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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06/12/09 21:45:13 |
Name |
외계인탐구자 |
Subject |
[유머] 무한도전에 대한 평론가의 글 |
강명석씨가 쓰신 글인데요
워낙 유명하고 멋진 문화평론가이시고
무한도전 1화때부터 봐오신 많은 애정을 가지신 분이에요^^
재미있긴 한데 정말 길어서;;;
꼭 읽어보세요^^ 공감되는 부분 많으실거에요~~
유재석과 나경은 아나운서와의 교제설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벌어진 몇가지 일들. <무한도전>의 팬들은 ‘결혼 준비 잘 하길 바래’, ‘첫날 밤 잘 보내길 바래’ 등의 관련 코너를 만들 것을 건의했고(김태호 PD에 따르면 실제로 비슷한 기획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무한도전> 해당 회의 컨셉인 ‘김장특집’과 상관없이 <무한도전>속 코너 ‘무한뉴스’는 유재석과 나경은의 교제에 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뤘다. 그리고, 유재석이 세트장 앞에서 수많은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무한도전>의 카메라는 다른 다섯명의 멤버들을 보여줬다. 찾아오는 기자들도 얼마 없이 “우리도 같은 연예인인데.....”라며 투덜거리는(그리고 기자가 온다 해도 온통 유재석에 관한 질문만 받는) 그들을.
특정 연예인의 교제 사실이 밝혀지면 토크쇼 등에서 그것을 화제로 올리는 것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러나, 다른 오락 프로그램들이 출연자의 사생활을 한 번 웃을 수 있는 소재로 삼고 원래 컨셉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과 달리, <무한도전>은 <무한도전> 바깥에서 벌어지는 여섯 사람의 실생활이 <무한도전>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된다. 출연진의 사생활은 곧바로 프로그램에 반영되고, 이제는 팬들도 그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무한도전>이 보여주는 여섯 사람의 사생활은 단지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무한뉴스’에서 유재석이 나경은 아나운서와 어떻게 사귀었느냐, 손을 잡았느냐 하는 것은 한 인기 연예인이 자연인으로서 가진 사생활이다. 하지만 그런 유재석을 보며 동료사이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연예인 사이의 인기 차이를 실감하는 나머지 다섯명의 모습은 '연예인‘으로서 그들의 사생활, 정확히 말하면 쇼 프로그램 뒤에 있는 연예인의 사생활이다.
실시간 업데이트가 가능한 쇼
<무한도전>은 이 부분에서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차별화된다. 다른 오락 프로그램들은 기본적으로 외부 세계에 대해 닫혀 있다. 아무리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쑤시는 SBS <야심만만>이라 해도 다른 프로그램을 직접 거론한다거나, 연예인 각각의 실제 인기가 어떻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KBS <상상플러스>에서는 이휘재가 정형돈에게 손가락 욕설을 하는 장면이 그대로 나왔지만, 다음 주 방영분에서 아무 일도 없는 듯 프로그램을 그대로 진행했다. 가정이지만, 정형돈과 이휘재가 실제 사이가 안좋다고 해도 <상상플러스>에서 그들의 관계를 드러내면서 서로 반목하는 스토리를 만드는 일은 없다. 그것은 네 명의 대감이 게스트들과 사이좋게 우리말을 배운다는 <상상플러스>의 세계관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오락 프로그램은 현실에서 살고 있는 연예인들이 가상세계에서 잠시 활약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오락 프로그램에서 연예인과 오락 프로그램의 현실을 말하는 것은 암묵적인 룰을 깨는 것이다.
반면 <무한도전>은 프로그램 안의 세계와 현실 세계를 연동시킨다. 타 방송사의 경쟁 프로그램이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어느새 ‘어색한’ 남자가 된 정형돈은 <무한도전> 제작진의 자막에 의해 “오늘은 웃긴다.”같은 표현까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 <무한도전>은 <무한도전> 바깥에서 <무한도전>을 바라보는 시각 그 자체가 <무한도전>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무한도전>의 ‘슈퍼모델’ 편이 흥미를 모았던 것은 그들이 단지 모델과는 동떨어진 외모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세계의 사람들이 <무한도전>을 열등한 외모의 사람들이 모인 프로그램이라는 인식을 가졌다는 점에 있다. 그래서 ‘슈퍼모델’ 편의 시작은 지나가던 아주머니에게 여섯 멤버가 온갖 구박을 받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무한도전> 스스로가 아주머니의 그런 태도가 <무한도전>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유재석은 유재석은 여러 여성들에게 사진 촬영 제의를 받고, 박명수는 멤버들이 여성들에게 돈을 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처지가 된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일반적인 리얼리티 쇼와도 다르다.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심사위원 사이먼이 출연자에게 혹독한 비판을 가하는 것은 분명한 ‘리얼리티’다. 하지만 <아메리칸 아이돌>은 쇼에서 정한 사이먼의 캐릭터를 벗어나는 리얼리티는 보여주지 않는다. 쇼에서 사이먼과 또다른 심사위원 폴라 압둘이 ‘쇼가 끝난 뒤’ 앙숙인지, 혹은 연인 사이인지를 밝히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 것들은 타블로이드 언론의 영역이다. 반면 <무한도전>은 그들의 세계 자체가 바깥 세계와 연동돼 끊임없이 실시간 ‘업데이트’가 된다. 정형돈이 바깥 세계에서 어색한 캐릭터가 되면 안에서도 어색해지고, 그것이 <무한도전>을 통해 아예 하나의 캐릭터로 강화된다. 정준하의 ‘업소경영’은 그가 <무한도전>에 출연하던 당시부터 이미 다른 출연진들이 자연스럽게 말하던 것이었다. 기존 오락 프로그램이라면 정준하의 실제 모습에 대한 설명부터 해야 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것을 시청자들이 알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것을 바탕으로 출연진들의 실제 이야기를 오락 프로그램 안에서 풀어낸다.
리얼 버라이어티 쇼의 탄생
즉, <무한도전>은 시청자가 특정 연예인의 이미지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누가 누구 라인이라느니, 연예인 누구와 누구 사이가 어색하다느니 하는 것들을 알고 있거나, 혹은 연예계가 그런 곳이라고 인식해야 지금의 <무한도전>을 즐겁게 볼 수 있다. <무한도전> 제작진이 자막을 통해 직접적으로 불만을 표출한 이른바 ‘시청률 기사’ 사건은 <무한도전>의 독특한 세계를 이해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간극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무한도전>을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같은 기준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김장특집’에서 시청률을 올려야 한다며 게임중인 출연진들에게 구덩이에 빠질 것을 채근하는 다른 출연진의 모습은 오락 프로그램이 하다하다 못해 시청률을 구걸하는 지경까지 이른 것처럼 보일수도 있다. 그러나, <무한도전>에서 그렇게 시청률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무한도전>의 시청자들이 오락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생명이라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진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다른 오락 프로그램들은 아무리 아무 이유없이 남녀가 수영장에서 뒤엉켜도, 그것이 시청률 때문이라는 것을 결코 고백하지 않는다. 적어도 오락 프로그램 안에서만큼은 그들의 놀이는 순수하게 그들이 즐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시청률 타령’은 오락 프로그램이 사실은 시청률에 얼마나 목매고 있고, 그것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 개그’를 할 수 밖에 없는지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마치 스포츠 중계하듯 출연자들이 구덩이에 빠지는 모습과 시청률을 연관시키는 <무한도전>의 진행방식은 이중의 웃음을 준다. 구덩이에 빠지는 출연진의 모습이 기존 오락 프로그램처럼 출연진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강조해 웃음을 일으키는 것이라면, 그것을 시청률과 연결시키는 것은 그런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폭로와 패러디가 된다. 오락 프로그램이 사실은 그렇게 시청률에 목매고 있고, 그것 때문에 출연진들이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순간을 묘사하는 순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법칙을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박장대소하게 된다. 프로그램의 안과 밖이 연결돼 웃음을 일으키는 <무한도전>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 장면은 단지 출연진들이 구덩이에 빠졌기 때문에 웃기거나, 아니면 “역시 오락 프로그램은 유치해”라며 혀를 끌끌 찰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무한도전>에서 보여주는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어느 정도 시도한 것들이다. 가장 단적인 예로 MBC <강호동의 천생연분>이나 SBS <X맨 - 일요일이 좋다>의 전신인 ‘X맨’에서는 매우 직접적으로 버라이어티 쇼 안에 연예인,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리얼리티를 끌어들이려 했다. <무한도전> 출연진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기만의 캐릭터를 쌓으며 쇼 프로그램과 현실의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의 친밀한 관계를 만든 것처럼 ‘X맨’은 길게는 6개월 이상 출연하는 고정 게스트들을 통해 몇몇 출연자들이 실제 커플 관계인것처럼 묘사하기도 했다. 또 ‘당연하지’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수단이 돼 해당 연예인의 실제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X맨’이 <X맨 - 일요일이 좋다>로 개편된 뒤로는 아예 설문조사를 통해 연예인의 실제 이미지를 조사하고, 연예인이 장기 자랑을 펼칠 때 심사위원단의 평가를 받게 한다. 오히려 <무한도전>은 전신이었던 MBC <강력추천 토요일>의 ‘무모한 도전’에서 리얼리티를 내세우지 않고 순수하게 연예인들이 몸을 굴리는 오락 프로그램이었다. 리얼리티의 개념은 ‘X맨’이 더 강하게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듯 ‘X맨’과 <X맨 - 일요일이 좋다>는 그 재미의 유무를 떠나 (‘X맨’도 한 때는 정말 재미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진짜’라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아무리 그들이 진짜 커플인척 해도, 또 연예인의 사생활이 밝혀져도 그것은 웃고 즐기기 위해 끌어들인 리얼리티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리얼리티는 리얼리티가 지향하는 원래의 가치들, 이를테면 긴장과 갈등, 예측할 수 없는 결말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그것은 패턴이 반복될수록 지루해지는 버라이어티 쇼에 새로운 스토리와 장난스러우나마 약간의 긴장감을 끌어들일 수 있는 요소로 사용될 뿐이다. 모든 것은 농담이고,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X맨’ 제작진이 리얼리티 쇼에 대해 잘 몰라서 리얼리티를 이런식으로만 이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버라이어티 쇼의 즐거움을 유지하면서 리얼리티 쇼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었다는데 있다. SBS <야심만만>같은 토크쇼도 출연자들이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하자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나온다. 시청자들은 게스트들이 웃고 떠들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면 감동보다는 부담감을 느낀다. 버라이어티 쇼에 가볍게 연예인의 사생활을 끌어들이고, 그 리얼리티마저도 결국 ‘쇼’라고 포장하는 것, 그것이 한국 버라이어티 쇼가 할 수 있는 한계였다.
그런데 <무한도전>은 매우 첨예한 갈등은 갈등대로 보여주면서도 그것을 버라이어티 쇼의 웃음으로 소화하는 독특한 영역에 도달했다. ‘빨리 친해지길 바래’에서 하하와 정형돈이 서로 어색하게 식사를 하는 것은 분명히 리얼리티 쇼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 사이에 정준하와 박명수가 빌린 돈을 가지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물론 그들은 진지하게 싸운다고 싸우지만, 그들의 다소 과장된 제스츄어나 그들을 두고 계속 놀리는 유재석의 멘트와 제작진의 자막은 그것이 코미디임을 인정한다. 이럴 때 보통의 버라이어티 쇼는 리얼리티 쇼적인 부분마저 시청자들조차 쉽게 안심하게 되는 코미디가 된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버라이어티 쇼적인 코미디와 리얼리티 쇼의 진지함이 그냥 섞이고, <무한도전>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그것을 무리없이 받아들인다. 심지어 하하와 정형돈 사이에 어색함 가득한 대화가 이르고 있는 상황에서도 <무한도전>은 그 상황 자체를 코믹하게 그려낸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유재석의 멘트대로 ‘리얼 버라이어티 쇼’다. 단지 ‘김장특집’같은 버라이어티 쇼적인 요소와 ‘슈퍼모델’같은 리얼리티 쇼가 번갈아 등장해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리얼리티 쇼적인 요소가 버라이어티 쇼적인 방법으로 표현되고, 버라이어티 쇼적인 게임에서조차 리얼리티 쇼가 펼쳐지는 <무한도전>의 기묘한 정체성이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식상해지는 다른 오락 프로그램과 달리 회가 거듭할수록 예상할 수 없는 현실성을 맛보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가볍고 코믹하면서도 뻔하지는 않은 그 미묘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무모한 도전이 보여준 진실
대체 어떻게? 그것이 <무한도전>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무모한 도전’을 언급해야 하는 이유다. 흔히 ‘무모한 도전’은 캐릭터의 사생활을 끌고 들어온 ‘무리한 도전’에 비해 <무한도전>과 큰 연관성이 없는 프로그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무모한도전’은 리얼리티적인 요소를 그다지 반영하지 않은, 정말 어려운 과제에 연예인들이 도전하는 기존 버라이어티 쇼와 크게 다를바 없는 컨셉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에서 유재석을 비롯한 초기 출연자들이 ‘무모한 도전’ 시절의 온갖 ‘3D’ 미션들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무리한 도전’과 <무한도전>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하다. 어쩌면 ‘무모한 도전’이야말로 세 프로그램에서 가장 ‘리얼한’ 프로그램이었을지도 모른다. ‘무모한 도전’을 다시 한 번 기억해보라. ‘무모한 도전’은 얼핏 보기에 유재석이 과거 ‘외인구단’과 ‘감개무량’을 통해 보여줬던 무모한 과제들에 도전하기를 한 번 더 반복한 것처럼 보인다. 필자도 처음에는 왜 유재석이 저 컨셉을 그렇게 붙잡고 있나 싶었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은 ‘외인구단’과 ‘감개무량’과 근본적인 점에서 달랐다.
‘외인구단’의 유명 격투기 선수와의 대결이나 차력에 도전했던 ‘감개무량’은 출연진들을 육체적으로 학대하기는 했지만, 도전 과제 자체가 너무 황당해 시합에 긴장감이 없었다. 또한 그들이 유명 격투기 선수와 싸우기 위해, 차력을 하기 위해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프로그램의 초점은 그들이 황당한 과제를 맞딱 뜨리며 보여주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 보이는 과제라 할지라도 그것은 다른 버라이어티 쇼에서 몸을 학대하는 다른 연예인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반면 ‘무모한 도전’은 도전 과제가 보다 현실적으로 변했다. 물론 출연진들이 소와 줄다리기를 하거나, 열차와 100M 달리기를 하는 것은 여전히 황당해 보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래도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었다. 아무리 해도 불가능해 보이거나 승리 여부가 중요하지 않은 것,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 사이의 차이는 크다. 이 때문에 ‘무모한 도전’은 ‘외인구단’과 ‘감개무량’보다 과제 수행에 있어 조금이나마 긴장감이 흘렀고, 실제로 앞의 두 코너보다 많은 승리를 거뒀다. 그래서 ‘무모한 도전’은 대결 자체보다는 대결을 위한 연습 과정에 초점을 맞췄고, ‘외인구단’과 ‘감개무량’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혹독하게 출연자들의 육체를 몰아붙였다. 굳이 빨래 집게 같은 것으로 출연자들의 몸을 괴롭힐 필요도 없었다(물론 실제로는 그런 방식으로도 괴롭히긴 했지만). 순전히 사람 힘으로 불끄기에 도전하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출연자들이 양동이를 죽도록 들고 뛰어야 했고, 출연자들은 그것만으로도 쓰러질 판이었다. 출연자들 중 멤버만 잘 선정하면, 그리고 훈련을 제대로 받으면 이길 것도 같다. 옛날처럼 오버 액션을 할 틈도 없다. 웃길 땐 웃기더라도 훈련은 제대로 해야 한다.
이 때부터 ‘무모한 도전’은 그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쇼의 진실’을 보여줬다. 차승원과 함께 했던 연탄 나르기 에피소드를 기억해보라. 그 때 ‘무모한 도전’의 출연진들은 여전히 웃겼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들의 코미디에서 ‘진심’을 봤다. 아무리 코미디라 할지라도 연탄 한 장을 제대로 받기 위해 산을 뛰고 구르며, 구덩이 밑으로 기어 들어가는 캐릭터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출연진들의 모습만큼은 ‘쇼’가 아니다. 열심히 한 사람은 열심히 한 대로 표가 나고, 대충 하는 사람은 대충 하는 티가 난다. 연탄 한 장 나르기 위해 안경이 망가지다시피하면서 구덩이 밑을 기어다니는 유재석을 보며 그것을 단지 ‘웃기려고 애쓴다’라고 말할 만큼 박정한 시청자는 많지 않다. 분명히 ‘무모한 도전’의 목적은 그런 ‘몸개그’를 통해 웃기는 것이었는데, 그 몸개그의 재미를 높이기 위해 훈련의 강도를 높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버라이어티 쇼의 진실이 드러났다. 정말 웃기기 위해 저렇게까지 고생해야 하는 거야?
이를 통해 ‘무모한 도전’은 버라이어티 쇼의 두 가지 진실을 함께 보여줬다. 하나는 버라이어티 쇼 출연자들이 사실 웃기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건다는 것. 그리고, 사실 그들 스스로도 그것을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는다는 것. 보통 오락 프로그램에서 적당히 고생하는 출연진들을 보며 시청자들은 종종 그정도 놀고 출연료 받으면 할 만하겠다는 말을 하곤 하지만, 약한 몸으로 쓰러지기 직전까지 달리기를 계속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한 몸 때문에 좀처럼 정식 대결의 멤버로 뽑히지 않는 이윤석의 모습은 유재석이 ‘무모한 도전’을 “모든 게스트가 기피하는 3D프로그램”이라 말해도 시청자들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들었다. 이는 ‘무모한 도전’이 <무한도전>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세계관을 만들도록 했다. 게스트가 꺼려할 정도로 힘든 프로그램을 매주 해야 하는 출연진들은 당연히 볼품 없어 보인다. 물론 그들은 인기 연예인들이지만, 그들이 ‘무모한 도전’에서 고생을 하는 것은 그들이 일반인에 비해 못났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같은 연예인들이 수없이 많은 버라이어티 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게다가 시청자들은 그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하는지 지켜봤기에 그들이 ‘연예인 중에는’ 못났다는 인식을 자연스레 하게 됐다. 그래서 ‘무모한 도전’은 연예인들이 서로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몰아붙이는 ‘이기적인 세계’를 자연스럽게 등장시켰다. 평소에는 초코파이 하나를 두고 몸싸움을 벌이는 것이 한없이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오락 프로그램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면, 그리고 물 한 방이 간절할 정도로 힘든 연습을 전제로한 것이라면 그것이 '진짜‘처럼 느껴진다.
그 생존경쟁 사이에서 자연스레 서로의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육체적 능력이 좋은 편에 속하는 노홍철은 입으로는 떠들어도 도전과제에서만큼은 믿을만한 에이스고, 육체적 능력은 중간이지만 프로그램의 흐름을 조절하는 유재석은 이기적인 출연자들을 정리하면서 프로그램의 메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육체적 능력이 떨어지는 이윤석, 정형돈, 박명수 등은 언제나 ‘깍두기’ 캐릭터가 된다. 아직 시청자들이 확실하게 느낄 정도는 아니었지만, '무모한 도전‘은 시청자들에게 오락 프로그램의 시스템과 오락 프로그램에서 캐릭터의 실제 모습을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무리한 도전‘이 달성한 무리해 보이던 경지
물론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무모한 도전’은 시청자들에게 다른 모든 것이 가짜라 할지라도 버라이어티 쇼에서 웃기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큼은 진짜라는 것을 알리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모한 도전’이 직접 ‘쇼’의 진실에 대해 말할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게 웃기기 위한 ‘쇼’라고, 사실 연예인으로 사는 게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를 위해서는 시청자들에게 버라이어티 쇼와 출연진들에 관한 보다 많은 현실의 정보를 줘야 했다. 그 해결책이 ‘무리한 도전’이었다. 김태호 PD는 ‘무리한 도전’이 (겨울이라 춥기도 했지만) ‘무모한 도전’에서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았던 캐릭터를 보다 확실히 다듬기 위해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와 진행한 프로그램이었다고 밝힌바 있다. ‘무리한 도전’을 통해 지금 <무한도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대부분의 캐릭터와 인간관계,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리얼함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무리한 도전’은 ‘무모한 도전’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없었던 ‘이 바닥’의 진실과 이곳에서 사는 연예인들의 진실을 말할 수 있는 두 개의 통로를 만들었다는데 있다.
그중 하나는 설문조사였다. 멤버들의 캐릭터를 가지고 온갖 우스꽝스러운 설문을 시청자들에게 던지던 설문조사는 그 자체가 작은 리얼리티 쇼였다. 출연자들은 설문조사를 통해 자신의 현재 인기와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직접 확인 받았고, 이는 ‘거꾸로 말해요 아하’를 통해 보다 확실하게 굳어졌다. ‘거꾸로 말해요 아하’가 게임 사이에 캐릭터 간의 잡다한 정보(유재석의 비디오, 박명수의 치킨집)를 던져주면, 시청자들은 그 정보들을 기반으로 설문조사에 참여하고, 멤버들은 설문조사에서 나온 결과에 대해 이런저런 반응을 보이며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확실하게 굳히며, 그 순위에 따라 프로그램 내의 ‘서열’이 정해졌다. 유재석은 드러내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1인자이고, 박명수는 ‘2인자’를 주장하는 꼴등이다. 여기서 <무한도전>의 모태가 되는 ‘모든 것이 가능한’ 프로그램의 형식이 만들어졌다. ‘무리한 도전’은 어느 순간부터 ‘거꾸로 말해요 아하’를 하는 도중 자연스레 꽁트를 하기 시작했다. 이는 꽁트의 완성도가 아주 높거나, 꽁트를 해야할 개연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설문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캐릭터와 여섯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가 꽁트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앞서 나간다 싶으면 나머지 다섯 명이 꽁트를 통해 유재석을 괴롭히고, ‘거꾸로 말해요 아하’에서 누군가 계속 우세를 보이면 ‘쌍박’ 대결을 선언한 뒤, 다섯명이 그 한 명만 공격하면서 기를 꺾어놓는다. ‘무리한 도전’은 ‘무모한 도전’에서 먹을 것을 두고 벌이던 캐릭터간의 대결을 주도권 싸움으로 바꿔놓았고, 시청자들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게스트들이 명백한 권력관계가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육체적인 피로도는 ‘무모한 도전’시절보다 덜해졌지만, 그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무리한 도전’은 쇼의 세계가 그 바깥의 세계를 인지하고 있음을 밝혔고, 쇼의 중심을 과제나 게임에서 그 무엇이 됐건 그들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인해 벌어지는 싸움으로 변화시켰다.
예, 이것은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러나 재미는 진짜입니다.
그러나, ‘무리한 도전’의 의의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요소들이 시청자에게 왜 재미있게 다가왔느냐 하는데 있다. 만약 ‘무리한 도전’에 꽃미남 여섯명이 출연했다면 지금의 시청자들은 그들의 설문조사를 보며 즐거워 했을까? (물론, 꽃미남 애호가들은 행복했겠지만) ‘무리한 도전’의 여섯 사람이 서로 조금이라도 더 잘나기 위해 싸우는 모습은 사실 매우 거칠고 부담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리한 도전’이 그것을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 모든 다툼을 벌이는 사람들이 다른 멋진 연예인들에서는 ‘평균 이하’ 취급을 받는 (혹은 그런 취급을 받는 것처럼 꾸며진)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가 연예계를 바라보는 시각과 겹쳐 있다. 평범한 시청자들 입장에서 연예계는 닿을 수 없는 곳이고, 그들이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은 결국 잘난 사람들이 뛰노는 곳이다. 그런데 ‘무리한 도전’의 출연진들은 연예인이 아닌 서민 시청자에 가까운 입장에서 연예계를 바라본다.
이다해나 이영애의 전화 한통에 떨려 하고, 하하를 ‘그나마 잘생긴’이라고 표현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모습은 연예인이면서도 결코 ‘진골’이 될 수 없었던 당시 그들의 위치를 고백한 것이고, 그것은 스타의 입장보다는 시청자의 입장에 가까웠다. 그래서 ‘무리한 도전’의 팬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건 그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저 사람들이라고 언제나 꼴등할 필요도 없고, 저들이라고 욕심부리지 말라는 법 없다. 이 때부터 ‘무리한 도전’의 멤버들은 어떤 행동을 해도 팬들만큼은 용서해주는 일종의 면책 특권을 얻었다. 아무리 그들이 프로그램 내부에서 갈등을 일으켜도 그것은 못나고 모자란 사람들의 헤프닝이다. 아무리 캐릭터가 점차 현실적으로 변해가고, 연예계의 실제 모습들이 드러나도 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의 한계는‘ 쌍박’ 정도다. 리얼리티 쇼적인 면이 점점 강조돼도 웃음을 잃지 않는 <무한도전>의 독특한 스타일은 ‘무리한 도전’에서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설문조사가 실제 세계와 ‘무리한 도전’ 사이를 연결하고, ‘거꾸로 말해요 아하’가 그것을 강화시키면, 그 위에는 캐릭터의 (나름대로) 첨예한 대립이 있어야 하고, ‘무리한 도전’의 핵심이 된 ‘못난 것들의 오락 프로그램 생존기’를 ‘재미있게’ 폭로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통로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박명수였다. 엉뚱한 비교일 수도 있겠지만, 그는 마치 프로레슬링 단체 WWE의 프로레슬러 스티브 오스틴이 WWE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리한 도전’을 통해 기존 오락 프로그램의 모든 룰을 파괴한 ‘안티 히어로’였다. <무한도전>이 WWE의 영향을 받았을리는 없지만, WWE의 현재 시스템과 지금까지의 변화 과정은 <무한도전>과 많은 부분 비슷하다. ‘무모한 도전’이 그랬듯 WWE도 과거에는 권선징악의 스토리가 뚜렷한, 그 자체로 완결된 닫힌 세계였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에서 출연자들의 혹독한 훈련만큼은 진짜이듯, 프로레슬러들이 보여주는 육체적 기술은 (경기의 승패는 정해져있을지라도) 진짜다. WWE가 지금도 방영하는 자체 광고 중에는 경기중에 실제로 부상당한 사람들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예, 이것은 엔터테인먼트입니다. 그러나 위험은 진짜입니다.”라며 프로레슬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것도 있다. 이런 두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프로레슬링은 발전했다. 그러나, 현재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입장이 그러하듯 더 이상 프로레슬링은 그들의 각본을 진짜처럼 포장할 수 없었다. 각종 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프로레슬러의 사생활이 공개되고, 프로레슬링의 각본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마저 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헐크 호건이 온갖 악역을 때려 눕히던 시절의 스토리는 통하지 않았다. WWE는 그 시점에서 현실에 접근해야 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프로레슬링의 현실 관계를 드러내는 것은 어려웠다. ‘무리한 도전’이 설문조사를 이용했듯, WWE도 실제 세계와 프로레슬링을 연결하는 통로가 필요했다.
역사상 최악의 안티 히어로
그 통로 역할을 한 것이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는 WWE의 ‘몬트리올 스크류 잡’이었다. 워낙 길고 복잡한 배경을 가진 사건이기에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WWE는 당시 챔피언이 이기기로 결정돼 있었던 시합을 챔피언 몰래 해당 시합의 심판(그것도 챔피언과 실제로 절친한 친구였다)에게 지령을 내려 챔피언이 지는 것으로 경기 결과를 뒤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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