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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9/09/22 23:28:56
Name 글곰
Link #1 https://brunch.co.kr/@gorgom/36
Subject [일반] (삼국지) 간옹, 제멋대로지만 밉지 않은 큰형님
간옹은 자(字)를 헌화(憲和)라 합니다. 유비와 같은 유주 탁군 출신이죠. 탁군이 현대 중국에서는 수도 베이징 일대에 해당하는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만 당시에는 중원에서 꽤나 떨어진 시골이었습니다. 그런 고향에서 유비와 어릴 적부터 어울려 지낸, 그야말로 동네 친구라 할 수 있는 인물입니다. 유비가 거병했을 때 간옹 또한 관우, 장비와 함께 그를 따랐지요. 종종 유비의 의논 상대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사자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간옹은 성격이 좋게 말해서 자유분방하고, 나쁘게 말하자면 제멋대로인 데다 오만방자했습니다. 아무리 유비의 고향 친구라지만 따지고 보면 엄연히 주군과 부하의 관계이지 않습니까. 그런 위계질서와 예의범절을 무척이나 중요시하던 시대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유비 앞에서 다른 자들이 모두 단정하게 앉아 있을 때 간옹만은 홀로 두 다리를 쭉 뻗고 몸을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고 합니다.  
      
  주군인 유비 앞에서도 그러했을진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어떠했겠습니까. 기록을 보면 그나마 제갈량에게는 대우를 해 준 것 같습니다만, 그 이하의 관리들 앞에서는 숫제 자리에 드러누워 베개를 베고 말을 했다 하니 정말이지 무례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간옹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대책 없는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유비가 처음 익주에 갔을 때 간옹도 함께 있었는데 유장이 그를 무척이나 높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종 유비의 사자로 활약하기도 했지요. 그러니 적어도 공식적인 외교 석상에서는 자리에 걸맞게 행동할 줄 알았던 사람입니다. 하기야 그런 자리에서까지 무례하게 구는 작자였더라면 그때껏 살아남지도 못했겠지요. 간옹은 안에서 새는 바가지였을지는 몰라도 밖에서까지 새는 바가지는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유비는 반평생 천하를 누비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몇 차례나 성공과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리고 실패할 때마다 그야말로 거지꼴이 되어서 도망치기 일쑤였지요. 게다가 유비의 휘하에 있었던 자들은 다들 개성이 엄청나게 강해서 서로 융화되기 어려울 지경이었는데, 보통 이런 조직은 평상시에는 멀쩡해 보여도 위기에 처했을 때는 모래성처럼 붕괴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유비의 부하들은 실로 놀라울 정도의 결속력을 보여 주며 그 어떤 위기가 있더라도 한마음 한뜻으로 계속 유비를 따랐습니다. 저는 그게 간옹이 그 특유의 소탈한 성품으로 마치 큰형님처럼 중심축 역할을 해준 덕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또 간옹은 우스개에 능했는데 때로는 그런 농담을 통해 유비를 슬쩍 깨우쳐 주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유비가 익주를 차지한 후 금주령을 내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관리들이 순찰을 돌다가 한 집에서 술 빚는 도구를 발견하고는 술을 만든 걸로 간주해서 형벌을 내리려 들었습니다. 이때 간옹이 유비와 함께 돌아다니다가 한 남녀를 발견하고는 느닷없이 유비에게 말했지요.  
      
  “저들이 음란한 짓을 하려 하는데 어째서 잡아 가두지 않습니까?”
  유비가 의아해하며 물었지요.  
  “그대가 그걸 어찌 아시오?”
  그러자 간옹이 천연덕스레 대답했습니다.  
  “음란한 짓을 하는 도구를 가지고 있으니 음란한 짓을 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성기가 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음란한 짓을 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술 만드는 도구를 가지고 있다 해서 무조건 술을 만들었다고 간주하는 게 말도 안 된다는 걸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말한 것이지요. 유비는 너털웃음을 짓고는 즉시 술 만드는 도구의 주인을 사면했다고 합니다.  간옹은 이런 부류의 골계에도 능한 인물이었습니다.
      
  유비를 따라 천하를 주유하며 갖은 고생을 겪었던 간옹은 유비가 익주의 주인이 된 이후에야 비로소 영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유비는 간옹을 소덕장군(昭德將軍)에 제수하고 미축의 아래, 손건과 이적 등과 같은 반열에 올림으로써 그간의 노고에 보답하지요.  
      
  간옹은 안타깝게도 부귀영화를 오랫동안 누리지 못하고 몇 해 후 사망합니다. 하지만 주군의 동네 친구이자 막료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한 그는 이른바 간손미의 일원으로만 평가절하할 수는 없는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간옹을 보면 유비의 배포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자신의 면전에서도 제멋대로 구는 간옹을 단지 자신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냥 보아 넘긴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유비가 그렇게 공사를 구분하지 못했더라면 다른 부하들이 진즉에 불만을 품었을 테니까요. 그보다는 간옹의 능력과 조직 내에서의 역할을 인정해 주었기에 관대하게 보아 넘겼다는 게 더 올바른 추측일 겁니다.

  다시 말해서, 무례하고 오만방자한 인물도 그만한 능력이 있다면 포용할 수 있었단 거지요. 그래서 저는 유비가 진정 황제의 관을 쓸 만한 자격이 있었던 군주라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관점에서 보면 간옹이야말로 진정 주인을 잘 만난 셈이지요. 예컨대 원소나 여포 휘하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진즉에 목이 달아났을 테니까 말입니다. 하기야, 간옹쯤 되는 인물이면 애초에 누울 곳을 보고 다리를 뻗긴 했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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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時雨
19/09/22 23:30
수정 아이콘
섹드리퍼로 역사에 남은 사나이...
19/09/23 01:27
수정 아이콘
근거는 없지만, 간옹이 저 이야기를 하면서 꽤나 외설적인 손짓을 했을 거라는 킹리적 갓심이 있습지요.
갈색이야기
19/09/23 00:03
수정 아이콘
치세능신 난세간옹
19/09/23 01:26
수정 아이콘
인생은 간옹처럼...... 이라고 하기에는 고생을 좀 많이 하긴 했죠.
펠릭스30세(무직)
19/09/23 00:08
수정 아이콘
원래 삼성전자 사장보다 중요한게 미전실장 아닙니까.

저는 벼슬이 높은것도 당연하지만 실재로도 조직내 위상이 낮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걸맞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구요.
19/09/23 01:30
수정 아이콘
위상은 탑클래스까지는 아니었겠습니다만 그렇다고 낮지도 않았을 겁니다.
입촉 전까지 간옹보다 높은 대우를 받았을 법한 인물은 기껏해야 관우 장비 미축 제갈량 정도일까요.
19/09/23 00:38
수정 아이콘
실무보는 사람들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들한테 적당한 시점에 아이스크림 사주고 커피 사주는 형님도 중요하지요.
19/09/23 01:29
수정 아이콘
유비에게 작살나게 깨지고 혼자 울고 있으면 쓱 가서..
괜찮아 짜샤. 우리 사장도 널 싫어해서 그런 건 아냐. 그보다 술이나 한 잔 빨러 가자. 오케이?
뭐 그런 식으로 격려도 해주고 했을 것 같습니다.
19/09/23 00:43
수정 아이콘
창천항로에서 찰지게 묘사했죠.
탈로아둔
19/09/23 00:52
수정 아이콘
역시 난세의 간옹
saintkay
19/09/23 01:20
수정 아이콘
올리신 타이밍이...흐흐흐
19/09/23 01:25
수정 아이콘
의도한 건 아닙....('' )
지탄다 에루
19/09/23 01:24
수정 아이콘
난세의 간옹!!
초짜장
19/09/23 01:24
수정 아이콘
내가 탁군에서 16살때부터 유형을 모셨다...
19/09/23 01:25
수정 아이콘
그래서 쓰니는 누구를 제꼈어?
스타나라
19/09/23 08:44
수정 아이콘
쓰니는 아무도 안제껴!
19/09/23 09:11
수정 아이콘
아...답변 고마워
19/09/23 08:28
수정 아이콘
이건 법정의 위엄이라고 봐야..
19/09/23 08:31
수정 아이콘
인터넷에 간옹이 법정에게만은 공손하게 굴었다는 식의 이야기가 있긴 한데 그 진위나 출처를 모르겠습니다.
도날드트럼프
19/09/23 09:09
수정 아이콘
근데 간손미 간손미 하지만 모두 대단한 사람들 아닌가요?
19/09/23 09:15
수정 아이콘
대단한 사람들 맞습니다. 특히 미축이 없었으면 유비는 진즉에 길거리에서 죽었을 확률이 높겠죠. 손건 아니었으면 원소나 유표에게 문전박대당했을 수도 있고요.
도날드트럼프
19/09/23 10:23
수정 아이콘
미축은 자산을 손건은 외교를 간웅은 내부결속을 각각 담당한다고 보면
모두 자기가 원탑은 아니어도 보좌하는 역할로는 어느 진영에 가도 출세했을 사람들인데
거기다 초창기 유비코인 탑승에 존버라는 안목과 인내력까지 보면 진짜 대단한거 같아요
19/09/23 09:10
수정 아이콘
관우, 장비 : 군주와 엄청나게 친한 전국구로 노는 무장.
제갈량 : 군주가 3번 만나러 가서 잡아온 슈퍼 엘리트 문신.
미축 : 자본금 대준 유비군 대주주이자 군주의 매형.

이 다음이 간옹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럼 그 위상이 결코 낮을래야 낮을 수가 없긴 하네요.
전설속의인물
19/09/23 09:37
수정 아이콘
중드 사마의를 본 후 그동안 소설이나 게임에서 쩌리(?) 취급하며 무시했던 인물들 하나하나에 관심이 가더라고요.(물론 수 많은 무장들의 스토리를 다 담아낼 순 없겠죠.)
손간미도 그저 그런 무장 중 하나라고만 여겼었는데(장수가 부족할 때는 아쉬워 중용하다가 능력치 좋은 장수 생기면 그냥 어느 구석에 박아 뒀던..)
손,간,미도 사실 엄청난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삼국지는 파면 팔수록 새로운 매력이 드러나는 듯 합니다.
야스쿠니차일드
19/09/23 10:26
수정 아이콘
간손미..침착맨이 만든 가장 큰 폐해죠.
입에 짝짝붙고 재밌어서 농담거리로 쓰는 말이지만, 대다수의 너,나,우리는 간손미급이 되기도 힘든 현실..
19/09/23 11:25
수정 아이콘
통무지정매 장수 등급제의 패혜죠...
지니팅커벨여행
19/09/23 11:49
수정 아이콘
간손미의 필두로 후세에 기억되는 것만 봐도 대단한 인물이죠.
위상이 낮았다면 손미간이나 미손간으로 겨우 끼었을지도 모를...
입에 촥촥 감긴다는 점에서 엘롯기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어감입니다.
19/09/23 12:21
수정 아이콘
사실 정사 삼국지 기준으로는 미손간(...) 정확하게는 허정 미축 손건 간옹 이적 진밀 순이네요.
지니팅커벨여행
19/09/23 13:43
수정 아이콘
아 그럼 엘롯기랑 잘 맞아떨어지네요 크크크
이치죠 호타루
19/09/23 11:56
수정 아이콘
조조 밑에 있었다면...
이놈의 목을 쳐라!
티모대위
19/09/23 20:14
수정 아이콘
유비 측근에서 평생을 함께했다는 것: 능력 있는 인재라는 뜻이죠.
간옹이 그간 여러 매체에서의 모습을 통해 컬트적 인기가 있는 인물이긴한데, 저도 실제로는 무형의 능력이 대단했던 인물이 아닐까 하고 짐작합니다.
눈에 띄는 무력과 지력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지혜가 깊은 그런 스타일 말이죠.
치열하게
19/09/23 21:29
수정 아이콘
서로가 서로를 띄어주는 관계 같습니다. 저 간손미 브라더스를 거느릴 만큼 대단한 유비, 그 유비 밑에서 끝까지 능력을 발휘한 간손미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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