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아예 이란 영화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냥 이번에 황금종려상 받았다길래, 어 쩌는 영화인가 보다 하고 보러 갔을 뿐이죠.
* 느림의 미학
요즘 유명한 감독 중에 정적인 이미지를 제일 잘 쓰는건 드니 빌뇌브라고 생각합니다. 드니 빌뇌브의 모든 작품을 보면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이면서 그 느림을 통해서 관객들의 주의를 끌어 모으는 장면들이 꼭 있죠. 예를들면 콘택트(원제 어라이벌)의 오프닝 씬이 좋은 예가 되겠습니다.
얼마전 별 생각없이 넷플릭스에서 드라이브라는 영화를 봤는데, 여기는 조금 다릅니다. 드니 빌뇌브는 카메라가 천천히 움직인다면 여기는 사람이 천천히 움직여서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씬, 하나 보고 가시죠.
왜 엉뚱한 영화들 이야기를 하느냐, 그저 사고였을 뿐을 보면서 가장 신경 쓰였던게 카메라 웍이였거든요. 유튜브에서 클립 하나만 퍼와보자면
그냥 검색해서 줏어온 클립인데, 마침 이 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카메라 무빙이 담겨있네요. 뭐 했냐고요? 좌우로 움직였잖아요 크크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거의 고정되어 있습니다. 시점 전환, 인서트 그런거 없습니다. 대부분의 씬에서 카메라는 고정된 프레임 안에서 인물들을 담아낼 뿐입니다. 보다보면 그냥 카메로 한대로 다 찍었나?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영화마다 감독마다 스타일마다 다 다르겠지만, 보통 한 씬을 여러번 다른 각도로 찍은 다음 편집으로 이어 붙이는게 일반적인 영화라면, 이 영화는 그런게 거의 없거든요. (아예 없었던거 같은데, 자신은 없어서... )
그렇다보니 컷 편집 같은게 거의 없습니다. 일반적인 상업영화 한편에 컷이 만개쯤 쓰인다면, 이 영화는 컷이 천개는 될지 모르겠습니다. 숫자는 아무렇게나 적은거고, 그만큼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깐 영화가 대부분 롱테이크 씬으로 이루어져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깐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고 컷 편집은 없습니다. 전 일반 상업 영화를 봐오던 관객들은 이 영화를 대부분 지루해 할거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딱히 지루한 영화는 아닌데, 편집으로 리듬감, 속도감, 변주 등을 안주니 굉장히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지더라고요.
* 감독의 사정
영화보고 나서 나무위키를 좀 읽어보니 "정작 본작은 이란 정권에 대한 비판적 태도가 강한 내용이라 또 이란 정부의 승인 허가 없이 촬영한 작품" 이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제작비가 얼마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승인 받지 않고 몰래(?) 찍었다라고 생각해보면 진짜로 카메로 한대로 다 찍은게 맞나? 싶기도 합니다. 모르긴 몰라도 같은 씬 여러 각도로 찍는건 절대 안한거 같긴 해요.
그렇게 생각하면 좀 감탄스럽기도 합니다. 제가 카메라웍 이야기만 했지만, 사실 영화 자체는 나쁘지 않거든요. 제 상상처럼 카메라 한대 가져다 놓고 롱테이크로 다 찍어서 만든 영화로 이 정도 완성도를 뽑아낸건 대단히 대단한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괜히 수십억 들여서 카메라 여러대 가져다놓고 같은씬 반복적으로 찍고 편집작업만 몇달씩 걸려서 컷 붙이는게 아닌데, 그걸 다 생략하고 만든 영화의 완성도로는 대단히 뛰어난게 맞다고 생각해요.
근데 문득 얼마전 "얼굴" 생각이 납니다. 얼마전 연상호 감독님이 총제작비 2억으로 찍어서 화제가 된 영화죠. 실제로 저도 영화 보면서 "이게 2억으로 된다고?" 라며 감탄을 많이 했었습니다. 세트 유심히 쳐다보면서 어떻게 했지? 난 때려죽여도 못할거 같은데? 이런 생각 많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제작비 적게 들었다고 관람료 깍아주는 것도 아닌데 감독이나 제작사나 좋지, 내가 좋을건 뭘까? 라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저는 똑같은 돈 내고 들어가서 보는건데, 제작비 차력쑈 같은건 제 알바가 아니고 오히려 돈 제대로 들여서 더 좋은 작품 찍어주는게 저한텐 이득이거든요.
마찬가지로, 감독이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찍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전 그냥 예산 있는대로 다 들이붓고, 채신기술 다 때려박아서 어떤 제약 없이 감독의 능력을 극한으로 뽑아낸 영화를 보고 싶은데요...
* 남의 이야기
어쩔수가없다 관련해서 주된 비판 중의 하나가 개연성 부족이였습니다. 전 그런 부분에서 딱히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는데, 그렇게 느끼시는 분들이 제법 많았나 봅니다. 이건 뭐 각자의 감상이 다른거니 그야말로 어쩔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후 원배틀애프터어나더를 보는데 마침 장르의 유사성도 있고 상당히 극단적인 인물을 그리고 있다보니, 문득 어쩔수가없다 가 생각이 나더라고요.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주인공에 이입하지 못하는 분들이 원배틀애프터어나더를 보곤 이입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물론 영화가 다르고 영화가 감독이 다르고 주제가 다르고 다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비교하는게 적절하진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 생각이 든게 원배틀애프터어나더가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영화의 주요 주제, 배경 등의 측면에서 한국관객이 이입하는데에는 매우 불리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쉽게 말해서 우리네 이야기로 확장되어 해석될 수 있을 뿐, 근본적으로는 미국 이야기니깐요.
그저 사고였을 뿐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이였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건진 알겠고, 이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로 해석되어 우리네 삶에 닿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알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의 이야기라는 한계는 분명히 있다는거죠. 솔직히 말해서 와닿지가 않았습니다.
영화를 실컷 비판해놓고, 이런 얘기 하자니 좀 민망스럽긴 한데... 사실 영화 자체가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 조금 지루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는 괜찮게 봤고 엔딩씬은 제법 인상적이기도 했고요. 제가 모르겠는건, 이게 왜 좋은 작품인지를 모르겠어요. 요즘말로 "그정돈가?" 정도의 감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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