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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봐도 좋은 양질의 글들을 모아놓는 게시판입니다.
Date 2012/12/31 19:53:45
Name 눈시BBbr
Subject 성종 vs 대간
조선시대에 성종은 세종대왕과 함께 양대 성군으로 평가됐습니다. (지금 같은 경우는 근대화 버프에 힘입은 정조에 밀립니다만. 정작 이 정조도 근대화 버프가 아닌 쪽이었다고 평가되죠) 그에 반해 잘 다뤄지거나 하진 않죠. 워낙에 조용했으니까요. 하지만 수성군주는 원래 그런 게 더 잘났다는 것의 반증이 되죠. 다뤄진다면 인수대비 얘기나 어우동, 그 아들인 연산군 얘기가 주가 될 뿐이구요. 연산군이야 지가 폭군인 거고 이런 얘기들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 때가 태평성대라는 뜻일 겁니다.

하지만 이 성종을 둘러싼 환경은 그리 좋지 않았습니다. 일단 시작부터가 그랬죠. 예종이 죽었을 때 계승 1순위였던 제안대군 대신 3순위였던 그가 선택됩니다. 2순위였던 그의 형도 제치고 말이죠. 제안대군이 너무 어리기도 했지만 여기엔 더 큰 계산이 있었습니다.


그의 장인이 한명회였거든요. 이에 대해 그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이미 둘째아들을 왕의 재목으로 보고 어린나이에 사돈을 맺은 거라는 해석이 옛부터 있었죠. 근데 그렇게 보기엔 예종이 너무 갑자기 죽은 거라서 -_-; 문정왕후도 아니고...

신숙주는 예종이 죽자마자 대왕대비 정희왕후에게 갔고, 여기서 성종인 자을산군을 왕으로 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집니다. 신숙주, 한명회를 비롯한 권신들은 자기들이 다룰 수 있는 적당히 어린 왕이 필요했고, 정희왕후에게는 왕의 확실한 후견인이 필요했으니까요.

이래서 성종은 13살의 나이에 왕이 되면서 신하들의 욕구에 맞춰집니다. 명분이야 있었습니다. 유교에서의 왕은 절대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신하들의 말을 잘 듣는 왕이었으니까요. 특히 예종이 아버지 세조처럼 강력한 왕권을 꿈 꿨기에 (남이가 이 때 죽습니다) 더 그랬죠.

성종은 어린 나이에도 이 사실을 잘 알았고, 철저한 유교 군주가 돼 갔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아침점심저녁으로 하루 세 번 강연을 어기지 않았고, 신하의 요구에 따라 야대까지 했죠. 하루 네 번 강연을 하는 생활을 무려 6년이나 계속했습니다. 그 자신도 공부를 좋아하긴 했을 겁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생활을 버틸 수가 있었겠어요.

그렇다고 그들 말대로 따라간 것도 아니었습니다. 특히 훈구 대신들을 견제해 가면서 왕권을 찾으려 노력했죠. 어차피 권신들은 늙어갔고, 은근히 그들을 견제하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예 적대하지도 않았구요. 그 늙은 한명회가 성종에 의해 은근히 물러나게 됩니다. 뭐 어차피 죽을 때까지 잘 먹고 잘 살긴 했습니다만 예전의 권세를 되찾진 못 했죠. 그걸로 충분했을 겁니다. 뭐니뭐니 해도 어쨌든 자기의 후견인이었고,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었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성종이 들고 나온 것이 바로 대간입니다. 유교 사회에서 당연히 있어야 되는, 왕은 물론 대신들도 견제하는 언론이었죠. 특히 이들은 세조 때 너무 죽어 있었습니다. 세조의 절대 권력은 대신들에게도 큰 위험이었지만, 비판을 업으로 삼는 이들에게도 큰 문제였습니다. 무조건 예스맨의 사회가 돼 버린 것이니까요. 성종이 이들을 비호한 것은 유교 국가에서 당연한 것이었으며, 이것을 통해 대신들을 견제할 수 있었죠. 성종 7년, 스무살이 되면서 원상제(한명회 같은 대신들에게 도움받는 제도)를 없애면서 스스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립니다.

문제는 여기서 너무나도 큰 힘을 가져버린 대간이었습니다. 성종은 본격적으로 사림들을 등용하기 시작합니다. 훈구파와는 이해관계가 달랐고 지방에서 오래도록 성리학을 연구해왔던 이들이었죠. 세조 때 이미 김종직 등이 등용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이었던 이 때였습니다.


김종직

"스승은 제 제자를 칭찬하고, 제자는 제 스승을 칭찬하는 것이 사실보다 지나쳤는데, 조정 안의 신진의 무리도 그 그른 것을 깨닫지 못하고, 따라서 붙좇는 자가 많았다. 그 때 사람들이 이것을 비평하여 ‘경상도 선배의 무리[경상 선배당]’라고 하였다."

이들은 성종이 원한 성리학 사회를 구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언론을 장악해 대신들을 탄핵하면서 권력의 균형을 맞추게 됩니다. 이후의 역사에서 보듯 이들은 정말 목숨을 아끼지 않고 대신들과 맞섰고 (뭐 다 그랬던 건 아니지만 -_-a) 이후에는 척신권력까지 무너뜨리며 사림의 세상을 만들었죠.

문제는 이들이 너무 급진적이었다는 것이고(이건 조광조 때 가서 얘기해야겠지만), 이들 역시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뭉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성종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했으며 이들을 견제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세조가 누린 절대권력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이 부분은 대신이고 대간이고 마찬가지였죠. 이들은 더 이상 절대권력을 원하지 않았으며, 성종은 그들이 쌓인 것을 모두 받아내야 했습니다.

실록에서 대간으로 검색하면 성종은 2029건이 나옵니다. 역대 2위죠. 1위는 무려 9884건의 중종, 연산군 때 쌓인 걸 다 받아내야 했고 조광조가 활약했을 때였죠.

그리고 3위가 1581건의 연산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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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군의 과실은 마땅히 듣는 대로 이를 말해야 하며, 같이 의논한 뒤에 간(諫)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만약 대신의 과실이라면 동료와 더불어 같이 의논하여 그 진위를 살핀 다음에 논하는 것이 가할 것이다"

성종 8년 10월 11일의 기사입니다. 여기서 한명회 서거정 등은 대간들이 옳고 그름을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바로 간한다고 비판했고, 성종은 임금한테는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했죠.

"임금이 간언을 따르면 성인이 된다고 한다. 당나라 태종은 불세출의 군주인데도, 위징이, ‘간언을 따르는 것이 점차 처음과 같지 못합니다.’고 하였으니, 나의 지나친 행동도 미리 말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건 12월 9일이죠. 이 때만 해도 성종은 대간을 최대한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태도가 달라지게 되죠.

성종 9년 4월 21일, 임사홍의 말을 들어봅시다. 이 때 흙비(황사겠죠?)가 내려 대간들은 이것을 큰 재난이라고 하며 술을 먹지 말고 몸을 닦으라고(수신) 합니다. 이에 대해 임사홍은 이렇게 말했죠.

"술이란 것은 본시 사람이 먹는 물건으로, 대저 임금이 큰 재변을 만난 뒤에 몸을 닦고 마음을 반성하며 술을 금한 것은 이 또한 한갓 문구일 뿐입니다. 이제 만약 가뭄의 징조를 재이라고 한다면, 비의 혜택이 마르지 아니하여 밀보리가 무성하니, 그 수확이 있을 것은 이를 점쳐서 알 수 있으며, 만약 흙비를 재이라고 한다면, 예로부터 천지의 재변은 운수에 있으니, 운성도 그 운수입니다."

그러니까 걱정 말고 술 드셔요하는 말이었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에 있었죠. 임사홍은 대간들의 말 자체를 공격합니다.

"또 경회루에서 종친과 관사한 일을 대간에서 또 말하였습니다. 예전에 시사라는 글이 있으니, 임금이 비록 신하와 더불어 활을 쏠지라도 가한데, 하물며 그날은 따로 종친을 모아서 친친(親)의 의를 편 것이므로, 친히 활과 화살을 잡으실지라도 정치에 방해됨이 없는 것이겠습니까? 이제 대간이, 주상께서 시를 짓는 것을 알면 ‘옳지 못하다.’고 하고, 활과 화살을 잡으시면 ‘옳지 못하다.’고 하니, 그렇다면 문무의 재주를 폐해야 옳겠습니까? 대간이 또 사대부의 집이 참람하고 지나치다고 말하여, 간살의 넓이를 정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건대, 칸수는 이미 법을 세웠으니, 다시 세쇄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대저 간사한 꾀는 측량하기 어려우니, 이러한 법을 비록 아무리 세울지라도 반드시 법 밖에서 교묘하게 짓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대간들은 성종이 종친과 노는 것도 뭐라 했고, 무 쪽으로는 활 쏘는 것도, 문 쪽으로는 시 짓는 것도 반대한 것이었죠. 사대부들이 법으로 허락된 정도의 집 짓는 것도 사치라고 뭐라 했구요. 성종의 상황을 알 수 있는 부분이고 이에 대한 대간들의 반응을 보면 참 재밌습니다. 이 자체에 대해서는 성종은 대간 편을 들어주긴 합니다만. 일단 이에 대한 사관의 평을 들어봅시다.

"임사홍이 가뭄의 징조로써 비가 늦지 아니하다고 하고 보리도 수확이 있다고 하며 흙비는 운수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하며, 화재가 있었음은 민가에서 실화하여 여러 집이 연달아 탄 것이니 족히 괴이할 것이 없다고 하여, 일체 이치에 위반하여 성주를 속였으니, 옛날의 아첨한 말로 스스로 몸을 파는 자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뭐... 이게 시작이겠죠.

"신 등이 일찍이 임사홍을 보고 소인이라고 의심하였는데, 이제 그 말을 보니 더욱 그 간사함을 징험하겠습니다." - 부제학 유진
"임사홍의 말한 바가 모두 음험하고 간사하니, 그 죄를 심히 다스리지 아니 할 수 없습니다." - 대사간 안관후
"임사홍의 말한 바는 일체 아첨하는 것이며 소인의 태도를 모두 겸해 가졌으니, 청컨대 빨리 버리소서." - 응교 채수
"진실로 소인이 임금을 현혹시키는 것입니다.” - 장령 박숙달
"임사홍의 간사함은 이 두어 마디 말에서 징험할 수 있으며, 그 아비 임원준도 참으로 탐오한 사람입니다" - 대사헌 유지
"이제 신 등이 임사홍을 버리기를 청하였는데 성상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언로가 이로부터 넓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 또 유지

...

"임사홍이 소인이었다면 진작 말하지 왜 오늘날에 말하는가?"

"(그야 이미 님이 임사홍에게 현혹돼서 평소에 말하면 안 됐을 거고 지금 소인인 게 드러나서 말하는 거임) 치란·흥망의 도는 군자·소인의 나아가고 물러가는 기틀인데, 모두 오늘날 임사홍을 버리고 안버리는데 달려 있습니다" - 수찬 이창신

... 에 뭐 끝이 없죠? -_-; 여러가지 배경이야 더 없었겠습니까만, 이 때 임사홍이 몰린 결정적인 이유는 참 간단했죠. 대간들에 척을 졌으니까요. 대간 건드리면 사살이라는 거였습니다. 성종은 계속 키배를 벌이며 죄 줄 정도는 아니라고 했지만, 결국 임사홍을 파면하게 됩니다. 그 이유 역시 "언로가 막힐 수 있다"는 것이었죠. 이렇게 실세였던 임사홍은 국가 공인 소인이 되었고, 성종 때는 아무것도 못 하다가 연산군 때에야 겨우 기용됐다가 같이 죽습니다.

다른 부분들에서도 마찬가지였죠. 대간들은 허구헌날 탄핵을 해댑니다. 대신들의 권력이 줄어든 것은 다행이었지만, 문제는 그 대신들이 아예 말을 하지 못 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죠. 말실수 조금만 해도 욕 먹는 상황이었으니까요.

"내 생각으로는 이창신의 일은 그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대저 대간은 자기의 의견에 합하지 않으면 반드시 공격하여 배척하려고 하니, 그런 까닭으로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꺼리게 된다. 내가 비록 공사에 있어 두번 세번 고문(물어봤다구요 (...);;)했는데도 마침내 명령에 응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이는 대간이 자신들을 평론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중략) 신하는 나라가 있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인데, 어찌 대간을 두려워하겠는가?" (10년 12월 17일)

이미 대간들의 지나친 탄핵이 문제라는 걸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이 때가 성종 10년, 성종의 재위는 25년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그가 죽을 때까지도 계속됩니다.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인사권, 뭘 해도 지들 맘에 안 들면 탄핵하니 나라 꼴이 잘 돌아가기 힘들었죠. 대간들은 오히려 더 잘 깔수록, 임금 앞에서 더 당당할수록 더 잘난 거라 여겼습니다. 경쟁이 붙을수록 더 심해지게 되죠. 사간원의 경우 술이 허용됐습니다. 술 마셔야 깡이 더 느니까요. 언론 삼사 중의 하나가 된 홍문관은 오히려 이들 대간을 견제하는 역할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 정도로 오히려 대간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역시 같은 언론일 뿐 (...) 중요한 일이 있으면 삼사가 합계해 나섰고, 이들을 무시하려 하면 폭군, 거부하면 전원 사직, 이런 식이었죠. 오히려 임금과 안 부딪히고 임기를 꽉 채우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됐던 인사 부분, 성종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밀어붙입니다. 무관들을 기용하고 역관, 의관들도 양반 만들어주려고 했죠. 엄청난 반대가 계속됐습니다. 이러니 성종이 아무리 잘 해주려 해도 제대로 효과가 날 리가 없었죠.

그 외의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니 더 심했죠. 나름대로 전문성이 필요한 일들에 대해서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성종 16년에 창경궁 통명전에 있는 샘이 넘쳐 못과 연결하는 수통을 만든 일이 있습니다. 여기에 구리가 쓰였죠. 뭐래는가 봅시다.

"요새 들으니 못에 물을 끌어들이는 수통을 구리를 녹여 만든다 하니 (중략) 그 조짐이 장차 우려됩니다." - 시강관 정성근

"통명전 앞에 샘물이 있어서 뜰로 넘치기 때문에, 이것을 끌어서 못으로 들이고자 하여 동철을 가지고 물을 끌어들이는 수통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견고해서 오래 갈 수 있다는 것을 취한 것이다. 그대는 어찌하여 살피지 아니하고 말하느냐?"

"정성근이 말이 매우 옳습니다. 원컨대 채납(받아들이셈)하소서." - 장령 박안부

"아니 몰래한 것도 아이고 만든 지도 한참 됐구만 왜 '일찍이 듣지 못했다'고 하노?"

"지는 못 들었는데예? 들었다면 가만 놔둤겠습니꺼? 이게 다 기록에 남고 만세에 전해질 건데 후세에 부끄럽지 않겠으예?"

"아나 사관은 그냥 본대로 쓰면 되지. 내가 사치를 좋아한 게 아이라고."

"옛 말에 검소하라고 했는데 지금 사치하지 않는다고 소홀히 하믄 뒤에 왕들이 사치할 거 아입니꺼?"

"%)#@*%)!#@ 나무는 잘 쓱고 돌은 돈이 더 마이 들으가니까 구리로 만든 거 뿌이라고!"

... -_-;

이렇게 승질까지 내면서 물리치긴 했지만 성종은 결국 그들의 말을 무시 못 합니다. 괜히 공사를 다시 해서 돌로 바꿨죠. 그리고 이걸 승정원에 내리며 이렇게 말 했죠.

"이것이 정성근이 말한 사치한 물건이니, 승지들은 이것을 보라. 지금 만약 깨뜨려버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내가 후일(後日)에 쓸 것이라고 할 것이니, 곧 부러뜨려 부수어버리도록 하라"

에효 -_-a 화풀이죠.

요런 얘기도 있구요. 성종 25년입니다.

"요새 민가에 세 발 달린 암탉이 있다든데 이거 참말로 큰일이네예. 옛날부터 어쩌고저쩌고 했는데 점을 쳐 보이까네 '임금이 져아 말을 들으면 닭이 요물을 낳는다'고 했거등예? 옛부터 변이가 발생하는 건 다~ 원인이 있다 카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수성(수양하고 반성)하이소. 지난번에 절 지은 거 그것 때문 아이겠습니꺼?"

"야 내가 여자 말 들은 적 없거든? 이게 내 때문인지 우예 아는데? 세조 할배가 절 지었을 때는 와 안 나왔는데? 왜 뭔 일만 있음 내 탓 하노?"

"아니 그냥 요물 닭 나온 게 놀라가 이러는 거지 딱히 성상 탓 하는 거 아입니더. 절 지었다고 이라는 것도 아이고 허물을 돌리는 것도 아이고 그냥 이게 그냥 일어난 일은 아이니까네 그라는 거고 왕이 원래 늘 경계하고 반성해야 되는 거 아이겠습니까?"

"어떤 놈은 세쌍둥이 낳은 적도 있고 괴이한 일은 언제 어디서든지 다 있는 거구만. 그게 한 집안의 일일 수도 있는데 왜 나한테 개소리 지껄이는 거냐고!"

"옛 말에 왕이 여자 말 들으면 반드시 '계요(닭 요물? -_-;鷄妖)'가 있다 켔거든예? 궁 중의 일은 모르겠는데 있었다면 고치고 없었다면 수성하이소."

"!)#%*)!#*%)!#*%)!#*%)!# 내가 있는 걸 없다 카겠냐고! 왜 나한테 !#*)%!#*)"

"옛 사람들은 요물이 멀리 있더라도 다~ 왕 잘못이라 켔는데 서울 안에 있는데 당연한 거 아이겠십니꺼?"

...

-_-; 성종은 "그 일은 모두 내가 불러일으킨 것이다"고 하면서 그 삼족계(...)를 가져오게 합니다. 왠지 끝에 "됐지?"가 붙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에피소드 같은 경우는 어머니 인수대비가 불교를 좋아하는 걸 가지고 한 말입니다. 나중에 문정왕후 때도 수탉이 암탉이 된 일이 있다면서 이거 가지고 불교 깠죠. 어찌됐든... 이거 참...

성종은 나이가 먹어 가면서 슬슬 불평을 터뜨립니다. 하지만 불평 정도였죠. 위 에피소드들에서 볼 수 있듯 결국 들어줬으니까요. 대신들과도 이에 대해 서로 불평하면서 대간들 때문에 몬 살겠다고 난리였습니다. 대간들도 나중에 가면 "요새 우리 말 안 들으신다"고 불평하지만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무력을 동원해서 대간들을 짓밟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높은 평가를 줄 만 합니다. 그것이 유교사회였고, 언론을 무시하면 안 됐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아니다 싶은 건 무시하고 밀어붙이거나 귀양이든 뭐든 주는 정도의 대응도 취하지 못 합니다.

그는 애초에 신하에 의해 선택된 군주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왕권도 위협하는 대신들의 권한과 싸웠죠. 그렇기에 그가 가진 유일한 힘은 유교 사회 구현 뿐이었습니다. 신하들이 원한 유교의 모범 군주로 키워졌고, 거기에 매달린 것이죠. 그렇기에 거기서 벗어나는 일을 못 했다고 봐야겠죠. 정작 그 대간들은 그 권한을 남용해 왕권까지 억누르고 있었는데도요.

그가 공부를 좋아하고 온화한 성격이었기에, 어쨌든 그들이 원한 군주의 모습을 자신도 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더 나이를 먹었다면 어찌 됐을진 모르겠군요.

왕권과 신권이 조화되는 유교사회, 하지만 그 중심이 딱 어디라고 하긴 힘들죠. 조선왕조 내내 왕권이 더 강해지거나 신권이 더 강해지거나  하면서 했습니다. 한 쪽으로 쑥 기울다 반대쪽으로 쑥 기울다 하다가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춰 가거나 하면서요. 그리고 이 균형이 어느 정도 맞았을 때가 괜찮은 시대였죠.

언론의 역할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언론이 죽을 경우 견제할 이가 없는 권신들의 부정부패가 나타났죠. 반대로 언론이 너무 강할 경우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뭐 그래도 태평성대긴 했죠. 별 재난도, 외적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언론이 완전히 죽었을 때 세도정치가 나타났습니다. 영정조 때부터 대간은 더 이상의 역할을 못 하게 됐죠. 남은 대간들도 세도가문의 꼭두각시가 돼버렸구요.

지금 언론과 참 비슷하지 않나요?

아무튼... 이런 대간들의 견제는 성종의 사생활 문제에서 더 크게 나타납니다. 유교 군주는 일만 해야지 놀이에 빠져들면 안 됐죠. 성종은 13세에 왕이에 올라 38세에 죽습니다. 한창 때였죠. 그가 무를 천시한 것도 아니었고, 활쏘기와 사냥을 좋아했죠. 하지만 대간들은 이 모두를 못 하게 했고 이들 몰래 아끼던 매를 날리거나 하는 정도였습니다. 사냥을 자주하는 건 문제지만 왕이 이 정도도 못 하는 건 너무 심하잖아요. 그렇다고 문 쪽으로 시를 쓰는 것도 왕이 할 일이 아니라고 못 하게 했으니... 남은 게 더 있나요?

성종은 낮에는 요순, 밤에는 걸주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정도로 여색을 밝혔죠. 그것밖에 할 게 없었습니다. 왕손이 끊기면 안 되기에 이것만은 권장됐으니까요. 그리고 여기에서 그 모든 스트레스를 푼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여자에게는 참 가혹했죠.

딱히 아픈 것도 아니었던 그가 38살의 나이에 갑자기 죽었다는 것도 이런 스트레스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참... 왕 노릇이 전혀 부럽지 않은 왕이죠.

그리고 그런 그를 아들 연산군이 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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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군주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되는 법, 세자 역시 일찌감치 성균관에 입학해 유교를 공부합니다.

세종은 자기가 준비가 되지 않았던 (하지만 알고보니 준비가 될 대로 된) 경험 때문인지 문종을 8살에 입학시킵니다. 보통 늦어도 10살까지는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성종은 12살이 돼서야 입학하게 했죠. 그 이후에도 딱히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영조와 비교하면 -_-a) 공부벌레였던 자신을 생각하면 특이하죠. 뭐... 아빠처럼 살지 말라 이런 거 같습니다만...

그런 세자는 정말 아빠처럼 살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연산군이 막 왕이 됐을 무렵, 성종에게 불교 행사인 수륙재를 행하는 등의 문제로 유생들이 상소를 올립니다. 이에 연산은 분노하며 그들을 붙잡아 국문하게 했죠. 신하들이 말려서 풀어줬지만 3명은 유배되고 21명은 과거 응시 자격이 박탈됩니다.

신하들이 언로가 막힐 수 있다며 이들을 풀어달라고 했을 때 연산은 이렇게 답 합니다.

"직언을 듣기 싫어한다 하지만, 착한 말이 있으면 어찌 듣지 않으랴. 내가 직언을 듣기 싫어함이 아니라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기를 수 없기 때문이다" (1495년 1월 24일)
"나도 또한 이를 사책에 쓸 줄 알지만,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고치지 않을 수 없다."
"선왕께서 유생을 죄주지 않았으므로, 이런 위를 능멸하는 풍습을 가져 왔다. 일마다 의견을 모은 뒤에야 처리한다면, 임금의 권한은 어디에 있는가" (1월 30일)

세상이 달라졌다는 걸 말해주는 말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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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어우동 얘기로 가 보겠습니다.
올해 마지막 글이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信主님에 의해서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1-24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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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31 20:39
수정 아이콘
첫플일까요?^^
성종도 나름 성군인데 많이 묻히는 감이 있는데, 대간과 묘한~대립이 있었다는 걸 이제 알았네요

다음 얘기가 기대됩니다+_+
알고보면괜찮은
12/12/31 20:40
수정 아이콘
성종과 세종의 차이점이 저게 아닐까 싶네요.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왕권에 방해가 된다싶은 세력은 공신이건 처가건 사돈이건 쓸어버린데다가 세종 본인도 자기 지식+말빨+ 왕이라는 지위빨(...)로 신하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으니까요.
12/12/31 21:10
수정 아이콘
잘 보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성종과 연산군(조금?)의 정치사적 이야기네요.
성종은 조선왕조사 내내, 그리고 현재까지 유교적 이상주의 국가를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한 성군으로 칭송받고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성리학적인 관점이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글쎄요....지존이 지존답지 못하다고나 할까요?
이건 왕이 지 맘대로 할 수 있는게 거의 없으니 ㅡ.ㅡ;;;

특히, 대간이 성종시대에 극히 활성화된 이유는 성종이 어린시절에 제왕학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탓이 크다고 봅니다.
8대 예종이 죽었을 때 성종의 왕위계승 순위는 잘봐줘야 3순위(예종 아들 제안대군, 성종의 형 월산군, 그리고
자을산군 성종)이고 사가에서 크다 보니 궁궐보다는 학문을 제대로 못배웠는데 ,
어머니랑 한명회 덕분에 왕위에 올랐으니깐요. 그러다보니, 정통성 확보나 학문적 차원에서
컴플렉스를 가질 수 밖에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유교적 이상주의 실현을 위해서
대간이 활성화되었다고 봅니다. 수많은 경연도 그것의 산물인 것 같구요
하지만, 성리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것이 바로 이상주의적인 국가였겠죠.
신권이 왕권위에 있는 나라.

본문에도 나와있는 내용인데, 김범이라는 학자가 쓴 '연산군'이라는 저서를 보면, 연산군이 폭군의 길로 나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어머니의 사사도 있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사건건 왕권에 딴지를 거는 대간이 큰 역할을 했고,
연산군에게는 이런 것이 능상(凌上, 주상을 능멸함)에 다름 아니었겠죠.
책을 보니 "국왕의 입장에서 보면 삼사(대간)의 이런 언론은 즉위 직후부터 왕권을 제약하는 것이 분명했다....
왕권의 자유로운 행사에 남다른 관심과 의지를 지니고 있던 국왕에게는 더욱 심각한 폐해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국왕과 대신들은 그것을 '능상(凌上)'으로 규정했다" 라고 써있는데, 그야말로 이 대간들은 연산군으로 하여금
진정 조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심각한 의문을 가져왔고, 이것이 파멸로가는 큰 원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종은 성군으로 칭송받지만 다음대의 군주(연산군) 입장에 보면 정말 최악이었네요.....=_=;;

아, 그리고 조선왕조의 대부분의 왕, 그리고 세자들은 젊은 나이(40세 이전)에 요절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가장 큰 이유는 무(武)보다는 문(文)에 극도로 치우친채, 하루종일 앉아서 책보고 대신들과 말다툼하고 그러는
생활이 어렸을 때부터 반복된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습니다.

다음 편 기대하겠습니다^^
12/12/31 23:00
수정 아이콘
어우.. 정리해주셔서 이 정도지 이 꼴을 직접 보고 있던 성종은 어땠을지 -_-;;
나이트해머
13/01/01 00:11
수정 아이콘
세조가 훈구세력들을 너무 키워준 결과죠.
사림 세력들, 삼사의 언로가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왕은 언제든 그들을 처낼 수 있었습니다. 군약신강이라는 효종도 마음에 안드는 상소가 올라오자 '저놈은 내가 꼭 죽여야 되겠다' 고 선언하고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진짜 목을 처 날렸죠. 그것도 '내가 반성할 일이 있으니까 할말 있으면 해 봐' 해서 올라온 상소를 보다가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작정하고 거부하거나,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자의 신변을 해하는 건 조선의 왕에겐 언제든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받은 교육, 그들이 가진 사상의 영향으로 이를 자제한 것이지.

사림세력의 집권 이후 신권이 왕권 위에 있네 뭐네 하지만 실상은 '왕이 스스로 자제하는 것' 을 전제로 하는 군약신강이지 왕이 참지 못하게 되면 곧바로 끝장나 버리는 게 이들의 힘이지요. 이건 심지어는 군약신강의 대표격인 인조, 효종, 현종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깁니다. 물론 왕이 권력을 사용하는 걸 자제한다고 해도 이들은 어린시절부터 영재교육을 받고 현실정치에서 구른 최상위 레벨의 유학자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마디 했다가 역관광당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당대의 대학자로 인정받는 수준이 아니면 대부분의 경우 말빨에서 밀리죠.

그러나 훈구세력들에게는 그게 안되죠. 세조시기에 형성된 훈구파에게는 진짜 왕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인적 물적 힘이 있었고, 성종 자신도 그로인해 즉위한 것이니만큼 이를 언제나 느낄 수밖엔 없었죠. 저들이 작정하고 뭉처 달려든다면 '진짜로 왕을 갈아치울 수 있다.' 는 현실. 왕이 버럭 하면 결국 거기에 밀릴 수밖엔 없는 사림세력과 왕이 버럭한다고 밀리지 않는 훈구 세력은 같은 군약신강이라도 이게 참... 결국 그렇다보니 성종 입장에서는 사림이 아무리 자기를 귀찮게 한다고 해도 이걸 처내면 훈구 세력이 더욱 강해지니 처낼 수 없죠.

연산군은 이걸 아예 둘 다 처낸다, 즉 훈구도 때려잡고 사림도 때려잡아 절대왕권! 을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해결해 보려 했습니다. 뭐 그 과정에서 조선의 인재풀 자체가 초토화되든, 그렇게 소유한 권력으로 자기 멋대로 나라를 말아먹든 상관없다 이거겠죠. 그리고 국가 지배층 전부, 심지어는 자기 친위세력까지 죄다 등을 돌리며 쫓겨났고.
Je ne sais quoi
13/01/01 00:24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3/01/24 09:28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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