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06/11/23 20:53:57
Name 볼텍스
Subject [단편] 쓸모없지 않아

"멍청한 자식! 지금 이걸 점수라고 맞아온거냐!"

  ... 11월 16일. 누군가에게 인생 역전의 기회였을 날은.

  "다들 잘하는데 왜 너만 이러는거니?"

  나에겐 자신의 무능함을 재확인하는 날이었을뿐.


  ....


  우울한 날이었다. 전날 채점한 수능점수는 평소 점수보다 더 떨어진 점수였고,

  따라서 나의 기분은 점수와 마찬가지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보니.. 정말로 자신 하나 없어져도 별 변화가 없을것같다.

  다른 형제,자매,친척들이 다 높은 곳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으니 가문이 망할일도

없을것이고, 집안의 골치거리가 하나의 소멸. 그것으로 끝.


  "그래서 어쩌라고..."

  털썩. 침대에 누우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나는 원래 이런 놈이었으니까. 다른사람

다 할때 나만 못하고. 다른 사람 못하는것도 못하는 그런 쓸모없는 놈이었으니까.

  달도 안보이는 어두운 밤. 나는 그렇게 그대로 잠들었다.



  "삐삐삐---"

  깜빡 잊고 수능 전과 동일한 시각에 알람이 울렸다. 그래 오늘이..

  '11월 18일인가. 벌써'

  무언가 까먹은듯한 느낌이 드는데... 뭐지?

  '아, 스타리그 결승전이구나. 재밌겠네. 집안 눈치만 없다면 말이지.'

  일단은 학교에 갈 시간이다. 출석체크따위 할리가 없지만 이 빌어먹을 집구석에서는

1초도 더 머물고 싶지 않다.


  "밥은 먹고 가야지!!!"

  "필요 없어요~ 다녀오겠습니다."


  부모님 얼굴 보기가 거북스러워 그냥 학교로 향한다.

  하아.. 오늘은 농구를 할까 축구를 할까..

  "어이 문제아! 집안에서 쫓겨났겠다?"

  "오냐. 광주역 화장실 세번째칸이 이제부터 내 집이다"

  "크큭. 한마디도 지기 싫어하는건 여전하구만"

  친구 얼굴을 보자마자 기분이 풀리기 시작한다.

  "오늘 누가이길것같냐?"

  "스타리그?"

  "어"

  "가을이니까.. 아무래도 오XX가 이기지 않을까?"

  "무슨소리! 입동이 지난지가 언젠데. 틀림없이 오늘 골든 마우스는 주인을 찾을거야"

  "테란 주제에 결승에서  프로토스를 이기겠다고 하는건가. 말도 안되 그건"

  "꼴에 팬이라고 편들기는. 박OO 발리는거 못봤냐?"

  "둘이 비교가 되냐. 둘은 격이 달라"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


  "다녀왔습니다~"

  정적.

  아무도 없다. 아 맞다. 큰누나 사법고시 패스 기념 저녁식사 간다고 했지..


  이제와서 나는 왜 그자리에 못가는가에 대한 억울함 따윈 없다.

  "좋게 생각하자. 아무 방해 없이 스타리그 결승전을 볼수 있게 됐으니 뭐 잘된거지"


  ..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제주도입니다 지금부터 신한.."

  시작했다. 경기는 1경기부터 명승부의 연속이었다.

  

  4경기까지 스코어는 2:2

  "운명의 5경기! 시작합니다!"


  테란의 빌드는 원팩 원스타 FD인척 4벌쳐 드랍. 저것을 막느냐 못막느냐가 승부의 관건.


  "아 벌쳐가 프로브를 제법 잡네요. 거기에 드랍쉽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견제를

  계속 당하고 있어요."

  상황은 테란쪽으로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프로토스도 필사적인 컨트롤로

큰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지만 작은 데미지는 계속 쌓여가고 있었다.

  "아 프로토스는 케리어를 갈 생각인가요? 스타게이트를 짓네요"

  이대로 가면 진다는 것을 직감한 조금은 무리한 케리어.

  
  '저거 들키면 끝나겠네. 제발.. 제발.. 테란 그대로 삼룡이 가라..'


  그순간.

  드랍쉽으로 견제를 나왔던 벌쳐가 스타게이트를 확인하고 테란은 그대로 치고 나오기

시작했다. 테란은 승리를 확신한 듯 했다.

  "아~ 이ㅁㅁ 선수 승리를 예감한것같네요. 지금 가면 절대로 못막는걸 아는거죠"

  '졌다'

  1팩 에드온에서 꾸준히 뽑아낸 탱크와 4팩에서 계속 나오는 벌쳐

  '막을 수 없어 저건.'


  토스의 주력은 견제를 막기 위해 본진에 묶여있는 상황. 테란은 별 무리없이 토스진영

코앞 좋은 곳에 자리를 잡는다.


  "어! 설상가상으로 드랍쉽이 지금 프로토스의 진영쪽으로!"

  내린것은 투탱크. 일꾼들은 보자마자 대피했기에 피해는 없었지만 토스의 병력들은

허겁지겁 진군한 상태였기에 게이트에서 막 나온 병력으로 막을 수밖에 없다.

  "어! 아둔! 프로브가 없으니 아둔을 강제어택합니다!"

  "지금 발업을 하고있을텐데요.. 저거 파괴되면 그나마 있던 가능성마저 없어지죠"

  쾅- 쾅-

  게이트에서 소환된 드라군들이 탱크를 향해 공격을 시작하지만...

  '안돼!!'

  "아둔! 아둔! 아.. 아둔의 성지 파괴됩니다. 질럿 발업 아직 안됐거든요!"

  "이대로 굳어지는 분위기네요.."



  삑-

  더이상은 못보겠다.


  잠이나 잘까...


  털썩. 왜인지는 몰라도 눈가가 젖어든다.

  '아아.. 1년을 준비한 수능을 배렸고 내가 응원한 선수는 기껏 어려운 대진

다 뚫고와서 결승에서 지니까 서러울 만도 하지'

  잠은 오지 않는다.

  째깍.째깍.

  들리는건 시계소리뿐.

  '하아... 그래도 마지막 정도는 봐줘야겠지?'


  삑--


  "아! 지금 프로토스의 병력에 테란 벌쳐를 전멸시키고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뭐?'

  "테란! 지금 막 나온 병력으로 입구를 사수합니다."

  '그래.. 아까 저정도 병력이 토스진영 앞에서 죽치고 있었지.. 대체 뭐가.. 어떻게된...'


  투둑

  어디선가 들어본. 알고는 있지만 들어본지 한참된 소리


  투두둑.

  '이것은... 설마?'


  스타크래프트에서 몇 안되는 쓸모없는 유닛. 속도도 느리고, 비싼데다가 모였을때

커세어가 오히려 더 낫기때문에 자취를 감춰버린 유닛.

  "Teleport Successful"

  스카웃.

  "I'm Waiting Command"


  승기를 잡은 프로토스의 병력은 용서없이 테란을 몰아치기 시작한다.

  "아.. 이ㅁㅁ선수 급하게 더블하고 조일 병력 뽑느라고 아머리를 안지은게 실수네요.

하다못해 일꾼 몇마리라도 데려갔으면 고치면서 버틸수 있었는데 말이죠"

  "네. 탱크 4마리에 나머지가 벌쳐들이었는데 스카웃 두마리에 탱크가 잡히고 후퇴하는

도중 드라군들에 그대로 병력들이 모두 포위당했죠. 스카웃때문에 시즈모드도 못하고

그대로 밀렸어요. 아무리 양이 많아도 벌쳐는 드라군에 안되죠"

  "허허허 스카웃 드라군 조합은 저도 처음보네요. 오XX선수. 발업과 플릿비컨 취소한

돈으로 그대로 스카웃을 찍었군요"

  "이ㅁㅁ선수 당황했나요.. 컨트롤이 안되는게 눈에 보입니다. 결국.. GG!!"


  하... 하하...


  그상황에서 프로토스가 이겨? 거기에 역전을 주도한 유닛은.. 그 쓸모없는 스카웃?


  나는... 나란놈은...


  시상식이 끝나고 역대 우승자 명단이 나올때까지. 나는 무언가가 치솟는 느낌에 그냥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아빠왔다.."

  "네! 다녀오셨어요!"

  "?"

  부모님은 갑자기 활기찬 나의 모습을 보고 내가 뭘 잘못먹었나 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내 상황이 어쨌든간에, 더이상 혼자서 좌절하는 바보같은 짓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고, 나만이 할수있는 일이 어딘가에 있을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늘따라 달이 밝다.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11-29 13:09)
* homy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1-15 19:20)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06/11/23 21:23
수정 아이콘
스카웃... 쓸모없지 않아!!
06/11/23 21:30
수정 아이콘
스카웃... 쓸모없지 않아!!
패치만 된다면..................
슬픈비
06/11/23 21:51
수정 아이콘
스카웃... 쓸모없지 않아!!
패치만 된다면..................(2)
붉은낙타
06/11/23 22:15
수정 아이콘
스타 뒷담화에서 스카웃에 대한 패치를 말했던 것이 기억나네요;;
김정민 해설의 발언이 아직도 기억이 남네요;; " 그렇게 꼬져가지구 인구는 3씩이나 먹구~ "
연휘군
06/11/23 22:32
수정 아이콘
"아무리 양이 많아도 벌쳐는 드라군에 안되죠"
요새는 됩니다. =_=
WizardMo진종
06/11/23 23:14
수정 아이콘
쓸모없는데;;;
06/11/24 00:53
수정 아이콘
스카웃... 오리지날 시절에는 정녕 하늘의 왕자였것만.. ㅠㅠ
배틀도 때려잡고, 뮤탈을 녹이고, 오버로드를 쓸고다니던 그 포스는 어디로... ㅠㅠ
06/11/24 00:56
수정 아이콘
인생의 잣대라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행복은 자신 안에서 오고, 불행은 타인에게서 온다고 하더군요..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그 순간부터 불행해 진다더군요..
뭐, 입바른 소리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말입니다...
쓸모없는 유닛이란 없는거죠.
비록..스카웃..........(잠깐 눈물좀 닦고....)이라도 말이죠..
My name is J
06/11/24 01:00
수정 아이콘
이런 분위기..죄송하지만 스카웃은 스카웃일뿐............
06/11/24 07:21
수정 아이콘
다크아콘이나 디파일러 안쓰일때도 그건 컨트롤의 귀찮음 문제이지 엄청 좋은 유닛이라고 봤는데 스카웃은 시스템상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안나옴 -_-;;
06/11/24 07:23
수정 아이콘
무엇보다 이속업을 해주지 않으면 느리다는 이게.. 이것만 바뀌어도 초반 견제용으로 좀 쓸텐데.
06/11/24 07:24
수정 아이콘
그리고 오리때는 스카웃이 좋았나요? 가격만 더 비쌌던거 같은데.
밀로비
06/11/24 08:59
수정 아이콘
오리지널때는 스카웃 좋았습니다..
공대지가 지금보다 훨씬 강했거든요.. 브루드워오면서 하늘의 왕자가 하늘만 왕자, 그리고 하늘의 쓰레기로..;;
[ReiUs]sunny
06/11/24 16:10
수정 아이콘
글 내용 상당히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스피어빠
06/11/29 21:54
수정 아이콘
테프전에서 스라군 가끔써주면 좋죠.2기정도로 괴롭혀주면 재미도 있고 효율도 나름 쏠쏠하고. 드라군하고 마린탱크교전에서 미리 마린을 줄여주면 더 좋고요.
06/11/30 00:10
수정 아이콘
참 좋은 글입니다.
에이스게시판 올만해요. ^^
하만™
06/11/30 01:40
수정 아이콘
공대지 지금이랑 똑같지 않았나요?
그때 많이 쓰인이유는 오로지 공중유닛이 그것밖에 없어서 라고 알고있는데요;
06/11/30 04:09
수정 아이콘
스카웃무시하지마세여 스라군은 엄청 강력하답니다.
다반향초
06/11/30 17:07
수정 아이콘
제 생각엔 추게감
CJ-처음이란
06/12/01 10:03
수정 아이콘
가겠죠??그곳으로^^
온리 벌쳐 어택
06/12/01 11:09
수정 아이콘
하만™님// 공대지 연사속도가 느려진 것으로 압니다.
포로리
06/12/04 18:39
수정 아이콘
스카웃... 쓸모없지 않아!!
패치만 된다면..................(3)
06/12/08 05:54
수정 아이콘
스카웃... 쓸모없지 않아!!
패치만 된다면..................(4)
06/12/08 13:41
수정 아이콘
프로토스 취향의 저그유저지만... 스카웃은 아무래도;;;
그리고, 스카웃 패치돼면... 저프전 양상이 완전 달라질겁니다 - -;; 공중에 오버로드가 남아나질 않을걸요... (스카웃 방어력이 후덜덜...)
06/12/11 20:10
수정 아이콘
스라군 후덜덜임
그저웃지요.
07/01/20 15:34
수정 아이콘
이 스타계의 쓰레기
깡패질럿
07/01/23 22:19
수정 아이콘
블리자드사에서 때가 되면 특가세일패치해줄거라 믿습니다...
워낙 고급유닛인지라 함부로 패치못하는거죠...네오콘의 압박때문에;;;
율리우스 카이
07/02/05 07:04
수정 아이콘
그때만 해도 유저들 수준이 높지 않았던것도 한몫했죠..때는 98년.. 256*256짜리 짜리 맵에서 멀티 2개 먹고 중앙에 쉴드배터리기지 만들어놓고 스카웃으로만 200채워서 6명 FFA하던 기억이 나네요..(제가 나머지 5명 거의 다 죽였다는........)
07/02/05 21:16
수정 아이콘
율리우스 카이사르님.. 제가 스타를 한지 오래는 아니라 그런데.. FFA가 뭔가요??
07/02/06 07:40
수정 아이콘
FFA = Free For All = 1:1:1:1:1:1:1:1
기영우
07/02/10 21:41
수정 아이콘
....빌드타임이라도 줄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07/02/27 22:37
수정 아이콘
스카웃의 성능이 어째건..

글은 정말 감동적이군요

퍼가겠습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492 '히로'에게 고함. [61] 폭풍검15535 08/01/27 15535
491 첫월급.. [29] elkapia7379 08/01/26 7379
490 Text Force [15] 信主NISSI9453 08/01/07 9453
489 SKT의 두 번째 실수 [85] sylent18738 08/01/25 18738
487 추게 & 에게 업데이트를 위한 지원글 [32] Cand8361 11/06/14 8361
486 스타리그 10주년 기념 특별기획 - 90페이지에 담은 10년의 기록 [136] Alan_Baxter40406 09/10/02 40406
485 시작은 단 두 사람이었지요. 황제라고 불렸던 청년과... [114] 폭풍검66885 08/01/24 66885
484 홍진호는 기억될까 [383] becker136031 08/11/14 136031
482 5인분의 행복 [134] Claire37583 07/11/13 37583
479 '막장' 을 아십니까???? [89] DEICIDE67789 07/06/09 67789
478 2007년 2월 SR게임환경 지수 [32] 수퍼소닉24234 07/02/26 24234
477 프로리그 중계권 문제, 원인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39] 스갤칼럼가27265 07/03/05 27265
476 Maestro, SaviOr Walks On Water [52] 항즐이32826 07/02/21 32826
475 선수들의 경기력에 관한 지수를 산출해 봤습니다. [66] 수퍼소닉31450 07/01/04 31450
474 [단편] 쓸모없지 않아 [32] 볼텍스20590 06/11/23 20590
472 저는, 2등이(혹은 2등도) 칭찬받는 E-Sport를 꿈꿉니다. [33] The xian21804 06/02/26 21804
471 라면에 김치국물을 넣음에 관하여... [65] 이오리스42796 06/10/10 42796
470 밥통 신의 싸움 붙이기 [31] 김연우25199 06/10/07 25199
469 흔들리는 신화, 새롭게 쓰이는 전설 [50] 김연우39990 06/09/25 39990
468 서로 거울을 보며 싸우는 듯한 종족 밸런스 논쟁... [55] SEIJI18846 06/09/17 18846
467 알카노이드 제작노트 [50] Forgotten_21520 06/09/04 21520
466 [sylent의 B급칼럼] PGR에서는 침묵하라 [62] sylent29529 06/08/18 29529
465 버로우와 컴셋관련. [152] 엄재경35461 06/08/16 3546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