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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21 22:04
네, 본문에 적어놓은 '국교 일방파기'가 그것입니다. 노태우가 단교는 절대 없다고 구두약속 해놓고, 몇일후에 일방파기했다죠...
사실 이건 욕먹어도 할말이...없기는 하다고 생각합니다.
20/07/21 22:14
제가 잘못 알았네요. 노태우가 맞습니다.
https://namu.wiki/w/%ED%95%9C%EA%B5%AD-%EB%8C%80%EB%A7%8C%20%EA%B4%80%EA%B3%84#s-3.3
20/07/21 22:16
사실 단교한건 92년입니다.
일방파기라고 해도 그때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할꺼라는건 한참전부터 담당자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대만입장에서는 가까운데 있는 나라중에 마지막으로 있던나라 라서 그럴겁니다. 이미 중병걸린 환자한테 시한부선고 한 셈이라고 봐야하나 그런생각이 듭니다.
20/07/21 22:12
일본도 대만 단교한 건 마찬가지고 세계에서 대만하고 단교 안 한 나라가 얼마나 있다고
그냥 핑계죠. 일본한테는 못 개기니깐 일본은 대만하고 단교 안 했나?
20/07/21 22:16
"한국과 대만은 과거 상황상 동질성이 있고 사이가 좋았으므로 더 큰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도 작용했다."라고 하더군요...
https://namu.wiki/w/%ED%95%9C%EA%B5%AD-%EB%8C%80%EB%A7%8C%20%EA%B4%80%EA%B3%84#s-3.3
20/07/22 08:31
일본이 과거에 혐오는 아니라 그냥 못사는 나라. 우리 식민지였던 하찮은 나라, 귀찮은 나라로 깔보는 취급이었던거 같고..
근 십몇년 사이에는 혐오 단계에 들어섰죠..한국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20/07/21 22:23
원래는 한일관계도 일방혐오였고 옛날에는 오히려 대만이 선진국 이미지였죠. 대만도 아예 따라잡혀버린 이후 세대인 현 젊은층은 혐한이 덜하고요.
20/07/21 22:18
대만의 반한감정은 그리고 열거하신게 아니고 원래 기존에 중국인들이 가진 조선의 이미지 때문이라고
합니다. 중국인들이 원래 조선을 아래것으로 봐왔는데, 그게 본인들이 대만으로 갔다고 달라졌을까요?
20/07/21 22:26
일단 중화사상이 밑바탕이 된 것이 맞고, 거기에 역사 좀 관심 있는 대만인들은 '장제스가 니들 독립에 공헌한게 얼만데 니들이 이런 식으로 배신을?'이라고 많이들 생각한다고 합니다. 다만 이것도 단교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중년 이상의 대만인들이나 그렇지, 젊은 층은 신경도 안 쓴다고.....대만의 본격적인 단교 역사는 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20/07/21 22:30
세계대전때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을 연합국이 보장해준 사건이 카이로 선언인데, 이 선언이 루즈벨트와 처칠, 장제스의 합의 하에 작성한거라서요. 특히 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적극적으로 밀어부친게 장제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7/21 22:32
장제스는 장력제급인게 윤봉길 의사 이후에는 중국 국민당 자금 털어서 열심히 셔틀이나 해주다가, 카이로 회담에 바득바득 우겨가지고 조선 독립문구 억지로 끼워넣고, 좀 남한 위성국가 엣헴엣헴 해보려고 하니 마오쩌둥한테 털려서 대륙을 잃는바람에 진짜 도움만 주고 얻은 건 없죠. 그리고 한국에 흉년 났을때 대만에서 쌀 탈탈 털어서 준 적도 있습니다. 쌀얘기하니까 진짜 만력제같네요
20/07/22 11:57
중국에서 활동한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내용을 보면 장제스, 그리고 당시 여러 중국(대만 쪽)의 인물들 이름이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20/07/21 22:25
개인적으로 대만인들한테 직접 물어봤을때는 오히려 단교문제보다는 태권도 판정 문제하고 공자 한국인썰을 푸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약간 명예 일본인스러운 마인드로 한국 싫어하는 경우도 꽤 되고요(내가 사랑하는 일본을 이렇게 깐단말이야? 이런 느낌이고....한국인이 대만 무시한다는 자격지심도 좀 있더라고요)
20/07/21 22:28
대만, 즉 장제스 국민당이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 지원해준게 625때 미국이 도와준거 보다 적지 않습니다.
독립운동 자금부터 시작해서 외교권도 없던시절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장제스가 강력히 주장한 덕분에 일제의 패전이후 독립하게 됐는데 미국에게는 보은해야한다는 사람은 엄청 많아도 대만에게 보은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어요. 장제스가 독립운동 지원 안했으면 대한민국 성립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국가에 지대한 도움을 준 국가가 대만인데 먼저 단교해놓고도 뭐 어쩌라고 니네가 중국에 밀렸으면서 우리가 많이 봐줘서 늦게 해준거야~ 따위의 태도는 정말 배은망덕이죠
20/07/22 01:25
장제스가 대만을 대표한다고 전제를 해놓으면... 까놓고 단교 문제는 파면 팔수록 명분이 없습니다. 명분이... 한국에서도 자주하는 "진정한 역사를 알아야" 소리가 쏙 들어가죠. 까놓고 내로남불입니다. 그 쪽에서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건 상관 없습니다.
대만 사람들이 태권도나 공자문묘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 사람들도 이런 역사는 잘 몰라서 그럽니다. 그 쪽으로 따로 공부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배울 일도 별로 없지요.... 인터넷이야 최근 이슈들만 골라서 아는거라. 적당한 반한 감정에 자기들에게 유리한 이야기가 있었다더라....하니까 "어, 정말 그러네?" 해서 발췌식 공부를 하는거죠. 인터넷 게시물로만 역사, 사회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여기나 거기나 꽤 많은거에요. 당연히 카더라에 자극적인 이야기가 덕지덕지. 댓글 수준도 당연히 거기에 따라오는거죠.
20/07/21 22:39
사실 한국 외교가 상당히 얍삽한 편인데 원래 외교가 내로남불이라 그려려니 싶긴 합니다. 그냥 한국이 좀 '평화를 사랑하는 핍박받은 민족'같은 피해의식은 좀 벗어났으면 싶긴해요. 지금 한국 위치 정도면 하는 짓이나 실제 지위나 마피아보스는 아니라도 동네 일진정도는 되죠 뭐.
20/07/21 22:38
무슨 장제스 아니었으면 독립 못 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정말 동의하기 힘드네요.
세계2차대전 끝나고 패전국 식민지가 독립하지 않은 케이스가 있습니까? 그냥 일본이 패망한 순간 대한민국은 독립이 확정된 거예요. 당연하죠. 승전국이 뭐가 예쁘다고 패전국 식민지를 납두겠어요? 세계2차대전 끝나고 식민지들 죄다 독립했는데 그것도 패전국 식민지면 당연 독립이지 무슨 장제스 아니었으면 세계2차대전 끝나고서도 일본의 통치를 계속 받았을 거라는 식의 이야기는 동의가 안 되네요.
20/07/21 22:40
그 정도까지는 과장일 수 있겠지만,
장제스가 정말 많이 도와준게 사실이고 그렇다면 대만인들이 갖는 '배신감'도 어느 정도 이해할만 하지 않을까요?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더라도......
20/07/21 22:44
근데 장제스가 대륙에서 털리기 전까지는 진짜 미국이나 영국이 한반도에 별로 관심이 없긴 했어요.....자원이 많이 나거나 (섬나라인 일본 아니고서야) 지정학적으로 크게 중요한 땅은 아니었으니까요. 독립은 어떻게 됐을지 몰라도 그냥 흔한 아프리카 식민지 보듯 대충 지들이 신탁통치 하려고 땅에 줄 긋거나 아니면 진짜 중화민국의 위성국으로 남기려는 생각이었죠. 장제스도 뭐 그 점을 노리고 독립운동을 지원한거라 보고.
장제스가 대륙에서 쫓겨나고나서 지정학적으로 자유진영의 최전방이 되며 위상이 올라가니 자연스레 한반도에 힘이 모아진거라고 보는지라.....뭐 장제스 입장에선 죽 쒀서 개 준 꼴이 됐죠.
20/07/21 22:48
뭐 알수없죠. 일본이 조선은 내지로 인식하고 있었던지라 어떻게든 안놔주려고 사정사정 했었으니 미국이랑 쇼부 잘 쳤으면 어떻게든 유지했을지도요. 근데 장제스가 어쨌든간에 한국 독립운동에 도움 많이 준건 사실이고 카이로회담에서 바득바득 우겨댄것도 사실이긴 하니까요.
20/07/21 23:20
장제스 아니었으면 독립 못했다가 맞습니다. 독립한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은 정말 전쟁 수준의 독립투쟁을 거쳐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마지 못해 독립시켜준 거에요. 피 흘린 끝에 말입니다. 그리고 독립은 힘에서 나오는거지 그냥 어쩌다 당연히 되는 그런 게 아닙니다. 그리고 패전국이라 해도 일본이 조선을 점거한 것은 1910년때부터였고 이는 서양열강도 승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봤을 때 그닥 문제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만주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습니다. 장제스는 루스벨트가 구상했던 세계경찰 4인방 (The Four Policemen)의 중요한 축이었기 때문에, 장제스는 미국을 상대로 딜을 할 수 있었고, 한국독립이 의제가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공입니다.
20/07/21 23:21
한국경우는 전쟁 일으키기전에 통치하던 식민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하게만은 안됩니다. 류큐같은 경우 봐도 알 수 있듯이 국제적으로 얘는 원래 일본꺼였어 라고 인식되면 졌다고 독립 시켜주는거 아닙니다.
20/07/21 23:28
광복 당시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하에서도 자금 지원 등으로 독립운동에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중국 정치인들 대부분이 자기네들 독립하기 바빴는데 조선 독립도 함께 중요시 여겼던 건 장제스의 특징이 맞아요.
20/07/21 23:33
장제스 아니였어도 독립이 불가능했다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장제스의 공을 우리가 폄하하는건 염치가 좀 없는거죠. 장제스도 빼고 생각하면 생각하면 우리가 기념할만한 독립운동가가 존재하기는 할까요..?
20/07/21 23:57
조선보다 30년먼저 병합된 류큐는 미국이 점령하고 있다가 70년도에 일본에게 줬죠. 조선이라고 오키나와처럼 안됐으리란 보장은 없다고 봅니다.
20/07/22 00:36
그런 식으로 따지면 김구 없으면 독립 못했나요? 윤봉길 의사 의거 없었으면 독립 못했나요? 장제스는 외국인이었는데요? 그리고 승전국이 패전국 식민지를 냅두느냐와, 독립시키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조선은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점령한 점령지가 아니라 (무효이기는 하지만) 외교적으로 병합한 상대이고, 그때 멀쩡히 다 승인해준 미-영-프 입장에서 일본땅으로 두든, 중국땅으로 만들든, 아니면 자기들이 먹든 아무 상관 없는 겁니다. 극단적으로는 북한지역은 소련이 점령했으니 소련이 알아서 처리하고, 남한지역은 일본땅으로 냅뒀을 수도 있고요. 장제스가 그냥 여느 욕심많은 외국수장이었으면 "조선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는데 일본이 뺏어간거다. 그니까 중국땅하자"라고 하고, 멋모르는 루즈벨트가 그런가? 응 그래라 했으면 중국 됐을 수도 있지요.
이걸 조선 독립으로 하자고 한 게 카이로 회담-얄타 회담이고, 루즈벨트에게 강력하게 주장한 게 장제스입니다. 솔직히 결과론적으로 광복 기여도 중 원탑은 장제스가 맞아요. 장제스 한 거 없다~~는 논리는 그냥 한국 독립운동가 한 거 없다~보다 더 심한 얘기입니다. 독립운동해서 광복했다고 독립운동가 존경하나요? 그냥 그 독립운동 자체가 고마워서 존경하는 거지.
20/07/22 06:17
일본은 2차 대전의 패전국이지만, 1차 대전의 승전국이기도 합니다.
1900년대 초에 러일전쟁 거치면서 미국, 영국 등에게 한국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을 인정받기도 했고, 1차 대전의 승전국으로 그 지위를 사실상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죠. 2차 대전의 패전국이라고 해서 1차 대전 이전의 시기까지 소급해서 당연히 독립할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카이로 선언 아니었으면 일본이 핵 얻어맞고 지지쳤어도 우리는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였거나, 아니면 미중소 등 다른 국가의 식민지였을 가능성이 독립했을 가능성보다는 높았다고 생각합니다. 장제스가 주장 안 했으면 미국, 소련이 한국 독립에 신경이나 썼을까요.
20/07/22 12:24
이건 진짜 뭘 모르고 적으신 댓글인게 패전국 식민지중 공짜로 독립한 나라 없다시피하고 류쿠의 경우는 독립을 못했어요. 그리고 한국의 독립에 다른 국가들은 관심이 없었고 일본은 한국을 어떻게든 내지로 남겨두려고 했습니다.
한국독립은 애초에 의제로 올라가지도 못할뻔 했는데 장제스의 강력한 주장으로 관철된거예요.
20/07/21 22:46
그럼 대만의 TSMC는 우리나라 삼성보다 더 비중이 크겠네요... 덜덜. 일본이 저렇게 경제력이 큰데 세 나라중 제일 큰 기업이 없다는거는 중간층이 두텁다는거겠죠?
20/07/21 23:36
https://pgr21.net/humor/386467?divpage=69&ss=on&sc=on&keyword=%EC%8B%9C%EA%B0%80%EC%B4%9D%EC%95%A1
2019년 기준 한일 기업 시가총액 TOP 50인데, 한국 기업 딱 3개 있네요.......1위는 삼성전자지만. 물론 한국 주식시장이 좀 저평가가 심하긴 하고, 시가총액이 아니라 매출 및 영업이익으로 따지면 제조업쪽은 어떻게 비벼볼 수 있다고 보는데 금융쪽이 한국은 레알 답이 없는 수준이라(심지어 경제규모가 1/3인 대만보다도 처지는). 일본은 이미 할아버지대부터 사업 일으켜서 건물주 된 애라면 한국은 이제 자수성가 단계에 접어들랑 말랑한다고 봅니다.
20/07/21 23:37
지금와서 이유가 바뀐거지,
가장 결정적 이유는 단교가 맞습니다. 애초에 대만 최고 맹방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였는데, 단교 당시 대만 국민들 반응은 진짜 장난아니었습니다. 태극기 태우는게 일상이었죠. 아무리 잘봐줘도 '배신' 이었기때문에, 한국도 정부나 일반국민이나 미안해서 별 말 안했죠.
20/07/22 00:20
대만과 일본의 관계는 우리나라처럼 단방향이지 않습니다.
본성인, 외성인, 원주민이 섞여있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하게 일제 식민지였는데 왜 일본을 좋아하지? 우리 입장에서는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20/07/22 00:26
김구 신봉하면서 장제스 역할 부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고, 광복은 독립운동가들의 피튀기는 헌신이 아니라 결과론적으론 일제의패망+연합군의 한국 독립 결정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결과가 어찌됐든 존경받고 잊지 말아야 할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 광복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일제 패망 + 연합군의 결정에 모두 지분이 있는 전세계 유일한 이가 장제스이고 유일한 집단이 국민당입니다(임정지원+중일전쟁 탱킹+연합국멤버). 그리고 박정희때 우리나라 쌀이 없어서 김신공군참모총장이 대만갔을때 내가 이거밖에 못줘서 미안하다...고 냉큼 원조 결정해준것도 장제스죠. 뭐 공산당 몰아내고 한국을 속국만들려고 했던 속셈이라는 카더라도 있지만 장제스 행적 보면 그냥 개인적인 호감이나 의지가 없었다면 설명이 안 될 정도로 한국한테 잘해준 외국원수입니다. 그리고 독립 후에는 중공-북한이라는 공동의 적을 둔 동아시아의 혈맹이었구요. 그런데 다들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거에 뒤따라서 외교관계를 파기해버리고 중국과 수교했으니, 당연히 국민들은 배신감 느낄 수밖에 없죠. 우리 입장에서야 어쩔수없는 선택이었지만 대만의 혐한 문제를 이해 못한다는 건 일본인이 한국의 반일 이해 못한다는 거랑 똑같은 얘깁니다.
20/07/22 00:28
무려 독립을 도와줬는데 눈치보다 무려 단교를 때리면 역지사지로 생각해도 화나긴 할거같은데요. 예를들어 홍콩 민주화운동 보고 감명받아 손해 감수해가며 독립 도와줬더니 나중에 일본 눈치보다가 우리나라랑 단교한 꼴 아닐까요.
여러 이유를 들어 그때 결정을 합리화할 순 있으나 반한 감정 자체까지 빈정댈 순 없을듯하네요.
20/07/22 01:36
피쟐글에서 봤는데
청나라에서 다스릴때보다 일제강점기가 더 살기 좋았다네요 일본이 대만을 서구열강에게 '우리도 식민지 경영 잘할 수 있다능...' 이라고 보여주는 쇼케이스로 삼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네요 또 대만 건국의 아버지라고 할수 있는 정성공의 아내가 일본인이라고... 동남아쪽도 실상 험한꼴(?)은 안당한게 아닌가 싶어요
20/07/22 00:58
[ 예전에 자신들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던 한국이 자신들을 앞질러 버린 데에서 비롯된 질투심에서 기인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혐한이 일부가 아니라 점점 늘어나는게 일본이 몰락하고 한국이 치고 나오고 있다는 점이 꽤 큽니다
20/07/22 02:26
뭐... 중국과 범유교 문화권인 베트남까지 껴서 평범한 동아시아 국가 간의 관계라고 봅니다. 모두 네셔널리즘에 대한 견제가 적고 타국에 대해서 기본적인 경쟁심이 강하죠. 대만의 경우도 친일국가라고 쉽게 부르지만 역사문제로 반일감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중국을 옆에 두고 있다는 특수성 때문에 친구먹은거지 솔직히 서로 프라이드 건드리기 시작하면 어떤 나라끼리든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유럽은 이 위험한 놀이를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어느정도 종식시켰는데 동아시아는 앞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아니 풀리기는 할지 궁금하네요.
20/07/22 08:28
대만 경제가 TSMC와 폭스콘을 비롯한 하청 대기업을 중심으로 굴러가다 보니 인건비 경쟁력을 위해 실질임금은 낮은 반면 대신 물가가 싸서 PPP자체는 한국, 일본에 비해 훨씬 높죠. 이게 한국인 입장에서는 대만에 놀러가기 좋은 이유기도 하구요. 다만 소득 대비 부동산 가격은 한국 못지 않아서 문제인 모양이더라구요.
20/07/22 09:08
진짜 대만에 먹으러 놀러갔는데 물가 싼게 너무 좋았습니다. 동네 허름한 맛집은 밥 한끼에 3천원이고, 좀 고급진 곳 가서 대접 받고 나왔는데 인당 3만원도 안나오더라구요. 한국이면 5만원 넘었을 거 같았습니다.
20/07/22 08:54
같은 식민지였어도, 대만이 친일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은 일본 군부의 이중성 때문이라는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일 육군이 주가 된 식민지였던 한국과 일 해군이 주가 되었던 대만과 동남아의 통치 방식에 큰 차이가 있었다고...
20/07/22 10:06
대만 여행 가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마침 태권도 판정 논란이 터지면서 태극기 불태우는 거 보고 여행 취소했던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로도 딱히 가고 싶어지진 않더라구요.
20/07/22 10:53
대만 여행때 가이드(대만사람)이 일본과 대만 관계를 한국과 비교해서 해준 이야기가 몇 개 기억 납니다.
일본이 아시아 식민지를 다룰떄, 유달리 대만은 같은 섬이고 풍부한 천연자원을 찬탈(?)할때도 현지인 노동자들에게 잘해줬고 별다른 강제무력행사를 하지 않아서 대만 사람들은 일본을 고마워 하는 맘이 크고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몇 개 그 사람 말중 기억나는게 -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중 하나인 히노끼탕의 재료 나무도 다 대만에서 들어간다 - 장제스가 대만으로 도망올떄, 중국 전역의 부자들이 전담 요리사 다 들고 넘어와서 좁은 대만에서 중국 전역 지역별 요리를 다 맛볼수 있다.
20/07/22 11:42
■ 광복을 보는 눈
* 광복 : 빛을 되찾음, 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 * 해방 :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 수동적인 수치스런 말 우리의 역사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가를 조선왕조의 건국이념과 예송이라는 단면을 놓고 살펴보았는데, 이번에는 우리 현대사 속에서 그 예를 한번 찾아보기로 한다.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조국, 이 대한민국의 탄생 배경에 대한 이해에서도 뿌리 깊은 부정의 논리가 발견된다. 이를테면 ‘8·15 광복’ 이라고 해야 할 것을 흔히 ‘8·15 해방’이라고 말하는 데서도 그것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어째서 ‘해방’이 아니고 ‘광복’이라고 해야 옳은지는, 지금부터 살펴보려고 하는 대한민국의 탄생 배경 속에서 분명해 질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오늘날 제3세계라고 하는 많은 약소국들이 신생독립국가로 거듭났다. 그러나 테벳의 경우처럼 독립국이었다가도 대전 후에 남의 나라 지배 아래로 들어간 나라도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독립주권국가로 거듭난 것은 결코 제2차 대전의 종결에 따른 당연하고도 자동적인 결과였다고 할 수가 없다. 우리는 또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될 수도 있는 운명의 기로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학교교육을 통해서 이렇게 배웠다. 즉,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 측이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전범국들인 일본, 독일, 이탈리아에 의해 부당하게 점령되거나 주권을 박탈당했던 나라들이 다 같이 주권을 회복하게 되었는데, 그 흐름 속에서 우리도 독립국이 되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독립은 마치 연합국이 승리했기 때문에 거저 얻어진 보너스인양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가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것도 아닌데 광복절을 성대히 자축하는 것은 민망스러운 일이 아니냐는 극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도 있다. 물론 연합국의 승리가 우리의 독립에 중요한 작용을 한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뿐인가? 진정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대한민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주권국가로 탄생하게 되는 유일무이한 국제법적 근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카이로 선언이다. 1943년 11월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개석 3거두가 모인 대전후 동아시아 국제질서 재편을 위한 회담이었는데, 제1항과 2항은 만주국과 대만을 중국에 귀속시킨다는 것이었고, 3항이 조선을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킨다는 것이었다. 그 후의 포츠담 선언은 카이로 선언의 확인인 셈이었다. 이것이 유일한 근거가 되어 우리 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제3항을 삽입한 사람이 장개석이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장 총통이 ‘조선은 수백년 동안 중국의 속방이었지만, 중국이 그 내정에 간섭해 본적이 없다. 따라서 조선은 독립국가가 되어야 한다.’ 면서 자진해서 그 조항을 삽입했던 것이다. 장 총통은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었다. 루스벨트나 처칠은 조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고, 조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뿐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 한마디에 중국의 속방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장 총통은 작은 섬 한 조각도 놓치지 않고 중국에 귀속시키면서 조선에 대한 연고권을 주장하지 않고 독립을 시켜야 한다고 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을 회고해 볼 필요가 있다. 임시정부 초기인 1920년대, 임시정부 요인들이 겪은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을 무렵 임정 국무총리였던 이동녕 선생이 손문과 장개석 총통에게 절박하게 지원 요청을 했다. 그러나 중국측으로부터는 ‘내 코가 석자’라는 냉담한 말 한마디만 돌아왔다. 세월이 흘러 김구 선생이 임정 국무령으로 있던 1932년 장개석 총통 측에서 김구 선생과의 회견을 청해 오는 변화가 생긴다. 그것은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폭탄 투척 사건이 원인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이라는 괴뢰정부를 세우고, 1932년에는 상해 사변을 일으켜 1차 전투에서 15만의 중국군이 5만의 일본군에게 참패를 당한다. 중국의 체면이, 그리고 장개석의 위상이 흔들릴 무렵, 김구 선생의 지휘를 받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났던 것이다. 그것은 일본의 콧대를 꺾어 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이 소식의 외신으로 전파되자 은근히 통쾌해 한 것은 그동안 일본의 등쌀에 캥겨 있던 열강들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임시정부에 대한 중국 측의 인식이 새로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장 총통은 이 사건의 배후에 바로 지난 날 자신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가 냉대를 받았던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중국군 10만이 못한 일을 조선 청년 윤봉길 혼자의 힘으로 해냈구나.” 그리고 김구 선생과의 면담이 이루어졌다. 백범일지에는 일대일로 필담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튼 이때부터 중국 국민당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도 있고 하여 우리 임시정부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지사들이 다시 모여들고 진용을 재정비함으로써 광복 때까지 줄기찬 투쟁을 계속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는 것이다.아울러 중국과 우리는 일본에 대항하여 연대를 이루게 되고, 중국 측은 ‘일본 제국주의를 박멸하는 중국의 정책은 한국 임시정부를 승인함에 있다.’는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게 되었다. 1943년 카이로에서 장개석 총통이 왜 그런 선택을 하였는가 하는 배경은 이로써 설명될 수 있다. 우리의 독립은 광복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끈질기게 전개해 온 피나는 투쟁의 연장선 위에 이루어진 결과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해방이라는 말 속에는 다분히 우리의 독립이 우리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찾아온 수동적 결과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서글픈 말도 바로 우리의 그 ‘망각병’이 만들어 낸 것이다. 국내외에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바친 그분들은 넉넉한 유산을 남길 수도 없었고, 자신의 자녀를 제대로 거둘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나라를 되찾은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한 것은 무엇인가? 요즘은 보훈처에서 많이들 발굴해서 보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지만, 지금보다 더욱 알뜰한 대우를 해야 할 것이다. 대학도 그 순국선열들의 후손에게 맨 먼저 교육의 기회를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조국의 미래가 뻗어 나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 한국인에게 무엇이 있는가 ■ 홍일식 지음 0 1936년 서울 생 0 고려대 국어국문학과졸, 고려대 문학박사 0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0 중한 대사전, 한국문화사대관, 한국민속대관 등 편찬 0 고려대학교 총장 역임 0 독립기념관 건립 추진위원회 기획위원 0 1982 제1회 세종 문화상. 1991 문화훈장 보관장 서훈 등 0 육당연구. 21C 한국전통문화. 일제하의 문화운동사 등 다수의 저서 ------------------------------------------------------------------- 어렸을 적 읽었던 책인데 발췌해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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