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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4/20 14:37
크크 20분뒤에 세계대전 시험보는데 이런 내용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프린트에서는 힌덴부루그 계획이 한계에 부딪히자 나왔다고 했는데 그 이전부터 여러가지로 실험하고 있었나 보네요.잘 읽고 갑니다.
16/04/20 15:56
크크 빈칸시험이여서 내용은 단순 암기입니다.대신 교수님이 전쟁 덕덕이여서 재밌는 얘기가 자주 나옵니다.말하는 것도 홍진호 스타일여서 재미 2배에요.
근데 독일 입헌 혁명을 바이마르 입헌 혁명이라고 써서 쫄리네요.교수님 자비 좀....ㅠㅜ
16/04/20 16:05
전 역사학 복전한 후 전쟁사 수업 없나 열심히 뒤져봤는데 하나도 없더라구요...
전년까지 태평양전쟁 강의했던 분은 계셨는데 과에서 하지말라 그랬는지 커리큘럼을 바꾸셔서 하필 저때부터 사라짐 흑흑 교수님의 자비 기대합니다 크크
16/04/20 15:36
이거 어째 기계화 제파전술 혹은 종심 전투 비스무리한 게 떠오르네요. 취약한 일점을 깊숙히 돌파하고 신속하게 병력을 전개해 전과확대를 노리는 거... 이거 소련의 투하체프스키가 이야기했던 종심 전투 아니었나요? (책이 좀 오래 된 거긴 합니다...;) 그렇다면 훗날 종심 전투니 기계화 제파전술이니 낫질 작전이니 하는 것들의 모티브가 바로 후티어 전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1차 대전 당시에는 프랑스군도 이러한 전술을 충분히 개발 및 활용할 능력이 충분했다는 이야기가 되구요. 그렇다면, 1) 왜 프랑스의 이러한 전술적인 움직임을 개발할 능력은 전혀 부각되지 못하고 오히려 닥치고 개돌이라는 이미지가 심어졌는가와, 2) 대체 2차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프랑스는 뭘 하고 있었느냐는 의문이 드는군요.
그리고 이게 좀 헷갈리는데, 여기서는 후방의 목표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부차적인 단계로 2단계에 투입된 보병들이 적 참호의 병력을 섬멸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나 목표는 적 병력의 섬멸이 아닌 적의 후방을 탈취하는 것이라고 해석되는데 이게 맞는지 모르겠군요.
16/04/20 16:06
뭐, 후티어 전술 등 침투 전술을 개발할 당시에는 프랑스군은 여전히 "돌파"라는 구시대의 개념이 아직 가능한지 긴가민가한 상태였습니다. 페르디낭 포슈, 필리프 페탱, 에밀 파욜 등의 지휘관들은 "체계적인 공세", 즉 포격으로 확실히 짖밟고 보병은 잔해처리및 깃발꽂이역으로 활용하는 그러한 방식의 공세로 기울었지만 빅토르 위르발같은 지휘관은 여전히 돌파가 가능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끝없는 인력을 목표를 향해 공격하는 "무한 전투"를 선호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에서 언급하는 노트 5779는 프랑스군의 참호전에 대한 해답이 아닌 과도기를 넘어가는 순간의 이정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질문에 답하자면: 1. 그건 그냥 사람들이 프랑스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아니면 호시탐탐 까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군의 공세정신은 오인된 측면이 많고 포슈의 최대 비판자이자 프랑스군의 공세정신에 대해 여러 서술을 보인 리델 하트조차도 주장하지 않은 것들이 나무위키 "엘랑 비탈" 항목에 실려있는 바입니다. 프랑스군은 1915년의 과도기를 거쳐서 1916년에 이르면 상당한 전술능력을 갖춘 덕분에 영국군이 공세 첫날에 5만의 사상자를 낼때 프랑스는 겨우 1000명 정도의 사상자를 내고 훨씬 더 많은 영토를 얻는 대성과를 얻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부각하지 않고 그간 나무위키나 다른 사이트의 1차대전의 프랑스군에 대한 항목은 전초의 군복이나 초반의 공세로 인한 피해를 비웃기 바쁘고 1차대전을 승리했다는 점 또한 2차대전의 패배나 입은 피해로 인해 무마하고 조롱으로 일관하기 바빴죠.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 최고의 명장이라 할 수 있는 페르디낭 포슈 조차도 제대로 무슨 역할을 했는지 알려지지 않은 채로 프랑스의 츠지 마사노부인양 까인 것은 이러한 풍조의 일환이라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2.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프랑스군의 전술/전략의 발전은 상당히 복잡한 분야지만 로버트 다우티 교수의 "The Pyrrhic Victory"나 "The Seeds of Disaster"을 참고하는게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조금 더 첨언하지면, 프랑스군이 1918년에 개발해낸 해답은 결국에는 돌파라는 개념을 버려서 이뤄낸 것입니다. 포격으로 적진을 박살내고, 포병의 사거리까지 보병을 진격시키고, 포병 또한 앞으로 들이밀고, 다시 포격으로 적진을 격파한다는 것을 전술적인 국면에서 반복했습니다. 전략적인 국면의 경우에는 한 전장에 집중하는 개념을 버리고 여러 전선을 서로 다른 타이밍에 공격해서 적을 조금씩 조금씩 밀어내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해서 독일군이 방어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묻매를 맞도록 강요했습니다. 결국에는 2차 마른 전투에서부터 거의 120일간 제대로된 반격을 못하고 완전히 완패하며 벨기에와 프랑스에 장악한 영토를 죄다 토해낸 다음에 11월 11일에 사실상 항복하는 결과를 냅니다. 이는 "The Pyrrhic Victory"에서 다루는 1918년의 성과이며 1939년에 프랑스군에게 뭔일이 일어났기에 그리 사단이 일어났는지는 "The Seeds of Disaster"의 몴이지만 개인적으로 읽어보지 못한 탓에 제대로 답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16/04/20 17:39
그러니까 1918년의 성과는 점 계획이 아닌 선을 차츰차츰 밀어내는 방식으로 이뤄낸 성과라는 것이군요. 문자 그대로 화력전 및 소모전이구요. 주공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으니 독일군도 꼼짝없이 전 전선에서 대응하면서 얻어맞을 거 다 얻어맞고 물러났어야 했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이런 작전이 먹히려면 결국 인력과 물자적으로 엄청나게 우세해야 말이 되겠네요. 하긴 미군도 몰려오는 판이었으니 먹힐 만도 했고...
16/04/21 00:32
음 제 설명이 좀 비루해서 그렇지 1918년의 교전은 4년만에 부활한 기동전이라는 측면이 부각되긴 합니다. 허나 말씀하신대로 화력전 및 소모전으로 말그대로 독일군의 마지막 전력을 빨아먹어서 군 자체의 붕괴를 이끄는데 주력했지 우월한 기동력으로 적군을 돌파하고 유린하는 방식 (가령 1940년의 프랑스 침공이라던가)을 선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그 시점에서 영불 모두 허덕이던 시점에 미군은 애송이에 불과한다는 점에서 1918년에 연합군이 보인 분투는 놀라운 수준이고 그만큼 독일군 또한 그간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춘계공세로 인해 전력저하가 더욱 심해지고 공세한계점을 도달한 상태에서 2차 마른 전투라는 완전히 허가 찔린 역습을 맞이하고 2차로 아미엥 공세에서 얻어터진데다가 모든 전선에서 두들겨맞으니 버틸 제간이 없었던 것이죠. 가끔 1차대전을 서술하면서 이긴 사람은 없고 더 잘버틴 사람만 있다는 식으로 서술하는데 솔직히 분통이 터집니다. 확실히 독일에 대한 군사적 승리를 120일간 거둬서 11월 11일의 종전을 이룬 것인데 말이죠. 결국 단순히 버텨서 승리가 가능했다면 2차 마른 전투에서 전쟁이 끝났겠죠.
16/04/21 00:34
감사합니다 :). 1차대전은 확실히 요즘 재미있는 논문과 책이 많이 나와있는데 대부분이 미번역이라 아쉽습니다.
근데 이거 번역하면서 들인 노력을 고려하면 왜 안하는지 백번 이해되더군요; 돈도 안되고 인지도도 낮은데 난이도마저 어려우니;
16/04/20 20:43
밀덕계에 만연해 있는게 일단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까고 보는게 대세라서...
오랜 시간동안 봐왔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려는 시도는 찾기 힘들고 그저 일본발 비웃음밖엔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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