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반기문과 동성애 인권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78323.html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이신 한채윤님의 기고문입니다.)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출마에 관한 이런저런 관측 중에는, 흔히 'LGBT'로 대변되는 성소수자 인권 이슈가 종종 언급됩니다. 이 글에서는 (당선 이후 말고) 선거 과정에 대한 예측만 해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도전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어떤 방향으로든 큰 영향이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1. 반기문

반기문 전 총장의 UN에서의 성소수자 인권 관련된 행보는 분명 진정성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의 행보를 보편인권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운동가든 정치가든 간에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 일환으로 구체적인 대상을 타게팅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실제로 반기문 전 총장이 UN 재직시절 한 발언이나 행동들에서 여성, 그리고 특별히 '성소수자' 이슈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축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UN이 그의 재직 10년 동안 이 측면에서 상당히 진일보했다는 것 역시 자명한 사실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지난 10년동안의 세계인들의 평균적인 인식변화보다 더 급속한 변화였고, 오히려 세계의 분위기전환을 앞서서 이끌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직접적인 공은 전후방에서 열심히 뛰었던 운동가들에게 돌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정치에서 그 목소리를 그렇게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지지해준 행정가/정치인들은 많지 않죠.)

그게 진정성이었든 아니면 어떠한 정치적 움직임이었든 간에,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을 위해서 그간의 행보를 뒤집기는 어려울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본인이 UN에 남긴 가장 중요한 흔적 중 하나를 통째로 부정해야 하는 거라... 이 이슈 자체에 침묵하는 정도가 최대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특별히 반기문 전 총장의 선의나 진정성, 혹은 체면을 신뢰해서 이런 예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선에서 보수 개신교 측의 표가 아쉬워진다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게 또 사람이죠. (애초에 대선 출마 자체가 UN결의안 위반이란 걸 생각하면...) 제가 기대(?)를 거는 부분은 다른 부분입니다. 저는 생각보다 보수 개신교 계열의 사상검증이 그렇게 혹독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경우 반기문 전 총장이 굳이 무리해서 입장철회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음 항목에서 설명하겠습니다.


2. 개신교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수 개신교계열의 가장 큰 관심은, 반동성애 '따위'가 아니고, '보수 정권 재집권'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지점인데, 대부분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실 알고보면 성소수자 이슈에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긍정적인 관심이든, 부정적인 관심이든,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언제나 소수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결혼이 법제화되든 말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전과 별 차이 없이, 별 관심 없이 살아갈 겁니다. 여러 서구권 나라들이 그렇듯이요.

의외로 개신교인들도 그렇습니다. 막연한 거부감, 혐오감 정도죠. 물론 '동성애는 좀 아니지 않아?' 하는 가벼운 수준의 혐오감이야 일반 사회 평균보다는 높은 비율로 관찰되지만, 그렇다고 동성애 반대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하거나 혹은 표심을 바꾸거나 할 만큼 관심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메가폰 잡고 반대/혐오행동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소수입니다. 그나마 지금 정도의 관심이 생기게 된 것도 십년 사이의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개신교계는 왜 이렇게 반동성애에 열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요? 그 해답으로 교계 안팎의 많은 연구들은 이것이 '생존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혹시나 오해하실까봐 첨언하자면) 분명 보수 개신교계에는 나름...의 진정성...과 헌신...으로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고, 이들에게 이렇게까지 발언권이 부여되고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그리 자연스럽지 않으며, 여기에는 어떠한 의도성이 있다는 말입니다.

개신교계는 십수년 전부터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습니다. 개신교 인구비는 예전처럼 가파르게 증가하지 않고, 오히려 줄어들 것을 걱정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개신교에 대한 세간의 인식은 옛날처럼 긍정적이지 않고, 오히려 비판적으로 바뀌어갑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도 더이상 예전처럼 개신교에 인생을 올인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교계 전체의 헌금액이 서서히 감소합니다. 교계 지도자들이 운용할 수 있는 현금과 사업규모가 줄어듭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교회 건물들 세운다고, 특히 대형교회 세운다고 교계가 금융권에 받아놓은 천문학적인 대출이 조금씩 부도가 나고 있습니다. (현재진행형입니다.)

이것은 매우 실제적이며 총체적인 위기입니다. 가만 두면 한국 개신교라는 시스템 자체가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지도자들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위기가 있을 때 내부결속을 다지고 입지를 정비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장 간편한 것은 역시 외부의 적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보수 개신교계는 이 일환으로 반동성애, 반이슬람에 집중합니다.

예장합동·통합·고신·감리회 교단장, "동성애·이슬람 확산, 한국교회 위기"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1206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교단들(실제로 합동, 통합이 1, 2위죠)의 교단장들이 모여서 나눈 대담을 스케치한 기사인데, 그들의 스탠스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참고로 제가 인용한 언론사는 개신교 언론이긴 하지만 개신교계의 이런 흐름에 반대하는 언론입니다.)

현재 한국개신교가 겪고 있는 위기에 동성애나 이슬람의 영향이 손톱만큼이라도 있었을까요? 그럴리가요. 그러나 그들은 개신교의 위기가 동성애/이슬람 때문이라고 개신교인들을 설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동성애/이슬람 관련된 현황들을 과장합니다. 한국에선 과장할 만한 사례도 거의 없으니, 해외의 사례를 끌어옵니다. 본래 개신교계가 반동성애를 하는 이유는 그냥 내부 교리적인 문제 때문이기 때문에 교계 밖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교계 밖에서의 설득력과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동성애와 에이즈 사이의 인과관계, 에이즈의 위험성을 적극 조작, 과장합니다. 퀴어문화축제를 방해하기 위해, 동성애/이슬람 반대집회를 하기 위해 사람들을 버스로 실어나릅니다. (정작 실려온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잘 모르면서 그냥 교회에서 어디 집회 있다며 가자고 해서 따라온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이렇게까지 해야 사람들이 '그렇대나보다' 정도로 반응합니다.

물론 점잖으신 교계 어르신들, 정치 목사들이 직접 이런 일을 다 실무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위에서 말한 열정적인 조직/단체들에게 발언권을 주고 돈을 지원하면서 적극적으로 키워주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반동성애/반이슬람보다도 더 오래된,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생존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보수 정권에 결탁/부역하는 것입니다. 개신교계가 반동성애/반이슬람에 이정도로 집중해온 것은 기껏해야 10년 남짓이지만, 보수 정권에 대한 결탁/부역은 대한민국의 역사 내내 지속되었습니다. 이들에겐 이쪽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전략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반동성애는 하면서도 그 와중에 보수정권을 건드리는 일은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현재 기준) 야당계열 인사가 동성애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발언을 하면 열심히 물어뜯지만 여당계열 인사에게 그러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여당계열 인사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일 자체가 별로 없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단적인 예로,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시절에 '동성애는 인정해야 한다'라든지, '동성애에 대한 차별을 없게 할 것' 같은 발언을 하였으나 보수 개신교계가 이걸로 박근혜 후보가 물어뜯는 걸 보신 기억은 별로 없을 겁니다. 새누리당은 윤리강령에 떡하니 성소수자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지만, 보수 개신교계가 이 문제를 가지고 새누리당을 물어뜯는 일은 잘 없습니다. 화살은 대체로 야당과 야권 인사들만을 향할 뿐입니다. (지금이야 다르지만) 보수 개신교 카톡방은 한 때 박근혜 팬클럽 같은 분위기를 연출할 정도였습니다. 은혜로운 하나님/신앙 이야기와 박근혜 칭송이 공존하는 그 공간은, 기괴하긴 하지만 어떠한 일관성을 보여줍니다.

애초에 박근혜 후보/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개신교적 가치를 대변하길래 보수 개신교계가 박근혜 대통령을 적극 지지해줬을지를 생각해보면, 그런 거 없습니다. 이들이 정계에 목소리를 내는 매커니즘의 근본은 '개신교적 가치'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반기문이 보수정권의 최중요 대권후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지금, 보수개신교계는 반기문의 성소수자 인권 관련된 발언을 굳이 집중조명하지 않습니다. 만약 야권 인사가 비슷한 수위의 발언을 했다면 보수 개신교 언론과 카톡방들은 연일 그 소식을 집중조명했겠지만, 반기문에게는 그러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반대로 반기문 후보가 이 문제에서 몸을 사려주면 좋지만, 그것 때문에 결정적으로 대선에 영향이 생기는 것은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문제는, 진정성과 열정으로 반동성애 운동을 하는 이들의 존재입니다.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는 불편한 존재일 것입니다. 눈치도 없이 반기문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동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이들을 제지할 수도 없습니다. 이들은 (보수 개신교 내부적으로는) 옳은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요. 아마 적당히 발언권을 회수하는 선에서 대처하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예상을 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교계 권력을 가진 자들과 메가폰을 잡은 자들이 반기문과 동성애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지 않는다면, 개신교 표심도 굳이 그 이슈에 별로 휘둘리지 않을 겁니다. 앞에서 말했듯, 원래 사람들은 이 이슈에 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정치력을 행사하는 이익집단으로서의 보수 개신교계는, 반동성애보다 보수 정권 재집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 정치력으로 굳이 반기문 후보를 적극 방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3. 성소수자 인권운동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은 오랫동안 하드한 투쟁을 해왔기 때문에 그리 순진하지 않습니다. 반기문은 UN사무총장 시절엔 분명히 이들에게 어느 정도 힘이 되는 존재였지만, 한국 대통령이 되어 보수 정권의 페르소나가 된 다음에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새누리당은 윤리강령에서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방향성을 채택했지만, 막상 이들이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뭐 대단하게 한 게 있습니까? 그렇다고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길 했습니까? 이들에게 반기문 후보의 성소수자 관련 스탠스는 참고사항은 될지 몰라도 표심을 결정짓는 한 방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이 쪽에서 기대하는 반기문의 효용은, 꼭 대선에 승리하여 대통령으로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적극 뛰어줄 것보다는, 성소수자 인권 이슈에 대한 정치판의 평균적인 이해/담론/태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촉매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무튼, 성소수자 인권운동계에서 반기문을 적극적으로 밀어줄 가능성은 별로 없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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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줄 결론: 이번 반기문 전 총장의 대선 도전에서 성소수자 이슈는 어떤 방향으로든 큰 영향이 없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