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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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1/06/10 15:42:37
Name 만월
Subject [일반] [14] 나의 PGR21 첫 글
2003년 7월 12일.
정확한 가입 시기는 생각 안나지만 기억을 더듬어 처음 썼던 아이디를 떠올려 첫 발자국을 찾았다.
https://pgr21.net/free/10627
[차기 스타리그 조지명은..]이란 제목으로 곧 있을 조지명식을 예상한 극본?이었는데 다들 좋은 반응을 보여주어서 기뻤던 것 같다.
당시의 수많은 명경기도 나를 설레게 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결승전의 짜릿함과 떨림, 내가 좋아하던 선수가 왕좌에 오르는 기쁨보다
리그의 시작을 알리는 조지명식과 선수들이 출연하는 감각적인 오프닝 영상들이 더 설레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게임 자체보다 프로게이머들을 더 좋아해서였지않았나 싶다.
홍진호, 임요환, 김택용, 이제동...
그 외에도 당시 많은 프로게이머들에게 애정어린 응원을, 가끔은 너무 잘해서 얄미운 시기를, 병크를 터트릴 땐 같이 까기도 하면서
나의 20대의 많은 부분을 그들의 서사에 울고 웃으며, 오프  결승전을 보러 가고, 뒷풀이에서 선수들은 만나기도 하면서
그렇게 보냈었던, 추억과 낭만의 시기를 나는 PGR21에서 함께 했었다.
비록 지방의 한계 때문에 PGR 오프 모임에 직접 가진 못했지만
당시 PGR21의 많은 명문들과 네임드님들의 글들은 비록 온라인 상이었지만 나에게 많은 의미와 지표를 남겼었다.
깊이가 있는 글이 아니라도 타임리스님의 텍실다나 닉네임이 정확히 기억이 안나지만 '역시 00님'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로 여성에게 인기가 많으셨던 00님의 연애글 같은 소소한 재미들도 내가 PGR21을 좋아하게 된데 꽤 많은 지분을 차지했었다.

아마도 많은 것이 그렇듯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희미해지고 추억은 추억으로 남았을 때가 더 아름다웠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게 될 때가 있다.
여러 번의 사건 사고가 있어도 추억이 더럽혀졌다곤 생각 안했는데 '승부 조작' 은 아름다웠던 그 시간을 부정하게 만드는 최악의 사건이었다.
내가 응원했던 그 선수가, 열광했던 그 경기가, 오롯이 순수한 승부의 결과가 아니라 조작의 산물일 수도 있다는 것은
순수했던 열정과 그 시간들은 부정하게 만들었고, 그 스포츠에 대한 원론적인 회의감을 낳게 했다.
자유게시판과 게임게시판이 분리되면서 서서히 멀어지고는 있었지만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이렇게 갑작스레 종말을 맞이한 것은 지금 떠올려도 매우 불쾌하고 가슴 아픈 기억이다.

하지만 그것이 PGR21을 내게서 멀어지게 한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 게임 사이트에 와서 왜 게임 게시판에서 활동을 안하는지 모르겠다, 는 내용의 글을 봤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랬었다.
어느 순간 게임에 대한 관심은 없어졌지만 PGR21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많은 글을 쓰고 댓글을 남기진 않았지만 많은 좋은 분들과 좋은 글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것은 PGR21을 계속 오게 되는 이유였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이 변하게 되고, 사실은 세상이 아니라 내가 변한 것일 수도, 변하지 않은 내가 변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는,
이 안에서 내가 메인 스트림에서 벗어나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다.
그럼에도 그 때문에 PGR21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공감하지 않더라도 나와 다른 생각을 그 차이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많은 글들은 또한 내가 PGR21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였으니까.
비슷한 생각 안에서는 안온함을 느낄 수 있지만 결국 생각이 굳게 되면 근시안적인 생각밖에 할 수 없는 때가 오게 된다.
다른 생각이 틀린 생각은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기 쉽지 않지만 시야를 넓혀주기도 한다.

그러지 못해 PGR21을 잠시 떠났다가 돌아오긴 했지만 아직도 나는 길을 찾고 있다.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킬킬대며 일상을 나누기는 건 이제 먼 일이 되어버리긴 했다.
좋은 것에 좋지 않은 다른 사람을 생각해야 되고  힘든 것에 설명을 해야만 이해받을 수 있는,
비단 이곳만이 아니라 세상이 그냥 피곤해진 느낌인 것은 내가 지쳤기 때문일 수도, 세상에서 내가 그만큼 멀어졌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이 안에서 아직은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나누고 싶어서,
그러지 못해 글쓰기 버튼이 한없이 무겁게만 느껴져도
그래도 아직은 길을 걷고 싶다.
PGR21에서 첫 글을 썼을 때 그 느낌이 너무나도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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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잘모모
21/06/10 15:45
수정 아이콘
저도 작년에 첫 글 쓰기 위해서 3달 동안 기다렸던 기억이 나네요~! 빨리 쓰고 싶어서 설레면서도, 멋진 글을 쓰시는 피지알 횐님들의 필력에 제가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흐흐... 좋은 분과 좋은 글이 많다는 것이 피지알의 최대 강점인 것 같아요!
21/06/10 22:48
수정 아이콘
글쓰기 버튼이 무거운만큼 정성들인 좋은 글들도 많죠.
여러 분야의 다양한 글들을 접할 수 있는 것도 강점이죠.
글자수 제한은 지켜야 되지만 소소한 잡담글 같은 것도 저는 좋습니다.
고등학생, 이제 대학생이신가요?, 을 접할 기회가 없는지라
흔치않은 나이대의 피잘러인 모모님 글 보면서 알게 되는 것도 많았어요.
앞으로도 많이 볼 수 있길 바랍니다^^
21/06/10 17:57
수정 아이콘
첫글에 대한 좋은 추억이 있으시군요. 저의 첫글은 논란의 정전록 사태 때 우세승은 적절했다! 라고 겜게에 불을 지피는 글이었습니다. 덜덜...
그때는 반대 의견이 이해가 안 됐는데 지금은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이또한 다 추억이겠지요.
21/06/10 22:50
수정 아이콘
정전록...
기억 나네요.
선수까진 기억 안나지만 그때 참 어이없고 황당했는데...
아마도 저는 대세를 따르는지라 쉴더님과는 생각이 다르지않았었나 싶어요.
싸움은 참전보다 구경이 더 재밌는지라 키보드 배틀을 뜨진 않았으리라 싶지만 말이죠. 하하.
유료도로당
21/06/10 18:12
수정 아이콘
첫 글 찾아보고싶은데 잘 모르겠네요..
21/06/10 22:52
수정 아이콘
가입하신지 오래되셨다면 이전 게시판에서 한번 검색해보세요.
흑역사를 마주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되실지도 모르겠네요^^
구동매
21/06/10 20:34
수정 아이콘
저도 2002~3년인가 부터 매일 들어오는데 크크
21/06/10 22:54
수정 아이콘
고인물 동지시군요.
담배보다 끊기 힘든게 피지알이라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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