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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5 13:10
유봉-유선 얘기는 익히 알고 있었는데 제갈교-제갈첨 관계는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조차 못했었네요.
여담치고는 뭔가 우연스러우면서도... 음모론이 생각나면서도... 우리 승상님께서 그럴리 없고 그냥 하늘의 도우심 같다면서도.. 많은 생각이 드네요.
21/02/15 18:04
제갈량이 군주였던 것도 아니니(물론 군주에 가까운 권한이 있긴 했지만요) 그런 음모론은 말 그대로 음모론일 겁니다.
다만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보곤 합니다. 제갈량이 실제 역사보다 20년쯤 더 살았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요.
21/02/16 22:24
그래도 타스타팅까지 차지하고 타스타팅에 게이트로 도배한 토스한테
본진자원도 다 말라가는 테란이 이길 방법은 없을것 같습니다....
21/02/15 13:12
그냥 그 시대에 벌어질 수 있는, (특히 왕가에서는) 있을 법한 일인 거죠. 뭐....
확실히 관우, 장비, 제갈량, 조운 등이야 뭐 그렇다 치고, 유선, 유봉, 황권, 미축 등등의 일들을 종합해보면, 유비의 인간관계를 다루는 능력이 진짜 엄청나다고 할 수 밖에요. 조조, 손권 등의 반면교사가 바로 옆에 있으니 더더욱 비교되죠.
21/02/15 13:27
역사를 보다보면 기막힌 타이밍에 죽은 사람들은 사실 살해당한 게 아닐까 하는 음모론적 생각이 절로 납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분명 한두 사례는 그런 경우도 있을 듯.
21/02/15 13:35
제갈량이야 당시의 유아사망률을 고려하면 1살짜리 아기를 믿고 25살 양자를 죽이진 않았을 거고..
제갈량도 마속을 썼듯이 유비도 유선을 쓰는 실수를 했다고 봅니다
21/02/15 13:52
저는 그게 실수라고 생각하지않습니다. 유봉은 양아들인걸 떠나서 원래 유씨가 아니었고 황실을 재건한다는 촉한의 명분에도 부합하지않죠. 유봉을 택했다면 그게 실수였을겁니다
21/02/15 18:06
유비가 유선을 선택한 것은 절대 실수나 잘못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선은 당시 군웅들의 후계자들 가운데 아무리 봐도 중간 이상은 가거든요.
21/02/15 13:45
수많은 역사적 사례가 있음에도 후계문제가 늘 끊이지 않는 것이 참 흥미롭습니다.
현대 삼성 등 우리나라 재벌의 가장 큰 리스크는 북한도 아닌 승계/상속이었네요. 점점 자녀를 많이 낳지 않으니 승계 리스크가 줄어들까 싶으면서도, 양성평등 (더이상 아들끼리의 싸움이 아니겠죠) + 이혼률 증가 등의 복잡요소가 있으니 어찌될지 모르겠네요. 이 와중에 북한의 김씨정권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승계를 두번이나 꽤 깔끔하게 해낸 점은 정말 놀랍습니다.
21/02/15 14:15
태조 왕건 200화 라이브 방송 보고 있는데, 견훤도 결국 계승구도로 나라가 망하고, 왕건조차 왕건이 죽은 이후 나라가 계승 다툼으로 소란이 벌어질 정도로 후계자 선정이라는 건 항상 분란의 소지가 있는거 같습니다.
21/02/15 15:04
간간히 올라오는 크킹 관련글들을 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주의 후계문제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누가 그러던데, 크킹은 땅 차지하는 게임이 아니라 후사 죽이는 게임이라고;;
21/02/15 18:08
장자상속 박은 후에는 굳이 안 죽여도 걍 후계자 지정만으로 해결됩니다.
물론 장자상속제 도입 전까지는 후계자를 제외한 모든 아들은 죽어야만 하는 아들입....
21/02/15 18:16
유봉을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능력을 인정하기때문에 오히려 상용으로 보냈으면 안됐죠...중앙에서 가까이에 두고 지켜봤어야 했습니다.
관우의 일이 아니라도 유봉은 상용에 있으면 지속적으로 유혹에 시달릴 수 밖에 없었어요. 유선의 위치가 공고해질수록 촉에서 본인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니까. 그런 상황에서 군사력을 쥐고 국경에 있는다? 그 자체가 엄청난 화근이 됩니다. 유비가 직접 중앙에 두고 지켜줬어야 합니다. 유봉이 있을 자리를 만들어줬어야 했어요. 그게 아버지로서 할 일이죠.
21/02/16 17:15
유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유봉을 제어할 수 있죠. 제갈량이 살아생전 위연을 제어했던 것처럼. 그리고 219년 시점에서 유비는 아직 50대 후반이었고 그야말로 상승가도를 달리던 시점이었습니다. 자신이 고작해야 삼사 년밖에 더 살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아직 유선이 어릴 동안은 유봉을 밖으로 돌리고, 유선이 장성한 후에 다시 불러들여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21/02/15 19:20
제 생각에 유봉을 상용으로 보낸 것은 유봉을 자식으로 생각했다기보다는 믿을만한 장수 중 하나로 생각하였다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유능한 장수 중 하나일뿐 황위를 위협할만한 정통성도 의지도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변방으로 보낸 것이 아닐까요.
21/02/15 21:16
하다 못 해 유봉이 원래 유씨 일족이었다면 몰라도 구씨 일족인 이상 한중왕을 칭한 유비의 후계자는 물건너 간거였다고 봅니다.
그 시점에서 더 이상 유봉이 후계자로 볼 수 있는 왕자가 아니라 위나라의 조진과 비슷한 입장의 장수라고 생각해보면 상용으로 보낸게 이해는 갑니다. 유봉을 왕세자를 위협할만한 왕자로 생각했다면 성도에 붙잡아두고 군권이 없는 명예직에 배치했지 최전선으로 보내며 군권을 주는 짓을 안 했을테니... 다만 형주 구원에 실패한 시점에선 살아남는게 불가능 했다고 봅니다. 실패가 없어도 죽여야 할 이유가 충분한 존재니까요. 여러가지로 맹달에게 시비걸고 싸운건 묘자리 판 일 이라고 밖에 평가하기 힘드네요. 하다 못 해 거기서 군사만 냈어도 조금은 더 살았을거라 보는데...
21/02/16 17:19
역설적이게도 유비의 세력이 커질수록 유봉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죠. 말씀하신 대로 세력이 커질수록 유씨라는 혈통의 중요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분명한 건, 유비는 자기가 살아있는 한 유봉이 감히 다른 마음을 먹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제갈량이 유봉을 죽이라고 권한 것도 '유비가 죽고 나서 다음 대가 되면 결국 제어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해서'였지요.
21/02/16 02:10
글쎄요 유비가 정말 맹달 말처럼 유봉을 아예 신뢰를 하지 않았다면 상용자체를 맡기지 않았겠죠. 신뢰하지않는 사람에게 군권을 주는 어리석은 짓을 할 만한 사람도 아니고. 반대로 전 신뢰이자 기회를 준 것인데..
21/02/16 17:03
어릴때 삼국지 겉핱기로 읽을때도 전혀 이해가 안되던게
적벽대전 후 갑툭튀하던 유봉의 존재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유비가 유봉을 양자로 들인이 후 유선이 태어났더군요. 직계 후계자가 태어난이후에 임시 후계자가 밀려나는것은 역사에서 매우 흔한일이지요. 우리나라사람에겐 익숙한 풍신수길 -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시도 나이 50이 넘게 직계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양자를 많이 들였습니다. 여동생의 아들(조카)인 히데츠구 처남의 아들(처조카)인 히데아키 정도가 유명하죠. 히데츠구가 먼저 후계자로 선택이 되어서 히데요시의 관직인 관백을 물려주고 본인은 태합이 되면서 일본 국내 정치는 양자한테 넘기고, 군권만 가지고 조선침공 준비를 하게됩니다. 하지만 이때 덜커덕.. 히데요리가 태어나면서 입지가 위태로와지지요. 뭐 역사가 스포일러고 다를 역사적케이스들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구실을 만들어 양자인 히데츠구는 할복을 하게됩니다. 그리고 많이 모았던 양자들도 각 영주가문에 분가(...) 를 해주게되지요. 위에언급된 히데아키는 모리가문의 분가인 코바야카와 타카카게의 양자로 가게되고.. 나중에 큰 트롤링을 하게되지요. 아무튼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 지도자들한테 가계가 끊기지않고 이어나가는게 매우 큰일이었습니다. 승계가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리는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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