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리그 관전일기 -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1st 8강 2회차
홍진호 선수의 100승 달성, 테란 플레이어들의 생존율, 로얄로더들의 4강 진출 여부 등의 풍성한 이슈들과 함께 했던 오늘 경기에서 한동욱, 홍진호, 조용호, 변은종 선수가 각각 승리함으로서 [2006 신한은행 스타리그 1st] 4강 진출자가 확정되었다.
극한의 마이크로 컨트롤로 무장한 ‘포스트 임요환’ 한동욱 선수와 전통의 강자 홍진호, 조용호 선수 그리고 지난 세대와 다음 세대 저그 플레이어들의 교감을 품은 2.5세대 뉴웨이브 변은종 선수의 대진은, 범람하는 호사가들의 흥행 실패(혹은 참패) 예언에도 불구하고 ‘스타리그’호의 순항을 기대하게 한다.
post boxer? more boxer!
‘투신’ 박성준(MBC게임) 선수의 등장은 저글링과 러커의 운용 패턴을 전복시켰다. 기존의 저그 플레이어들이 저글링을 던져주고 마린과 파이어뱃에 저글링이 녹아내리는 사이 러커의 촉수를 이용해 공격을 시도했다면, ‘투신’표 저그는 러커를 총알받이 삼아 적에게 r기동하고 러커가 일점사 당하는 사이 저글링으로 테란 병력을 궤멸시켜왔다. 러커가 두드려 맞으며 버로우 하는 사이, 백병전을 펼치고 있는 파이어뱃과 지원 사격 중인 마린-메딕 사이에 반드시 존재하는 빈틈을 저글링으로 파고든 것이다.
문제는 한동욱 선수의 파이어뱃이 자신을 둘러싸는 저글링 사이의 작은 간격을 놓치지 않고 후퇴하여 마린-메딕 병력에 무사히 귀환한다는 것이다. 특정 타이밍에 펼쳐지는 정량의 병력 간 교전에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의 아키텍쳐로는 해결할 수 없는 컴퓨팅-컨트롤을 구사하는 한동욱 선수를 상대로 <백두대간>에서의 미네랄 멀티는 저그에게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게다가 저그 플레이어가 보유할 수 있는 러커의 규모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테란 플레이어들이 순수한 바이오닉 운용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백두대간>은 저그에게 큰 부담임에 틀림 없다.
임요환 선수의 섬세한 바이오닉 운영을 이미 뛰어넘은 것으로 보이는 한동욱 선수에게, 3명의 저그 플레이어들과 겨루는 이번 시즌 왕좌는 그리 멀어보이지 않는다.
노장의 미덕
미래가 줄기차게 과거로 변화하는 사이에서 우리는 가끔 현기증을 느끼곤 한다. 그것은 아마 기억과 망각이 서로 자리를 바꾸면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스타리거‘ 명단을 알 수 없는 이름이 점령하고, 신예 선수들과 기존 강자들의 경기력 차이가 급속히 줄어들면서 우리는 노장에게서만 찾아 볼 수 있었던 ‘노련함’이나 ‘여유로움’ 같은 수식어의 의미를 잃어갔다, 오늘 홍진호, 조용호 선수의 승리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홍진호, 조용호 선수의 더 많은 경험은 ‘사실을 장악하는 능력’으로 발현되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객관적으로 인식한 노장들은 치열한 전투 중에도, 5드론 러시에 실패 했을때 조차도 5초 혹은 10초 후에 필요한 유닛으로 라바를 변태시키도록 명령할 수 있었다. 준우승의 뼈아픈 경험을 품고 있는 ‘올드저그’들의 2막을 기대하게 하는 이유도 이와 다름 아니다.
4드론-
때로 세상은 너무 완벽하게 꽉 짜여 있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파격, 실험, 도전이라는 이름 아래 기존의 틀을 깨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테란이 벙커링, 프로토스가 센터 게이트라는 파격적인 실험을 통해 도전하는 동안 가장 자유롭게 말이 유통되어야 할 곳에서 말에 재갈리 물려있었다, 어차피 저그 플레이어에게는 언제 스포닝 풀을 건설하느냐 외에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은종 선수는 승부에 있어서 전략과 전술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음을 증명했다. 바로 ‘용기’이다. 4번째 드론을 선택해 스포닝 풀로 바꾸는 커맨드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루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을 기억한다. 우리는 변은종 선수의 가장 용감했던 순간을 기억할 것이다.
by sylent, e-sports 저널리즘.
p.s 전역했습니다. 앞으로 자주 뵐 수 있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