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20/03/05 15:51:50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단상] 일본의 조선합병과정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수정됨)

우리는 흔히 막연하게 나쁜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서 합병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선은 운이 나빴고, 또 일본은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고 이들이 정확히 어떤 방식을 취했나를 정확히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대응하는 과정에서 조선은 어떤 실수를 저질렀고, 

왜 강대국들이 어쩔 떄는 조선을 비호했고, 어쩔 떄는 일본편을 들었는지 알아야겠죠. 

 

먼저 다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1) 일본의 조선 침투 과정은 일본과 조선 사이에 일어난 일이 아니다. 무슨 말이냐면 일본은 운요호 사건 (이른바 강화도 사건)을 일으키기 전에 러시아와 먼저 협상했고, 중국과 먼저 협상했습니다. 러시아의 묵인을 확보하고 중국의 의중을 살핀 후 강화도 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조선에 대해 무슨 행동을 개시하기 전에 반드시 주변 강대국들과 협상을 하거나 또는 압력을 행사한 후에라야 조선에 대한 행동을 개시했습니다. 

 

(2) 강대국은 철저하게 이익만을 계산해서 움직인다. 당시 동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들은 - 영국, 러시아, 프랑스, 미국 등 - 철저하게 계산해서 상황에 따라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습니다. 예컨대 영국은 일본의 조선 침투를 부추기면서도, 또 상황에 따라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강화도 사건 이전 일본이 처음 대만에 관심을 기울였을 때 영국은 일본측 관료들에게 "중국 쪽은 우리 세력권이니까 너네는 조선 쪽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좋을 것이다"고 권유한 적도 있습니다. 미국도 필리핀에 대한 지배를 확립하기 위해 일본의 조선침투를 인정했는데 (이른바 가쓰라-테프트 밀약), 일본이 조선을 넘어 만주에도 관심을 기울이자 아주 적극적은 "반일국가"로 거듭납니다. 시오도어 루즈벨트는 친일 정치인이 아니고 그냥 [제국주의자]였던 것 뿐입니다. 상황에 따라 친일이거나 반일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러시아와 일본은 방금 전까지도 전쟁을 치루었는데 (러일전쟁) 불과 몇년 후 미국의 만주 침투를 막기 위해 사이 좋게 협력합니다.  

 

(3) 을사조약은 1905년이었는데 한일합병은 1910년이 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사실상 식민지화를 거의 완료한 것은 을사조약 1905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합병까지 굳이 5년이나 더 걸렸던 것인가? 이 또한 결국 강대국과의 외교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을사조약 이후, 영국이나 미국은 조선의 완전한 합병에 반대하던 입장이었는데, 미국이 만주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자 러시아와 일본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 일본과 러시아가 제휴하게 되자 위기감을 느낀 영국은 일본의 행보를 묵인하게 됩니다. 을사조약에서 한일합병 5년 간의 시간은 일본이 강대국들을 설득하던 시간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일본이 미국과 이민관련 협상을 미국 입맛에 맞게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자 미국도 일본의 한국병합을 묵인하게 됩니다. 

 

(4) 메이지 유신부터 한일합병 기간동안 일본은 방대한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당시 일본은 동아시아 그 어느국가보다 많은 유학생을 미국이나 유럽에 파견했었고, 또 이들 권력핵심부와 교류했습니다. 특히 해당 나라의 지도자급 인사들과 친분을 맺었고, 미국과 런던의 금융가들과도 협력했으며, 미국/영국/독일의 장교들과도 친분을 맺었습니다. 국가 대 국가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 대 사람 간의 케미스트리가 없으면 전자를 수행하기 어려운 법입니다. 그래서 조선이 아무리 서방사회를 설득하려고 해도, 빈번히 일본에 의해 막혔던 것이죠. 

 

다행히 오늘날 우리는 과거와 달리 아주 방대하고 두터운 인적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 한국인은 환영받는 존재이며, 또 그들의 유력자들과도 빈번히 교류합니다. 물론 한국의 객관적 국력이 그만큼 강해진 탓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한 가지 더 보완해야 할 점은 (1) 강대국의 의중을 잘 살피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계각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2) 어떻게 서로 전혀 관련이 없어보이는 일들이 의외로 연관되는지 계속 생각하는 훈련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컨대 터키의 기독교도 관리를 중점으로 벌어진 크림전쟁이 동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또는 조선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미일 이민자 협상이 어떻게 조선합병에 영향을 끼쳤는지 등. 


오늘날로 치면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이나, 일본이 프랑스 혁명 기념일 군사 퍼레이드에 초대된 일 등, 미국의 술레이마니 폭격 등 우리와 무관해보이는 것들이 어떻게 우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지 시나리오를 짜보고 "상상하는" 훈련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CapitalismHO
20/03/05 16:27
수정 아이콘
메이지유신부터 다이쇼 데모크라시까지의 일본의 국가적인 역량은 여러모로 참 대단하다 느껴집니다. 전후에 자유주의 진영의 2인자가 된것도 다 그런 역량적인 베이스가 있었기에 가능했겠지요. 한편으로 지금 일본인 학생들은 과거에 비해서 확연하게 해외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가지던 개방성과 역동성의 엔진이 당금에 이르러서는 과거만 못하지 않나 싶습니다.
aurelius
20/03/05 16:37
수정 아이콘
동의합니다. 일본이 갈라파고스화 된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죠. 과거 일본은 아주 진취적이고 유럽과 미국 그리고 중국에 적극적으로 진출(군대가 아니라 유학생, 민간인, 등)했는데 오늘날 일본은 굉장히 내향적이죠. 물론 여전히 축적된 역량이 상당하여 많은 고퀄의 서적을 계속 발간하고 있지만, 너무 바깥 세상과 교류 안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여행도 많이 안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국내 대학교수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유학파 출신이고 (문제는 너무 미국에 편중되었다는 거지만....) 국내 엔터테인먼트가 일본의 오타쿠 문화와 달리 해외에서도 주류 문화가 되어가고 있죠. 여행도 엄청나게 많이 해서 이제는 외국에 대한 환상도 거의 없는 편이고요. 개인적으로 엔터 분야의 발전이 감개무량합니다. 학창 시절의 거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는데, 당시 일본문화(애니메이션 등)도 많이 퍼져있긴 했지만 이를 즐기던 애들 대부분 오타쿠였거든요. 당시 동방신기를 알고 있던 여자애도 원래 일본매체 즐기다가 KPOP쪽으로 넘어온 애였고... 근데 이제 KPOP과 한국영화는 당당히 주류가 되어서 아주 뿌듯합니다 크크
20/03/05 16:38
수정 아이콘
일본인의 정신에는 '이이토코토리'가 있다고 하죠.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더라도 옛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옛것과 함께 좋은 문화를 섞어서 일본식으로 만든다. 저의 짧은 생각이지만 일본의 발전은 이 이이토코토리의 순환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 개량한다. 발전한다. 발전의 원동력이 줄어들어 쇠퇴한다. 메이지 유신에서 출발한 이이토코토리가 태평양 전쟁 패망으로 사그라들고 60년대 경제발전으로 시작한 이이토코토리가 지금에 이른 것이죠.

현재의 일본은 이 마지막 단계에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삽질을 하겠지만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저항공성기
20/03/05 17:28
수정 아이콘
글 내용 자체는 대략 동의합니다만 미국의 만주 진출 시도라 함은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러일전쟁 직후 일본의 지나친 세력확장을 경계한 일부 반일주의자(결국 4반세기쯤 지나 이 사람의 걱정이 현실이 되지요.)들이 반일을 미 행정부에 요구했고 이를 시어도어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요?
aurelius
20/03/05 18:32
수정 아이콘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Open Door Policy는 만주와 중국시장에 대해 특정 국가의 배타적 우위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으로, 다시 말해 일본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구상에도 전격적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이 이러한 미국의 도전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민자문제와 필리핀 문제 등의 원만한 해결로 당분간 미국의 호의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건 미국은 조선합병을 묵인한 거지, 명문화해서 인정(acknowledge)한 게 아니어서 일본이 실제로 조선을 합병한 후에도 계속 찝찝했다고 하네요.
저항공성기
20/03/05 17:36
수정 아이콘
또한 4번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인적네트워크는 조선정부 역시 이를 형성하고자 노력했으나 일본과 조선의 체급차가 넘사벽이었기 때문에 못 했다고 보는 게 타당해 보입니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조선 왕실-대한제국 황실의 엄청난 지원을 받은 외국인을 여럿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영향력은 뭐.. 이 당시 일본은 러시아 남하를 막는 영미의 주요 파트너였고 조선은 근대화의 자취조차 찾아볼 수 없는 일개 약소국이었으니까요.
aurelius
20/03/05 18:32
수정 아이콘
맞는 말씀입니다. 애초에 국력격차가 너무 컸어요.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84890 [일반] 일본방송 "신종코로나 일본 대만 한국 대응을 비교" [101] 잰지흔15553 20/03/05 15553 6
84889 [일반] [단상] 일본의 조선합병과정에 대한 몇 가지 생각 [7] aurelius8423 20/03/05 8423 14
84888 [일반] 시장에 숨은 마스크를 푸는 개인적 아이디어 [43] 마담리프9822 20/03/05 9822 1
84886 [일반] [스연] 노기자카46 25th 싱글- 『しあわせの保護色』(행복의 보호색) (약 데이터) [5] 아라가키유이6189 20/03/05 6189 0
84885 [일반] [스연] 임창정의 추억 트릴로지를 소개합니다 [19] 설탕가루인형5894 20/03/05 5894 3
84884 [일반] [토막][블랙코메디] 코로나 유럽 근황. [55] kien16451 20/03/05 16451 0
84882 [일반] 중국인들은 왜 한국인들이 '공자 한국인설'을 주장한다고 생각할까. [49] 한종화13342 20/03/05 13342 1
84881 [일반] [스연] 프듀 참가했던 무라세 사에 사진집 발매 [6] 빼사스7020 20/03/05 7020 1
84880 [일반] 블룸버그 경선포기, 바이든 지지 [30] 어강됴리7418 20/03/05 7418 0
84879 [일반] [스연] 이번 시즌 토트넘의 몰락에 싱글벙글 하고 있을 놈.JPG [6] 실제상황입니다7584 20/03/05 7584 0
84878 [일반] 마스크 선착순 판매가 과연 공정한가? [29] Otaru7098 20/03/05 7098 0
84877 [일반] HQPlayer 잘 사용하기 [3] 아난12439 20/03/05 12439 0
84876 [일반] [스연] 일본 아이코 공주는 한류아이돌 EXO 백현의 팬 [8] 어강됴리10025 20/03/05 10025 0
84875 [일반] [헬스]또다시 논란이 생긴 헬스 유투버계 [74] 도뿔이26405 20/03/05 26405 2
84873 [일반] [스연] 대한민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 [17] 나의 연인11458 20/03/05 11458 3
84872 [일반] [스연] henrik widegren - 통계적으로 유의한 사랑노래 [2] FLUXUX6655 20/03/05 6655 2
84871 [일반] [스연] 골목식당 찌개백반집 고기프로 단골손님 [4] Croove8977 20/03/05 8977 0
84870 [일반] [스연] BTS - Black Swan MV [12] 덴드로븀5710 20/03/05 5710 1
84869 [일반] [스연] 한국 힙합 어워드 수상 결과 [21] 류수정6356 20/03/04 6356 1
84868 [일반] [스연] 윤도현의 러브레터 라이브 스트리밍 [10] style7797 20/03/04 7797 2
84867 [일반] [스연] 세상이 바뀌었고, 이젠 걸그룹도 변해야 할 때 [63] 치열하게13508 20/03/04 13508 1
84860 [일반] [스연] 도쿄올림픽을 무관중으로 치루자는 이야기가 있네요 [19] 강가딘11772 20/03/04 11772 1
84859 [일반] (미국 경선) 수퍼 화요일 결과의 윤곽이 나오고 있습니다. [43] OrBef11290 20/03/04 11290 1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