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기반에 기억을 더듬어서 쓰는 글이다보니 갈수록 소재의 참신함, 신선함이 떨어지는 게 느껴집니다.
작가들이 초반에 이목을 끌기위해 강렬한 소재를 썼다가 왜 막판에 흐지부지 되는지 이해가 되는 기분이에요. 흑흑흑
1. 샌프란시스코의 또 다른 별명은 전세계 게이의 수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레즈비언이나 다른 사람은 없고 게이만 있느냐하면 그건 아니고요.
LGBT 성소수자들이 사는데 큰 불편함이 없는 곳이다. 그 정도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걸 체감한게 특정 옷차림을 입은 사람을 길거리에서 봤다.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그걸 본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해서 그게 더 충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학원, 학교 선생님이 성소수자라고 밝히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상상해 보세요.
선생님이 성소수자라 불편했냐고요? 아뇨. 본인들이 이야기만 안했으면 전혀 눈치 못 챘을 것 같습니다.
학원에서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영어 교육만 잘 시켜줬으면 됐지, 뭘 더 바랄게 있겠습니까.
2. 미국에서 가장 큰 게이 프라이드 행사는 당연히 샌프란시스코 게이 프라이드 행사입니다.
기사를 찾아보니 평균적으로 약 백만명 규모의 축제로 추산하는군요.
제가 기억하기론 6월~7월 사이에 있었던 축제라 기억하는데. 아마 평생 그 광경(?)을 못 잊을 것 같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게이라 그런지, 원래 그날이 휴일이라 학원을 개방 안하는데, 학원이 게이 프라이드 행렬이 지나가는
바로 옆에 전망좋은 곳에 있어서 그 날은 특별히 개방했거든요. 거의 특별석에서 퍼레이드를 관람하는 기분이란...
첫번째로 충격 먹었던 건 그날 행렬에 참석한 사람들의 옷차림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사실 2번째에요)
세계에서 알아주는 거대 테크 기업들이 그 행렬에 거대한 조형물을 끌고 나타나서 후원을 해준다는게 가장 놀라웠습니다.
눈 앞에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의 초거대 테크 기업의 무지개색 퍼레이드 조형물이 지나가는 걸 보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 날 원장선생님께
"저런 테크 기업들은 후원을 하는데 NRA(미국총기협회)는 왜 후원을 안하나요?" 라고 물어봤더니
얼굴이 빨개질정도로 낄낄 웃으시더군요. 그런데 본인도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3. 백만명이 참여하는 게이 프라이드 행사라니, 그거 완전 소돔과 고모라의 재림 아니냐? 라고 물어보신다면
그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제가 게이가 아니다보니 겉핥기로만 봐서 착각한 걸 수도 있지만요.
가끔씩
엉덩국의 게이바 만화에 나올법한 뜨악(?) 하는 옷차림이나 혹은 옷차림이 없는(!) 사람이 보이긴 했습니다.
(황금 라텍스 팬티만 입고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며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사람, 홍콩행 게이바 만화에 나오는 가죽옷을 입은 남자들
털이 복실복실한 백인 아저씨의 올누드....)
의외로 게이식 애정표현을 보고 떨떠름했던 기억은 뉴욕에서 있었네요.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키가 훤칠하고 말쑥하게 옷 잘입은 모델같은 잘생긴 남자 2명 (백인 & 흑인)이
기린이 나뭇잎을 따먹는 것 마냥 딥키스를 하는걸 봤는데
으어어어어어..... 표정 관리가 안되더라고요. 남녀가 그렇게 키스하는 것도 보기 힘들 정도로 격정적이었습니다.
4.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 가보면 흔히들 하는 말이 있죠. 뭐든지 크다고. (마트, 자동차, 고속도로, 바퀴벌레, 소세지까지)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땅값 비싸고 똑똑한 천재들이 모인다는 샌프란시스코에 대형서점이 초라하다는 걸 알고 놀랬습니다.
전 광화문 교보문고 이런데보다 훨씬 더 큰 그런 서점을 기대했었거든요.
이유야 뭐 아시겠죠. 아마존이 나타난 이후로 미국내 오프라인 서점이 거의 멸종 수준에 달했다고 하니까요.
뉴욕에 가선 반스앤드노블 서점에 가보긴 했는데, 제가 상상한 그런 규모까진 아니었습니다. 150년가량 된 역사는 놀랍긴 했지만요.
5. 2016년 샌프란시스코는 말 그대로 축제분위기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게이프라이드야 뭐 매년 있는 행사니까 논외로 치고요.
왜냐면 그 해 슈퍼볼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었거든요.
미국 사람들이 '미식축구'와 그외 스포츠를 즐긴다고 하는데, 제가 스포츠에 대해선 일자무식인 놈이지만 행사에 들어간 돈을 보면
정말 이놈들이 미식축구에 미쳐서 사는구나. 그런 생각이 바로 들 정도였습니다.
축제를 하는데, 하늘을 보니 비행기 1개 편대가 지나가면서 하늘에 글자를 연기로 쓰면서 광고를 하더라니까요?(미국 사시는 분들은 그게 뭐 어때서? 라고 하실 거 같은데, 저는 하늘에 글자를 쓰는 마케팅이 있다는건 상상도 못해봤습니다)
(구글에서 airplane sky typing 이렇게 쳐서 이미지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6. 뉴욕 맨해튼에 대한 첫 인상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콘크리트 정글이었습니다.
라과디아 공항에 착륙하기 전 새벽 하늘 비행기에서 바라보는데도 타임스퀘어에 있는 전광판이 휘황찬란하더군요.
그런데 의외로 세계 금융 허브치곤 인프라가 허술하거나 낡은 부분이 나중에 눈에 띕니다.
특히 뉴욕 지하철... 일단 서울 지하철처럼 스크린도어도 없거니와 승강장에 에어컨이 없어서 더운 여름날엔 쪄 죽을것 같아요.
거기에 가끔씩 어디선가 올라오는 찌린내가 와.... , 100년전부터 운영하던 지하철! 이러는데, 진짜 100년전에 만든 티가 그런곳에서 납니다.
(그래도 추억을 떠올릴 용도로 메트로 카드 하나는 가져왔네요 크크)
생각보다 공기는 맑지만, 날씨는 오히려 서울보다 더 가혹한 거 아닌가? 싶은 때도 가끔 있었습니다.
겨울엔 두피 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에, 폭설이 내리면 미터 단위로 내리니...
대체 누가 이런 곳에 금융허브를 설치할 생각을 한거야??
7. 2017년도 즈음 저탄고지(키토제닉) 을 알게 되서 방학동안 살을 빠르게 뺐는데,
같이 수업을 듣던 미국인 여학생이 "방학 동안 어떻게 살을 뺀거야?" 라고 물어보길래
"유튜브에서 이 사람 영상을 보고 살을 뺐어" 라고 말하고 영상을 보여줬는데
(
https://www.youtube.com/channel/UC3w193M5tYPJqF0Hi-7U-2g)
엄청 놀란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겁니다. 자기가 미국에 살았을 때 자기 동네 의사선생님이었데요.
세상 참 좁다는 걸 그때 느꼈습니다.
8. 학교로 돌아와 수업을 듣는데, 같은 학과에 후배로 들어온 한 아이돌 가수와 수업을 2학기 정도 같이 듣기도 했습니다.
적당히 문장을 다듬으면 무슨 라노벨 제목같이 나올 것 같긴 한데...
연예인들이 대학교에 다닌다고 하면 불성실(?) 까진 아니어도 일반 학생과는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 다르겠지...
뭐 이런 식의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업을 같이 들어보니 웬걸, 정말 성실하게 수업에 참여하는 걸 보고 또 새로운 걸 배워갔습니다.
역시 겪어보기 전까지 어림짐작한 생각으로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섣부른 일이에요.
9. 북아프리카 여사친이 하루는 저한테 물어보길,
"다음 달에 우리나라 대사관저에서 독립기념일 행사가 있는데 같이 갈래? 초대장을 신청하면 같이 갈 수 있어"
라고 해서 "그러마" 했지요. 초대장 주소를 보니 주소에 '대사관로' 라고 적혀있네요? 무슨 동네 이름이 이런가 해서 보니
다른 나라 외교관이랑 재벌분들이 모여사는 동네네요. 쫄리게 시리...
나름 외국 행사에 한국인으로서 간다고 생각해서 정장도 차려입고, 미용실에서 머리도 세팅해서 갔습니다.
거길 갔더니 역시 부자동네 아니랄까봐 30살도 안 먹어보이는 키가 훤칠한 젊은 남자가 벤틀리(!!)를 몰고 돌아다니더군요.
깜짝 놀래서 친구에게 "야, 봐바, 벤틀리야 벤틀리" 이랬더니 "아빠가 사줬겠지, 자기 돈으로 산거 아니면 부러워할 거 없어" 라네요. 쿨하게시리.
대사관저에 들어갔는데, 집의 첫인상은 기생충의 박사장집을 좀 줄인듯한 디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전경이 정말 끝내줬고요.
서울에 이런 정원에 담장, 지하주차장을 갖춘 집을 살려면 대사정도는 되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친구가 자기나라 대사님을 소개시켜줘서 악수도 했고 (알고보니 친구가 이런저런 행사에서 통역을 맡아서 대사님이랑 아는 사이),
차기 장관님과도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전 까진 장관이 아니었는데 그 날 본국에서 내정됐다고 연락이 왔다고 하더군요, 어떤 부 장관인지는 기억이 안납니다, 여성분이었는데)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나라의 대사와 장관을 만나기만 해도 진이 빠지는 하루였는데, 미국이나 중국, 일본 아니면 유럽 열강들 인사가
모이는 자리는 얼마나 화려할까? 싶은 생각이 드는 날이었습니다.
(
https://pgr21.net/freedom/89675)
10. 학교에서 통번역과 국제 정치를 가르치시던 미국인 교수님이 계셨는데, 수업 중에 종종 하시던 말씀이
'내가 너희보다 한국에서 오래 살았다' 였습니다. IMF 터지기 직전에 한국에 오셨다고 했으니...
수업중 간간히 한국어로 농담을 하시긴 했지만 미국인 특유의 발음이 있어서 (일부러 발음을 하신 티는 좀 났어요)
외국인이 한국에 20몇년씩 살아도 완벽한 한국어는 힘들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학기가 끝나고 학생들에게 보내주신 편지를 보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학생 여러분,
이번 학기도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러분과 함께 했던 시간이 저에게 소중한 경험이자 기쁨이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비록 대학 수업 규정상 여러분들의 성과를 성적순으로 나눌 수 밖에 없지만, 저의 마음은 열심히 했던 모든 학생들에게 좋은 결과를 주고 싶었습니다. 어찌 보면 여러분의 미래에 남겨지는 것들은 성적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쟁력 있는 직원이었는지, 좋은 부모였는지, 혹은 진실된 친구이었는지는 성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이 아닌 여러분들이 만드는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에서의 성공은 성적으로 나타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에서의 성공은 오직 여러분의 의지를 통한 인내와 노력으로만 맺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성적에 대해 궁금하다면 먼저 자신에게 아래와 같이 물어보기 바랍니다. ‘내가 다른 학우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는가?, 내가 수업에 빠지지 않고 활발히 수업활동에 참여하고 질문하였으며 과제를 할 때는 최선을 다했는가?’라고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여러분이 수업에 그 동안 어떻게 임해왔는지를 생각하고 자신과 솔직해진다면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의 성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에 하나, 여러분이 이번 강의와 교재가 어렵다고 느꼈다면 걱정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성숙을 향한 우리의 모든 삶의 과정이 쉽지 않듯이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길 또한 쉽지 않다는 것을 생각해주기 바랍니다. 인생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노력과 인내의 씨앗을 뿌려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실패라는 단어에도 적용됩니다.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깨닫고 배울 수만 있다면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닌 언제나 성공입니다. 배움의 과정 역시 실수를 통하기 마련이므로 겁먹지 말고 웃으며 성숙과 성장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자,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보길 다시 한 번 권합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는가?’ 이 질문 속에서 남들의 생각이나 존재는 잊어버려야 합니다. 세상 어딘가에는 항상 우리보다 잘났거나 못난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교수가 된 이유도 남들보다 잘나서 가르칠 것이 있어서였기 보다는 저 역시 삶을 배워가는 학생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배울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 역시 이러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가지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학기를 저와 함께 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여러분의 방학이 즐겁고 알찬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모험과 도전으로 가득 찬 하루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실천으로 그것들을 하나씩 이루어 나가길 응원합니다. 눈을 떴을 때 산의 정상에 서있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바로 오늘부터 한 발자국씩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하루하루와 매 순간의 가치를 깨달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내면의 성숙을 추구할 동안 열린 눈을 가지고 넓은 세계를 바라보길, 그리고 나의 강의가 그 여정을 향한 발판이 되기를 기원하며……
(영어 버젼은 (
https://pgr21.net/freedom/89767?sn1=on&divpage=1&sn=on&keyword=%3Cspan))
에 가시면 보고 비교하실 수 있습니다.)
한국어 발음과 글쓰기, 어휘능력은 그렇게 정비례하진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됐죠.
지금도 가끔씩 꺼내 읽는 편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