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1994 : 아버지와 나 / 영원히 / 껍질의 파괴 / The Dreamer / The Ocean
그다지 길지 않았던 솔로가수 생활을 끝낸 신해철은 다시 한 번 밴드를 구성한다. 이후 90년대 후반 대한민국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긴 그 밴드의 이름은 바로 N.EX.T였다.
N.EX.T의 이름으로 내놓은 첫 번째 앨범 [Home]에서 상업적으로 인기를 끈 곡은 사랑을 노래한 발라드인 [인형의 기사]와 사회비판적 메시지를 경쾌한 곡에 실은 [도시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앨범은 후반으로 갈수록 신해철의 자아성찰적인 모습이 강해지는데, 특히 [아버지와 나 PART 1]과 [영원히]에서 그런 성향이 매우 두드러진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신해철, [아버지와 나 PART 1]
굳이 프로이트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아버지를 극복한다는 건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관문이다. 신해철은 노랫말을 통해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토로한다. 자신은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을. 아울러 그러한 선택에 대해 스스로도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신해철, [아버지와 나 PART 1]
단지 나이가 들었다 해서 성인이 되지는 않는다. 소년을 진정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버지의 삶에 대한 부정과 반항심이 아니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불완전하게나마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시도를 통해서만 소년은 비로소 아버지와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다. 그렇기에 [아버지와 나 PART 1]은 신해철에게 있어 자신이 어른이 되었다는 선언문과도 같다. 그렇게 자신의 자아를 확립한 그는 세상에게 길들여지지 않겠노라고, 세상에 맞서서 소년 시절의 꿈을 지켜가겠노라고 당당하게(혹은 오만하게) 외친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세상에 길들여짐이지
남들과 닮아가는 동안 꿈은 우리 곁을 떠나네
-신해철, [영원히]
이렇게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다잡은 신해철은 다음 앨범에서 자신의 내면을 마음껏 펼쳐놓기 시작한다. 그 자신이 초래한 대마초 사건과 밴드 맴버 간의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제작 과정에서 온갖 우여곡절을 겪어야만 했던 N.EX.T의 2집 앨범은,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신해철의 충만하다 못해 과잉이기까지 한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걸작이 되었다.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은유했음이 명백한 제목을 지닌 이 긴 노래에서 신해철은 선언한다. 세상에 굴복하는 대신 맞서 싸우겠노라고.
부모가 정해 놓은 길을 선생이 가르치는 대로
친구들과 경쟁하며 걷는다
각본대로 짜여 있는 뻔한 인생의 결론 향해
생각 없이 발걸음만 옮긴다
세상은 날 길들이려 하네
이제는 묻는다
왜, 왜, 왜
-신해철,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껍질의 파괴]
그러한 신해철의 선언은 [The Dreamer]로 이어진다. 제목부터 꿈이라는 낱말이 강조되는 이 노래는 앞서 언급한 [The Destruction of the Shell : 껍질의 파괴]와 같은 선상에 위치해 있다. 새에게 있어 알은 곧 세계이며 알에서 나오려면 반드시 먼저 껍질을 깨뜨려야만 한다. 신해철에게 있어 그 껍질이자 세계는 바로 자신의 꿈을 가로막는 절망이기에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난 아직 내게 던져진 질문들을
일상의 피곤 속에 묻어 버릴 수는 없어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알아도
꿈은 또 날아가네 절망의 껍질을 깨고
-신해철, [The Dreamer]
하지만 그 과정이 결코 쉽거나 편하지는 않다. 그것은 ‘언젠가 지쳐 쓰러질 것을’ 예감하는 험난한 길이며, ‘나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이다. 그리고 끝내 자신의 바람을 성취하지 못한다면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히’ 있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해철은 끝내 꿈이라는 단어를 움켜쥐고 놓지 않는다. 그에게 꿈은 곧 자신의 존재 이유이며 먹물 든 사람들이 즐겨 쓰는 프랑스어인 레종 데트르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해철에게 있어 꿈을 잃는다는 건 곧 존재 이유를 부정당하는 것과 같다. 그는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후회는 없을 것이라고.
세월은 이렇게 조금씩 빨리 흐르지만
나의 시간들을 뒤돌아보면 후회는 없으니
그대여 꿈을 꾸는가 너를 모두 불태울 힘든 꿈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홀로 영원하기를 바라는가
사라져 가야 한다면 사라질 뿐
두려움 없이
-신해철, [The Ocean: 불멸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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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영원히라는 노래를 진짜 말 그대로 테이프가 늘어질때까지 들었습니다.
아마 글곰님의 글에도 계속 반복될테지만 제가 생각하는 90년대 신해철 노래의 메시지는 일관되게 '꿈'이였습니다.
계속 나이를 먹어가고 그에따라 변해가는게 사람이라는 존재의 인지상정임에도 계속 이를 부인하며 소년과 꿈이란 단어를 끊임없이 되뇌입니다.
초심을 잃지 말자는 그의 되새김질임이든, 아니면 그냥 그저 어른이 됨을 부정하고싶은 유아틱한 자기애이든, 제가 그 메시지에 동화되었음은 부인할수가 없군요.
베드로는 닭이 울기전 예수를 세번 부인하였지만, 저는 그가 제 청소년기의 나의 메신저임을 긍정하겠습니다. 지금도 소년이고 싶고 꿈을 따르고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