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보건의료에 대한 글을 올려드리는 여왕의심복입니다.

오늘 한 기사를 보다 슬픔이 느껴져서 글을 쓰게되었습니다.


저는 군생활을 감염병 역학조사관으로 했습니다. 매년 군대에 입대하는 예방의학전문의는 2~3명 남짓이고 군은 감염병이 자주 유행하는 곳이기 때문에, 예방의학자가 현장에 나가는 곳이면 큰 사건이 벌어진 곳이지요. 폐렴이 전체 부대 절반이 생겼거나, 육군 훈련소에 큰 식중독이 터졌거나, 병사들이 감염병으로 사망한 경우 입니다.

아직도 군은 많은 장병들이 사망하는 곳입니다. 매년 자살로 사고로 수십명의 장병이 사망하고, 몇 명의 장병은 감염병으로 복무 중 순직합니다.

우리나라 군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발생시킨 감염병은 단언 신증후군출혈열입니다. 예전에 유행성 출혈열로 알려진 이 병은 이호왕 교수님께서 병원체를 규명하고, 백신을 개발하였지만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 병의 주요한 유행지 입니다.

제가 전공도 아닌 군의료에 대해서 아직까지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2015년의 한 사건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한타박스라는 신증후군출혈열 백신은 아직까지도 그 효과에 대해서 논란이 많습니다. 이번 COVID-19 백신 개발의 속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백신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개발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신증후군출혈열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유행하는 감염병에 대한 백신은 그 개발 동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소외받기 쉽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개발된 한타박스는 제조 방식이 오래되기도 했고, 정확한 임상시험을 거치기도 불가능한 상황이기 때문에 그 효과를 증명하기 더욱더 어렵습니다.

제가 군복무를 시작한 2014년은 그 논란이 매우 심하던 시기였고, 의미없는 백신을 접종하는 것에 대해서 군에서 복무 중인 젊은 예방의학자와 감염내과 의사들의 논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효과가 없다면 접종하지 않는 것이 더 공공선에 가깝지않나라는 생각을 저도 가지게 되었나봅니다. 저는 백신 보급계획을 짜고 있었고, 한타박스의 보급을 가장 위험한 지역에만 주자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1년차 군의관은 전문의가 되자마자 군대에 온 상태라 과도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시기라, 제 생각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 크리스마스쯤 저의 오만을 반성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어떤 부대의 창고 관리병이었던 병사가 신증후군출혈열에 감염되어 사망하게 된것입니다. 신증후군출혈열은 야전에서 숙영하거나, 훈련 중에 주로 발생하여 영내에서만 근무하는 병사는 위험도가 낮게 판단되었고, 다른 흔한 감염병으로 오인되기도 쉽습니다.

이후 저는 어떻게 하면 병사들이 신증후군출혈열에 대해서 보호받을 수 있을지 더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타박스의 효과에 대한 연구와 여러 예방대책을 도입해주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예를 들어 미군은 신증후군출혈열에서 주한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수의사 및 곤충학자 들을 통해 우리나라의 쥐의 보유바이러스를 채집하고, 국내 연구진에게 연구비를 지원하는 등의 기초 연구도 수행하고, 대규모 기동훈련이 실시되면 훈련장 전체에 물을 뿌려서 먼지를 날리지 않게 합니다. 또한 신증후군출혈열 유행지역에서는 숙영도 잘하지 않지요. 하지만 주둔지에 있다가 잠시 지나가는 미군과 달리 우리장병들은 신증후군출혈열이 유행하는 철의 삼각(철원 쪽입니다.)을 그대로 지켜야하니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이후 수행된 연구에서 한타박스가 어느정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확인이 되고, 저의 상관들이 애를 써주셔서 우리군도 몇가지 대책을 도입할 수 있었습니다. 한타박스를 조금 더 열심히 접종하고, 위험지역을 확인한 후 가급적 그 지역은 숙영하지 않는 것 같은 대책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군은 우리 국토를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지역에 주둔해야하는 것은 변함이 없고, 한타박스는 약 50%정도의 효과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도 우리 장병을 완전히 보호해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것이 우리 젊은 장병이 우리 국가를 위해서 짊어지는 어쩔 수 없는 위험입니다.

요즘은 많이 좋아졌지만 군장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의료접근성이 떨어지고,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국민입니다.
아직도 아플 때 제때 병원에 가지못하는 병사들이 존재하고, 민간의료이용과 병가가 허용되었다 하더라도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그 기회조차 가지지 못하는 장병들이 많습니다.

지난 주에도 또 한명의 장병이 신증후군출혈열로 사망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진정 젊은 장병의 피로 아직까지 지켜지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매우 기분이 안좋았던 기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867720

한 의원이 어떤 병사의 휴가 미복귀에 대한 논란을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재촉하는 것에 비유한 일에 대한 기사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그 재촉조차 할 수 없는 병사가 대다수입니다. 심지어 그 병사들은 매년 침대 하나 없는 전방에서 적의 총탄이나 지뢰가 아니라 제초기를 돌리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습니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