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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8/01/20 03:13:48
Name 신불해
Subject [일반] 역사를 보게 되는 내 자신의 관점 (수정됨)




2010년에 '신삼국'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부분이 아니라 군웅할거부터 삼국대립까지 전체적인 스케일을 맞춘 드라마로는 오랜만의 삼국지 드라마였고, 돈도 잔뜩 들인 드라마라 국내에서도 제법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 드라마를 본 저는, 중드 사극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고사나 옛 인물에 견준 비유를 전혀 알아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의 저에게는 하상주춘추전국진한위진남북...식으로 이어지는 중국 왕조의 순서도 수수께끼나 마찬가지 그 자체였습니다. 드라마에서 허구한날 언급되며 현재 인물들에게 비유되는 '관중, 악의' '소진, 장의' 가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심지어 드라마에서 관우가 "좋아, 사내는 항우 장사 같아야지!" 하는데 '항우' 에 대해서도 "엄청 힘이 쎈... 그러니까 뭔가 젊고 엄청 강한.... 뭐 그런 사람" 정도의 인식 밖에 없었구요.



당시에 저는 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역사와는 1도 관련 없는 전공을 하다가, '어차피 아무 생각도 없는데 그러면 아무 생각없이 돈이라도 벌어야지' 라는 심정으로 그만두고 군대-직장의 길로 가고 있었는데, 여하간에 역사 관련해서 알고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는게 아무것도 없는데, 뭘 보려고 해도 당시엔 '사기' 의 '편제방식' 마저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서점에서 볼 수 있는, 사기에서 열전 부분만 따로 똑 떼어서 이야기 형식으로 만든 책 같은걸 막 보면서 거기서 누구 알게 되면 누구 더 알아보고, 누구 알아보게 되면 또 다시 누구 알아보고... 그러는 식으로 계속 봤습니다. 인터넷에서도 막 계속 검색을 했구요. 역사 커뮤니티, 역사 카페 등에도 가서 가입하고 눈팅을 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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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한 줄도 모르고 기습적으로 이런 질문 올리던 때...





그렇게 막 근본 없이 이렇게 저렇게 인터넷 에서 본 글 읽고, 이야깃책 종류를 읽고, 그러다가 대중교양서 읽고, 그러다가 전문서적 읽게 되고, 그러다가 원문을 찾아 읽게 되고, 논문도 찾아 읽게 되고...



그런 식으로 막 근본없이 되는대로 찾아서 보게 되었고, 중국 왕조 순서 조차도 알 수 없었던 때로부터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읽고 보고 배우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분명한 사실 딱 하나는,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다' 오직 이것 하나만 명확해지더군요.



맨 처음에는 뿌연 이미지 속에 단편적인 그림이 뭉텅뭉텅 떠오르는 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면 휙휙 큼지막하고 명확하게 보이니까 "오! 이렇구나!" 하면서 명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큼지막한 그림 속에 들여다보면 엄청나게 잘게 쪼개진 세세한 것들이 보이는데, 그 작은것들을 옆에 바짝 붙어 본다고 치면, 다시 정신차리면 그것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크고 많고, 심지어 이어져서 흔들거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떤 뭔가를 보면 처음에는 알았다!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이걸 보면 볼수록 내가 진짜 이걸 아는건가 싶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걸 안다고 하는건 불가능하겠구나' 라는 생각만 들게 됩니다. 본다고 보면 볼수록 결국 '내가 모르는게 너무 많다' 이것만 보게 되더군요.











그래서인지 이런 생각과 상관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역사 교육' 이라는 측면에서도 뭔가 이런 시각이 되더군요. 근현대사 관련한 많은 이야기들이야 정치적 이슈와도 연이 닿아있으니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고, 다만 밑도 끝도 없이


"한국 전쟁이 몇년에 발발했어요?" 


"조선 세운 사람이 누구에요?" 


"윤봉길 의사가 던진게 도시락 폭탄인가요, 아닌가요?"



이렇게 단편적인 이야기를 몇개 물어보고 모른다고 하면 "저 인간 무식하네" "통탄할 일이다." '역사 교육이 이 모양……"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이라고 하면서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식의 이야기를 보면, 개인적으로는 그렇더군요. 그럼 저런거 몇 개 아는 사람은 역사 의식이 충만하고 미래를 향해 점진하는 사람일지는 좀……



역사 교육이 발전하면 좋은거야 말할 나위가 없겠습니다만 뭔가 좀 핀트를 잘못 잡는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박사 학위 딴 이덕일이 저런거 몰라서 일개 인터넷 역덕후들에게도 비웃음을 당하는것도 아니고. 역사도 과학이나 수학같은 엄연한 학문의 종류고, 제대로 들어가는건 둘째치고 지엽적인 부분에만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구요. 



과학이나 수학을 고등학교 과정에서 끝마치지 못했다거나 고등학교 때 배운 과학 지식 좀 잊어먹었다고 대역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혀를 차진 않을텐데....


개인적으로 학교 차원의 역사 교육이란 학생들이 편견이나 치우친 시각이 아닌 비교적 건전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가르칠 수 있을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차피 그 이상도 무리고. 거기서 더 나아가고 싶으면 따로 공부를 하거나 졸업 후에 역사쪽에 전공 - 혹은 취미를 보이던가 하는 일이고.


역사는 그냥 역사고, 이런저런 일을 알게 되면 본인 스스로 뭔가 여러 느낌을 받을 수야 있겠지만 그걸 막 남이 역사 하라고 시켜서 '인격 도야' 할수야 있겠느냐...뭐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당연히 저도 당나라 이후에 왕조가 무슨 왕조인지도 모를때보다 딱히 인격도야를 하진 않았구요. '까불지 말자' 는 식으로 좀 겸손해지긴 했을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첫번째가 그렇게 '알게 되었다' 는 것이라면, 두번째는 그걸 보게 되는 제 자신의 '태도' 에 대한 부분입니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명쾌하게 설명되는 정답을 원했습니다. 쉽고 간편하고 설명이 쏙쏙되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답 같은건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윽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역사는 역사다' 라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시를 들어 이야기 한다고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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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퍼듀의 '중국의 서진' 이라는 책에서는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지도에 보이시는 것처럼 청나라의 최절정기 영토는 어마어마 했습니다. 만주에서 시작해 중국 내지를 점령하고 몽골과 티베트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서부 사막의 오아시스들까지 손아귀에 집어 넣었습니다. 보통 큰 영토를 '정복' 한 정복 활동은 크게 강조되는 것이 대부분이고, 만주족이 중국에 동화된 상태에서 만주족의 대정복은 중국의 대정복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 측에서 나오는 많은 책에서는 이런 청나라의 '정복' 을 크게 강조하지 않습니다. 강희제 등의 군주 역시 '정복 군주' 의 이미지가 강하지도 않습니다. 어째서? 정복이 아니라 통합을 했기 때문입니다. '티베트와 내외몽골, 위구르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병합' 한 것이 아니라 '통일' 을 했다는 것입니다.



청나라의 강희제를 한때 중국 정부에서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부각 시키던 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강희제가 많은 업적을 남긴 황제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강희제를 부각시킬때 가장 중점이 되는 부분은 정복군주, 대단한 학식 이런것보다도 대통합을 달성한 지도자라는 측면이고, 반면 강희제에 대항한 여러 적수들 - 대만의 정씨 왕조, 준가르 몽골의 가르단, 달라이 라마 5세 사망을 기점으로 강희제를 속였던 티베트의 제파등은 '분열' 이라는 요소로 설명 됩니다. 통합된 중국을 뒤흔들려는 분열주의자들이라는 식입니다. 여기에 러시아는 사악한 뒷배 정도 되고..



강희제가 이들 적수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은, 왕성한 정복 활동이 아닌 중국 민족을 분열시키는 분열주의자를 격파하고 대통합을 이루어냈다는 식으로 설명 되곤 합니다. 어째서 그러한 시각을 중국 쪽에서 유지하는 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그렇다면 몽골 학계의 대체적인 시각은 어떨까요?



중국과 북방의 몽골 사이에는 '장성' 이라는 물리적인 방해물이 있습니다. 북방의 장성들은 중국의 민족주의적 서술에서는 '생각보다' 중요한 의미가 없습니다. 현 중국의 영토 경계선은 청나라의 영토 경계선을 물려 받았고, 당연히 장성 아래쪽과 북쪽은 '한 영토' 이며, 여기서 발생한 분쟁 역시 '외적과의 전쟁' 이 아닌 '내부 분쟁' 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중국과 몽골은 역사적으로 완전힌 별개인 동시에, 정치적 - 문화적으로 언제나 1 : 1의 대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는 것이 몽골 학계의 주된 입장이고, 때문에 몽골 역사학자들의 손에서 중국인이 쌓은 장성은 더욱 강조가 됩니다. 이 장성을 기점으로 중화 세계의 관내와 유목 세계의 관외과 구분이 되어 몽골의 자립성이 옹호 되기 때문입니다.



청나라 시기 몽골인으로서 청에 대항한 인물로 가르단, 아무르사나(Amursana)라는 인물 등이 있습니다. 제 3자인 서구 학계의 시각에서 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청나라와 맞서 싸웠던 존재들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몽골 왕공들 역시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청나라에 합류하곤 했습니다. 몽골의 민족주의 서술에서 가르단과 아무르사나 등은 자신들의 이득 때문이 아니라 '민족해방운동' 성격으로 몽골에 대항한 인물들로 묘사됩니다. 반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청나라에 합류한 왕공 등은 자유롭게 행동한 객체라기보다는, '민족의 적' '타도되어야할 봉건적 잔재' 등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현 중국의 판도를 만든 최대의 영토 확장을 '정복' 이 아니라 '통일' 이라고 강조하는 중국의 시각과, 당시 청과 자신들의 관계 이상으로 서로간에 사이가 나빴던 내외몽골의 여러 부족들이 개별적인 가치와 이해득실을 위해 움직이며 청에 병합하거나 대항했던 각각의 생존 전략을 '민족 자립' 과 '외적에 굴복한 봉건적 노예' 등으로 식으로 몽골학계가 묘사하는 과정을 서술한 미국 사학자의 책을 본 한국인으로서, 해당 부분을 접할때 상당히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이것은 과거 펼쳐진 일에 대한 현대적 가치 부여 입니다. 이와는 좀 다른 케이스로, 제가 책을 보면서 인상깊게 느꼈던 또다른 부분을 인용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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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엑의 분석은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 및 티베트 불교의 다른 전생 라마들과 청나라 황제가 맺은 관계를 특정지는 모호성을 부각시킨다. 이들은 모두 상징 내용에 일대 전환이 일어났던 바로 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이는 전통적인 라마 - 후원자 관계에 혼돈을 초래했다. 그러므로 청 - 티베트 관계에 대해 티베트인의 설명이 한인의 설명과 크게 다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똑같은 사건에 대한 "독해" 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었는지는 1780년에 판첸 라마의 창더와 베이징 방문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나 있다.


 1780년 건륭제는 여름 수도인 청더에서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고 있었다. 판첸 라마는청더까지 여행하여, 그곳에서 황제를 만났다. 청더에 머문 5주일 동안 그는 청더의 궁괄과 사원들을 신성하게 만들었다. 그는 승려들과 청 궁정을 상대로 설법을 베풀었다. 그는 황제와 기타 사람들을 밀교적인 탄트라에 입문시켰다. 지토가 보여주듯이, 티베트어와 한어 사료들은 '초청' 으로 시작하여 방문 자체에 대한 자세한 묘사로 결말을 맺는 이야기 전체에 각각 신중하게 구조화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서로 다른 설명 내용은 이들 기록의 독자가 다르다는 것을 반영한다.


 티베트어 기록들은 이 만남을 라마 - 후원자 모델의 견지에서 파악하고, 황제가 판첸 라마에게 (당연하게도) 표했던 경의를 강조하며, 스승의 우월한 지위를 부각시킨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어 기록의 설명들은 황제를 알현할 때의 의식 예절의 일부로 판첸 라마가 수행한 복종의 의례들을 강조한다. 이 만남은 황제의 종교적 관심과 (그의 시각에서) 보편 군주로서의 자기 지위를 구체화하려는 의도가 결합된 것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을 엄밀하게 위계적인 술어로 해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거니와 적절하지도 않다. 이 사건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도출할지는, 어떤 문화적 시각을 취하느냐에 따라 달려있다. 티베트 승려들이 황제를 "문수보살" 이라고 불렀을 때, 그들이 그 칭호를 썼던 맥락에는 탄트라의 가르침 속에 조직된 부처들과 보살들의 집단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각 영적 존재의 무수한 현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가능했다. 티베트 불교도에게 청나라 황제가 달라이 라마를 "관음보살" 로 승인한 것은 황제가 그들의 종교적 틀을 수용했음를 상징했다. 마찬가지로, 판첸 라마가 황제와 그의 궁정을 위해서 수행했던 봉사 속에는 판첸 라마를 "스승"  으로 받아들였음을 내포되어 있었다.


- 최후의 황제들 - 청 황실의 사회사 : 이블린 S. 로스키 pp. 334 ~ pp. 338





청나라가 단순히 중화 제국의 범주를 넘어 내외몽골과 중앙 아시아까지 손을 뻗치게 되자, 이들에게 중요하게 된 것이 바로 '티베트 불교' 입니다. 당시 몽골과 중앙 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던 종교가 바로 티베트 불교 였고, 라싸는 중앙 아시아의 바티칸이나 다름 없는 입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티베트 불교 쪽에서도 새롭게 부각하는 청나라와 제대로 손을 잡고 황제의 보호를 받는 종교로 권위를 확립하면 큰 입지를 가질 수 있기에 두 세력은 일찍부터 결합했습니다. 그러는 동시에, '세속의 지배자' 와 '영적인 지배자' 로서 자신의 위치와 권위를 양자의 관계 속에서도 어느정도 강조했습니다.




전 이 책을 보면서 해당 부분에서 굉장히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건륭제와 판첸 라마의 만남은 당대에 펼쳐진 사건에 대한 당대인들의 '완전히 다른 시각' 이라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앞서 설명한 중국-몽골 학계의 시각보다도 더욱 크게 다가왔습니다. 



1780년에 청더에서 청나라의 황제 건륭제와 티베트 불교의 판첸 라마가 만났습니다. 이것이 단 하나의 '역사적 사실' 입니다. 그리고 이 '역사적 사실' 에 대한 한어와 티베트어의 '매우 구조적으로 정립된' 기록들은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며 완전히 다른 결론을 도출합니다. 



티베트 어로 된 기록은 황제가 판첸 라마에게 행한 경의와 존중, 우의의 태도를 강조해서, '황제의 스승' 으로서 티베트 불교 지도자의 우월한 지위를 강조합니다. 반면 한어로 된 기록에서는 황제를 알현할때 라마가 취한 의식과 절차 예절을 강조해서, 판첸 라마가 황제에게 행한 복종의 의례를 강조합니다. 



아예 사건 자체의 물리적인 구조를 뜯어고쳐 왜곡을 하는 경우라면야 상충되는 기록속에 하나의 정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뭐가 정답일까요?



건륭제와 판첸 라마가 만난 것은 '내가 어제 술 먹었다' 는 정도의 하나의 사건입니다. 맞으면 맞지 거기에 다른 게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떤식으로 보고 싶으냐에 따라, 그 의미는 수없이 많게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실 너무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사실이 굉장히 확실하고도 무겁게 느껴지더군요. 그리고 대략 그때부터, 지나친 민족주의를 비롯해서 사실 모든 종류의 전체주의적 시각에 대해 시큰둥 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떠한 사건에 내가 내 자신이 겪었던 체험과 문화, 환경적 요인에 근거해 무엇인가의 시각을 굉장히 강조해서 투영한다고 하면, 그건 나와 전혀 다른 체험과 문화, 환경적 요인에 근거한 다른 사람의 어떤 투영에 비해 딱히 크게 우월한게 있긴 한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게 되어 결국 나온 결론이,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 과연 철저히 주관성을 배제할 수 있느냐' 라는 말이야 백번 맞겠지-- 면서도 '아니 그래도 그러려는 노력은 해야지 안된다고 대놓고 제껴 놓으면 죽도 밥도 아니지 않나' 는 식이 되어, '역사는 그냥 역사다' 라는 생각을 느꼈습니다. 



내가 그것을 보면서 교훈을 얻을 수도, 비판을 하게 될 수도, 여러가지 통찰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냥 '역사는 역사일 뿐' 라는 생각으로 그 시대상을 대해야 겠다...는 생각들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면서 개인적으로 맹세(?) 한 게 하나 있습니다. 무슨 글을 쓰면서 "이 사건을 보니 요즘 정치판 이슈인 무슨 사건이 떠올라서 씁쓸하" 다느니, "이 역사 인물은 작금의 정치판의 누구를 떠올리게 하는데 참 그 사람 만큼 잘났/못났다" 는 따위의 글은 절대로 쓰지 말자는 생각입니다. 



본래도 아는게 없는 사람이지만, 그럴 경우엔 정말 '알지도 못하는걸 안답시고 견주는' 행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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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18/01/20 03:38
수정 아이콘
주관적인 잣대로 재단하기엔 너무 어렵죠….
말씀하신 것처럼 절대적으로 객관적이고 진실한 역사는 없겠지만, 그러한 한계성을 자기 줏대로 배제하고 뚜렷한 방향성을 만들어내는 과감성과 그 자격이 전공자의 영역이라고 느껴져요.
새벽포도
18/01/20 04:06
수정 아이콘
1.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2.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로다.
3.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로다.
4.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역사에 대한 성찰이 4단계까지 오신 것 같습니다.
18/01/20 04:06
수정 아이콘
아니 역알못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신하는데 8 년밖에 안 걸렸다고요???? 이 분 최소 천재.
堀未央奈
18/01/20 07:46
수정 아이콘
이곳에서 2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여러 10대, 20대들의 경이적인 글을 읽어왔지만
'신불해가 20대'의 충격은 역대 최고였던 것 같습니다 흐흐
18/01/20 11:27
수정 아이콘
저도 놀랐네요. 최소 역사전공에 꽤 경력이 있으신 분인줄 알았는데..
한걸음
18/01/20 12:08
수정 아이콘
저도 이 대목에서 놀랐네요.
2010년도에 신불해님이 나보다도 몰랐는데, 몇 년 노력하니 이 정도 경지에 이르는구나 하며..
난 그동안 뭐한거지ㅠ
及時雨
18/01/20 04:11
수정 아이콘
늘 멋진 글 감사히 읽고있습니다.
맛있는거라도 사드리고 싶은 이 마음.
CapitalismHO
18/01/20 04:33
수정 아이콘
오스만, 청나라... 둘다 굉장히 좋아하는 나라인데 신불해 님이 던지신 질문의 토론내용을 보고 싶어지네요 크크크.
아이군
18/01/20 06:29
수정 아이콘
저 같은 경우에는 새벽포도님의 4단계중에서 2단계 쪽인 것 같습니다.

저는 역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권합니다.
http://sonnet.egloos.com/3030707

그리고 이 글에서 나온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그 역사적 사건의 교훈은 무엇인가? 우리는 보다 적은 희생으로 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나?"]

저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써 먹기 위해서 라고 봅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하였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가? 그리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위의 글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관념적으로 어떠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어떠한 미덕과 연결된 경우가 많으니깐요. 예를 들면 우리는 친일파 숙청을 "깔끔하게" 마무리 지어야 된다거나, 검찰은 다른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거나 뭐 이런식으로요.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그런것들은 이루어 질수 없거나, 이루어 지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예를들면 깔끔한 숙청을 한 사람이 있죠. 스탈린이라고, 그리고 한국 검찰은 너무 독립되어 있어서 문제입니다. 예네들은 더 많은 간섭을 받아야 되요)

아니면, 저는 종종 수백년 전에 결과가 나온 물건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격렬하게 토론하는 것을 봤습니다. 혹은 수백년 전의 삽질을 현재에 다시 저지르는 것도 봤구요.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관심을 가져야 하구요.
Vincelot
18/01/20 10:04
수정 아이콘
저도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다른 사회과학 분과를 접하고 사회 경험이 생기면서 많이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알고, 그것을 참고하는 것은 물론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현대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 역사에서 답을 찾는 것은, 예를 들자면 수학 공식에서 우주왕복선을 만들어 내는 일과 흡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에는 과거의 사정(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이 있었고, 현대에는 현대의 그것이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현대의 정답을 도출하려면, 그 모든 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실은, 과거로부터 현실의 해답을 찾는 일은 수학 공식에서 우주왕복선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수학 공식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이냐 거짓이냐로 구분할 수 있는 하나의 '팩트'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서 팩트는 극히 적고, 거의 대부분이 주관과 가치의 영역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인간에겐 직관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고, 권력과 부의 속성은 그것들이 생겨난 이래로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쉽게 판단하는 것을 자제하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태도는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하고, 여기가 실증주의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겠지요.

저도 식견이 많이 부족한지라, 써놓고 보니 중용을 지켜야 한다는 식의 뜬구름잡는 이야기밖엔 되지 않습니다만, 활용하기 위한 역사로서의 접근은 결국 현실에 대입시키기 위한 프로파간다로 변질될 우려가 매우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몇 자 적어 보았네요.
18/01/20 09:44
수정 아이콘
원말명초 이야기는 언제쯤 다시 연재하시나요 ㅠ 진짜 책으로라도 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Vincelot
18/01/20 09:44
수정 아이콘
정말 유익한 글이네요. 잘 읽었고 많이 공감합니다.
처음과마지막
18/01/20 10:15
수정 아이콘
(수정됨) 저는 역사를 보면 미래가 보이더군요
최근 일본만 봐도 임진왜란시절이나 2차대전이나
지금 군사대국화 노리는것만 봐도 일본은 대륙으로진출하려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한반도로 군대를 진출시켜야죠 근데 신기한건 임진왜란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친일파들은 있었고 대부분 방심하다가 당하더라구요 이이나 이순신장군같이 경계했던 인물들은 일부에 불과하구요 항상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정신차리는 나라 민족 같아요
일본하고 군사교류는 우리군의 취약한 정보를 줄수있기에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치죠 호타루
18/01/20 10:24
수정 아이콘
역사라는 게 진짜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주관성을 배제하려는 노력을 안 하면 안 되겠지만, 글을 쓰면서 스스로의 주관이 들어가는 건 정말 어쩔 수 없더군요. 그러다 보니 저 같은 경우는 철저하게 타임라인'만' 추적하게 되었습니다. 인물을 중심으로 추적하다 보면 호불호에 따라서 사건을 보는 축이 틀어질 수가 있으니... 그러면서도 해당 인물의 호불호에 따라 보는 관점이 갈리고 서술이 미묘하게 갈리게 되죠. 참 어렵습니다. 그냥 차라리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됍늅이
18/01/20 10:27
수정 아이콘
비전공자의 역사에 관한 글 중 이 글이 단연 최고인 것 같습니다.
저흰 이제껏 역사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18/01/20 10:45
수정 아이콘
공력으로 볼 때 최소 30대 동양사학과 전임강사로 생각했는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보통e스포츠빠
18/01/2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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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빠들은 왜 이분처럼 깨달음을 얻지 못한걸까요 ㅠㅠ???
오늘도 vs 놀이와 파시즘에 빠져사는 환빠들..
좋아요
18/01/2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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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해님과 같은 경지를 가지는 것 자체가 힘들기 때문이겠죠-_-);; 관점이 올바르냐를 떠나 특정 분야에 대한 인식 수준으로만 치면 환빠들의 능력치가 오히려 보통사람 평균에 가깝지 않을까..(신불해님은 미터기를 뚫고 나가셨고)
보통e스포츠빠
18/01/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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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교육만 이수해도 환빠수준의 왜곡은 어렵지 않습니까? 당장 국사 교과서 페이지만 봐도 항상 중립을 지키라고 알려줄텐데요...
좋아요
18/01/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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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교육을 하는 선생님들 중에도 환빠가 없으리란 보장이 없다는게-_-;; 환빠도 역사가 오래되다 보니 별별 곳에 다 있더군요.

개인적인 경험이긴 한데, 도서 박람회 갔을 때 환빠서적 부스가 기독교서적 부스 만큼 큰거 보고 이 시장도 장난 아니구나 느꼈습니다-_-a.
보통e스포츠빠
18/01/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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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종교군요 ㅠㅠ
루크레티아
18/01/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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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차피 역사라는 학문 자체가 주관과 주관의 충돌 사이에서 객관을 보는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8/01/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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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좀 다른 얘기이고 전 역사를 잘 모르지만 제가 역사에서 느끼는 건..
시스템의 부조리가 저절로 개선된 적은 없다?
항상 곪을만큼 곪고나서 터지는 거지 사회자체가 좋게 변화하고 유지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느낌?
고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건 환상이고,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어야한다는 느낌이네요.
말다했죠
18/01/2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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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과는 상충될 수 있는 댓글이지만 앞으로 괄목상대 고사를 들으면 오하의 아몽보다 PGR의 신불해님이 더 생각날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SoulCompany
18/01/2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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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oa 설현,지민이 안중근 의사 얼굴 몰랐다고 난리났던 일이 생각나네요
언제나 좋은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푸른발가마우지
18/01/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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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습니다.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18/01/2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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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덕질이 그렇겠지만 역덕의 길은 유난히 더 막막하고 어려운것 같아요. 아 이 정도면 그래도 좀 아는 편이지 하면서 깝치다가도 매번 무너지게 되는게 역사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일단 다 아는 과정도 어렵고 끝이 없는 길이지만 그걸 넘어서 해석하고 이해하는건 정말 요원해 보이는 일 같네요.
근데 그래서 역덕질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것인지도 모르죠 크크
세인트루이스
18/01/2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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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보겠다고 국사책을 통째로 외우고도 역사에 정말 관심이 없었는데 신불해님 글 덕에 역사가 재밌어지네요 크크
늘 양질의 글 감사합니다.

코인과 정치글 사이에서 꿀물같은 글입니다 크크
티모대위
18/01/2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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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윽씨 신불해 님이다...
18/01/20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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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말도안돼. 20대라니.
La La Land
18/01/20 19:13
수정 아이콘
?? 20대인건 예전 글에서 알아서 이미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려니 하는데
비전공자라고요? ?????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읽은 신불해님 글 중에 준가르 제노사이드 관련된 글이 있는데
그걸 보고 중국의 서쪽, 그러니까 중앙아시아쪽 유목문화에 대한 관심, 그쪽 지형과 기후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습니다.
와 여기 이런 사막이 있어? 근데 고원도 있어? 산맥이 이렇게 있어??
그러다보니 이거 보고 저거 보고 하다하다 내려내려와서 헬레니즘 문화까지 내려오게 되더군요.
불교와 크리스트교가 어떻게 융합되는지 이런 것도 보고 참 재미있다 싶었습니다.

정말 일반인 수준의 역사지식을 가진 바보천치지만 항상 신불해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보로미어
18/01/20 20:39
수정 아이콘
신불해님의 글을 볼때마다 생각나는 pgr 유저분이 있습니다.
유게에서 동물에 관련된 글이 올라오면 정성들여서 댓글을 달아주시던 분이 있었는데 판님이라고 있었죠.
그 분은 활동을 접으신지 오래됐지만, 아직도 그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신불해님도 pgr에서 그런 분 중 하나로 남지 않으실까 생각되는데요.
앞으로도 자유게시판에서 자주 뵈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오늘도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영원한초보
18/01/21 00:42
수정 아이콘
(수정됨) 역사는 역사이다는 상당히 중요한 말인데 저는 결론이 많이 다릅니다.
학문을 하고 학문을 써먹을 때 꼭 모든 걸 다 알고 써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관이 들어간 부분을 걷어내고도 역사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인터넷 주류 역사관에서는 민족주의가 엄청나게 비판을 받습니다.
민족주의라는 것이 단순히 한민족끼리 뭉치고 민족을 위해 살아가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적도 있었지만 현재 그런건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족주의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한다고 외지인에 대한 차별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차별에 대한 반작용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피아가 구별이 되는 한 공동체 중심적 뭉침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곳에서는 필연적으로 역사를 이용합니다.
학문을 순수하게 학문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도 필요하고
그걸 올바르게 이용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마리아나스
18/01/21 02:50
수정 아이콘
적극 공감합니다.
it's the kick
18/01/21 01:07
수정 아이콘
추천 하시겠습니까?
네!
스타본지7년
18/01/22 03:11
수정 아이콘
석사 나부랭이지만 역사 전공중인데(이제 4학기 들어갑니다), 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하는 분이에요. 참고로 신불해님 글 달달 정독한 덕분에 중국사 과목들은 거의 다 A+을 맞았답니다(학부때지만). 오프에서 만약에 뵈면 밥이라도 한끼 맛있는 것 사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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