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2/03/29 13:14:48
Name 공염불
Subject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1)
"넌 그래도 네가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 벌어 먹고 살잖냐."
사흘 연속 철야-오전 근무 후 퇴근한 뒤 눈 좀 붙이고 술자리에 나갔을 때 친구에게 들은 한 마디.
그때 부터 였을 것이다.
정말 저렇게 생각하고 사는 게 맞긴 한데, 왜 현실은 다를까나...

문서노가다로 연명하는 게임기획자 생활을 한 지도 어언 16년째.
간혹 옛날 생각이 나긴 하는데, 흐릿하게 스쳐 지나가는 듯한 이야기들 뿐인 것만 같아서
뭔가 한 번 정리를 해 볼까? 하는 심정으로 가볍게 자판을 두드려 보게 됐다.

1. 게임 업계에 어떻게 들어오게 됐지?

난 전형적인 문돌이였다. 고등학교 문과였고, 학교 성적도 국외사 몰빵 스탯. 심지어 수포자 과락자.
수능 초창기였던 시절이라 난이도가 널뛰던 시기에, 나는 국외사에선 높은 점수를 맞았으나 수학은 낙제에 가깝고...
블라블라
각설하고 그렇게 문과 계열 대학을 택했고, 제대 후 졸업 시즌이 다가왔지만
갈 만한 회사가 없었다.
연봉 천 오백이 보편적이었던 시절, 어정쩡한 문돌이들에게 남은 것은 공무원 준비가 대세였던 시기
우연히 보게 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게임 기획 공모전이 눈에 들어왔다.
상금에 혹했고 게임이라는 것에 근자감이 생겨서 끄적끄적 기획서랍시고 쓴 게
제일 꼬래비이긴 해도 덜컥 입상을 하게 됐다.
이렇게 하는 게 게임 기획인가? 싶어서, 그 기획서를 포폴 삼아 게임회사에 던져 보았는데
생각보다 입질이 왔다. (신입 연봉도 낮고 막 굴리기 좋을 테니. 입사 첫 날 회사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게 눈에 보였...)
그렇게 첫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2. 어렵지는 않았던 업계 입성, 그런데...

처음 입사한 회사는 모바일 피쳐폰 게임 제작 회사였다.
한창 '영웅X기' 같은 류의 RPG 게임과 '미니게X천국' 같은 캐쥬얼 게임들로
PC게임 시장과는 다른, 작지만 갈수록 커질만한 시장을 키워 나가던 시기.
내가 들어간 회사는 '용눈X'이라는 속칭으로 불렀던 RPG 게임을 주력으로 잡다한 게임을 만들던, 직원 9명 규모의 작은 회사였다.
아홉 명이면 그렇게 작은 스튜디오만은 아니라는 느낌인데
문제는 그 중 두 명이 대표와 와이프라는 사실이었다.
더 문제는 와이프가 겜알못, 제작알못인데 회계 경리 외의 제작에 영향을 준다는 점이었고
더 큰 문제는 대표가 심각한 마이크로 컨트롤러이자 내로남불에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난 시나리오와 레벨 기획, 그와 관련된 설정이나 데이터를 담당하는 역할이었다.
같이 입사한 입사동기이자 형 동생하게 된 녀석은 도트 그래픽 디자이너.
동기가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도 잠깐,
입사 첫 날 오전 기획회의에서부터 난리가 났다.
당시 고참 기획자였던 여자 기획자와 사장이 회의 자리에서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그러니까 이걸 바꿔야 한다니까?"
"지금 바꾸면 나머지 다 뜯어 고쳐야 하는데, 언제 바꿔요? 일정 늘려 줄 거예요?"
"일정은 못 늘리지."
"이럴 거면 기획서는 왜 쓰라고 하는 거예요? 그냥 사장님이 앉아서 코딩하고 말지?"
"기획서를 제대로 썼으면 이런 일이 안 벌어졌잖아!"
"기획서를 제대로 읽고 컨펌했으면, 리뷰할 때 잘 들었으면 이런 일이 안 벌어졌죠!"
기억 보정이 가미된 내용이지만 대화의 내용은 대강 저러했다.
사유는 흔하디 흔한 것이었고 과정도 그러했지만
결과는 어메이징했다.
여자 기획자가 '샤앙'을 씨게 날리고 일어서자, 사장이 기획자 면전에 기획서 뭉탱이를 집어 던졌고
이에 격분한 여자 기획자가 뛰쳐 나갔던 것.
그리고 그 길로 바로 퇴사해 버린 것이다.

황망하게 바라보던 나는,
그때는 몰랐었다.
6개월 뒤 내 미래를 미리 경험했었다는 사실을.




재택 중에 멘탈이 좀 나가서 대충 끄적여 본 똥글이라 언제 쓰다가 퍼지거나 지울 지 모르겠네유. 크크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22/03/29 13:28
수정 아이콘
쫄깃한 대목에서 순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절묘한 절단신공에서 문과 탑티어의 향기를 느낍니다.

(2)부 빨리 보내주십시요.
22/03/29 15:33
수정 아이콘
문과가 미래다(?)
22/03/29 13:30
수정 아이콘
이런 다른 직업 속사정 & 생생 체험담 글 재밌어요 흐흐. 더 써주세요!!
딱총새우
22/03/29 13:37
수정 아이콘
다음편은 퇴사하신 여성분과의 술자리부터 시작하는거죠?
22/03/29 13:46
수정 아이콘
와작와작
싸우지마세요
22/03/29 14:09
수정 아이콘
저랑 비슷한 시기에 게임 기획에 입문하셨네요~ 다음 편 기다리겠습니다! 크크
회덮밥
22/03/29 14:10
수정 아이콘
와 벌써 재밌는데요?
이웃집개발자
22/03/29 14:11
수정 아이콘
아니!!!!!! 다음편!! 빨리!!!!!
블레싱
22/03/29 14:12
수정 아이콘
결제버튼이 누락됐는데요?
신류진
22/03/29 14:13
수정 아이콘
그 여자기획자분을 다음 직장에서 만나시는군요?
하아아아암
22/03/29 15:17
수정 아이콘
그랬던 그 여자분이 지금은... 엔딩?
신류진
22/03/29 15:30
수정 아이콘
옆에서... 설거지?
고스트
22/03/29 14:21
수정 아이콘
낭만의 시대...
22/03/29 14:27
수정 아이콘
하고 싶은 일이랑 비슷하긴 한데
하고 싶은 일이랑 많이 다르죠 크크
2부 기다립니다
22/03/29 14:53
수정 아이콘
이제는 게임회사에 있지 않지만 첫 직장이 게임회사라 그런지 너무 흥미롭네요.
2부 기다려집니다 +.+
공염불
22/03/29 15:27
수정 아이콘
아니...글 올리고 회의 다녀왔더니
이런 똥글에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셨네유 크크;
댓글 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QuickSohee
22/03/29 15:32
수정 아이콘
저 쿠키는 어디서 충전하나요? 다음편 미리보기 결제 어디있나요?
22/03/29 15:33
수정 아이콘
2편은 언제인가요
22/03/29 15:43
수정 아이콘
아 빨리 다음 편 내놔요.
22/03/29 15:44
수정 아이콘
다음편... 빨리요...
이른취침
22/03/29 15:52
수정 아이콘
유료결제21.com

운영진분들은 어서 빨리 포인트 충전/결제 시스템부터 구현하셔야...
Nasty breaking B
22/03/29 15:53
수정 아이콘
2편을 내놓으십시오 휴먼
마술사
22/03/29 16:01
수정 아이콘
너무 짧아요..
22/03/29 16:11
수정 아이콘
후숙! 후숙! 후숙!
Navigator
22/03/29 16:14
수정 아이콘
빨리 올려라
담배피는씨
22/03/29 16:15
수정 아이콘
추천으로 조르기를 시전 합니다.
빨리 2편 내놓으세요~~
22/03/29 16:20
수정 아이콘
대작의 스멜이 킁킁킁
유로파
22/03/29 16:23
수정 아이콘
(1)이 있으니 (2)의 존재 또한 믿습니다. A멘
나랑드
22/03/29 16:33
수정 아이콘
똥은 똥인데 이똥은 맛난 똥이다...
22/03/29 16:36
수정 아이콘
나른한 오후에 빨려들어가듯 읽어버렸네요. 다이슨 싸다구 치는 흡입력입니다. 2편 숨 참아요
리니시아
22/03/29 16:43
수정 아이콘
기획자 다우시군요
이쥴레이
22/03/29 18:17
수정 아이콘
저도 게임회사 들어온지 15년차인데 이 업계는 정말
일반적이지 않은거 같습니다. 크크
그럴수도있어
22/03/29 19:16
수정 아이콘
쿠키 굽게 해주세요!.
기사조련가
22/03/30 18:27
수정 아이콘
문피아에 갓겜의제국 1998이라는 소설 있습니다 함 읽어보세요 크크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95324 [일반] 망글로 써 보는 게임회사 경험담(1) [34] 공염불11190 22/03/29 11190 38
95323 [일반] [우크라이나 전쟁] 전쟁관련 보도할때는 보안관련 상식은 지킵시다. [48] giants11070 22/03/29 11070 14
95322 [일반] 요즘 시대는 연애말고 즐길게 많다는 말이 있죠 [58] 챗셔아이11989 22/03/29 11989 2
95321 [일반] 겨울 산행 마무리 [6] 영혼의공원5203 22/03/29 5203 5
95320 [일반] 만두 [10] 녹용젤리5127 22/03/29 5127 23
95319 [일반] 당신이 불러주는 나의 이름 [35] 사랑해 Ji8563 22/03/28 8563 76
95318 [일반] 제 94회 아카데미 시상식 결과 [80] Rorschach19200 22/03/28 19200 6
95317 [일반] 본격 어이없는 해선문학: 숏충이 왕국에서는 FOMC 전후로 무슨말이 오갔을까? [53] 기다리다12138 22/03/27 12138 4
95316 [일반] 뒤늦은 파판7리메이크..별로 스포하고싶지도 않음. [54] PLANTERS11419 22/03/27 11419 1
95315 [일반] 편의점 샛별이 골때리는 드라마네요 [17] seotaiji15156 22/03/27 15156 1
95314 [일반] 같은 소대내에 있었던 관심병사 후임이야기 [35] 아스라이12297 22/03/27 12297 5
95312 [일반] 늙어감의 괴로움과 두려움 [62] 노익장12818 22/03/26 12818 7
95311 [일반] 러시아가 사실상 우크라이나 다음 타켓(공격)으로 지정한 국가 명단 [64] 아롱이다롱이16780 22/03/26 16780 0
95310 [일반] 2022년 카자흐스탄 3달간의 혁명 [40] 아롱이다롱이17795 22/03/25 17795 19
95309 [일반] 북한 ICBM 발사 장면 공개 [129] 굄성19523 22/03/25 19523 3
95308 [일반] 오늘 어머니가 오미크론 확진되었습니다. [58] 통피13328 22/03/25 13328 9
95307 [일반] 생각보다 코로나 여파가 크네요 [98] 만수르21411 22/03/24 21411 9
95306 [일반] 지난달, 아버지가 췌장암 진단을 받았다고 쓴 사람입니다. (희소식일수도) [56] 쏘군11125 22/03/24 11125 26
95305 [일반] 치킨 적정 가격에 대한 친구와의 일전 [191] NT_rANDom16242 22/03/24 16242 6
95303 [일반] 요즘 본 만화책 [19] 그때가언제라도10174 22/03/24 10174 0
95302 [일반] 자가격리 첫째날에 써보는 이런저런 글 [32] seotaiji8402 22/03/24 8402 5
95301 [일반] 서울에 갑니다. [230] Heidsieck21019 22/03/23 21019 53
95300 [일반] <벨파스트> - 성장의 시간들. [6] aDayInTheLife5715 22/03/23 5715 2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