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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8/01 01:04:08
Name VrynsProgidy
Subject [일반] (소소한 일상글) 잃어버린 카드를 마음씨 착한 여성분이 찾아준 이야기 -上


한 달 전,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 휴가를 내고 쉬고 있던 어느 날, 나이 서른 가까이 먹고 다들 자차 한대 씩 굴리면서도 뭐가 좋다고 버스 타고 동네 PC방에 매주 모여서 잘하지도 못하는 게임을 즐기는 친구들이, 오랜만에 얼굴 보자고, 오늘은 꼭 나오라고 연락을 해왔다.

처음엔 몇 번 "안 가 인간 쓰레기들아 나 아파 쉴 거야, 나 지금 본가 아니야 회사 근처 숙소야 갈라면 한참 걸려" 하고 거절해보지만 전화기가 불 탈 때까지 놔주지 않는 그들의 집념 어린 연락에 결국 체념하고 집을 나서 PC방에 도착했다.

어릴 때부터 비흡연자인 내게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는 꿉꿉한 냄새를 참고 PC방에 들어가니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신나게 깔깔대며 배그를 즐기고 있는 예비 30대 아저씨들이 구석탱이에 앉아 있는게 보인다. 대충 옆에 빈자리를 쓱쓱하고 몇 번 쓸어낸 뒤 그들 옆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타라 노답들아 형이 캐리 해 줄게"


대충 그렇게 게임 몇 판을 캐리하고, 동네 쌀국수 집에 가서 밥 한 끼를 먹고 헤어져 버스를 타고 강남으로 돌아가는 도중, 거의 후불교통카드 용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체크카드를 집어 넣으려 별 생각없이 지갑을 보는데 아뿔싸, 세상에 밥 먹을 때 계산하려고 꺼냈던, 카드가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것이 아닌가?

원래 20대부터 풍류를 즐긴다는 명분하에 꽐라가 되는 게 일상이었던 지라 카드를 자주 잃어버리고 자주 재발급 받는 편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당장 카드를 쓸 일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가까운 곳에 거래 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재발급 받기까지 엄청 귀찮아졌다고 자책하며 ARS로 분실 신고를 했는데, 분실 신고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카드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XXX 고객 님이시죠? 지금 분실 카드를 습득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연락 드렸는데요, 혹시 XXX 카드를 XX역 정류장 근처에서 잃어버리셨나요?"

여차저차 해서 분실 한 걸 확인했고 신고도 했다고 얘기하니, 상담사분께서 뜻밖의 이야기를 해오셨다.

"지금 습득하셨다고 신고해주신 분이 본인 연락처를 남겨주셨는데 혹시 본인하고 한번 연락해보시겠어요?"

아니, 도시 사람들의 삭막한 인간성 어쩌고 하며 현대인의 메마른 감성과 개인주의적인 심성에 대해 비판하고 반성하는 책이 수 천권씩 쏟아져 나오는 21세기에, 누가 모르는 사람이 떨어트린 카드를 주운 걸로 모자라, 그걸 바로 카드 사에 신고까지 한 것도 놀라운데, 거기다가 한 술 더 떠서 본인 연락처를 남겼다고?

부처님이 우리 동네에 볼일이 있어서 행차하셨나 하는 의문점을 가진 채, 상담사분께 일단 그럼 분실 신고를 취소 해 달라고 요청한 뒤 전화를 끊고 안내 받은 습득자분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XX역 버스 정류장에서 카드 잃어버린 사람인데 제가 카드사에 전화해보니 고맙게도 연락처를 남겨주셨다고 하더라구요~'

'아 안녕하세요 맞아요 제가 주웠어요. XX카드 노란거, 맞죠?'

목소리를 들어보니 나보다는 꽤 나이가 젊으신 여성분이신거 같았다. 정말로 고맙다는 이야기를 거듭해서 드렸더니 혹시 어디시냐고 물어보시길래, 지금 강남이라 대답해드렸다.

그랬더니 자기가 지금은 공부를 하러 가느라 학교 도서관에 가는데, 혹시 이 근처 사시면 직접 가지러 잠깐 저녁에 떨어트렸던 정류장으로 나오실 수 있는지 물어오셨다.

사실 습득자분께 전화를 걸 땐 일단 카드를 찾아준 것 자체로도 내게 시간적으로 매우 크게 도움이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얼핏 생각해도 상당히 귀찮은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남을 돕기 위해 해주시는 게 너무 감사하기도 했고 그런 사람이 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기도 했기에, 어지간하면 한번 얼굴이라도 보고 밥이라도 사드리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성별도 다르고, 대충 이야기로 추정하기에는 나이 차도 좀 나는 것 같아, 괜히 상대도 부담스럽고 나도 찝찝해서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 제가 지금 사는 곳이 멀기도 하고, 수고 스럽게 그렇게 까지 시간 맞춰 나와주실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그냥 괜찮으실 떄 주변 경찰서나 은행에 맡겨주시면 그것 만으로 너무 감사할 거 같습니다. 만나서 주시는 게 가장 편하시면 만나러 가구요. 무조건 본인 편하신 대로 해주세요. "

'그럼 오늘 일이 끝나고 근처 가게에 맡기고 연락을 드리겠다' 하고 이야기를 하시길래 알았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끊고 나서 고마운 마음이 가시지 않아 오늘 카드를 떨어트렸던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를 찾아 기프티콘을 결제한 뒤, 다시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문자로 보내드렸다.

이후 그 날은 공부가 늦게 끝나셨는지 맡기지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으며, 다음 날 낮에 나도 자주 왔다갔다 해서 익숙한 본가 근처 가게 사진과 함께 이 곳에 맡겼으니 찾아가시라는 문자와 함께 커피 잘 마시겠다는 답장이 왔다,

그 날 일이 끝나고 나는 바로 그 가게에 들러 물건을 몇 개 사고 카드를 찾으러 왔다고 아르바이트분께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안쪽에서 사장님이 나오셔서 '원래는 이런 거 절대 안 맡아드리는데, 특히 카드라 진짜 맡아드리면 안되는데 자주 오시는 분이고 좋은 뜻으로 하신 얘기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드렸다' 하고 곤란하다는 듯이 말씀해오셨다.

고맙다 죄송하다 말씀 드리고 샌드위치, 과자 몇 개와 카드를 챙겨 집으로 돌아오며, 부디 그 착한 사람에게 더운 여름 커피 두 잔 보다 더 가치 있고 멋진 행운이 찾아가길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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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편은 스토리가 끝나는 대로 올리겠습니다. 

* 좋은 일을 남에게 받은 만큼 베풀고 살아야 하는데 요새 이상하게 너무 많이 받아서 받은만큼 베풀기가 벅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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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llionaire
18/08/01 01:15
수정 아이콘
왜 여기서 안끝나는거죠! 설마 적군 출현 진돗개 하나 발령인가요?!
MagnaDea
18/08/01 01:17
수정 아이콘
스토리가 이어져 나가고 있다뇨. 이 얼마나 무서운 얘기인가요! 그냥 여기서 열린 결말로 마무리 지으시죠.
Maiev Shadowsong
18/08/01 01:19
수정 아이콘
뭔가 '지금도 연락하면서 보답할 약속을 잡고있습니다' 라고 끝날거 같은 불안한 느낌이....
18/08/01 01:21
수정 아이콘
아래글은 카드 찾아준 이야기, 이 분은 카드 찾은 이야기... 혹시 ...
VrynsProgidy
18/08/01 01:24
수정 아이콘
크크크크 어제 이 글 써야지 하는 맘을 먹고 글을 쓰는 도중 올라온 현직백수님 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도르래
18/08/01 02:39
수정 아이콘
현직백수님 글에서 아이디어 얻어서 쓰신 창작글인 줄 알았는데 실제 이야기였네요. 신기합니다.
4막1장
18/08/01 04:36
수정 아이콘
슬슬 죽창을 만지작 거리게 되는데...
좀 닦아둬야겠어요~
구름과자
18/08/01 07:40
수정 아이콘
죽창각인가요?

2부 기대하겠습니다!
현직백수
18/08/01 08:12
수정 아이콘
으즈므니.... 왜....난...그프트큰 은즈셧스여.....
달콤한인생
18/08/01 08:25
수정 아이콘
불길한 예감이...
18/08/01 08:29
수정 아이콘
전 예전에 휴대폰 찾아준 아가씨와 1년정도 만났었습니다.

예전 생각 나네요. 잘 살고 있나 ...
페스티
18/08/01 09:01
수정 아이콘
하편이... 있다고요?
양념반자르반
18/08/01 09:07
수정 아이콘
잠깐, 이게 하편이 있다구요?
이 분이.........
타카이
18/08/01 09:20
수정 아이콘
정말 마음씨가 고운 분이시네요.
하편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진행속도상 저는 대나무부터 준비하겠습니다.
곤살로문과인
18/08/01 09:50
수정 아이콘
암구호 대세요 아니면 쏴버리겠습니다
부들부들
18/08/01 10:02
수정 아이콘
(수정됨) 흠 여기서 이야기가 이어지면 안되는데...?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보이는 커피 기프티곤 '2'잔요?
이분.... 후............
18/08/01 10:19
수정 아이콘
내용은 하편이 있으면 안되는 내용인데.....
Slip Away
18/08/01 10:38
수정 아이콘
죽창용 대나무 팝니다! 귓주세요!
아점화한틱
18/08/01 11:24
수정 아이콘
본인 입으로 캐리했다는 사람 말은 믿는거 아니라고했습니다.
18/08/01 11:27
수정 아이콘
아 이게 하편으로 가네요....
산적왕루피
18/08/01 11:39
수정 아이콘
그래서, 그 여자분은 이쁘다고 하던가요!?
김정각
18/08/01 12:04
수정 아이콘
하..
사실은나네가좋아
18/08/01 13:02
수정 아이콘
하편이라니...하편이라니!!!
금빛구름
18/08/01 13:08
수정 아이콘
이게 하편이......???
18/08/01 14:16
수정 아이콘
여기가 끝이라고 말해주세요 제발 크크
18/08/01 14:44
수정 아이콘
이걸 하편이??? 훈훈하지 않게 끝나는거 맞죠???
Blooming
18/08/01 14:50
수정 아이콘
아니 하편이 왜 있는거죠? 이대로 끝나는게 맞는데..
생겼어요
18/08/01 17:45
수정 아이콘
그냥 끝나야지 하편이 있을 글이 아닌데?
18/08/01 18:09
수정 아이콘
사람을 답답하게만드는 방법이 두가지있는데
첫번째는 하던 말을 끝까지 안하는거고
두번째는
지니팅커벨여행
18/08/02 19:10
수정 아이콘
두번째는 하편이 있다 했는데 바로 올리오지 않는 것ㅠ
살려야한다
18/08/15 14:27
수정 아이콘
이디야 바이럴로 신고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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