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7/01/30 13:51:05
Name 로즈마리
Subject 월드콘의 비밀
잘 기억은 안나지만 어린시절 저는 집안에서 깍두기 같은 존재였습니다.
오빠와 언니가 있었고, 아들형제를 열망하셨지만 제가 태어남으로 인해... 할머니는 대놓고 왜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냐고 입이닳도록 말씀하셨으니까요.
특히나 아버지와의 관계는... 어릴때 아버지께서 거실에서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으시면 저는 아버지 따라 하느라 제 책을 가지고 나와서 아버지 옆에 앉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때마다 슬그머니 자리을 피하시곤 하셨죠.
저는 아버지께 응석도 부리고 싶고 오빠처럼 아버지와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아버지께서는 제가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것이 서운해서 저를 좀 멀리 하시는거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제가 유치원을 다니던 어린시절었습니다.
어머니와 언니가 함께 외출을 하고,
오빠와 저와 아버지만 집에 남아 있었습니다.
오빠가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먹는것을 보고
저도 아버지께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꺼내달라고 했지요.
아버지께서는 저와 함께 냉동실 앞에 서서 아이스크림을 쭉 보시더니, 쮸쥬바를 하나 꺼내주시는겁니다.
저는 오빠가 먹는것과 같은, 커다랗고 화려한 포장지로 둘러쌓인 월드콘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순간 아버지는 그 어느때보다 근엄한 표정과 목소리로,

"월드콘은 니가 먹으면 안되는거야, 이거(쮸쥬바)먹으려면 먹고 싫으면 먹지마라"


그 말은 충격으로 다가와...
나는 딸이라서 월드콘도 먹어서는 안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후로 아이스크림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독하게 월드콘만 먹고 살았죠.
제게 있어 월드콘은 원치않는 딸로 태어나서 겪은 설움을 치유하주는 그런 포션같은 존재였던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
초등학교동창 몇명과 얼마남지않은 연휴를 아쉬워하며 만나서 점심을 먹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차에서 먹자 하고 아이스크림을 고르는데,
저는 습관대로 월드콘을 골랐는데 친구의 어린 아들도 저를 따라 월드콘 달라고 조르는겁니다.
그렇지만 친구는 완강하게 월드콘은 안된다고 하고 쮸쮸바를 쥐어줍니다.

"월드콘 먹고싶어하는데 왜그래~"
"야, 말도마. 월드콘 하나 사면 다 녹아서 반은 버려야돼..옷에 묻는건 어쩌고!"


그순간 제가 30년가까이 품어왔던 무서운 오해의 끄나풀이 느슨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딸이라서가 아니라, 엄마가 안계시는 상황에서 제가 월드콘을 먹기 시작했을때 벌어질 그 참사에 대한 예측이 되시면서 감당할 자신은 없는 그런 육아에 서툰 80년대 우리 아버지의 전형적인 케이스였던거죠.

이 생각을 하니 계속 피식 웃음만 나고 오늘따라 아버지께 애교스런 딸이 되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가는 발걸음이 계속 재촉되네요.

오늘은 아빠와 월드콘 하나씩 해야겠어요.

이 기분을 잊고싶지 않아서 피지알에 끄적여봅니다.

늘 허술하고 잡다한 글만 쓰지만 좋은마음으로 읽어주시는 피쟐러분들께 미리 감사드립니다.

새해복많이받으세요!


* 라벤더님에 의해서 자유 게시판으로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7-04-27 15:54)
* 관리사유 : 좋은 글 감사합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홍승식
17/01/30 13:53
수정 아이콘
역시 딸이 좋아요.
아들내미 다 필요없어!
17/01/30 13:53
수정 아이콘
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17/01/30 13:55
수정 아이콘
재미있게 잘 읽고 갑니다.
ComeAgain
17/01/30 13:57
수정 아이콘
교과서에 있던 [이해의 선물] 같은 이야기네요. 훈훈합니당.
키위새
17/01/30 13:57
수정 아이콘
오해가 풀릴 것인가 아버지의 팩폭이 될 것인가..
유자차마시쪙
17/01/30 14:01
수정 아이콘
크히히히힣
이과감성
17/01/30 14:17
수정 아이콘
저도.. 궁금합니다 허허헣
래쉬가드
17/01/30 14:27
수정 아이콘
저도 이래서....
그냥 오해를 푸는거로 마음에 묻는게...
엔조 골로미
17/01/30 14:49
수정 아이콘
22 본문에서 생각하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긴하지만 사람일은 모르는거니까요 크크;;
다람쥐룰루
17/01/31 16:18
수정 아이콘
아버지의 주머니속 동전량과의 관계랃던지....
17/05/11 09:53
수정 아이콘
제 감동 돌려주세요 ㅠㅠㅠ
Sith Lorder
17/01/30 13:58
수정 아이콘
어릴때 부모는 아이에게 모든것이고, 그리고 부모의 모든것이 아이입니다. 뭉클해지네요.
Q=(-_-Q)
17/01/30 14:00
수정 아이콘
딸래미 둘 둔 아빠입니다. 딸이 최고에요^^b
그리움 그 뒤
17/01/30 14:54
수정 아이콘
딸이 아직 어린가요?
울 딸은 6학년인데 아빠 얼굴만 보면 인상쓰고 말도 잘 안하고 작년까지 잘 하던 뽀뽀도 안하고....ㅠㅠ
방탄소년단 얘기만 나오면 얼굴이 환~~해지고...
치사한 것..
Q=(-_-Q)
17/01/30 17:39
수정 아이콘
네 아직은 어려서^^ 저도 곧 준비를 해야겠죠...ㅠ
가만히 손을 잡으
17/01/30 14:00
수정 아이콘
음, 이제 딸 내미는 제법 깔끔떠는 나이고 아들은 아직도 부산스러워서
어제 인절미 먹고 싶다고 하길래 딸만 주고 아들은 가래떡 줬는데...
묘이 미나
17/01/30 14:03
수정 아이콘
저도 글쓴분 같은 여자친구를 갖고 싶네요 마음이 너무 이쁘네요.
호풍자
17/01/30 14:09
수정 아이콘
딸이 진리다.
스테비아
17/01/30 14:11
수정 아이콘
키이이이이잉......ㅠㅠ
화잇밀크러버
17/01/30 14:12
수정 아이콘
이 나이에 월드콘 먹어도 과자 부스러기 작렬하는데 아이들은 뭐 보나마나죠. 하하.
tannenbaum
17/01/30 14:14
수정 아이콘
역시 딸이 쵝오!!
17/01/30 14:32
수정 아이콘
설명 필요 없고!!
직접 맛을 봐요!!
17/01/30 14:33
수정 아이콘
댓글과 정비례하는 추천수...
즐겁게삽시다
17/01/30 14:36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크크 월드콘 마이쪙!
솔로12년차
17/01/30 14:43
수정 아이콘
월드콘 1승
17/01/30 14:48
수정 아이콘
애들은 월드콘 주면 안 됩니다...ㅠㅠ 진짜 레알 헬게이트 오픈
최종병기캐리어
17/01/30 14:51
수정 아이콘
아빠 : 비싸서 안사준건데?!
바스테트
17/01/30 14:52
수정 아이콘
월드콘뿐만 아니라 그 투게더?그런 통에 들어있는 아이스크림도 위험합니다
입은 물론이고 옷에 온통 크크크 대참사가 벌어집니다
amoelsol
17/01/30 15:01
수정 아이콘
저도 요즘 딸이 아이스크림 사달라고 할 때 똑같은 문제나 발생합니다. 한 시간에 걸쳐 핥아먹다시피 하는데 길거리나 쇼핑몰 같은 데서 철퍼덕 절반이 떨어졌는데, 마침 비닐봉지와 휴지 같은 치울거리도 없으면... 어휴.
17/01/30 15:03
수정 아이콘
"아버지: 너, 정말 이럴 거냐?
딸: 저한테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아버지: 넌 나에게 빨랫감을 줬어.
딸: 아니 그런 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달콤한 월드콘>중
조지영
17/01/30 15:14
수정 아이콘
포장지에 7금 붙여야됨
포도씨
17/01/30 15:15
수정 아이콘
전 아이들한테 콘을 안줍니다. 왜냐면 제가 먹어야 하기때문이죠.
애들은 그냥 쭈쭈바...안흘리는것도 이유지만 쭈쭈바가 양이 적더라고요. 그래서 설탕도 적게 들었다능...
영혼의공원
17/01/30 15:15
수정 아이콘
어린딸이 존더 어릴적에 일본 디즈니랜드에 갔을때 생각이 나네요. 출구쪽에서 기념품을 사주는데 싸구려 초콜릿을 고르는 겁니다. "다른거 고르면 안돼?" 라고 말하는 내게 아내가 그냥 두라고 했지요.

나중에 지가 돈벌면 꼭 갚아줘야지...
재돌이
17/01/30 15:17
수정 아이콘
어제 밤11시에 겨우 롤좀하려고 했는데 옆에 붙어서 아빠 잘때까지 안잔다고 우기던 딸하고 싸워서..(6살)... 하루종일 우울했는데 이글 보니 기분이 풀리는것 같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닉네임을바꾸다
17/01/30 15:25
수정 아이콘
롤 조기교육을...(아내님에게 등짝각이지만...응?)
유스티스
17/01/30 16:39
수정 아이콘
슬슬 듀오각.
롤링스타
17/01/30 16:21
수정 아이콘
우리세대는 딸이 진리다 쪽으로 기우는 감이...
17/01/30 17:45
수정 아이콘
0720
태공망
17/01/30 20:06
수정 아이콘
아그래요?
껀후이
17/01/30 16:24
수정 아이콘
이런 글 볼때마다 참...
나도 아들이면서 태어나지도 않은 애를(+나타나지도 않은 와이프...?)차별하나 싶어 아들 나아야지~싶은 마음이 흔들리네요...
역시 딸이 최고시다ㅜㅜ 넘 이쁜 글이예요!
와인하우스
17/01/30 16:35
수정 아이콘
제가 아들이어서 아는 데 딸이 짱입니다.
유전자 레벨에서부터 다른 느낌.
WhenyouRome....
17/01/30 17:15
수정 아이콘
딸이 체고죠.... 딸 낳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병원에서 아들이라고 해서 이삼개월 정말 힘들었네요. 더 낳을 계획도 없기때문에 딸 아닌건 아직도 좀 아쉬워요. 아들은 키울때는 힘들고 다 키우면 무쓸모라.... 확실히 딸을 하나 더 낳아야 할지 고민중이예요. 아들놈도 동생 좋아하고 이뻐하는데..... 아악 나도 딸을.............ㅜㅜ
17/01/30 18:12
수정 아이콘
아들 못 낳는다고 구박받던 게 저의 어머니셨고 결국 딸 다섯 끝에 아들을 낳으신 성공한 한국인이 되셨는데 요즘은 딸들 덕을 보며 살고 계십니다.
남편은 딸이 귀한 집안에서 커서 딸에 대한 환상같은 게 있구요;; 처음 사귀던 때부터 딸 찬양으로 칸타타를 만들 기세였죠. 불여시같은 딸래미 원한다고 소원기도도 했더라구요.
뭐 농경사회도 아니고 대를 이어야 하는 게 중요한 시대도 아니잖습니까. 아무튼 결론은 딸이 최곱니다.
로즈마리
17/01/30 20:40
수정 아이콘
댓글과 추천 모두 감사드려요^^ 댓글이 본이아니게 딸이 체고시다 분위기로 가는건 여초사이트의 특성상 어쩔수 없는 일이겠죠? 크크~아버지는 여전히 아들 아들 하시긴하는데 (언니가 딸만 둘 낳았는데 언니 시댁에서는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저희 아버지만 시집가서 대 이을 아들 못낳았다고 마흔넘은 언니에게 한명더 를 외치신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딸이라고 해서 싫어하셨다기보다는 대하는 방식의 차이였던것 같아요. 아들은 장성했을때 든든하고 동반자같은 느낌이고 딸은 귀엽고 애교많아서 키우는 재미가 있다고...오늘 그러시다라구요. 결론은 딸 아들 구분말고 능력껏(?) 낳아 잘기르자...
낭만없는 마법사
17/01/30 22:02
수정 아이콘
기분이 좋습니다. 작은 오해가 큰 한이 될 수 있는 걸 풀려서 참으로 기쁩니다.
왕밤빵왕밤빵
17/01/31 01:18
수정 아이콘
자격지심?과 섞인 정말 별것도 아닌 일이 큰 상처로 남죠. 저도 어느날 아침 형과 저에게 대놓고 용돈 차별했던 아버지한테 서운한 것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Rapunzel
17/01/31 08:33
수정 아이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역시 딸이 진리죠.
17/01/31 16:43
수정 아이콘
부라보콘 : 시무룩..
17/01/31 18:40
수정 아이콘
우리 아부지가 월드콘을 그렇게 좋아했어요. 예전에 아버지가 코골길래 채널을 돌리려고 리모콘을 아버지 손에서 탈취 했는데 *아빠 안잔다* 이러시더라구요. 월드콘을 아버지가 너무 좋아하셨겠지요.
곧미남
17/04/28 02:42
수정 아이콘
캬.. 늦게봤지만 좋은글이네요
17/05/08 16:23
수정 아이콘
재밌게 읽었습니다~
별거 아닐수 있는 한마디에 쌓이 한이 싹 풀리셨겠습니다.
진짜 육아하는 입장에서 애한테 월드콘을 쥐어주는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임은 확실하네요 크크크
어찌보면 현명하신 아버지셨네요 크크크크크
자루스
17/06/03 21:38
수정 아이콘
저는 반대의 케이스입니다.
얼음덩어리 먹이는것보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이 더.. (단점은 남기면 내가 먹어야 한다는 점이)
맨날 딸아들은 죠스바를 주장하지만
닥쳐라~! 얼음덩어리를 사줄수 없다.
임시닉네임
17/06/15 04:47
수정 아이콘
분명히 제가 어릴적엔 월드콘은 500원이고 부라보콘은 300원이라서 월드콘이 더 고급 아이스크림이었는데
언제부턴가 가격이 똑같아 졌어요.
17/06/17 11:44
수정 아이콘
아빠 : '월드콘 내가 먹을것도 없는데ㅜ 아오 아들놈이 하나씩먹기시작하네'
17/07/13 14:43
수정 아이콘
혼자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기 전에 한번 물어보지 그어요. 왜 난 안되었는지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2828 한국 사극을 볼때마다 늘 아쉽고 부족하게 느껴지던 부분 [110] 신불해28992 17/02/06 28992
2827 가난이 도대체 뭐길래 [128] 해바라기씨24486 17/02/05 24486
2826 간단한 공부법 소개 - 사고 동선의 최적화 [74] Jace T MndSclptr29430 17/02/01 29430
2825 조명되지 않는 한국사 역사상 역대급 패전, 공험진 - 갈라수 전투 [51] 신불해24661 17/02/01 24661
2824 월드콘의 비밀 [55] 로즈마리25001 17/01/30 25001
2823 할머니의 손 [14] RedSkai12500 17/01/30 12500
2822 "요새 많이 바쁜가봐" [11] 스타슈터19164 17/01/26 19164
2821 명나라 시인 고계, 여섯 살 딸을 가슴 속에 묻고 꽃을 바라보다 [20] 신불해15440 17/01/18 15440
2819 <너의 이름은.> - 심장을 덜컥이게 하는 감성 직격탄 [86] 마스터충달16315 17/01/15 16315
2818 [짤평] 2016년 올해의 영화 [116] 마스터충달20383 16/12/31 20383
2817 아 참 또 등 돌리고 누웠네 [33] 마치강물처럼21201 17/01/13 21201
2816 스물 아홉 마지막 날, 남극으로 떠난 이야기(스압/데이터) [111] 살려야한다22684 16/12/31 22684
2815 임칙서, 그리고 신사의 나라. [57] 신불해17379 16/12/29 17379
2814 한 유난스러운 아르바이트생 이야기 [40] Jace T MndSclptr24377 16/12/23 24377
2813 [리뷰] 개인적인 올해의 한국 영화 배우 Top 20 [39] 리콜한방19044 16/12/19 19044
2812 올해 하반기에 시승해 본 차량들 소감 [103] 리듬파워근성46270 16/12/18 46270
2811 세상의 양면성에 대한 난잡한 생각. [36] 와인하우스21320 16/12/05 21320
2810 우리 집에 어느날 누가 찾아왔다. 그런데.... 그 사람이 황제다. [32] 신불해26989 16/12/04 26989
2809 세면대에서 발좀 씻지 마세요. [87] Secundo27948 16/11/30 27948
2808 술먹고 얼굴이 빨개지면 금주해야하는 이유 [105] paauer53111 16/11/07 53111
2807 1%의 미학 [18] AspenShaker19864 16/11/01 19864
2806 TV를 끄지 못했던 마음 [16] Eternity14540 16/10/23 14540
2805 나중 보다 소중한 지금 [20] 스타슈터16612 16/10/19 1661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6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1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