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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0/03/02 16:41:23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단상] 대영제국이란 무엇이었나? (수정됨)
british empire 이미지 검색결과

대영제국은 한 때 세계에서 가장 거대하고 강력했던 제국이었습니다. 1900년, 대영제국은 전 세계의 4분 1을 지배했으며, 세계 최대규모의 함대를 보유했고, 또 세계 주요 발명품과 공산품의 원산지이자 세계금융의 중심지였습니다. 영국인은 전 세계 어디를 가든 당당하게 휘날리는 유니언잭을 볼 수 있었으며, 또 어디에서든 대접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영제국은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제국"과는 달랐습니다. 

우리는 제국이라고 할 때 흔히 영토와 군인, 그리고 관료를 필두로한 강대국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영국이 건설한 제국은 이와 달랐습니다. 사실 영국은 의식적으로 "제국을 건설해야겠다"는 이념으로 팽창한 제국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은 상인들이 다스리던 나라로, 영국의 해외팽창은 국가주도의 사업이 아닌 "민간주도의 사업"이었습니다. 아메리카 대륙의 식민사업도 민간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인도 진출도 민간주도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주체가 바로 "영국동인도회사"입니다. 

동인도회사는 국가로부터 행정권, 무역권, 교전권 등을 위임받아 거의 독립국처럼 행동하던 거대기업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공기업 같지만 동인도회사는 국가의 관리를 받을지언정, 의사결정은 독립적이었고 또 자금도 민간으로부터 모집했습니다. 영국의 부호들은 동인도회사에 투자해서 더욱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는데, 그 덕분에 이들은 실제로 인도까지 가지 않아도 안정적 수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동인도회사를 필두로한 영국의 상인들은 "이익"이 목적이었지 국가의 명예나 위신 따위를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말도 통하지 않고, 날씨도 극단적이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곳에서 되도록이면 짧은 시간 안에 돈을 많이 벌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별장이나 땅을 구입해서 편안하게 사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현지의 사정을 자세히 알아야 했고, 또 신뢰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합니다. 

그 결과 영국상인들은 현지의 유력 영주들과 제휴하고, 그들의 언어를 배웠고 현지의 상인들과 협력관계를 만들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냅니다. 중동의 아르메니아인, 인도의 페르시아인 상인들, 그리고 중국의 행상들. 이들은 모두 "이익"이라는 매개로 영국인들과 연결되어 글로벌 시장을 확장시켰습니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한 학자/여행가는 싱가포르를 방문하고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싱가포르만큼 인상적인 곳은 드물 것이다. 정부관료와 군인 그리고 주요상인들은 영국인이지만, 인구의 대다수는 중국인이다. 이 중에는 도시의 제일 가는 부호도 있고, 일반 농민들도 있으며 수리공이나 노동자들도 있다. 현지의 말레이인들은 어부나 뱃사람들이고 이들이 경찰병력의 다수를 구성한다. 말라카의 포르투갈인들은 이 도시의 사무직과 작은 무역회사 등을 맡고 있으며 서인도의 무슬림과 아랍인들은 이 도시의 작은 가게 등을 운영한다. 벵갈인들은 세탁소와 이발소 등을 운영하며, 이 도시의 일부 존경받는 상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이다. 게다가 자바에서 건나온 뱃사람들과 하인들이 있다. 이 도시의 항구는 여러 유럽국가들의 배로 가득하며, 수백척의 말레이 또는 중국의 정크선도 있다. 이 도시에는 멋진 관공서와 교회를 자랑하지만 동시에 무슬림 모스크, 힌두교 사원, 중국식 건물, 그리고 유럽식 건물들도 혼재되어 있다."

이처럼 싱가포르라는 도시는 대영제국의 본질을 축소판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대영제국이란 것은 본질적으로 정복사업이 아니라 이윤을 위한 무역사업이었습니다. 
제국은 거대한 다국적기업처럼 움직였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대영제국의 원동력은 영국의 로열네이비, 런던에 투자했던 유럽 전역의 투자자, 인도인 육군, 인도인 중개상인, 그리고 중국시장이었습니다.  

정작 런던의 고귀하신 나으리들은 대영제국이라고 했을 때 캐나다와 호주를 떠올렸고,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 그리고 유럽에서의 균형자로서의 영국을 떠올렸으나 

실제 대영제국을 움직였던 것은 Jardine & Matheson과 같은 민간기업, 중국시장과 유럽을 연결시킨 인도의 대부호들이었습니다. 
사실 아편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던 것은 영국상인만이 아니었고 잠셋지 제지보이와 같은 페르시아계 인도인도 있었고, 영국상인들은 그의 호의에 크게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들 페르시아계는 지금도 인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데, 인도의 거대재벌 타타그룹의 창업주 잠셋지 타타도 페르시아계였습니다. 아무튼 이들은 본국에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지만 압도적인 자금력으로 로비할 수 있었고, 또 강력한 무역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제국의 "혈관"을 담당했씁니다. 

해군과 상인이 제국을 추동시키는 원동력이었다면, 제국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은 노련한 외교와 지식/정보였습니다. 대영제국은 러시아나 미국과 같은 대륙형 거대제국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취약한 제국이었기 때문에, 영민하고 기민하게 행동해야 했습니다. 제국의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곳의 정세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했습니다. 이에 영국은 세계최초로 해저케이블을 전지구에 연결시켰고, 또 방대한 인문학적 지식을 축적했습니다. 

영국은 아프리카 부족들, 중동의 여러 부족과 왕족, 인도의 토호와 중국과 일본의 유력자들에 대해 치밀히 연구하고 방대한 지식을 축적했습니다. 19세기말 20세기 초 영국인이 저술한 중국의 역사서를 보면 대단히 놀라울 정도입니다. 누르하치의 중국정복에서부터 현재까지를 서술하며 만주족과 한족의 갈등을 나름 제대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은 쇠퇴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산업기술이 평준화되고 대륙형 국가들이 대두함에 따라 대영제국이 독점하던 장점은 사라졌고, 결국 두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해 인력과 자원을 모두 소진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유산이 몇개 남아있습니다. CIA나 모사드와 함께 세계최고의 정보기관이라고 하는 MI6는 대영제국의 엘리트들이 길러낸 정보인력이며, 전 세계에 걸친 투자정보와 돈의 네트워크도 런던 시티를 중심으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아편전쟁과 중국침투로 폭발적으로 성장한 거대은행 HSBC는 지금도 영국 시총 넘버 1 기업으로 위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한편 대영제국의 상인들이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로 - 그것이 인연이든 악연이든 - 성장한 탓인지 영국은 지금도 유럽국가 중에서 중국의 투자프로젝트에 가장 관심을 갖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AIIB에 제일 먼저 가입한 서방국가이며, 데이비드 캐머런과 테레사 메이, 그리고 보리스 존슨까지 모두 중국의 일대일로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영제국은 지금 사라지고 없지만, 그 유산은 아직까지 일정 부문 영국을 좌지우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영제국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제국의 경험이 오늘날 영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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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론
20/03/02 16:47
수정 아이콘
유로파 땡기네요
로즈 티코
20/03/02 16:51
수정 아이콘
"세상의 온갖 흉악한 것들은 영국놈들이 만들었죠"
퀀텀리프
20/03/02 16:55
수정 아이콘
흥미롭군요
20/03/02 17:08
수정 아이콘
제가 학창시절 내내 영어공부하느라 개고생한 것도 영국놈들 때문이죠.
그시절 유일한 취미였던 축구도 영국산이고.
앙겔루스 노부스
20/03/02 17:19
수정 아이콘
그 개념이 유효하다는 것과 별개로 저는 저 나라를 대영제국이라고 한국사람들이 부를 이유가 있나 싶습니다. 프랑스 러시아 독일 부르듯이 그냥 영국이라고 부르면 되는데, 굳이 그런 거창한 칭호를 붙여줄 만큼 도덕적이거나 바람직한 나라도 아니건만. 그 시기 1등 나라였으니 예우해준다면야 그럴 수도 있다고 보는데, 저로서는 저 호칭 굉장히 거북하더군요.
블랙번 록
20/03/02 17:32
수정 아이콘
패권국으로 영국은 솔직히 현 영국과 다른 특수성이 있죠 솔직히 그영토에 그 민족을 거느린 국가가 겨우 한반도 크기의 국가와 같진 않죠
앙겔루스 노부스
20/03/02 17:33
수정 아이콘
그니까 그게 구분되는 것과 대영제국이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그들을 꼬박꼬박 부르는 것 사이에 연결되어야 할 당위성이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그 시절 그 나라가 영국이 아닌 것도 아닌데요. 오히려 도덕적 행태로 보면 저만큼 불명예스러운 나라도 많지 않습니다. 권력만큼 불명예스러운 나라인지라
prohibit
20/03/02 17:34
수정 아이콘
대추장 작위가 있었으니 대충 대추장국놈들이라고 불러야 크크..
앙겔루스 노부스
20/03/02 17:40
수정 아이콘
피지 정부에 항의하고 싶습니다. 그 칭호 왜 폐지했냐고
Lord Be Goja
20/03/03 02:22
수정 아이콘
하긴 청나라도 대청제국이나 대청이라고 부르지않고 미국도 미합중국이라는 풀네임은 몇몇 특수한상황에서만 쓰는데 영국을 풀메임으로 불러줄 당위는 없겠네요.19세기영국하면 잉글랜드만 말하는 경우는 거의없으니까.
20/03/02 17:20
수정 아이콘
지금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등 세계에서 일어났던 내전들의 원인중에 영국이 안들어간걸 찾아보세요.
Davi4ever
20/03/02 17:27
수정 아이콘
이렇게 이상적으로 쓰시기에는 전세계에 말씀하신 대영제국의 '진정한 유산' 때문에 고통받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것 같습니다...
aurelius
20/03/02 17:34
수정 아이콘
(수정됨) 어떤 당위나 이상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은 아니고, 어떤 도덕적 가치판단 없이 [제국이 굴러가는 메커니즘]을 묘사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브렉시트 이후 영국의 노선을 확인하는 데, 제국의 경험이 도움이 될까 궁금합니다. 유럽연합이라는 틀 안에서는 영국이 독자적으로 타국과 원하는대로 협상을 할 수 없으니, 상인적 이기주의로 이탈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럼 과연 싱가포르, 홍콩, 중국, 캐나다/호주 등지에서 과거 제국시절 길러왔던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는지...그럼 그 실체는 무엇인지, 이런 게 궁금합니다. 실제로 브렉시트 캠페인 당시 [브렉시트 찬성론자들은 영국을 유럽의 거대한 싱가포르]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하던데...이게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달과별
20/03/02 18:23
수정 아이콘
제국시대 네트워크는 수준 이하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한국이 위치한 아시아 특성상 홍콩과 싱가포르의 존재성이 부각되고, 그 두 곳은 영국의 네트워크가 작동은 하고 있으니 이러한 인식이 이해는 갑니다. 반면 캐나다와 호주는 글쎄요. 50년 전 이야기를 아직도 하는건 의미가 없어요.

영국은 그냥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잘 나가는 국가 (얼마 전 독일의 고용률도 추월했죠) 정도 급에서 눈을 맞춰야지 그 이상의 과대 평가는 하지 않는게 좋다고 생각이 듭니다.
prohibit
20/03/02 17:34
수정 아이콘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고 보통 표현하던데, 정말 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지 생각해보면 쓰레기 같은 표현이죠.
됍늅이
20/03/02 18:06
수정 아이콘
뻘댓글이지만 스코틀랜드를 여름에 가보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이긴 합니다(?)
오렌지꽃
20/03/02 17:47
수정 아이콘
(수정됨) 대영제국의 전성기는 보통 19세기 말~20세기 초를 꼽는데 정작 세계 gdp 추산 1위는 1870년 이전 청나라에서 1870년이후 미국으로 넘어가고 영국은 한번도 1위를 해본적이 없다는점... 영국의 진정한 저력은 대영제국시절이 아니라 그 이전인 18세기말 산업혁명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산업혁명은 지극히 영국적인 현상이었으니까요.
주익균
20/03/02 18:12
수정 아이콘
그냥 브리티시 엠파이어일 뿐인데 대영 제국은 뭔가 굳이... 대大를 붙여야 하나 생각이 들긴 하죠.
본토 지명이 그레이트브리튼이긴 한데...
프랑스 제국, 러시아 제국. 이렇게 부르기엔 영국 제국. 이것도 뭔가 이상하긴 해요.

근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따지면 체급도 안 되는 대한민국이 더한가;
20/03/02 18:12
수정 아이콘
지도에 거문도 포트 해밀턴이었나가 인상적이네요
저렇게 표시를 해줄만한 섬인가? 크크
뭐 그레이트 게임에선 중요했을지도요
달과별
20/03/02 18:18
수정 아이콘
서아프리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프랑스보다 힘 없는 국가입니다.

반미 감정이 심한 나라에서 고평가가 심한 나라지만 대체 왜 그렇게 보는지 이해가 어렵긴 합니다.
새강이
20/03/03 21:15
수정 아이콘
항상 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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