿐입니다.
06/09/04 04:42
1. 자신과 이념이 다르면 남산으로 끌고 가거나 조용히 처리하고, 무력을 앞세워서 정부를 뒤집고, 과소비를 막기 위해 양주 금지를 하고 자신은 시바스 리갈을 마시다가 살해된 지도자가 경제발전'이라도' 못해놨다면 일단 아무런 논쟁의 여지가 없겠죠.
2. 경제발전의 ‘공’을 '치밀한 계획 - 방향성의 제시 - 추진력'의 세 가지에서 봤을 때 박정희의 공은 앞의 두 가지가 될 것입니다. 추진력은 국민에게 돌아갈 부분이고...(여기서 추진력이란 '역사적 원동력' '무방향성의 민중의 힘' 등으로 쓰이기도 하는 말을 뜻합니다) 우선 ‘방향성의 제시’부터 살펴보자면, 한국식 경제는 '엘리트 양성 중심'을 지향했습니다. 재벌육성계획이죠. 예전에 본 글에서는(아시아 4룡의 몰락에 대한 글이었죠) '비대칭성 경제구조를 지향했다'라는 말을 하더군요. 일단 파이를 키우자... 일견 옳아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국가의 경제수준은 얼마나 자금의 유통이 활발하고 생산효율 및 생산량이 높느냐와 동시에 얼마나 산업전반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느냐도 그 잣대의 일부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결과적인 이야기지만 썩 좋은 방식의 계획은 아니었지 않나합니다. '혜안'이라고 추켜세워줄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죠. 그리고 저것이 독창적인 산물이 아니라, 짧게는 20세기 중엽 이후의 일본, 길게 보면 산업혁명 시대의 유럽에서 가져온 계획이라는 점에서 '혜안'이라는 표현은 과분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박정희는 일본을 벤치마크하면서, 당시에도 단점으로 지적되던 강한 정경유착을 자신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기업들이 성장하고, 또 이러한 발전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서 기존의 개인 수준의 뇌물 수수가 전 국가적인 규모의 거대한 정치자금 조성이 가능해졌죠. 엄연한 '과'입니다. 더군다나, 후대에서 보완을 잘 못 했기 때문에 경제파탄이 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많습니다만, 보완은 ‘기본적으로 괜찮고 세부적으로 문제가 있을 때’ 하는 겁니다. 패러다임 자체를 바꿔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건 ‘보완’의 수준이 아니죠. 박정희의 경제 계획은 혜안보다도 박정희의 근시안적인 마인드를 보여주는 겁니다. 3. 치밀한 계획이라는 점에서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경제 육성 계획이 정말로 ‘잘 짜여져서 성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포항제철은 수작이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경부고속도로의 졸속 공사, 울산을 비롯한 공업단지 내의 ‘가혹한 노동환경’은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도 컸습니다. 경제적 성장이 비소모적이려면 최소한도의 노동환경을 제공해서 노동자들의 인생 싸이클이 안정되어야 하는데, 만일 당시의 환경이 20년만 더 지속되었어도 경제붕괴는 훨씬 가속되었을 겁니다. 노동자의 자녀가 노동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으면 다행’인 수준이었으니까요. 4. 그리고, 경제발전이 의미를 가지려면 ‘수혜’가 있어야하는데 과연 어떠한 수혜가 있기에 박정희의 공이니 뭐니를 운운할 수 있는지 참 의문입니다. 먹고 살만해 진 게 박정희 때문이라고요? 그가 대체 뭘 줬길래 그런 ‘극찬’을 받을 수 있는지 참 의문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규모의 성장과 봉급의 인상률이 서로 따라가기나 했답니까?
06/09/04 07:58
Sulla-Felix // 우선 조선시대가 세계사적으로 후진국이라고 생각해본적도 없고 그렇게 말한적도 없습니다. 다만 사림파의 집권이 우리나라발전에 도움을 주었느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거죠. 식민사관이라뇨..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쩝. 제가 생각하는 조선시대의 그림은 성종때까지 성장을 계속하다가 중종반정 이후 신하들의 전횡을 왕권이 견제하지 못해 많아진 공신들의 착취가 심해지면서 점차 하락하다가 왜란과 양호란을 겪으며 피폐의 정도는 극을 향해 달리죠. 그후 영/정조라는 명군을 얻어서 일시적으로 민중들의 삶이 회복되지만 일제시대 직전까지 붕당정치와 세도정치의 폐해는 이미 국가발전따위는 신경도 안쓰는 세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권문세족이라는 고려말의 대토지귀족들을 타도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정도전 이하 조선초기 사대부들은 결국 세도정치시절로 가면 권문세족보다 더 민중들을 수탈했다고 전 파악했습니다. 실제로 양호란이후 양반들의 수는 계속 증가했고 사실상 '귀족'이라고 할수 있는 이 불로소득자/군면제자들의 수는 일제침략직전 전국민의 30%에 이르러 양반이 아닌 자들로부터 착취하는 구조가 점점 고착화되었다고 전 봤습니다. 그리고 연산군이 단순한 폭군이라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거기에 더해 조선역대왕들 중 가장 강력한 왕권을 손에 넣었다는 것도 인정을 해야겠지요. 제가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연산군의 어머니를 포함한 세력을 물리치면서 그다음 수순은 당연히 연산군의 폐세자 였습니다. 그러나 성종이 일찍죽으면서 연산군이 즉위하게 되었고, 당연히 연산군모의 처형을 주장했던 기존의 훈구파들은 덜덜덜 하게 된거죠. 기존 정치세력이 국모살해라는 원죄를 지고 있는 이상 연산군의 전횡을 초반부터 막을수가 없었던 거죠. 즉 연산군이 왕권강화에 노력을 해서 그를 얻어낸 것은 아니되,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혹은 그가 명군이었다면 강해진(어떻게 보면 운이지만)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발전을 위한 절대왕정시대를 열수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는거죠. 하지만 연산군은 그 왕권을 후궁을 5천명을 뽑고 군사를 사냥놀이에 쓰는등 자신의 쾌락에 전념하다가 조선최초로 '반정-신하들에 의해 왕이 갈림'을 겪게 되죠. 그후로 연산군보다 훨씬 똑똑하거나 훨씬 백성을 사랑하는 왕들이 나옵니다만, 그 누구도 그보다 왕권을 더 갖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윤원형, 송시열, 김조순 같은 왕보다 더 권력을 가진 양반이 득세하는 시대만 생겨났죠.
06/09/04 09:31
아 그리고 박통의 업적중에 최고라고 뽑을수있는것은 전 베트남 파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미국을 지원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혹은 2~3개더있을지도)없었고 규모도 많았고 전투를 정말 훌륭히 치뤘기 때문에(노획한 베트콩 기밀문서보면 100%확신이 없는이상 한국군이랑 싸우지 말라고했지요) 게다가, 월남전에서 도로 항만 등 주요 건설품목은 미국이 한국에게 일임하다 시피하였기때문에 나중에 중동특수를 이루어냈죠(古정주영 회장과 현대건설노조분들의 철야 작업(밤에는 횟불을 켜고서라도 도로를 건설했는데 그걸 사우디 왕이 감동해서 정주영회장께 석유 맘대로 다 가져가셈이라고 했다고 tv에서 본거같습니다)으로 정말 외화 장난 아니게 벌은것. 전 이것이 박통의 최대업적이라고 봅니다
06/09/04 11:04
베트남 파병이 최고의 업적이라뇨.. 우리민족의 최대의 오점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은 역사면에서 보면 우리랑 비슷한 점이 많았죠. 비슷한 역사의 그 베트남을 같은 동양의 우리나라가 가서 잔인하게 죽이고 죽었죠. 우리나라가 자진해서 베트남 파병을 요청 하면서 미국은 인종 간의 대결이 아니라는 명분도 얻었구요. 자원해서 베트남 파병을 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두개 국가 밖에 없고, 그 중에서 우리나라는 유일하게 전투병력을 파견했습니다. 또 베트남에 파병된 군인들이 외화벌이를 해왔다는 말도 사실은 말이 안됩니다.. 우리나라의 소장이 베트남군의 소대장 수준의 돈을 받고 생사를 넘나들었구요. 설사 미국을 도와주고 결과적으로는 많은 외화를 벌었다고는 해도, 그 앞장서서 마을을 습격한 잔인했던 모습을 미화시키는게 일본 골수 우익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네요. 아.. 베트남 참전 군인을 욕하는건 아닙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이면 누구나 그렇게 되니까요..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 관련된 글을 읽어봤는데 정말 가슴 아픕니다. 이런 비극이 최대업적이라뇨.
06/09/04 11:04
박정희의 정잭은 모두 국민이 해냈다고 한다면.. 대통령은 왜 필요한건가요??; 국민들이 해낸건 맞지만 그 국민들을 하나로 바라보게 한게 능력 아닙니까? 그리고 박정희가 독재를 한건 크나큰 잘못이라 할수있지만 그시절이라면 누군가가 나와서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줘야 경제를 발전 시킬수 있었다고 봅니다. 위에 퍼온 글처럼 다른 정부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나라를 이끌지 못했겠죠..
문제는.. 그 카리스마 있는 정부가 자기 배만 채우려고 하느냐 아니냐.. 만약 아니면? 제대로된 경제 정책을 내놓느냐..가 중요합니다. 박정희 같은 경우에는 자기 배만 채운것도 아니고, 제대로된 정책을 펴놓지 못한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민주화 부분은 지금 경제파트니 이야기 안하려고 합니다만..;; 지금 아프리카 소말리아가서 민주화 이야기를 하면 과연 그들의 대답은 뭐라고 나올지 궁금합니다..
06/09/04 11:05
그리고 그 이후 경제쪽에 악영향이 있다는것도 말도 안됩니다..;
그시절은 일단 먹고사는게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아프리카 최빈국 수준의 생활을했으니까요.. 당연히 먹고사는걸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들을 우선적으로 내세우니 다른건 소외될수밖에 없죠.. 1차적 목표를 위해서요.. 박정희때는 그 정책이 그시대에 맞는 정책이었고.. 지금은 당연히 시대가 변했으니 안되죠.. 후대 사람들이 그 정책중 발전시킬건 발전 시키고 수정시킬건 수정시켰어야 했습니다. 그걸 못한 후대 사람들 책임이 더 크다고 볼수있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당시 세대의 국민들이 박정희를 그리워 하는건 부정할수 없는 사실이죠..;;
06/09/04 11:29
TheMilKyWay님// 국가의 대사를 흔히 '백년대계'라고 하지요. 방향성이 희미한 민중의 힘을 끌어모아서 역사에 변화를 주는 힘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어떠한 '카리스마적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박정희가 그 시대의 카리스마였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박정희는 그 힘을 이용해서 경제개발을 '일시적인 것'으로 바꿔놨습니다. 한마디로 박정희의 경제계획은 시작부터가 잘못된 방식이었다는 겁니다. 도덕적으로건, 실제적으로건...
일본을 능가하는 정경유착, 분배구조의 미확립(못했다기보다는 안했다고 평가하고 싶군요), 언론 통제 및 군사력을 이용한 강력한 대민통제의 구조에 벤치마킹할 상대(일본), 해외자금력까지..... 이 정도 조건을 갖추고 경제적 성장을 일궈내지 못한다면 그건 무능한 겁니다. 경제개발은 박정희가 '무능하지 않았다'는 근거는 될 지언정 '유능했다'는 근거가 되긴 힘들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당시의 국민들이 박정희를 그리워하건 어쨌건 그건 박정희의 공과를 논할 때에 거의 마지막에 가서나 생각할 문제라는 겁니다. 인기는 공과와 아무 관계가 없지요.(개인이 아닌 '대중'의 판단력이란, 결국 굉장히 낮은 수준이니까요)
06/09/04 12:53
"어쨌든 누구때문에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라고 누가 묻는다면, 선택할 수 있는 답이 '박정희' 밖에 없다보니 '박정희가 아니면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생기는 모양입니다. 한국 경제 발전 시기에 박정희 정부 말고 다른 정부가 존재한 적이 없었으니 말입니다. (그 짧디 짧은 장면 내각에 대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워낙 짧았던지라 뭐 보여줄 시간도 없었지요. 물론 그 능력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만.)
하지만 질문이 "어쨌든 누구때문에 이만큼 살게 되었는데?"에서 "더 잘 살수는 없었을까?"라고 바뀐다면 답안은 늘어날 수 있었을 겁니다. 박정희 정부가 다른 답안을 죄다 없애버렸기에 어떤 답안이 존재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박정희의 정책은 best는 아니었습니다. 혹시 있었을지 모를 다른 best 답안은 시험지에 인쇄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박정희의 경제 발전 공로를 뭉개버리고 싶지는 않지만, "박정희만이 가능했다."라는 생각은 거부하고 싶습니다. ps.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가난한 사람에게 민주화는 쓸데없는 얘기다.'라고 생각하시는 듯 하더군요. 산업성장과 민주화는 동전의 앞뒷면이 아닙니다. 산업이 발전한다고 하여 민주화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민주화를 이룬다 하여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경제 발전의 공로를 통해 다른 과오까지 덮으려는 분들이 워낙 많아서...(경제 발전 이외의 이야기를 해서 죄송합니다...)
06/09/04 13:48
독일에 히틀러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2차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비슷한 얘기가 아닐까요? 박정희가 '경제적 지표의 성장'이라는 부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만 만약 박정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지금의 이런 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인가? 하는 물음엔 회의적입니다. 박정희 집권시절의 아시아는 값싸고 품질좋은 노동력 시장을 물색하던 미국에게 가장 안성마춤의 시장이었죠. 지금의 중국에 자본이 진출하는 이유와 비교해 보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객관적으로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을 따져 봤을 때 한국이 지금의 위치를 차지 못하면 오히려 이상한 것 아닐까요? 세계에서 수위를 다투는 낮은 문맹률, 높은 교육열로 인한 고등교육을 받은 다수의 인력 확보, 열대성기후가 아닌 지역이라 근면하고, 싱가폴이나 홍콩 처럼 도시국가의 수준이 아닌 어쨌든 한 나라를 구성할만한 규모의 국가를 갖춘 나라가 이 정도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박정희는 이런 호기를 맞아 실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점 하나만큼은 칭찬해 줄만한 대통령일 뿐, 영웅적인 영도력으로 우리나라를 무슨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천국의 계단으로 인도한 인물은 못됩니다. 그리고 그 시대에는 민주주의보다 경제가 중요하다는 주장 같은 건 좀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흘린 피땀이 아닌 남의 피땀이 나에게 보탬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합리화 하는 건 정말 염치없는 짓입니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의 굶어죽어가고 있는 난민이라도 그 인권은 소중한 것이며 그 누구도 함부로 다루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박정희가 생전에는 국민들에게 무슨 영웅처럼 떠받들어진 줄 착각하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박정희야 말로 죽기 전보다 죽고 나서 더 영웅시된 기이한 인물 중의 하나죠(이게 다 이를 주도하는 어떤 세력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그 잘난 박정희가 엄청난 금권과 관권과 폭력을 동원하고도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에게 질뻔 했습니다. 이렇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힘들게 되자 긴급조치를 통해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을 뽑는 유신을 선포하게 된 거죠. 박정희가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기간은 그의 대통령 재임기간 중에 극히 조금 밖에 되지 않으며 그 외의 모든 기간 동안은 전국민적인 반대에 몰려 있었다는 사실 자체만큼은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지가 잘나서 저 아니면 경제가 성장하지 못할 것 같다 싶더라도 국민들이 너는 안된다고 하면 물러나야 옳은 거지요. '이 무식한 놈들아. 니들이 뭘 안다고 그래, 나 아니면 한국 경제는 절대 안돼'하고 때려 잡는 행동은 설사 그로 인해 경제가 발전했다고 해도 인정해 주기 힘든 일이죠.
06/09/04 18:20
PGR에서 글을 읽어 보면 "참 대단하신분들이 많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위에서 글을 남겨 주신 분들이 있기 때문에 똑같은 얘기는 하지 쓰지않을렵니다. 그러나..단 전직 대통령에게 "쓰레기"라니요.대단하시네요.
네이버 에서 찾아 보니 쓰레기란 "인간이 생활하고 활동하는 문명사회로부터 배출되는 폐물질(廢物質) 중에서 고체 형태로 버려지는 것."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인 색깔이 비난 받을 일이라고 저도 생각하지만 "쓰레기"라는 표현은 맞지 않는것 같습니다. "쓰레기"라고 표현을 하신분은 혹시 본인이 "쓰레기"라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나요? 제가 볼때는 그 말을 쓰신분도 "쓰레기"라고 생각되는군요. 저도 위에 제 감정을 내세워 "쓰레기"라는 단어을 썼지만, 아무리 토론장이라도 사람을 무엇인가에 빗댈때는 조심합시다
06/09/04 18:41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는 장면이 생각나는 군요.
전 60년대에 태어나서 지금은 40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대통령만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총 일곱분이군요. 어차피 이분들의 평가는 더 먼 역사가 판단해주겠지만 경제성장과 발전이라는 부분에서의 점수는 (정치부분은 빼고) 박대통령의 점수가 상위권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카리스마는 평온한 시기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혼란스럽고 어지러울때 카리스마가 발휘되며 효율적으로 사용됩니다. 박정희대통령이 집권하던 시기의 국민들의 소망이 과연 무엇이었겠습니까? 가난과 사회혼란과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는게 그 시절 국민들의 소망이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국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켜서 경제 성장의 원동력을 만든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중남미의 여러 나라들의 예를 보듯이) 과오는 과오대로 공은 공대로 언젠가는 평가가 나오겠죠. p.s)되도록이면 정치적인 내용은 자제했으면 합니다. 본문에도 경제부분에 대해 토론하고자하였으니 . 세세한걸 따지면 어느 대통령이라도 넘어갈수 없겠죠.
06/09/04 20:52
경제규모는 분명히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저임금에 기반한 수출 정책이 성공했죠. (수입도 더 많이 늘긴 했지만...) 그 결과, 지금의 중공업, 전자, IT 산업이 세계 최고를 다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대신, 도시 하층 노동자를 양산하여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농촌은 점점 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여러 가지 이유로 농촌의 젊은이들은 도시로 상경해야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도시와 농촌의 모습, 밝은 곳과 어두운 곳 모두, 60-70년대 경제개발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경제적으로는, 내 집을 가진 도시 중산층 이상이라면 박정희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성장 위주 경제 정책을 높이 평가하는 게 당연하고, 도시와 농촌의 하층 계급들은 박정희로 대표되는 착취 구조를 미워하는게 당연합니다. 어쨌든 지금의 풍요와 갈등은 많은 부분 그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으니 박정희란 이름은 각자 자신의 처지에 맞게 평가하면 되겠습니다.
06/09/04 21:39
민간인님// 전직 대통령이 아니라 현직 대통령, 혹은 왕이나 황제일지라도 상황에 따라서 감수해야 될 비난이라고 봅니다. 예컨대 살인마, 무자비한 파괴자, 민중에게는 절약-근면-검소를 강조하고 자신은 퇴폐를 즐긴 이중적인 태도, 국가 근본을 부정하는 반역자 출신이 대한민국의 최고통수권자라면, 혹은 그랬다면, 당연히 '인간말종'이라는 비난을 받을만 하지 않겠습니까?
Ange Garden님// 저는 80년대에 태어나서 이제 겨우 20대이고 대선에서 선거권을 행사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소수이지만) 30대, 40대, 50대, 60대, 70대의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를 선입견없이 듣고 자란 세대입니다. 경제발전을 '시장규모의 확대'라는 점에서 보면 박정희는 성공했습니다. 어쨌건 국제 금융권에서 있으나마나한 존재였던 한국을 하나의 축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거든요.(한국이 망하면 연쇄적으로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 가능한 수준이죠 이젠) 하지만 국민들의 소망이었던 '잘먹고 잘사는 문제'를 경제발전과 연관시키면, 박정희는 성공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일해서 10000원을 벌었는데 98명한테는 98원이 돌아가고 나머지 9902원은 2명이 먹는다면, 이것을 '어쨌건 한푼도 못번것보다 낫지 않느냐?'라고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박정희는 히틀러보다도 훨씬 저급한 통치력을 보여줍니다. 히틀러는 어쨌건 자국 내에서는 영웅이었고, 고도의 정치적 수단 - 특히 연설과 매스컴을 통한(이건 괴벨스의 역할도 컸지만요) 국민 세뇌로 지지율은 굉장했습니다. 고도의 카리스마는 이 정도 수준은 되어야합니다. 박정희? 공개투표하면 질 것 같아서 헌법을 두 번이나 뜯어고칩니다. 박정희의 강력한 추진력은 '국민을 속여서 자발적으로 몰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안하면 대놓고 처단하는 공포감'에서 기인했습니다. 자기 말에 절대적으로 따르는 측근들을 요직에 앉혀놓고, 재벌들을 끌어들인 후 금권과 무력으로 쳐대고도 국가 장악을 제대로 못하면 그건 차우셰스쿠꼴이 나겠다는 소리일뿐이죠. 국제적 상황의 호재, 저급하나마 강력한 통치수단의 소유, 이 두가지가 맞물려떨어지면 위의 제 리플에도 썼듯 '무능하지만 않다면' 경제성장, 가능합니다. 먹고사는 수준은 그대로 하고 업무량은 계속 늘려서 들어오는 돈을 족족 재투자에만 쓰면 수치상의 경제발전은 당연히 이루어지는 것 아닙니까. 남미의 독재자들에 비해서 박정희는 머리가 좀 더 좋아서 '더 많이 오래 털어먹는 법'을 구상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그들과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06/09/04 21:43
덧붙여서, 박정희에게 경제개발의 공이 있다면 그것은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아'로의 공입니다. 물론 그러기 쉽지 않습니다. 개인 박정희는 어쨌건 한 번 생각해보고 배울 필요 있는 인물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걸 원하는 때에 가져올 수 있는 건 개인에게 있어서 미덕이기 때문이지요.
단지, 제대로 된 심판과 평가 없이 정치 논리(이유는 불분명하지만 어쨌건 '정치적 논리'로 해두겠습니다)에 의해서 총맞고 죽어버린 것만으로도, 그걸로 심판을 교묘하게 피해나간 것만으로도 박정희는 경제 발전에 저해가 되었습니다. 결국 박정희보다 더 저급하고 더 탐욕스러우며 더 노골적이고 더 인간말종인 연희동 대머리가 그동안 겨우 모아둔 쌈지돈까지 털어먹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06/09/04 22:19
레지엔님//
모두가 일해서 10000원을 벌었는데 98명한테는 98원이 돌아가고 나머지 9902원은 2명이 먹는다면, 이것을 '어쨌건 한푼도 못번것보다 낫지 않느냐?'라고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라고 하셨는데 책에서 보는것과 실제 그 당시 상황은 다릅니다. 정말 한번 겪어보시고 말씀하세요. 레지엔님 말씀대로라면 대통령이 머리좋은 독재자라서 국민들이 속아 넘어갔다는 말인데..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에서 한강의 기적까지 이게 요즘 세대들에게는 너무나 쉬운일로 비춰지는게 안타깝군요. 그럼 처음부터 분배 위주의 정책을 써야 했나요? p.s) 온라인토론도 지켜야 할 규칙은 있다고 봅니다.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해서는 안될말이 있습니다. 쓰레기라는 말은 너무 심하죠.
06/09/04 22:26
아 참 제 대학 졸업 논문이 유신시대의 폐해에 대해서였는데 세상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내용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그때 눈에 불을 켜고 독재자에 대해 달려들었는데 세월이 참... 서로 열받지 말고 차분히 토론합시다. 언젠가는 여러분들도 세월의 무게를 느낄때도 ^^
06/09/05 00:07
박정희는 그저 시대를 타고난 행운아고, 경제발전의 공적은 어차피 당시 우리나라는 주위 환경상 한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이었는데, 그걸 진행시켜고 유지시켜 준 공 밖에 없다는 의견을 보고 전 동의할 수 없는데요.
그 논리 그대로라면 그 자리에 박정희 같은 범인 말고, 뛰어난 사람, 예를 들면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뛰어난 대통령이라고 평가받은 김대중 전대통령이라도 계셨다면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일본, 미국의 경제 강대국과도 맞먹을 초기적을 만들어 냈을 수도 있었겠네요. 보통인 박정희도 기적적 경제발전을 이뤘는데 말이죠.
06/09/05 00:32
이젠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 당한거 가지고도 뭐라고 하시는군요.
박정희 대통령이 당연히 받아야할 심판을 받지않고 죽었고 그거때문에 전두환,노태우가 나타나서 나라를 망쳤다라.. 재밌네요.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었으면 전두환,노태우 이런 사람들은 그냥 찌그러져 있었을거라는 건지..
06/09/05 00:35
박정희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강한 중앙정부에 있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중앙정부의 막강한 힘의 근간은 군부를 배경으로 한 완벽한 독재정치에서 나옵니다. 만약 박정희가 군부의 힘을 업고 있지 않았다면? 과연 그정도로 강한 정부를 구성하여 모든것을 한 손에 휘어잡을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주변의 여건을 살리는 능력도 본인의 재능입니다. 박정희는 군부라는 막강한 힘 + 여타의 식민지 국가가 받을 수 없었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지정학적 위치(쇼윈도 국가) + 잘 살아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것을 희생하고 따라온 국민 + 인력확보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인 낮은 문맹률과 높은 교육열 이라는 조건들을 잘 활용한 인물이죠. 경제발전에 박정희의 공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박정희가 아니었으면 경제발전 하지도 못했다는 말은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06/09/05 01:40
Ange Garden님// 일단, 제가 그 당시 상황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지 않느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모를 지언정 어쨌건 없는 사실가지고 이야기 한 적은 없다'고 반박하겠습니다. 직접 봐야만 알 수 있다면 모든 역사서술은 그야말로 거짓이 되겠죠. 그리고 이제 40대를 바라보신다고 했는데, 그러면 60년대 후반에 태어나셨을 것이고 박정희가 살해되었을 때는 기껏해야 10대 후반이셨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를 직접적으로 겪었음을 운운하시기에는 님도 역시 연세가 부족한 것이 아닌가 싶군요. 제 의견에 동조하는 다른 50, 60대 분을 모셔오면 아무 반박안하실 겁니까? 궁금합니다.(비꼬는 어조 맞습니다. 솔직히 나이 부분은 좀 많이 불쾌합니다)
그리고 처음부터 분배 위주의 정책을 써야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처음부터 '공정한 분배'가 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봅니다. 비대칭적 경제 발전을 지향점으로 삼은 시점에서 이미 첫 단추가 어긋났다고 보는 쪽이죠. 스모 선수들이 스모라는 경기에 특화된 몸을 가졌을 지언정 장수는 글러버린 것과 같습니다. '운동 잘하면 건강히 오래 산다'라는 명제를 '스모 잘해도 오래 살겠네'로 해석하는 꼴이죠.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도 전 살인마를 인간 사회의 폐기물이라고 말할 겁니다. 자기 맘에 안든다고 조용히, 혹은 대놓고 시끄럽게 '처리'해버리는 사람을 지도자라고 인정할 이유도 없고 그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토론에서 하지말아야 할 말, 지켜야할 선이 있는 것처럼 사람도 지켜야할 도리가 있습니다. 그걸 대놓고 넘어섰고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극악이라고 인정받는 '감정적 학살'을 자행한 존재를 나와 같은 '사람'이라고 인정하진 못하겠습니다.
06/09/05 02:07
1. 박정희 살해에 대한 의견에 대한 추가.
저건 '억측'이라고 말해도 뭐 할 말 없을 정도로 자기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이 하는 말은 아닙니다.(물론 저런 생각을 하게 된 발단은 박정희에 대한 혐오감에서 기인한 바도 없잖습니다) 만일 박정희가 차우셰스쿠와 같은 말로를 겪었다고 할 때,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덜 했을 겁니다. 한국의 민주화도 15년은 앞당겨졌을 것이고(발언의 자유가 보장되고 어느정도 돌출발언을 하더라도 법이나 공권력, 혹은 그 외의 '권력'이 아닌 '여론' - 비록 매스컴이나 그 외의 힘에 의해서 조작될 수 있을지라도 -에 의해 심판받을 수 있게 된 것을 92년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노동문제에 있어서도 80년대, 90년대보다 좀 더 유연한 대응이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지만 그건 역사서술에서나 그런 것이고 생각하기 위한 화두로는 이것만한게 없지요) 그리고 박정희가 차라리 좀 더 장기집권을 하고 죽었더라면 당연히 전두환, 노태우는 쿠데타라는 방식으로 등장할 수가 없습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것은 박정희라는 절대적 존재가 소멸하고 그 자리를 대체할만한 정치가가 없었기 때문에(김대중, 백기완 같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박정희에 대한 저항세력의 선두인 것이지 박정희가 없다고 해서 권력의 중심에 바로 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군부의 실세이자 미국을 등에 업은 전두환이 등장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의 '이른 사망'은 결국 만들면서 털어먹은 박정희보다 더한, 기둥까지 뽑아먹은, 통장에 29만원 박아놓은 살인마를 탄생시켰다고 봐도 됩니다. 그렇다면 박정희는 한국 경제에 언젠가 터질 폭탄을 설치함과 동시에 죽음으로 심지에 불을 붙였다고 봐도 되겠지요. 2. 박정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있었어도 어느 정도는 했을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우리 나라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과연 기적적인 성장일지는 의문입니다. 한국이 70년대에 연평균 8%(9%라는 말도 있고 정확한 통계는 못봤습니다만 어쨌건 8이건 9건 상관없습니다)라는 가공할만한 성장을 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일본 역시 50년대 초의 전후부흥기때에 약 9%, 60년대의 고도성장기때 약 10%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줍니다. 대만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9.3%의 경제성장률을 보여주고 있고, 19세기 말~20세기 초의 아르헨티나는 8%에 육박하는 성장률을 보여줬습니다. 뛰어나긴 하지만 기적이라고 보기에는 그럭저럭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그리고 '박정희'라는 지도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서독과 일본을 볼까요. 물론 서독도 아데나워라는 정치가가 있었고, 일본 역시 엘리트중심의 정-경 체제를 확고히 하면서 관치경제가 좋은 영향을 주고 있었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저걸 제 1요인을 꼽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셜플랜과 냉전의 가속, 한국전쟁특수 등을 보통 제 1요인으로 꼽지요. '아데나워가 아니었으면 마셜플랜이 있어도 경제발전은 못했을 것이다' '한국전쟁이 있었어도 요시다 시게루가 아니었으면 일본은 망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일본에서도 욕먹을 정도의 쌩극우 중에는 '동경대 엘리트 지향주의야말로 일본의 원동력이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긴 합니다만..) 다른 나라에 비해서 특별히 더 뛰어난 성장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다른 '기적'과 비교할 때), 상황도 유사하다면 '모든 사례에서 정치가들이 훌륭했다'라고 보기보다는 '다들 그럭저럭 했다'로 보는 게 올바른 판단이 아닐까요. 물론 서독, 일본에 비해서 축적된 지식도 부족하고 더 피폐해진 한국이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성장력을 보여줬다는 건 대단하지만, 결국 저건 상대적인 퍼센테이지고 규모가 작으면 적은 성장으로도 더 높은 %를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06/09/05 04:20
율리우스 카이사르//
조선시대의 그림은 성종때까지 성장을 계속하다가 중종반정 이후 신하들의 전횡을 왕권이 견제하지 못해 많아진 공신들의 착취가 심해지면서 점차 하락하다가 왜란과 양호란을 겪으며 피폐의 정도는 극을 향해 달리죠. <- 공신들은 이른바 역사에서 훈구파로 일컬어 지는 세력이고 사림세력은 이 훈구파를 밀어내면서 선조시기를 전후로세로 등장하는 세력입니다. 따라서 중종반정이후로 공신들의 착취가 심해진다는 건 사실과 다릅니다. 양란으로 피폐해진것은 전쟁때문이지 사림의 착취와는 거리가 멉니다. 영/정조라는 명군을 얻어서 일시적으로 민중들의 삶이 회복되지만 일제시대 직전까지 붕당정치와 세도정치의 폐해는 이미 국가발전따위는 신경도 안쓰는 세태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 영정조 시기 번영을 지지하는 핵심세력이 바로 그 사림세력이며 붕당정치와 세도정치는 그 근본이 다릅니다. 정조의 경우 붕당정치를 몰아내고 군주독재를 이루려 하지만 결국 실패하면서 병사하는데 죽을때 외척인 김조순에게 후사를 부탁하고 이 김조순은 19세기초 병인경화로 정권을 잡으면서 사림세력을 축출하고 세도정치를 이룹니다. 따라서 붕당정치와 세도정치는 대립되는 개념이며 세도정치의 발판을 만든사람은 죽은 정조입니다. 따라서 카이사르님의 서술은 사실과는 다릅니다. 권문세족이라는 고려말의 대토지귀족들을 타도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정도전 이하 조선초기 사대부들은 결국 세도정치시절로 가면 권문세족보다 더 민중들을 수탈했다고 전 파악했습니다. <- 실제 진주민란같은 경우는 양반들이 주축이 되서 관료들에게 비토를 놓은 사건이며 사림의 경우 지지기반이 향촌이기 때문에 오히려 향촌사회를 보호하려 노력합니다. 숱한 사화를 겪으면서 사림이 재기할 수 있었던 기반은 향촌사회의 지지였으며 경주최씨와 같은 자선의 일화는 단순한 선의에서라기 보다는 민심을 장악하기 위한 사림들의 정치적 행동이라는게 옳은 판단인 듯 합니다. 따라서 사림들이 민중을 더 수탈했다는 것 역시 사실과는 다릅니다. 실제로 양호란이후 양반들의 수는 계속 증가했고 사실상 '귀족'이라고 할수 있는 이 불로소득자/군면제자들의 수는 일제침략직전 전국민의 30%에 이르러 양반이 아닌 자들로부터 착취하는 구조가 점점 고착화되었다고 전 봤습니다. <-국민의 30%에 달하는 귀족계급은 역사상 존재한 적이 없고 오히려 이렇게 양반이 늘어나는 이유는 상품경제의 발달로 부를 축적한 부농들이 양반 신분을 사면서 이루어 진 일입니다. 신분제의 변동, 서민문화의 발달이라는 교과서 서술은 이런면을 의미하고 실제로 착취자라는 이미지는 사실과는 맞지 않습니다. 아마 조선시대때는 고려라는 국가와 사회가 대한민국에서 조선을 바라보는 것처럼 찌질하게 묘사되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일제시대를 경험한 한국인에게 조선이 좋게 비칠리는 없지만 실제 세계적으로 동시대를 비교하면 무턱대고 비난할 만한 국가는 아닙니다. 오히려 조선시대에 대한오해는 잘못된 것이 많아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님의 댓을을 계기로 이런 오해들을 풀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06/09/05 09:24
Ange Garden 님//
60년대에 태어나서 아직 40을 넘기 전이시라면 박정희 시대에는 거의 철없는 코흘리개 였을 뿐이네요. 엉뚱하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대변하는 것 처럼 이야기 하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엔 감수성이 예민하고 뭐든지 그대로 흡수하는 어린 시절에 유신시대의 박정희 찬양 세례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어린 학생들이야 관제언론 밖에 없던 그 시대에 박정희를 영웅처럼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시대의 대다수 사람들은 님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박정희에 의해서 국민들의 마음이 경제발전으로 모아진 것이 아니라 유신철폐, 독재타도로 모아졌었죠. 박정희 생전에 박정희를 지지하던 세력이란 주로 농촌 지역이나 아니면 교육수준이 낮은 층이거나 아니면 반장이나 통장 등 관권에 기생하던 세력들이었죠. 대부분의 식자층은 박정희를 지독히도 싫어했고 일반 국민들 다수도 박정희를 지지하지 않는 편에 속했습니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 국민들 대다수가 자신을 지지하는데 무력으로 탄압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런 무력과 공포에 의한 통치를 카리스마라고 미화해 준다면 스탈린이나 문화혁명 시기의 모택동은 세계사에 빛나는 영웅적 지도자라 할 수 있겠죠.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실에 기반해서 했으면 좋겠습니다.
06/09/05 09:31
개척시대님/단지 역사가 비슷해서 같은 동양인으로써 미국의 인종전쟁이 아니라는것을 증명했다는것
저는 이게 과연 맞는것인지 모르겠네요 같은 동양의 나라지만 베트남은 베트남 한국은 한국이잖습니까 그리고 월남전은 인종전쟁이 아니라 공산세력vs자본세력이였습니다. 그리고 제 리플에는 외화벌이를했단 내용은 없습니다;; 단지 후에 월남전중 도로시설과 건설산업등을 미국이 우리나라에게 일임하다 시피하였기 때문에(인건비가 싸기때문이겠지요) 후에 올 중동특수를 이루어 냈다는것이지요.
06/09/05 10:01
레지엔님/ 적어도 박통은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쓴것은 맞지만 나라 부흥에 이바지한것은 분명한것이기 때문에 쓰레기란 단어는 안되는거 같은데요
인간쓰레기는 나라를 외적에 팔아넘긴 이완용을 필두로한 친일파 녀석들과 남의 인권을 무시하고 자기 인권만 주장하는 강간범들 에게나 쓰일단어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성장률을 일본의 성장률과 비교해서는 안되죠 동시대의 일본은 적어도 세계대전을 일으켰던경력이 있는만큼의 기술을 가지고있었고 단지 돈만 없었을뿐입니다(맥아더 장군이 일본을 영구중립국 동양의 스위스를 만들려고했지만 한국전쟁때문에 일본이 지금처럼된것이죠) 하지만 같은시기 한국은 가뜩이나 돈도없고 나라도 혼란스럽고 기술도 없었고 그나마 있었던 경공업산업단지는 부산을 제외한 전지역이 전쟁으로 파괴되어 돈없고 기술도 없고 산업기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즉 맨손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성장한것이기 때문에 전 기적이라고 봅니다
06/09/05 10:15
미국 지원하에 독재정부를 하면서 그래도 민주화와 경제를 이 정도로 발전시킨 나라는 우리나라 정도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문득 하곤 합니다
박정희대통령이라...국민학교 시절 선생님이 북괴의 수괴 김일성과 달리 우리는 영도력높으신 박정희대통령님께서 하는 표현을 듣고 어린 마음에도 이상하다 싶어서 집에 돌아와 어른들에 여쭤보니 다들 두려운 표정으로 신신당부를 하시던 기억이 납니다, 얘야, 어디가서 대통령 얘기 하면 무조건 훌륭한 분이라고 하거라..그게 참 이상했었습니다 제가 인정하는 공로는 이겁니다, 타고난 운을 그래도 나름대로의 추진력으로 망쳐먹지 않았다는 것이죠,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되 지나친 미화는 필요 없다고 봅니다 다만 그때 그 시절 분들은 40대 후반 이상분들이십니다, 소위 젊은층들이 수구꼴통이라고 부르는 우리 부모님 세대인데 이분들이 발전을 위해서 어떤 희생을 치르셨는지 안다면 이분들이 다소 무리한 말씀들을 하시더라도 수구꼴통이네 꼴보수네 하는 말은 할 수 없을 겁니다
06/09/05 12:53
스톰 샤~워님//
제가 40대이상을 대표한다고 말한적은 없습니다. 다만 레지엔님이 너무 확실하게 모두가 일해서 10000원을 벌었는데 98명한테는 98원이 돌아가고 나머지 9902원은 2명이 먹는다면, 이것을 '어쨌건 한푼도 못번것보다 낫지 않느냐?'라고 정당화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라고 하셨는데에 대한 반박입니다. 만약 레지엔님의 말씀대로라면 저의 부모님도 그에 속하기에 그 당시 잘살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땀방울 흘린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반박한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박정희대통령을 영웅시 했나요? 제 글에는 분명 경제분야에서 그 이후의 대통령과의 비교면에서 낫다고 했습니다. 제 논문도 유신시대의 폐해라고 밝혔듯이 독재, 인권탄압 등에 대해서는 박정희대통령이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레지엔님// 너무 감정적이 아닌가요? 그럼 박정희보다 못한 인간들은 이 지구상에서 뭐라고 불러야 하죠?
06/09/05 13:47
1. 박정희 = '쓰레기'에 대해서.
일단 다음 리플부터는 이러한 표현을 쓰지 않겠습니다. 불쾌감을 표하시는 분들이 꽤 계시기 때문에..... 단지 PoCket님께서 쓰레기의 사례로 자기 인권만 주장하는 강간범을 드셨는데, 철저하게 자기 합리화 및 영달추구를 위해서 대량학살을 자행한 살인마(이 명제에 대해서 반박하시진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토론 외 주제이니 쪽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는 상기한 강간범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더 낫지는 않은 존재라는 점을 떠올려주셨으면 합니다. 박정희가 상당히 오래된 인물로 현대인과 가치관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당시의 수혜자와 피해자가 엄연히 남아있는데도 그 심판을 제대로 받지 않은 사람에게 다소 감정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2. 분배문제에 대해서. Ange Garden님께서는 자신의 부모님을 사례로 드셨는데, 뭐라고 반박할지 참 애매해지는군요.. 너무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이유라서 말입니다. 단지 한국 경제 발전의 주요한 원인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고 보는 베트남 전쟁... 그 때 참전하신 분 두 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자기는 나라를 위해서 빨갱이 때려잡는줄 알았다고. 하지만 내가 한 건 살인청부업이었다고. 그것도 돈은 딴 사람이 챙기는. 발제자께서 경제부분에 대해서만 토론하자고 하셨고 가능한한 그 부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만 경제라는 게 따로 노는 것도 아니고 다른 부분과 다소 연관될 수 있음은 이해해주십시오. 개인적으로는 박정희보다 더 싫어하는 게 전두환이지만, 그 탐욕스러운 전두환조차도 자신의 재임기간 동안에는 3s정책으로 대표되는 우민화정책을 씁니다. 이건 돈이 '꽤나' 들어가는 정책이죠.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더이상 박정희식의 공포정치로는 분배에 대한 욕구를 해소할 수 없다고 여겨서입니다. 박정희가 살아있었다면 차우셰스쿠꼴이 났을 것이고 났어야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그겁니다. 지금의 관점에서 볼 때, 아니 60, 70년대만 하더라도 더이상 상황과 관계없는 규모성장만을 경제적 발전이라고 해주진 않습니다. 박정희가 한 것은 저겁니다. 그나마 박정희가 죽었기 때문에 대중이 벌어왔으되 남의 창고에 들어가 있던 게 조금씩 새어나오고, 정치인들이 많이 챙기긴 했지만 어느 정도 삶의 질이 윤택해졌다고 봅니다. 박정희가 장기집권했더라면? 어쨌건 그는 재임 중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분배를 시도한 적이 없고 이후에도 시도했을리 없다고 봐야겠죠.
06/09/05 13:56
아울러서, 개인적으로도 불행이고 수치이며 우리 민족의 불행이자 수치인 것이 기껏 해서 민주 국가 만들어놨더니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살을 깎아내서 경제성장시켜놓고 공권력과 무력으로 공포정치를 펴고 상상할 수 있는 온갖 탄압을 자행했으며 민족의 뿌리를 부정하던 친일 장교 출신에 그나마도 비정상적 방법으로 권력을 쟁탈한 사람을 '영웅'이라고 추켜세우고 향수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는 겁니다. 막말로 당시에 남산 한 번 끌려가보고 그런 소리를 해야죠... 전 그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그 시대에서 지금까지 넘어오면서도 그런 소리를 한다는 건 솔직히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한지 의심이 됩니다. 여기서 토론하시는 분 중에 영웅시하시는 분은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06/09/05 14:08
3. 한강의 기적에 대하여.
앞마당 먹고 8팩 쉬지않고 돌리면서 적절하게 견제하는 수준입니다. 대단하죠. 하지만 하는 사람 찾아보면 은근히 많습니다. 프로급이면 그럭저럭 다들 하죠. 한국의 경제성장은 '기록에 남고 참고할만한 사례이되 역사상 몇 안되는 기적적 사례라고 보기 힘듬'이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단순 경제성장률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의 활성화 및 질적으로 우수한 경제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경제발전에서 더 중요한 부분인데, 한강의 기적은 해외 자금 유입과 자국 내 중공업 활성화, 싼 인건비, 미국을 비롯한 당시 한국의 주요 수출 대상국의 상품 경쟁력의 둔화가 시작된 것이 맞물려서 일어난 겁니다. 이 상황에서 경제적 시스템까지 자리잡았다면 정말 모범적이고 기적적인 경제발전이지만 결국 올라간 건 숫자뿐이었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추켜세우긴 해도 진짜 기적이라고 말하긴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물론 굶어죽어가는 사람이 수두룩한 나라에서 그 정도 성장을 하면 다들 경탄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젠 그 시절도 어느 정도 지났고 냉정하게 '상대평가' 해볼 시기도 됐다고 봅니다. 아니, 좀 늦은 감이 있다고 봅니다) 물론 이건 제가 당시를 겪은 사람도 아니고 이미 풍요로워진 나라에 태어났기 때문에 당시였으면 끌려가서 고문당하고 빨갱이로 몰려 죽었을 소리를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온 생각이죠. 당시를 겪으신 분들이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단지, 조금만 자신의 주관적 경험을 배제하고 박정희라는 인물을 다시 한 번 생각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물론 저도 당시 분들을 이해하려고 해야겠죠..)
06/09/05 14:30
4. 여담으로, 경부고속도로까지.
이건 저도 명백한 근거를 가지고 말하는 건 아니고 그냥 새로운 관점의 제시를 해보는 겁니다. 고속도로라는 건 (당시 기준에서) 자동차 전용 도로를 주요구간 당 최대한 직선화하여 사람과 물자의 수송을 극대화하는 겁니다. 고속도로가 원활히 돌아가서 인프라의 기능을 잘 수행하려면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충분한 자동차의 숫자, 수송되어야 할 물자의 과잉, 수송 차량의 수용량, 주요 구간의 이동 최적화. 문제는 경부고속도로의 이용률이 극대화된 것이 79년부터란 말입니다. 그 이전에는 고속도로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수송량이 미비했고요. 결국 그 기간동안 고속도로는 놀려둔 셈입니다. 선견지명 아니냐고요? 그 돈으로 공장이나 항만 건설, 혹은 있는 도로 정비를 해두고 75년쯤에 공사를 시작했다면 정말 적절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68년은 과도하게 빠른 시기였죠. 결국 그 기간 동안 보수비는 보수비대로 날리고 공사는 공사대로 날림공사를 해버린 겁니다. 기술력 문제도 있었고... 그리고 도로라는 건 중심이 되는 주축도로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구간 이동에 대한 복선화가 더 중요합니다. 교통체증(=수송필요량 대비 수송능력의 과부하)이라는 것은 결국 특정 구간을 이동함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적을 경우 발생합니다. 예컨대 한남대교 건너서 강남대로를 타고 양재까지 빠지는 길 같은 경우에는 길이 딱 그거 하나밖에 없으면서 주변의 상권 발달로 많은 사람과 물자가 이동해야되기 때문에 저렇게 막히는 거죠. 진짜 선견지명이 있었다면 고속도로보다도 주요도시간 도로의 정비를 하는 쪽이 옳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 고속도로는 결국 지역발전 불균형을 조장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이후 정부에서 신경부고속도로를 몇 번이나 입안할 정도로(노후화의 문제로 '보수'하는 수준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새로 만드는)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는 도로입니다.
06/09/05 15:36
박정희가 아니면 경제 성장이 불가능했다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박정희가 아니면 불가능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정희는 한국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희대의 경제지도자이기 때문에? 한국민들은 박정희같은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인간에 의해 개조되지 않으면 발전할 수 없는 민족이기 때문에? 그 시기의 경제는 총칼을 앞세운 무자비한 독재가 아니면 발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도대체 왜 박정희가 아니면 불가능했을까요? 국제적인 호재가 작용하고, 훌륭한 자질을 가진 국민들이 존재하고,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국의 지원이 존재하는 매우 적절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서도 박정희 라는 요소만 빠지면 안되는 것이었을까요? 60년대말, 혹은 70년대 초까지 남한보다 더 경제적인 우위에 있던 북한은 박정희 없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6.25로 인한 파괴정도는 북한이 남한보다 훨씬 심각했는데 말이죠.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를 인정한다는 것과 박정희가 아니면 불가능했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역사를 영웅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야 말로 정말 어리석은 것 아닐까요? 콜럼부스가 미국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아메리카엔 아직도 인디언이 평화를 누리고 있었을까요? 히틀러가 없었으면 2차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리콴유가 없었다면 싱가폴은 몰락했을까요? 지금의 중국에 후진타오가 없다면 중국의 성장은 멈추게 될까요?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경제적 성과는 없었다고 주장하는 목적이 무언지가 정말 궁금하군요.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경제 성장의 속도는 조금 늦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의 우리 경제와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 같군요. 우리 민족의 잠재력은 지금의 나라 정도를 건설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만큼은 충분히 된다고 봅니다.
06/09/05 17:12
PoCket// 베트남과의 전쟁에서 미국에게 물자나 비전투병력으로 지원을 해준 나라는 십여개 국가 정도로 알고 있는데, 앞장서서 전투 병력을 파견한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전쟁이 인종간의 대결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동서양 다른 국가들의 비협조로 인종간 갈등으로 비춰질수도 있었는데, 같은 동양의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그런 점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것이구요. 외화언급은 베트남 파병으로 제법 외화벌이를 했다는 주장이 경제적인 메리트로 많이 언급되는 것이라 같이 적었습니다..
경제적인 것과는 상관없지만 우리나라가 베트남 침공을 한 것이 비극이라고 한 이유는, 같은 동양국가 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고, 똑같이 식민지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보다 일제 치하에서 억압받았던 우리 민족이, 독립할려고 투쟁하는 베트남인을 상대로 미국 편에 서서 그렇게 무자비하게 죽인게 비극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베트남에 큰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06/09/05 18:21
아무리 좋은 말로 떠들어보고 평가해봐도 중요한 건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며, 와 닿는건 결과물입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제발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치 이념 사상을 다 떠나서,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인정할 수 있는 대통령 말이죠.
06/09/05 19:37
축구에서 히딩크가 4강에 가도 히딩크가 잘한게 아니죠. 선수들이 잘한거지... 히딩크가 뭘 한게 있나요. 소리나 지르고 주먹이나 휘두르죠.
김응룡 감독이 해태 우승 시켜도 김응룡 감독이 잘한건가? 해태가 잘한거지... 사기 유닛 선동렬에 조계현, 이강철 , 김성한 , 김봉연 , 이종범, 김정수 등등 잘하는 선수가 얼마나 많았는데.... 티원이 우승해도 뭐 주훈 감독이 뭐 한게 있나? 그냥 고함만 지르고 대충 구경만 하면 선수들이 알아서 잘했을텐데... 어차피 부족하면 영입하면 되니까 선수들이 잘해서지 주훈감독이 한게 뭔가? 누가 해서가 아니다. 여건이 좋았다. 잘한 것은 잘한 것만 보면 되는거 아닌가요? 문제가 있었으면 그걸 비판하면 되는거구요. 아무리 여건이 좋았어도 아무것도 아니다 식은 그렇네요. 박정희 뭐 좋고 싫은 것을 떠나서 역사상 최고라 불리는 대통령이 여론조사든 어디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06/09/05 20:06
Sulla-Felix // 사실 근대사나 조선사에 대해서는 제가 전공자가 아니고 교양수업2개정도와 책십수권 읽어본것이 다이기 때문에 지금 제가 찾아보고 쓰지 않는한 부정확한 부분이 당연히 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국정만을 담당하는 양반 계급 - 결국 사림이죠. - 이 군역면제와 면세를 얻고 실질 생활에 상관없는 예송논쟁이니 이기논쟁이니 당파싸움에 매진한것이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근본적인 원인이라는데는 일말의 의문도 없습니다. 조금만 혜안이 있었다면 부농이나 상인들이 부를 축적해 양반문서를 사서 양반의 수가 급증하게 하는 정책따위는 나타나지 않았겠지요. 쩝. 그리고 원인이 어떻게 되었던 전 조선의 경제나 민중의 삶같은 것은 성종 때 피크를 쳤다가 영/정조대를 제외하고는 계속 하강이었다고 생각합니다.(제가본 책중 훈구파의 득세로 세종때 이미 분배정의가 무너져 국가경제는 발전했을지몰라도 일반 민중의 삶은 세종때부터 무너지고 있었다고 평가하는 책도 있었습니다.)
물론 붕당정치나 예송논쟁 같은 것들이 일제에서 말했던 것처럼 완전히 삶에서 유리되고 명분도 없는 당파싸움짓거리에 지나지않는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 조선 초기 정도전이하 개국공신들(이방원한테쓸린사람들..)과 조광조, 정약용 정도를 제외하고는, 이황/이이 이런사람들도 학문적 업적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삶에 별로 기여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전공자의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니 잘못된 내용있으면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06/09/05 22:05
너무 미화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박정희니까 이 정도까지 올라올 수 있게 한 발판을 마련해 놓은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시대를 잘 타고 난 것도 있다...물론 맞는 말이죠. 하지만 그 기회를 그렇게 잘 살린 사람이 있었을까요. 박정희 이전에는 북한이 훨씬 잘 살았는데, 역전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요. 그리고 브라질등 기타 남기국가들은 그 호기때 뭐하고 있었을까요. 중동,극동 아시아국가들은 그 호기를 맞지 않았을까요?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단어가 아닙니다. 그리고 말로만 하는건 누구도 다 합니다. 역대 정권 중 장미빛 미래를 제시하지 않은 정권이 어디 있었을까요. 진짜 중요한건 실천력이고 박정희는 이것을 훌륭하게 수행 했습니다. 그런면에선 충분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고, 너무 깎아 내리는건 좋지 않다고 봅니다.
06/09/05 23:00
위에서도 말했지만 아시아의 네마리 용이라는 한국,대만,싱가폴,홍콩이 박정희 시대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제적 성장을 이루어 냅니다. 박정희만이 이룰 수 있는 유일무이한 업적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사실 발전할만한 나라들이 발전한 것이고 예외적으로 발전할만 한데도 발전하지 못한 것이 고작 필리핀 정도죠. 그마저도 필리핀이 수천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집중적인 관리와 계획이 어려운 나라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다지 예상밖의 결과가 아니라고 볼수 있고... 오히려 실패한 나라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죠. (중동이나 남미는 그당시 아시아와는 다른 조건에 있었고 세계적으로 그다지 주목받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로서는 오히려 한국이 지금의 위치에 이르지 못했다면 더 이상할 것 같습니다.
물론 박정희가 잘 못했는데도 국민들이 잘해서, 혹은 외부적인 호조건으로 인해서 이렇게 됐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적어도 경제적 측면에서 박정희를 평가하자면 과보다는 공이 크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것이 무슨 기적이니 신화니 하면서 그의 범죄적 행위들을 눈감아 줄만한 것은 전혀 못된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충분히 박수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얘기는 가당치도 않은 얘기입니다. 살인마 유영철이 지나가던 불쌍한 장애인을 보고 선뜻 천만원을 기부했다면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가 있다는 것과 그가 박수받을만한 인간이란 거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를 이야기하는 많은 분들은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리죠. 결국 그들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가 아니라 박정희의 복권 그 자체인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경제 성장을 위해서 대통령선거는 꼭두각시들을 뽑아서 체육관에서 치르고, 게시판에서 노무현 욕하는 사람들은 중앙정보부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잡아들여가고,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은 간첩으로 몰아서 그 자식들까지 주위의 손가락질에 눈물흘리게 하고, 이명박이나 박근혜같은 인사들은 납치해서 불구자를 만들거나 죽여버리고, 자유총연맹같은 단체는 무더기로 기소해서 법정에서 사형시켜 버리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면 마찬가지로 박정희 역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인간입니다. 지금엔 올바르지 않은 것이 그 당시엔 필요했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때는 굶주리고 있었기 때문에 민주주의나 인권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이기적이고 추악한 생각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당하는 건 싫지만 남의 피눈물이 내가 사는데 밑거름이 되었다면 나는 그것을 충분히 지지하겠다는 말 밖에 더 될까요?
06/09/05 23:36
1. 박정희의 경제적 업적은 '박정희의 특수성'과 '국가적 특수성' 중 어느 쪽이 더 큰가?
- 국가입니다. 이유는 위에 스톰샤~워님(어째 써놓고보니 이상한...)과 제 리플에도 나오죠. '그런 사례 그럭저럭 찾아볼 수 있고 통계적 근거가 있을만큼은 됩니다'. 그 나라들의 당시 지도자를 다 '유능했다'고 봐야됩니까 그럼? '무능하지 않았다'가 옳은 표현이겠죠. 박정희가 '유능'했으려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더 많은 성장능력을 보여줬거나 혹은 수치상 좀 딸려도 더 건전한 경제구조를 만들어줘야했습니다. 전자는 실천력과 계획력을 보여줄 것이고 후자는 선견지명과 계획력을 보여주겠군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박정희가 '특별히 유능하지 않았다'입니다. 범인보다야 뛰어났겠지만 겨우 그 수준 가지고 영도자 운운하면 개나 소나 영도하겠습니다. 뛰어난 지도자급은 동시대는 물론이고 앞뒤 시대 합쳐서도 수위권에 꼽힐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앞뒤 시대의 지도자가 좀 정상 수준 이상은 되어야겠죠. 예컨대 전두환의 앞이나 뒤에서는 대량학살만 안해도 '더 도덕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2. 해태 김응룡, 티원 주훈, 2002년 히딩크와 박정희를 비교하자. - 히딩크? 선수들이 잘했다고요? 그 선수들 좀 잘라놓고 보세요. 과연 상대했던 팀들 선수보다 더 몸값세고 높은 평가받는 하이클래스 선수가 몇이나 있는지... 당시 한국 최고의 선수면 홍명보, 황선홍, 안정환, 그리고 월드컵을 통해 주가상승한 박지성과 이영표인데 냉정하게 말해서 이 선수들 중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독일국대에 주전을 장담할 선수는 없습니다. 기적이라는 건 이런거죠. 물론 홈 어드밴티지도 있었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못하고 안방에서만 장군이라는 소리를 듣던 나라가 홈에서 붙는다고 4강까지 갑니까? 이 정도는 되어야 영도자의 능력이 낳은 기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거죠. 티원이요? 지금이야 극강팀이지만 티원팀 초기에는 얼마나 많은 불안요소가 있었는지 기억 못하십니까? 쇠퇴기에 접어든 임요환, 부족한 저그라인, 기대치만큼 못해주고 기복이 있던 박용욱(거기에 마이큐브 이후 서서히 바이오리듬이 하강이었고..).. 최연성 선수 정도가 안정적인 카드였죠. 주훈감독님이 최고의 감독이다! 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적어도 유능하다라는 평을 받지 못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실적이 보여주는게 그겁니다.(단 티원의 우승의 1등공신이 감독이다라는 명제에 대해서는 판단유보입니다. 동의하진 않지만 남에게 당당히 말할 정도의 근거는 없어서요) 해태 김응룡 전 감독이요? 야구팬은 아닙니다만, 당시에 해태 전력을 '우승해도 당연한 전력'으로 분류하는 사람은 못 찾겠습니다만-_-a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의 일본 요미우리나 아니면 뉴욕 양키스, 혹은 레알 마드리드나 첼시 정도면 모를까... 우승가능성이 있는 팀을 '실현'시키는 건 유능하고 운도 따라줘야 가능한 겁니다. 가능성이 높은 팀을 우승시키는 건 무능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거구요. 1번에도 말했지만 다시 말합니다. 박정희는 '예상기대치만큼'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무능하지 않았다'라는 겁니다. 3. 너무 깎아내리는 건 옳지 않다... - 맞습니다. 추켜세우는 것 만큼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박정희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특히 경제부분에서는 '실천력있고 카리스마있게 경제를 발전시킨 장본인이자 보릿고개를 없앤 경제적 구세주'입니다. 저는 이걸 '추켜세웠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깎아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한강의 기적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기적이지 박정희의 기적이 아니다. 이게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걸 증명해보이려고 다른 국가의 비교사례를 제시한거구요.
06/09/06 00:07
스톰샤워님 말씀이 옳습니다. 옳구요...
박정희의 복권도 위험하지만, 박정희없이 경제발전이 지금만큼 가능했다!고 굳이 말하는것도 불필요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어려운문제죠. 다만, 박정희시대가 젤 좋았느니, 박정희같은 인물이 다시 나와야 한다느니 하는 헛소리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박근혜 지지자분들이 꽤 있으실텐데.. 글쎄요. 전 업적이라고는 박정희 딸이라는 거밖에 없는 그녀가 왜 대권후보까지 거론되는지 좀 의문입니다. 다른 업적이 있으시면 오해를 좀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냥 국회의원 정도나 쭉 하시다가 역사뒷길로 가시는게 박근혜씨의 소명이라고 전 생각하거던요.(이건 순수한 저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06/09/06 00:36
박정희 전 대통령. 그분이 나라의 발전을 원했다는 거야 틀리지는 않다고 봅니다. 굳이 그분의 대외적인 발언들이나 가까이 모셨다는(혹은 주장하는) 분들의 말을 듣는다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방법이야 어쨌든 - 설령, 정말 누구 책 제목 말마따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라는 생각을 가지면서라도(물론 조갑제씨의 동명의 책에 나와있는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단 한 점도 없습니다.) - 국가의 발전을 바라는 마음이 있었겠지요. 굳이 그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 조금 까탈스럽게 말한다면 - 그러한 생각조차 없는 이들은 국민의 공복이 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하고, 우리는 다만 지금 그분들의 공과 과에 대해 판단을 할 뿐 그러한 개인 마인드에 대해서까지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정치와 경제라는 것이 따로 떨어뜨려놓고 볼 수 있는 생물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고, 그 정치와 경제를 아예 한몸처럼 만들어 버린 것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과라는 점에 있지요. 그렇기에 여기에 나온 이야기를 발제하신 분이 경제에 대한 것으로 한정을 짓는다 해도 정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는 없는 거라고 봅니다. 개인적인 말을 하나 덧붙이자면, 그 분은 대단한 인물이지만, 그 분이 지도자인 시대에 제가 다시 삶을 영위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06/09/06 11:09
대만,홍콩,싱가폴과 비교대상이 아니지 않나요? 우리나라는 그때 전쟁의 여파가 남아 있었고, 후진국 중에서도 후진국이었는데요. 위 비교대상국가들과 이름을 같이 언급될 위치까지 올라간것만 해도 대단한 겁니다. "한강의 기적" 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개인적인 생각을 적으신 분도 계시는데, 저보고 개인적인 생각을 적으라고 한다면, 만약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야당,각종 사회단체의 반대에 부딪혀서 뭘 해보지도 못하고 있다가 지금의 중,남미 수준보다 못한 정도가 되었을꺼라고 생각합니다. 그 근거는 박정희 이전에는 제가 언급한 국가들보다 훨씬 못살았거든요. 그러니 다른 국가들하고 비슷한 발걸음을 한다면 차이가 좀 줄어들더라도 지금의 중남미 국가들보다 약간 못사는 정도? 역사에는 만약이라는게 없습니다. 박정희가 있었다면...없었다면...이런게 논의될수 있다는게 우습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봐서, 박정희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이 있었다 라는건 맞는 말이고 이걸 인정하는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06/09/06 11:41
넘팽이님// 있는 그대로를 봐서 지대한 공이 있었다고 생각되지 않기에 저런 주장을 핀 겁니다. 다시 한 번 리플을 봐주시겠습니까? 박정희가 '그 시대에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었고 동시에 불만 세력을 무마할 강력한 폭력 수단을 가지고 있었기에 공이 있는 것인가' '아니면 불만 세력보다 더 여론을 잘 조성하고 국민적 지지를 잘 이끌어내며 동시에 혜안과 선견지명, 추진력을 동시에 갖췄기에 경제적 발전이 가능했는가'를 문제제기한 겁니다. 지대한 공이 있었다는 어디까지나 평가고 그 평가에 대해서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보는데요. 평가는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06/09/06 12:07
우선 제가 글 쓰는 솜씨가 없어 죄송하고..제 소견입니다.
"박정희였기때문에 경제 발전이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박정희가 아닌 다른 사람도 경제 발전을 이루어 냈을까?" 솔직히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위에 보면 그 당시에 살아서 정확하지 않지만. 혹은 책을 보고 얘기를 한다거나, 혹은 그 당시 경제활동을 하셨던 분들의 얘기를 직접들으셨다거나.. 위에 나열한것이 다 간접적인것이 아닌가요? 저도 이 점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해봤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물음표 라는 대답이 나오더라구요. 어제 우연히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중국에서 자국에서 발생한 역사를 중국역사로 포함 시키는 내용을 인터넷에 올렸다구요. 제 동기가 저에게 물어 보더군요. 신라가 통일을 시킨것 잘못이다. 망할놈의 신라라구요. 그 친구의 결론은 고구려나 아니면 발해가 통일을 시켰어야 한다고 그러더군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박정희 대통령과 결부해서 생각해봤습니다. 그럼 결국 신라도 우리나라를 망치게 한 국가(?) 인가라구요? 그런데 결론은 나오지 않더군요. 그럼 여러분께 여쭈어 보고 싶습니다. "당과 결부해서 삼국을 통일 시킨 신라는 어떻다고 생각하시나요?" 여기 계신분들은 두개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볼때는 역사를 평가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같다고 봐지네요. 누가 시원한 답변좀..^^ 그럼 모두 즐거운 식사하세요.
06/09/06 12:07
넘팽이님//
그렇게 조건을 따지기 시작하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나라가 어디 있을까요? 대만은 우리나라와 달리 단일 민족이 아니라 토착민과 한족과의 심각한 갈등이 있었습니다. 홍콩이나 싱가폴은 국가라고 할 수도 없는 작은 규모의 도시 국가 입니다. 북한은 6.25로 인해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만 60년대 말까지만 해도 남한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죠.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가 과보다는 공이 많았다는 것은 여기 토론의 대다수가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굳이 그에 대해 반박을 하면서 박정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와 국민의 잠재력을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하고 박정희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에 다름아닙니다. 한강의 기적을 얘기하지만 독일은 2차대전의 참상을 극복하고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독일은 알지만 그 기적을 이끌어낸 위대한 독일의 영도자는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왜냐 하면 그 기적은 그 영도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독일 국민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독일 국민들이 대단한 거 아닙니까? 그러나 한강의 기적은 굳이 근면하고 뛰어난 자질을 가진 국민들이 아닌 박정희에 의한 것이라 주장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슨 근성일까요? 박정희라는 폭군이 때려잡지 않으면 절대 안되는 썩어빠진 국민들이었다는 말입니까? 일본놈들의 말처럼 조선놈은 패야 된다는 말인가요? 독일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독일은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내고 이를 통해 자국민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반면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내고도 독재자를 칭송하고 자국민을 독재자가 아니면 성장하지 못하는 존재로 비하하는데 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히틀러가 태어났더라면 5000년 역사의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칭송될 것 같습니다.
06/09/06 12:09
추가 -
1. 대만, 홍콩, 싱가폴에 비해서 한국의 사정이 더 안좋았다. 위의 세 국가는 한국에 비해서 소국입니다. 더 쉽게 자국의 힘을 집중시킬 수 있다는 이점과 동시에 발전의 한계를 가집니다. 시장 자체가 내수만으로 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거든요.(한국은 인구보다도 자원부족으로 내수시장이 약합니다) 한국의 전후의 여파를 고려한다면 저 세 나라 역시 한국보다 더 안좋은 사정이 있었고(시장규모의 한계가 그렇고, 대만은 자금력은 더 좋았지만 기반 경제 수준은 한국 이하, 홍콩은 식민지니 논외고 싱가폴은 독립 직후여서 경제력을 갖추기 위한 준비는 한국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어차피 한국전쟁 이전에도 한국에 제대로 된 공장시설이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저 세 나라는 화교(홍콩은 유럽까지)들의 자본을 끌어모아서 발달했지만 한국은 베트남 전쟁 특수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는 차이도 있죠. 무엇보다 각각 장단점이 있겠지만 저 세 나라는 한국처럼 특정 기업이 정부의 힘을 업고 시장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위험한' 시장구조를 형성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물론 싱가폴같은 철저한 관치중심 경제도 안좋긴 합니다만..) 이건 수치적인 경제발전을 넘어서서 사회 구조에도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고 그래서 박정희의 '혜안'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겁니다. 2. 중남미와의 비교. 중남미, 특히 아르헨티나의 경우 풍부한 천연자원을 통해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룹니다. 마치 중동이 석유특수로 어마어마한 달러를 벌어들인 것처럼...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주요 생산 기반이었던 농업이 경쟁국이었던 미국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분배문제의 심화가 이루어지고(이건 대지주층의 권력강화로 이어집니다), 2차산업으로의 전환을 꾀할 타이밍을 놓쳤으며, 군부 쿠데타로 사회가 뒤흔들린 후에 '무능한' 정치 지도자들이 제대로 된 비젼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필연 - 역사에서 이것만큼 웃긴 단어도 흔치 않지만 -'이었다고 봅니다. 흔히 페론의 파퓰리즘이 주원인이고 이걸 분배문제라고 주장하지만... 그건 페론 이후의 군부정권, 그리고 그 군부정권과 입장이 굉장히 유사했던 한국의 군사정권, 남미 견제를 굉장히 좋아하는 미국에 의한 것이고... 실제로 페론의 정책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인기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의 파퓰리즘과는 크게 차이가 있었습니다. 박정희가 저들보다야 낫죠. 무능하지 않았다가 그 이야기입니다.(이거 몇 번을 더 반복해야 될지 참 의문입니다) 3. 다른 국가들의 기준을 어디에 맞출 것인가. 세계 평균에 맞춘다면 중남미 수준이 되어야겠죠. 하지만 동시대의 한국과 상황이 비슷한 국가는 전후 부흥기의 일본, 서독입니다. 두 나라에 있던 우수 인력보다 한국의 인재pool이 훨씬 빈약했다는 점에서 두 나라만큼의 성장능력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당연하죠. 만일 저 두 나라에 근접할 정도의 성장을 보여줬고 그게 박정희 시대에서부터였다면 박정희는 '유능했다'고 평할 수 있지만 한국과 별 다를 바 없던(종합적으로) 싱가폴, 대만, 홍콩(왜 종합적으로 별 다를 바 없는지는 이 리플 1번에 써놨습니다)보다 그다지 나을 바 없는(혹은 뒤쳐지는) 성장능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박정희라는 개인의 뛰어난 능력보다 시대상황이 더 주요 요인이었다는 겁니다. 같은 시간 공부해서 남들 15~20점 오를 때 나도 한 17점쯤 올랐으면 내 머리가 남보다 좋다고 주장할 수 없겠죠. 대신 머리가 더 나쁘다고 할 수도 없고요. 그 얘기입니다. 4. 경제성장을 어떻게 비교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제 리플에서 두 가지로 비교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률이라는 수치, 그리고 '바람직한' 경제모델에 얼마나 접근했는가. 상대수치인 성장'률'에서 박정희 시대의 한국은 그럭저럭 수위권, 시장 규모를 감안한다면 좀 더 높아지겠죠. 그리고 경제모델에선 리콴유랑 같이 점수가 낮습니다. 독과점 시장의 형성은 그 자체로 해악입니다.(이게 왜 해악인지까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다른 분에 대한 무례가 될테니..) 그리고 두 지도자의 공통점은 '아시아적 가치와 아시아적 민주주의'를 줄기차게 주장했다는 겁니다.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모델을 처음부터 구상해본 적이 없다고 봐야겠죠. 5. 그래서, 이 리플을 다는 본인의 주장은 무엇인가? 그만 좀 반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거. 박정희가 '유능'했으려면 동시대의 비슷한 상황, 혹은 과정을 거친 다른 국가에 비해서 '더 나은 점'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과정과 상황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경제발전'과 '해외 자금 유입, 강력한 중앙 정부의 힘, 야당과 반대세력을 억누를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걸 만족하는 게 서독, 일본, 대만, 홍콩, 싱가폴이라고 보는 것이고, 이 다섯 나라에 비해서 한국이 특별히 더 나쁠 상황인 것은 일본과 서독에 한하여 그들보다 지식 수준이 많이 부족했다는 것이고, 그 외의 종합적인 상황은 같습니다. 그리고 발전 정도에서도 서독과 일본이 다른 나라들 이상가는 수준이고 나머지 네 나라 역시 비슷했습니다. 또한 당시의 경제체제에서 현재로 넘어오면서 특별히 바뀐 바가 없다는 점(경제모델의 지향점이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차이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역시 공통점이군요. 차이점은 대만이나 일본과 비교해서 극명한데 독과점을 막은 두 나라와 못 막은(안 막은이라고 쓰고 싶지만...) 한국의 경제 위기때가 되겠군요. (저 두 나라는 한국만큼 크게 위기를 겪지는 않았으니까요) 다시,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더 나은 점'을 보여주십시오. 그게 박정희가 '유능'했음을 증명하는 겁니다. '무능하지 않은 점'은 저도 인정하고 얼마든지 증명되는 부분입니다.
06/09/06 12:12
민간인님//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라의 통일과 고구려의 통일을 비교하려면 고구려의 통일과 비슷한 사례를 역사에서 찾아야 되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동시대에 한반도와 동일 상황인 국가는 제가 알기로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교가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한국의 경제발전은 다른 3룡(미네랄멀티?..)이나 서독, 일본과 많은 공통점, 그리고 적은 차이점(결과에서는 이 차이점이 더 크게 드러나지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비교대상이 됩니다. 단순한 발상에서 출발하는 가정이 아니라 논리적인 비교가 어느 정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평가기준도 세워지고 동일 factor에 따른 동일 result를 제거함으로써 차이점을 비교, 분석가능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주장이지만, 저도 신라가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고구려나 백제에 통일의 당위성이 있다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신라가 통일할만 하니까 통일시킨 것이고, 물론 그 대신 한국의 역사는 한반도로 축소되었다는 점에서 굉장히 아쉽긴 합니다.
06/09/06 12:18
그리고 스톰샤~워님의 리플에 오류가 있어서 씁니다. 혹시 이 부분이 딴지걸리면 내심 같은 편-_-... 이라고 생각되기에 당황스러운 상황이 만들어질 것 같아서요. 당시 독일의 지도자인 '아데나워'는 꽤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지도자이고(유명해요 독일역사 소개하는 만화에 이름이 빠지지 않을 정도니;), 그의 공이 없다고 부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단지 그가 박정희보다 더 우월한 점은 좀 더 선견지명이 뛰어났고(경제모델의 확립에 있어서 아데나워는 다소 관치주의적인 복지국가 형성을 이상점으로 삼았습니다. 정경 유착이 아니라...), 국내의 반대를 무마시킴에 있어서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더 고단수입니다. 만일 서독과 한국의 국민성 차이를 박정희와 아데나워의 수단 선택에서의 차이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신다면 '된장은 맞아야 된다'는 의견과 다를 바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 부분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는 스톰샤~워님의 의견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06/09/06 13:22
레지엔 님//
제가 한 얘기는 아데나워가 별로 한 일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라인강의 기적을 아데나워만의 업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는 얘기를 강조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라인강의 기적을 보며 '독일 사람들 대단하네'하고 감탄하지, '아데나워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했을 텐데 아데나워가 굉장하구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말이죠. 객관적으로 평가해 볼 때 아데나워가 박정희 보다 훨씬 뛰어난 지도자라고 봅니다. 하지만 지금의 독일 국민에게 '아데나워가 없었어도 라인강의 기적이 가능했을 것인가'라고 물으면 독일 국민들은 뭐라고 할까요? 아데나워가 없었으면 야당과 각종 사회단체의 반대에 우왕좌왕하다가 그저 그런 나라 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대답할까요? 아마 극우주의자들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렇게 대답하진 않을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에 대해 '박정희가 없었어도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 박정희가 없었으면 지리멸렬하다가 그저 그런 모양이 되었을 것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죠. 아직까지 이런 낮은 의식 수준이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 발목을 잡고 있다는 뜻이지, 우리의 국민성을 비하하고자 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06/09/06 13:25
스톰 샤~워님//
그런 의도로 쓰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 평가의 '우선순위' 문제지 지도자 개인의 능력을 primary factor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요. 단지 아예 언급을 안하셔서(모르셔서 안하셨을 리가 없죠;;) 그런 반박이 들어올까봐 미리 선수-_-;; 친 겁니다. 제 리플에서 '만일 서독과 한국의 국민성 차이를 박정희와 아데나워의 수단 선택에서의 차이로 이어졌다고 주장하신다면 '된장은 맞아야 된다'는 의견과 다를 바 없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는 저 부분에서 반박하실 분들에게 미리 던지는 거구요;;
06/09/06 15:19
레지엔 // 너무 과학실험하듯이 역사를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지도자들의 비교를 실험실에서 변인통제하듯이 하고 논리적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은 ... 좀 무리가 아닐까요? 어떤 결론을 이끌어내더라도 '같은' 아니 '비슷한' 조건도 찾아내는게 힘들겁니다. ... 시각의 차이겠죠.
뭐든지 토론을 하다보면 완전 회색이 되어가는 저의 성향에 맨날 놀라곤 합니다. 박정희가 없었으면 지금의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박정희가 없어도 이정도 경제발전은 가능했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나 제눈에는 둘다 의미없고 약간은 (죄송합니다만) 어리석어보이기까지 합니다. fact 는 그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치/경제상황을 박정희가 정리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는 거죠. 거기에 더해 수많은 부작용을 낳았다는 것이구요. 그이상도 그이하의 가정도 필요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중요한건 오늘이라고 생각해요.
06/09/06 15:54
역사학에서 '가정'따위는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당장 지금 현재의 발전 요소만 가지고 5후의 미래를 예측하는것만해도 불가능한데 수십년전에 박정희가 대통령이 아니라면? 한마디로 논할가치가 없는 소리죠. 물론 상상력을 토대로 재미삼아 접근한다면 문제는 다르지만... 까놓고 말해 박정희가 대통령 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백만가지의 요소가 변하게 됩니다. 그후에 어떻게 될지는 그것은 아무도 모르죠.
06/09/06 20:07
여담이지만 전 이런 pgr이 너무 좋아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 그리고 각기 다른 생각들.. 모든 일에대해 한번 쯤 더 생각하게 만드는곳.
생각을 만들게 해주시는 여러분도 감사합니다..전 퇴근.이만..
06/09/06 21:12
개척시대님/동서양 다른 국가들의 비협조로 인종간 갈등으로 비춰질수도 있었는데, 같은 동양의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써 그런 점이 많이 희석되었다는 것이구요.
↑그럼 월남전은 동양인vs서양인으로 가야될것을 우리나라가 끼어드는 바람에 공산세력vs자본세력으로 되었다는것인가요? 또한 독립할려고 투쟁하는 베트남인을 상대로 미국편에서 서서<--- 이것은 베트남이 미국의 식민지로 알고계시는듯합니다. 베트남은 미국이 아니라 프랑스였으며 프랑스상대로 독립을 얻어낸뒤 우리나라처럼 북쪽의 공산진영과 남쪽의 민주진영으로 나뉜것입니다. 이때 미국은 아시아에 공산진영이 퍼지는것을 우려해 우리나라처럼 남베트남을 지지하였습니다 하지만 남쪽의 자본진영의 부정부패로 인해 남쪽에서도 불만이 생겨 국민중 일부(혹은 반이상일수도 있겠군요)가 북쪽 공산진영의 지원을받아 VC(베트콩)이라 자처하면서 남베트남에대해 게릴라전을 펼칩니다(북베트남은 NLF이라고불리었습니다). 그후 북베트남소속의 초계정들이 남베트남에 있었던 미군의 구축함을 공격하는 사태가 벌어져 월남전이 발발하게된것입니다. 즉 공산세력의 북베트남(NLF), 베트콩(VC) VS 남베트남군(소수-_-), 미군(대다수), 한군(지원국중 유일한 전투병력파견)이고 우리는 베트남을 공산세력으로부터 보호해줄려고했다는 측면에서 전 빛졌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06/09/06 21:35
그런데 제생각엔 요즘들어 박통때의 향수를 느끼는 분이 많으신이유가 YS정권 들어설때부터 경제속도가 조금씩 둔화되더니 이번 노무현대통령대에서는 ㅡ.ㅡ;;; 그리고 박통의 능력은 과감성인거 같습니다. 요즘 경부고속도로같은 서울-부산 일직선 도로 건설하겠다! 라고 하면 과연! 가만히 있었을까요;;; 한사람에 의해 터널공사도 취소되어 돈몇십억이 공중에서 산화된일도 있었는데 말이죠 폭력을썻다는점에서는 한숨밖에 안나오지만서도.... 그리고 박통의 경제적센스중하나가 일단 최신식기계를 들어오면 기업으로 가는것이 아니라 실업계학교로 보내졌다고하더군요. 그리고 외국에서 바이어들이 오면 공장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학교에서 실습하는 모습을보면서 우리나라는 이런 최신식기계를 사용해서 교육하고있다 믿고사도 된다 가격도 싸다 라는 인식을 들게해줘서 수출에도 한몫했다고합니다. 그리고 박통없었어도 경제발전을 했었을것이다 라는것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느렸으면 느렸지 박통시절의 경제속도만큼은 절대 나오지 않았을거 같습니다. 그리고 박통은 확실히 나쁜사람이였다 좋은사람이였다 라고 선을긋지 못하는 인물같습니다. 전두환-노태우 처럼 눈에 확보이게 일저질렀으면 좋을련만 워낙 엄폐되어있고 근거없는 학살소문도 나돌고있고말이죠;; 다들 편한대로 생각하면되겠네요;
06/09/06 22:39
PoCket// 베트남이 프랑스 식민지였다는 것도 당연히 압니다-_- ; 제 말을 너무 삐딱하게 보시네요. 우리나라가 베트남 파병을 하기 전에는 동서양에서 적극적으로 전투병력 파병한 일은 없습니다. 타국의 비협조로 일부에서는 인종간의 갈등으로 비춰지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전투병력 파병으로 그런 논란은 사라졌다 그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의 용병이라는 비아냥은 들었지만요.. 갑자기 "우리나라가 끼어들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대결이 되었다" 는 말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네요.
전쟁에서 베트남의 진정한 목적은 오랫동안 억압 받아왔던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을 하기위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국주의에 억압받고 월남 망국사를 읽으며 일제치하에서 제국주의에 대한 분을 키웠던 우리가, 미국에 협조한게 안타깝다는 그말입니다. 뭐.. 베트남에게 빚졌다는 제 생각을 강요하는건 아닙니다. 어쨋든 지금의 베트남인들은, 그때 전쟁에서 한국인들에 의한 민간인 학살 등을 한국인 스스로 비판하며, 일부에서나마 사과하는 것에도 감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06/09/07 04:16
Pocket님//박통 논쟁은 워낙 많이 해봤고 결론이 안 나는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눈팅만 했습니다만, 베트남에 대한 님의 의견에 조금 거부감이 들어 댓글을 써 봅니다. 민족주의는 싫어하는 사람입니다만, 기본적으로 베트남전은 베트남 민족으로 대표되는 피억압계층과 제국주의 외세 간의 대립이었다는 점에서 민족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듯 싶군요.
당대 베트남은 미국의 권위에 기댄 괴뢰 정부인 지엠 정부가 들어서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반식민지적 지배 질서와 지엠 정부의 실정에 분개한 민중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고, 그 저항의 이데올로기로 공산주의가 작용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자면, 일제 시대에 저항 세력의 대부분은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을 들 수 있을 듯 싶군요.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은 미국에 의한 제국주의적 침략 행위에 동조한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보호(왜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느냐라고 묻고 싶습니다만 답변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니 패스하도록 하지요.)가 아니라 베트남을 미국의 지배하에 놓기 위한 전쟁을 도와준 꼴이지요. 베트남전은 기본적으로 공산주의vs자본주의처럼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베트남민의 해방vs미 제국주의적 침략의 식민지적 대립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적인 접근들을 다 떠나서,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살인 행위가 도대체 얼마나 됩니까. 베트남에서 미군보다 한국군이 더 잘 싸웠다는 것 -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더 베트남인들을 잘 살해했다는 것 - 을 자랑하고 다닐 수 있다는 게 정상적인 사회의 모습인지 의문입니다. 참고로 베트남 전과 관련된 것이라면 방현석 작가의 작품들을 추천합니다. 특별히 '랍스터를 먹는 시간'과 '하노이에 별이 뜨다'란 작품을 추천하고 싶군요. 덧붙여:베트콩이란 표현은 쓰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한국에 대입해 보면 '조센징'과 같은 맥락의 말인데..
06/09/07 11:28
개척시대님/왜 월남전을 인종간의 전쟁으로 보실려고하는거죠?
월남전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공산vs자본인것인데 말이죠. 월남전의 본질을 잘못보시고있는거 아닌가요? 진리탐구자님/ 베트남에서 한국군이 자행한 살인행위<=== 이건 동조할수없군요. 군인이 군인을 죽인다는것과 군인이 민간인을 살해했다는것을 의미하시는거 같습니다만 위에 적었다 시피 베트콩들(스스로 베트콩이라 지칭한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독립군이라 지칭했지 조센징이라고 하진않았습니다) 은 남베트남 시민들중에 상당수있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나치스란 단어도 안되죠 N.S.D.A.P라고 불러야합니다) 이들을 민간인들로 보시면 안되죠 베트남민의 해방vs미 제국주의적 침략의 식민지적 대립입니다 <--- 베트남이 애초부터 공산국가인걸로 보신겁니까? 역시 적었다시피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이루어낸뒤 남쪽에는 미국의 지원으로 한 자본진영과 독립을 이끌어낸 주역인 북베트남으로 나뉜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월남전은 세력으로 분류하면 소련, 중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북베트남군(NLF)과 남베트남의 베트콩(VC) Vs 남베트남군(무능에 소수), 미국(대다수) 한군 인데 과연 제국주의적 침략이면 남베트남군은 뭡니까-_- 전<a href=http://www.vietvet.co.kr/ target=_blank>http://www.vietvet.co.kr/</a> 을추천합니다
06/09/07 12:00
엉뚱하게 베트남전 이야기가 나와서 토론의 본류와는 관계없는 얘기지만 한마디 거들겠습니다.
토론을 하는데 있어서 개인의 신념이나 주관에 따라 토론을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답이 없어집니다. 기존에 정리되어 있는 기본인식은 공유한 위에서 서로의 차이를 토론해 나가야지, 사회에 보편적으로 동의된 내용까지 모두 부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토론하다 보면 토론은 불가능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베트남전의 성격에 대해 공산주의 vs 자본주의의 전쟁이었다고 보기보다는 제국주의 미국과 국가 주권을 확립하기 위한 베트남의 전쟁이었다는 것은 거의 재론의 여지가 없이 대다수가 공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립이었다면 전세계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도 (심지어 미국 내부에서조차) 미국을 비난했는데 이건 자본주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승리를 염원했다는 말이고 자기가 자기를 욕하는 것밖에 안되는 말입니다. 이에 대해 다시금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면 토론은 불가능하죠. 그리고 Pocket 님은 베트남 전에 대한 정보는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통킹만 사건이 미국의 조작이었다는 것은 미국의 기밀 해제된 문서에서 드러난 지가 오래 전인데도 아직까지 베트남전 발발을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나, 미국의 초토화작전 으로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며 저들은 공산주의자였다고 하는 변명을 그대로 믿으시는 거나, 총 유권자 수보다 더 많은 투표참여를 기록하며 98%의 지지라는 엄청난 부정선거로 당선된 고딘디엠 정권을 꼭두각시 정권이 아닌 정통성을 가진 정권으로 인정하시는 거나 일반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기존의 생각들과는 너무 다릅니다 그리고 베트콩은 스스로 그렇게 지칭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공산주의자로 매도하기 위해 미국이 그렇게 불렀던 것입니다. 베트콩이란 말이 베트남 코뮤니스트를 줄인 말이죠. 그러나 실제로 미국에 항거하다 죽어간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인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공산주의자로 만들었을 뿐이죠. 덧붙여 님의 논리대로 하면 우리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욕할 자격도 없습니다. 일본으로서는 서구 제국주의로부터 조선을 지켜주기 위해 한 것이니 전혀 빚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죠. 실제로 일본 극우주의자들은 공공연히 그런 말을 하구요. 자신의 과거라고 미화하고 남의 과거는 함부로 평가한다면 우리 역시 남들의 잘못을 지적할 자격이 없겠죠
06/09/07 13:08
PoCket // 제가 위에서 잘못 적었나 곰곰히 읽어봤는데,, 왜 자꾸 그런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베트남 전쟁이 인종간의 대결이라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 전쟁이 일어날 당시에 그렇게 보는 시각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시각때문에 일어난 논란은 우리나라 참전으로 불식되었다는 그 말을 하는데, 자꾸 잘못 이해하시는 듯 하네요.
자꾸 본문과는 크게 상관없는 쪽의 리플을 달게 되는군요...-_-;;
06/09/07 16:18
본문과 다른 주제의 댓글을 오래 쓰는 게 좀 죄송스럽네요. 이것만 쓰고 더 이상 안 쓰도록 하지요. -_-;;
PoCket님//베트남의 프랑스로부터의 해방은 호치민을 중심으로 한 북베트남 공산 세력이 주도했던 일입니다. 이념을 떠나서 이들은 기본적으로 자주적 해방 세력이라는 것이죠. 이런 상태에서 미국의 개입에 의해 구성된 남베트남 정권은 미국의 괴뢰 정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지엠 정권은 폭력에 의존한 독재 체제를 유지했으며, 이로 인해 심각하게 민심을 잃어 미국의 지배 질서에 기생하지 않으면 하루라도 버티기 힘들 정도로 남베트남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습니다. 오죽하면 지엠 정권이 주민 통제를 위해 만든 전략촌들이 모조리 베트남 코뮤니스트(위에 스톰 샤워님이 지적하셨듯이 베트콩은 베트남 코뮤니스트들이 자신들을 지칭했던 말이 아니라 반대 세력에 의해 불린 말입니다. 지금도 베트콩은 상당히 모욕적인 말로 쓰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에게 넘어 갔겠습니까. -_-;; 즉, 남베트남은 민중 해방에 의해 자주적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라 외세의 개입 속에서 미국의 힘에 의지해 성립된 것이므로 일단 성립 과정부터 정당성이 없으며, 통치 과정에서 민중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함으로써 사후적 정당성마저도 얻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꼭두각시 정권이죠. 남베트남이 미국의 괴뢰 정부인 것이 분명한 이상, 이건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저항 전쟁이지 이념 간 분쟁이 아닙니다. 남북한 모두가 외세의 속국에 지나지 않았던 6.25 전쟁과는 성격 자체가 다릅니다.
06/09/07 21:12
1. 역사적 사실의 과학적 비교는 무의미하다?
- 너무 동떨어져있다면 모르지만 제가 제시한 국가들은 충분히 비교가 가능한 수준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만... '발전하는 국가에 있던 지도자였는가' '지도자가 훌륭하여 발전하였는가'의 논쟁에서 당연히 '비슷한 상황의 또다른 발전하는 국가'를 제시해서 '박정희는 발전하는 국가의 지도자였다'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이걸 반박하시려면 '그런 식의 비교가 어떻게 되느냐'가 아니라 '그 나라들은 한국과 사정이 다르다' 혹은 '그 나라에도 박정희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다'라는 주장이 나와야 맞다고 봅니다만... 2. Fact는 무엇인가? - 박정희가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경제/정치적 상황을 정리하고 경제적 발전을 이끌어내었다는 평가입니다. Fact는 박정희 시대에 발전이 이루어졌다와 박정희가 경제 개발 계획의 입안 총 책임자였다, 그리고 반대 의견을 묵살하였다 겠죠. 박정희가 정말로 '정리'하였는가, 그리고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이루어낸 것인가'가 지금 토론되고 있는 부분입니다.
06/09/07 21:17
3. 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
- 이 문장의 의미는 사실관계의 변화로 결과를 유추해는 것이 위험하다라는 겁니다. 비교 평가에서의 가정과는 엄연히 달라요. 이 문장의 오해는 전두환이 광주에서 학살을 자행했는데, 누군가가 '전두환이 아니었다면 광주가 아니라 전국적으로 학살이 일어났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다'라는 식의 옹호도 가능해집니다.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한국은 더 발전했다/덜 발전했다'라는 문장은 말 그대로 개인의 생각일 뿐입니다. 그러나 동시대의 비슷한 상황에 있던 다른 국가와 한국을 비교함으로써 차이점이 결과의 차이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를 생각하는 것은 역사학은 물론이고 모든 사회과학분야에서 하고 있는 방식입니다. 단순 가정과 비교를 위한 가정을 착각하는 오류입니다.
06/09/07 21:19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제 주장은 박정희가 경제 발전에서 수위권에 오를 정도로 중요한 요인이 아니었다! 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저 위에 리플들에 달아뒀습니다. 굳이 다시 써서 스크롤 압박에 일조하고 싶지 않습니다-_-; 이 주장에 대한 반박은 ' 박정희가 '유능'했으려면 동시대의 비슷한 상황, 혹은 과정을 거친 다른 국가에 비해서 '더 나은 점'을 찾을 수 있을 때' 가능하다고 봅니다.
06/09/08 05:30
이런 가정을 하고 싶네요 박정희가 아니라도, 강력한 통제력을 가진 누군가가 없었다면, 경제발전도 사회발전도 미미한 수준이거나 퇴화되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정권이 들어서기 직전에 이 땅에는 경제활동을 위한 인프라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일을 하고 싶어도 돈을 벌 수 있을 만한 직장은 없었고, 몇몇 자본이나 땅 가진 자들만이 잘 살았죠) 또한 정부의 통제력은 국민들에게 미치지 못할 정도로 정치나 치안상황은 개판이었죠 일단 박정권이 처음에 했던 건, 치안강화와 이념확립을 통한 사회안정, 통합이었죠 깡패와 도박꾼들을 잡아들이고, 강한 반공교육과 법을 통한 국가의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그리고 경제의 근간토대산업을 위해, 갖은 수단을 동원합니다 일본에 굴욕적이나마 차관과 기술원조를 받았고, 화폐개혁을 통해 돈 많은 화교들의 자본을 은행에 묶고 그것을 자금화합니다 또한 간호사를 독일에 보내고, 월남전쟁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였죠
이렇게 무리하다시피 모은 자금으로 경제개발의 토대인 철강과 고속도로를 만들고, 일본,미국을 통해 무역을 함으로써, 점차 부를 축적해 나갔습니다 이렇게 그 당시상황에서 한 정책이나 경제주도활동에는 양면성이 있었고, 이것이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박정권처럼 안 해도, 누군가가 그 당시의 빈곤과 혼란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이와 비슷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기에 박정권의 행동들을 결과론적으로 따지면, 실보단 득을 더 부각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06/09/08 15:37
음 저도 rocta 님 생각이랑 비슷합니다.
제 관점은 '박정희'라는 사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어느정도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치상황을 강제적으로라도 정리하지 않았다면(이행위를 옹호하자는 건아닙니다.) 지금의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고... 레지엔님 말씀에 좀 덧붙여보자면, '박정희'가 유능하지는 않았으되, 박정희의 존재자체는 분명 지금의 경제발전에 수위권에 오를 정도로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죠. 그 사람이 '박정희'일 이유도 없을 뿐더러, 다른 국가의 지도자들에 비해 더 유능한점을 찾아야 할 이유도 별로 없는거라고 생각합니다.
06/09/11 12:18
글쎼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박정희의 유능함이 아니라 '무난함'이더라도 점수를 주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역사에 if는 없지만 박정희가 없다면 장면...내각에서 무언가를 해야 할텐데 장면대각은 아시다시피 매우 ..너무 심각했습니다. 분명히 발전은 햇겠지만 적어도 10년은 먹어치웠을것 같군요...즉 박정희는 유능함에 초점을 맞출필요가 없습니다 그당시 상황은 정말로 '무능'그 자체였으니까요 싱가폴 홍콩이런데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리나라 상황에 맞춘 유능함을 찾는다면 충분히 찾을수 있는 대통령이라 봅니다 저는..
06/09/12 21:09
독재자였기에 경제발전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경제발전이 미미하진 않았을 겁니다. 레지엔님이 말씀하신대로 동시대의 비슷한 과정을 거친 나라와 비교했을 때, 지도자의 역량과는 별 상관없이 어쨋든 발전해 나갈 수 밖에 없는 세계정세였습니다. 오히려 박정희 개인이 가진 약점으로 손해가 많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가 흘리게 한 많은 피눈물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경제가 20년쯤 뒤쳐져 있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06/09/15 16:31
한국에선 경제발전이 불가능 했다고 봅니다.
당시 박정희의 개인 능력이나 주류가 아니였던 일본,독일식 정책 그리고 환영받지 못했던 당시 정책들은 분명 필요했지만. 다른 세력들은 그걸 해내지 못했으리라 생각합니다.
06/09/16 14:07
물론 그 시대에 열심히 일한 국민들을 폄하하는것은 아닙니다만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라는것은 넘치는 노동력만 갖고 되는게 아닙니다.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라는것은 안정된 정치구조와 ( 비록 그것이 독재였다는게 문제지만 일단 체제는 Stable하죠 ) 정부의 추진의지와 자본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최빈국은 무얼 하려고 해도 기반시설 이나 자본이 없기 때문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자본을 구걸해서라 도 빌려오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 세대의 노동자를 착취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본이 없고 생산시설이 없어서 일을 하려 해도 하지를 못하고 아주 낮은 임금의 메리트를 내세움에도 고용이 안됩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착취(?)"를 하지 않고 사회민주주의 방식으로 일정이상의 높은 임금으로 제한한다면 경제학 법칙에 따라 고용은 낮아지고..또 안그래도 자본이 없어서 빌려서 겨우 시작하는 국가가 대체 뭘 할수 있단 말입니까? 착취라는게 대체 무엇입니까? 일자리는 자동으로 만들어지는게 아닙니다. 자본이든 노동이든 생산시설이든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쓴 저자도 이 "개도국 노동자 착취"라는 비판에 대해 강하게 의문을 가지고 있습 니다. 빈곤한 국가들의 실상을 보면 아주 낮은 임금에도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노동력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일자리를 못구합니다 그리고 당시의 지니계수는 결코 다른 국가들(선진국포함) 비교해서 높지 않았습니다.
06/09/16 14:10
그리고 당시 우리나라처럼 60불의 국민소득을 가진 국가나
필리핀처럼 우리나라보다 훨씬 잘 살았던 국가의 현재를 비교해보십시오 그런 나라 중 처음에 민주화세력이 정권을 잡았던 나라들의 현재상황을 보십시오. 온갖 잡음과 분열이 안일어나거나 내지는 중간에 쿠데타나 내전 안 일어난 국가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만큼 민주화된 국가도 드물구요. 우리나라만큼 경제력이 있는 국가는 아예 없구요 박정희 체제가 좋은 체제라는건 아닙니다만 현대사회전체를 놓고 볼때 그 시대에는 너무 무리한 요구가 아닌지요
06/09/16 19:20
박정희 경제정책의 대한 펌글입니다. 너무 길지만.....
현재 주도세력인 386들이 과거를 부정하다 못해 왜곡하는 측면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한 반론입니다. 1. 박정희 집권기를 산정함에 있어.. - 집권 18년이라 하니까 62년부터 계산하시는 진보학자들이 참 많은 것 같은데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킨 것은 61년이지만 보편적으로 박정희 정권이라 했을 때는 제3공화국에 태동한 63년부터 기산하는 것입니다. 노무현의 실적을 평가한다 했을 때 당선자 시절인 정권 인수위 부터 계산합니까? 아니죠? 63년부터 79년도까지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계산하면 9.8% 입니다. 이는 대만보다 높은 수치이며 세계 1위죠. 63년부터 계산하느냐 그 이전부터 계산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뒤바뀝니다. 이필상씨나 강준만씨가 이걸 모르지는 않았을텐데 아마 의도적이 아닐까 생각되구요.. 2. 높은 인플레와 물가상승률을 공격하기 전에.. - 그러다면 이승만이나 장면이 집권했던 53년~ 60년대까지의 인플레율은 어느정도 일까요? 자료에 의하면 23% 라고 나와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앞의 인용문에 등장하시는 그 어느 저자분도 언급하지 않더군요? 허~ 도대체 무슨 꿍꿍이들인지.. 즉, 이승만이나 장면정부 시절에도 한국의 물가나 인플레율은 살인적이었고.. 이는 식민지 경제가 근대화 되는 과정을 겪었던 어느 국가 어느 정부에서도 겪어왔습니다. 그게 무슨 박정희만의 과오인냥 얘기하는 이필상씨는 왜 한국의 인플레가 그렇게 높을 수밖에 없었는지 구조적인 요인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계십니다. - 박정희는 투자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낮은 조세부담율과 만성적인 적자예산 평성, 그리고 높은 통화팽창률과 낮은 이자율을 계속해서 유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풀뿌리 밖에 없는 이 국가에 그 어느나라도 투자하지 않습니다. 실질성장률에서 우리가 많이 까먹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였지만 경제발전을 규정할 때 실질성장률 하나만 가지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산업구조, 고용율, 절대빈곤인구 분포율 모두 언급하구요.. - 박정희의 집권기간 동안의 대략적인 경제지표를 보자면 국민총생산은 9.8% 증가, 수출성장율은 공산품을 주축으로 연평균 40% 증가, 국민총생산에 대한 광공업 부문의 비중은 16.3%에서 28%로 증가, 1인당 GNP 3배 증가(대만은 2배), 절대빈곤인구는 10%이하로 격감, 비농업무문의 실업율은 63년의 16.3%에서 79년 5.6%로 하락(거의 완전고용수준) 경제성장이론의 세계적인 대가 쿠츠네츠 박사에 따르면 이만한 양적 성취는 일본이 거의 45년(1878~1923)을 걸려 이룩한 산업성장과 맞먹는 성과라고 합니다. 단지 양적 성취일 뿐이다? 적어도 양적 성취로 보자면 세계적인 수준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는 것이죠. 양적 성취 없이 질적 성취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최빈국들을 모아 놓고 아무리 질적 성취에 관한 연구를 해봐야 뾰족한 수가 나오겠습니까? 3. 강준만의 "현대사 산책"에는 이런 허망한 글도? * 박정희의 마지막 해인 1979년 GNP는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경상수지는 사상최악인 41억5천만 달러의 적자를 냈고, 기름재고는 7일분 밖에 남지 않았고, 소비자 물가상승도 18.3%나 뛰었고, 외환보유고도 바닥을 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전두환이 등장하고 일본에서 40억 달러를 빌려 수습을 합니다. MBC의 <5공화국>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 79년이 무슨 해입니까? 세계적인 석유파동이 일어났던 해 아닙니까? 이런 위기를 겪지 않은 나라가 있었다면 강준만씨가 한번예를 들어봐주셨으면 해서요.. - 세계적으로 석유파동이 일어났던 것은 74년, 79년 두차례였지요. 74년도에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곤두박질 할때 심지어는 대만도 매해 9%의 성장가도를 질주하다 1%대로 추락할 때 한국만 8.5%의 성장률을 구가하고 있었지요. 강준만 씨는 절대 이런 얘기 안할 겁니다. - 더 중요한 것은 세계적인 석유파동을 겪고 나서 주저앉은 나라가 부지기수였지만 한국은 바로 회복하여 그 후로도 10년간 고속성장을 지속했습니다. 왜 이런 얘기는 안하시는 건지.. 허~ 4. 전두환이가 잘나서 9%대의 성장? - 박정희는 두차례의 석유파동, 신용위험, 최악의 해외신뢰도를 극복하여 맨땅에다 공장을 짓고, 도로 만들고 그래서 경제발전을 이룩해 놓았다면. 그러한 성장기반 위에서 3저 호황이라는 외적 변수의 호재까지 누리고 9%의 성장을 한 것과 비교했을 때 그 어느쪽이 가치가 있다고 보십니까? 5. 김대중까지 끌어들이는 무뇌충스러운 어거지들. - 김대중이가 경제를 발전시켰다는 기상천외의 어거지를 난생 처음 듣습니다. 김대중이야 말로 우리나라가 장기불황의 고리에 빠지도록 방치한 원흉입니다. 경제성장률이나 수출성장률이 높았다 뭐다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아무 의미없는 수치자료만을 편면적으로 고찰한 것입니다. IMF를 맞으면서 우리나라 원화가 급격히 평가절하되었다가 서서히 회복하는 과정을 겪게되는데 평가절상율에 나누기 국민총생산 증가율을 대비해 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됨을 쉽게 알 수 있죠.. - 그 어느 학자도 단언컨대 김대중 시절에 경제가 발전했다.. 이런 농담하시는 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물론 당시 일부 어용학자 출신의 관료들이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만.. 6. 걸핏하면 대만과 비교? - 대만은 한국이 전쟁으로 잿더미가 되었던 1953년부터 연속적인 4개년 경제개발 계획에 착수하여 우리보다 경제기반이 훨씬 발전해 있었고.. 국민당 정부가 공산당에 패퇴하여 망명할 무렵인 49년부터 본토에서 엄청난 양의 금괴와 물자를 대만으로 빼돌렸다는 그런 사실을 새삼스럽지만 다시 얘기해봅니다. 한마디로 얘기해 우리보다 뭔가 해먹을 수 있는 밑천이 있었다는 소리입니다. - 똑같은 9%라도 맨땅에서 일군 9%와는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였고 대만은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전쟁을 호재로 삼아 재기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 더구나 대만은 민간저축율이 높아서 투자재원의 해외의존도가 낮았지만 한국은 대만과 일본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당연히 투자자본이 없어 외자를 끌여다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이것이 만성적인 무역적자를 야기하는 원인이 됩니다. 그러나 무역수지 자체가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지표가 될 수 없으며 그것이 꼭 나쁜 효과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역적자는 원화가치의 하락을 가져와 수출지향적 경제정책을 운용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대만이 49년도에 계엄령을 선포해서 88년에 해제한 국가라는 점이지요. 지금 비교국이라며 끌어들인 신흥공업국가 중에 박정희 스타일의 독재자가 등장 안한 국가가 있었다면 강준만씨나 이필상씨가 좀 말해주길 바래요. 단순히 경제성장률의 수치를 들먹여 우리나라와 타국을 비교하지말고.. 당신들이 좋아하는 그 잘나빠진 민주국가들.. 독재를 거치지 않고서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한 그런 나라들의 데이터를 가지고 와... 우리한테 제시해야.. 박정희식 독재가 아니라도 그만큼의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다는 그런 논리가 성립되어야지 않겠어요? 박정희를 비교하면서 고작 전두환이를 갖다논다거나 26년동안 총리해 먹고 지금도 선임장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싱가폴.. 장장 40년 동안이나 계엄령에 족쇄를 채우고 돌격앞으로 했던 대만.. 이런 나라들하고 비교해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그렇다면 당신네들 비교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06/09/17 01:23
이거야 말로 엉뚱한 주장이군요.
독재가 경제를 발전시킨다면 똑같이 독재를 했던 마르코스는 왜 필리핀을 말아먹었나요? 민주주의의 자생적 발전이 외적인 조건으로 인해 좌초되었던 아시아의 특수성으로 인해 독재를 하지 않은 나라가 없다시피 한데, 어느 나라는 독재를 해서 망했고, 어느 나라는 독재를 해서 경제가 발전했다면 그 경제 성장의 동인은 독재를 했나 안했나가 아닌 다른 여타의 조건으로 봐야지, 독재를 해서 경제가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편의주의적인 발상이군요.
06/09/17 01:46
60년대 경제개발은 한국뿐 아니라 모든 개도국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렇다면 박정희의 업적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군요.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던 그 수많은 개도국중에서 오늘날 한국만큼 급성장을 이룬 나라는 없으니까요.
06/09/17 01:47
다른건 몰라도 경제에 대해서 그는 분명히 긍정적입니다
지금 분명히 그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 .. 그 업적까지 부인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06/09/19 05:53
스톰 샤~워 //
누구도 독재를 해서 경제발전했다는 소리는 하지 않는거 같은데요..독재자체가 경제발전의 원인이라고 할수는 없죠. 만약 rocta님 말씀이 옳다면 더욱더 할얘기는 없는거겠구요. 그리고 제가 감히 첨언하자면, 우리나라경제가 개판이고 정치판이 요새 개판이니 오히려 박정희시대가 좋았다고 말하는 것 만큼이나, 박정희가 없었더라도 경제발전은 했을거라는 식으로 말한는 것 또한 .. 모 별로 서로 다를거 없어보여요.
06/09/19 14:30
박정희가 경제발전시키겠다고 눈물 흘리고 이거
구라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구라는 아닙니다. 확실히 그는 단순히 인민의 고혈만을 빨아먹으며 자기만 호의호강하는 독재자는 아니었지요 뭔가 파시즘적인데... 로망스가 있는 그런것이었다고 해야하나 솔직히 우리나라 수준이라 해봐야 최빈국에 생산기반도 없는데 제 3세계 국가들과 달리 무슨 북유럽식 발전을 했을거라 생각할수는 없고.. 독재정권 내지는 내전내지는 안습수준의 개판일보직전 정치상황이 됐을 가능성이 80프로 이상이라 보면 박정희 같은 인물이 통치한건 다행아닌가요
06/09/27 10:12
rocta 님//
필리핀의 좌파정권이라면 누구를 얘기하는지 모르겠네요. 아키노를 얘기하시는건지... 제가 알기로는 필리핀에서 좌파라고 불릴만한 세력이 정권을 잡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마르코스가 집권한 시기는 65년부터 85년까지로 거의 박정희 시대와 겹칩니다. 60년대 초만 하더라도 아시아에서 상당한 경제적 지위를 가지고 있던 필리핀은 마르코스의 강력한 경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후 지속적으로 그 지위를 상실해 갑니다. 이는 마르코스 개인이 무능해서라기보다는 필리핀이 갖는 한계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봅니다. 7천개가 넘는 섬나라로 이루어져 집중과 계획이 어렵고, 전국을 묶을 수 있는 운송체계가 부재한데다 결정적으로 한국과는 달리 토지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주층이 그대로 온존해 있었죠. 마르코스는 경제를 일으켰는데 아키노가 경제를 말아먹었다는 식으로 알고 계신다면 전혀 잘 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슬라나 님// 박정희의 경제적 성과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도 부정하고 있지 않은데 자꾸 똑같은 얘기를 반복하시는군요. 그리고 위의 댓글들을 읽어보시고 토론에 참여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많은 개도국 중에서 한국만큼의 성장을 이룬 나라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성장할만한 나라는 다 성장했고, 오히려 실패 사례를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입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님// "지금 비교국이라며 끌어들인 신흥공업국가 중에 박정희 스타일의 독재자가 등장 안한 국가가 있었다면 강준만씨나 이필상씨가 좀 말해주길 바래요" 이 문장 때문에 지적한 것입니다. 아시아에서 성공했건 실패했건 독재가 아닌 나라가 없었는데 독재가 아니면 성공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를 전개하기 때문에 지적한 것이죠. 그리고 "만약 rocta님 말씀이 옳다면 더욱더 할얘기는 없는거겠구요" 이 말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필리핀이 독재시절에 경제가 성장했다면 독재가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이 맞다는 말인가요?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박정희가 아니면 안되었다고 얘기하는 거나 박정희가 아니어도 경제는 성장했을 거라고 하는 거나 같다고 이야기하시면서 초점을 흐리고 계십니다만 그것은 님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박정희에 대한 면죄부 발행에 말려드는 논리입니다. 두가지 주장 모두 박정희의 경제정책과 한국사회의 잠재력이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동력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동일합니다만 둘 사이의 차이는 전자는 박정희가 주된 요소이고 나머지는 그에 종속되는 요소라는 것이고, 후자는 한국사회의 잠재력이 주된 요소이고 박정희는 종속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이 둘의 차이를 간과하고 이거나 저거나 같다고 하는 것은 옥석을 함께 불태우는 것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죠. 그러면 이글의 제목에서처럼 전자의 이야기를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경제발전에 있어서 박정희의 성과를 빌미로 경제 이외의 모든 부분에서 저지른 악행을 덮으려고 하기 때문이죠. 박정희가 아니면 어떻게 하더라도 이나라는 나락의 구렁텅이에 떨어질 수 밖에 없었는데 노동자들 좀 쥐어 짜면 어떻고, 반대파들 납치해서 죽이면 어떻고, 맘에 안들면 감옥에 보내고 사형시키면 어떻나,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시킬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논리를 펼치기 위해서죠. 더 나아가선 그것이 모두 나라를 위한 우국충정의 결과였다는 미화로 이어지는 것이구요. 여기에서의 댓글만 봐도 그런 논리들은 많이 보이는군요. 이거나 저거나 다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관점과 독재를 바라보는 관점과 경제성장의 동력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인 것이죠.
06/09/27 23:51
어째서 아름다운 청년은 잊혀져만 가고, 독재자의 망령은 자꾸 기승부리는것인지요. 우리가 뭘 수출했는지 모르십니까? 쌀값,임금 극도로 낮춰서 짜낸 우리 농민,노동자들의 피고름을 수출해왔었습니다. 이제와서 고마운 생각이 든다면 그들에게 고마워하고 미안해해야지, 어째서 피고름을 짜낸 인간에게 공이 돌아갑니까? 그 피고름으로 인한 수익은 대기업들 문어발 3~4개씩 달아주는데 쓰이고, 그런 기득권층 말고도 자신이 고생한것에 비해 밥 한술이라도 더 뜬 분들도 계시겠죠. 자신의 부모님, 혹은 자신이 그런류에 속한다면 누구 덕였는지 다시한번쯤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또한 박정권이 IMF의 직접적 원흉이다 아니다는 직접적이란걸 어느정도선까지 보느냐에 따라, 그리고 미래를 예측하고 책임지는 선이 어느정도까지냐에 따라, 상당부분 면책될수는 있겠지만, 80년대를 살아보셨다면 이미 차관도입이 한계에 도달해, 국민마다 당시돈으로 몇백만원씩 빚이 있네 뭐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피땀흘려 그거 갚아 오느라 국제사회의 변동을 미처 대비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냉전이 끝나면서 이젠 아군적군 가려가며 차관지원위주의 시대가 아니다, 내가 직접 투자하고 거둘테니 돈없는것들은 물러가라는 주의가 서서히 세계를 잠식해나가는데, 알아도 어찌 손써보지도 못한채 폭삭 주저앉은거죠. 경제성장률을 내세우기 위해 일본기업의 한국지사까지 GNP에 포함시키는등 별 짓 다해왔어도, 아시아국가대비 상대성장률은 3위정도더군요.(5공때,국민정부때에 비해 상대성장률이 불리한 여건였다 주장하신다면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워낙 형편없는 정권들도 있었기에 중위권밑은 아니고, 성장률에 목매달아 당시에 국민들 피고름짜내고, 후에 부작용을 남기지만 순위는 그래도 상위권은 했다 이정도로 평가하면 됩니다.
06/09/28 01:32
그리고 항상 빠지지 않는 경부고속도로얘기, 막연하게만 업적이라 하지들 마시고, 당시 효용을 좀 설명해주실분 안계십니까? 물론 언젠간 건설해야 하는것이니 경제발전의 원동력인것은 맞습니다만 발표액만 국가예산을 초과하고, 추산액으론 예산의 100배가 넘는(추산액엔 부당하게 강탈,저가강제매입한 지가, 인건비, 기업충당액등이 다 포함되어 있어서 이리 차이나는듯 합니다.) 68년에 건설해야 하는 이유를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그리 눈부신 성장을 하고 있었다고들 하는데, 딱 필요한 시점으로 늦췄으면 부담 훨씬 절감되지 않는지요? 어차피 2년에 뚝딱 해치우는데 말이죠. 기왕이면 당시 실제 지불한 임금및 토지매입비도 좀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걸 알면 누구덕인지 분명히 알 수 있겠죠.
06/09/28 01:57
한인님께서 퍼오신 글에 대해선,
아무리 물가상승률이 전쟁직후 50년대 중반에 50%정도 였던것까지 계산하셔봐야(이걸로 2공의 물가상승률마저도 20%대라 주장하다니 너무 황당함, 이정도 알아보신 분이라면 다 찾아 보셨을텐데도 너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57년부터 물가가 한자리수로 안정되고 지속되었으며,경제성장도 뚜벅뚜벅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성장의 걸음마를 디디다가 이승만정권 말에 1%까지 떨어졌던게, 박정권이 최악이라 선전해댔던 2공때 경제성장률이 6%로 회복되었습니다. 박정권 이전 한자리로 유지되던 것에 비해 연간 20%에 가까운 박정권의 인플레율,금리등을 다 알면서 안쓴것도 매우 악의적이군요. GNP에 지대한 공헌을 한 5년단위로 수십배씩 뛰는 강남 부동산값 폭등은 또 어떻구요. 금리가 그리 높은데도 말이죠(후에 억지로 금리내렸다가 부동산투기열풍이 아주 대대적으로 불죠-.-) 대략 박정권을 언제부터로 계산하느냐의 차이 또한 역대정권 순위는 무변이고 비율도 거의 차이 없습니다. 펌글 쓰신분께서 큰 차이가 생기는 양, 그리하면 3~4위로 평가되는게 1~2위라도 되는양 하기 위해 그 자료를 보고도 드러내지 못한것이죠. 보시면 누구말이 맞는지 아실것입니다. 석유파동때 경제성장률도 분명히 GNP증가가 마이너스인데 이를 인정하면서도 은근슬쩍 8.5%(실제론 마이너스 2.몇% 였던걸로)라는 말도 안되는 수치를 껴넣는 센스는 참..(아 이부분은 밤에 많은 댓글들을 읽다보니 제가 좀 잘못봤군요, 대만 1%라기에 2차인줄 알았더니 1차파동때.. 헌데 당시 경제성장률은 삼성연구원에서 내놓는 수치가 3.5%정도, 물가상승률 25%정도입니다. 뭐 당시엔 필요에 따라서 이런 뻥튀기는 일도 아니었죠.) 절대빈곤 10%에선 매우 좌절스럽네요. 최저임금도 못받던 노동자가 75~80%에 달하던 시대인데 말이죠. 그나마 공장에라도 근무한 상경농민들은 쥐꼬리 반만한 월급이라도 받지, 하도 농민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무대책으로 상경한 농민등이 이루고 있던 판자촌을 강제철거,이주시키는 바람에 20만이 경기도 광주에서 폭동을 일으켰다는것은 들어보고도 모른척 하는것인지, 굶주림에 정신이 나가 애까지 삶았다더군요. 이건 조만간 진상조사 발표 나올듯 합니다. 아.. 62년 성장률뺀다해서 17년 평균이 1.3% 높아지나 의아했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다면 62년이 평균보다 20%이상 낮은,즉 -13%정도라는 이상한 결과가 나오네요. 실제론 2%대였으니 나머지 15%는 어찌된건지, 8.8%를 고의적으로 9.8%라 적은 냄새가 나는군요.
06/10/18 02:22
분명한건...
그때의 폐해가 아직도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거죠... 박정희의 망령이 나라경제 거덜내고 어이 없게 대통령을 탄핵한 정당을 다시 복권시켜주고 정경유착의 고리가 다 드러나도 고발한 기자가 오히려 구속되고... 재벌의 방만한 경영과 지금의 경제위기가 도대체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뿌리가 무었인지를 생각하고도... 그걸 치적이라 말할수 있을까요? 이미지와 결과 만을 생각했기에 아래와 같은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싶군요.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OD&office_id=058&article_id=0000000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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